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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2213.2023.10.15)
살전5:16-22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고난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괴로워하며 의심 원망 불평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알고 신앙생활 하면 된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삶속에는 고난의 연속이므로 열심히 노력해도 잘 되지 않고, 되는 것 같다가도 잘 안되고,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 하는 의심마져도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딜레마에 빠찌게 됩니다. 간혹 당장에 감사가 안 되어도 의지적으로 감사하려고 노력했더니 아주 바람직한 모습으로 끝났고 점차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다는 간증들을 합니다.
인생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고민과 문제와 갈등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종류나 정도는 다르지만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어린 사람은 어린 사람대로, 학생들은 학생대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연세가 많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고민이 있고, 많이 가진 사람이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갖춘 사람은 그대로 각자가 고민이 있고 남모르는 어려움을 겪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늘 문제가 있고 고민거리가 있게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과 시련이 많은 인생살이를 어떻게 매일 좋은 날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파란 만장한 굴곡 많은 인생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듯한 절망의 때가 옵니다. 환멸이 앞서고 눈물이 흐르고 괴로운 시절을 살아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죽으라고 헌신과 봉사를 했는데 내게 돌아온 것은 낙심입니다. 영광뒤에는 반드시 낙심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 용문산 기도원 집회를 잘 마쳐서 월요일 안동에 중부지방 장로님들이 80명이 오셔서 노방전도한다고 해서 갔습니다. 삼남연회 장로회장을 비롯해서 임원들도 오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한분이 단장님 용문산 기도원 집회 은혜로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주방에 밥도 참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도록 허락 해주셔서 여선교회에서 잘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주일에는 동해안에 모시고 위로차 갑니다했습니다. 지난목요일에는 경주에 연회 원로장로님들이 모였는데 김생녀 장로님이 제 옆자리에 일부러 찾아와서 나는 목사님이 너무 좋아서 옆에서 식사를 하시겠다고 하여 옆자리 앉아 밥을 먹으면서 심장로님과 여선교회 칭찬을 했습니다. 두달이 지났는데도 칭찬이 자자해서 저는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영광뒤에는 마귀가 항상 장난쳐서 힘 빠지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도 기도하면서 마귀가 장난을 쳐도 이기려면 말씀의 제목처럼 매일 행복하고 좋은 날이 네게 임하도록, 우리 상주감리교회에 임하도록 기도하고 말씀 준비하고 여러분에게 혹시라도 힘빠져서 낙심이 되는 분이 있으면 행복하고 좋은날이 내게 임할것이라는 믿음으로 이겨내시라고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뿐만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위대한 사람들을 보시면 불의 사자 능력의 사자 엘리야도 갈멜산에서의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 이세벨의 말하마디에 낙심되어서 힘을 잃어 죽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를 통해 공급받는 떡과 생수는 그를 일으켰고 40주야를 황야를 달려가게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듣고 은혜받고 내게도 다시한번 행복한 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1.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그 행복을 위하여 항상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교도소 가서 말씀을 전하면 웃지도 않고 아멘도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화요일날 오후 3시에 빵 100개 사가지고 들어가서 설교를 하는데 남자들이 아멘도 많이 하고 웃기면 웃고 합니다. 행복해지려면 10가지를 설명을 하고 예수님 믿으라고 이야기하고, 제가 은퇴후 사용하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소방2급 자격증을 따두었다고 하니까 박수도 치고하여 보답으로 또 웃고 살자고 매직도 3가지를 보여드렸더니 웃으면서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목사님이 목사님이 설교하면 아멘도 잘하고 웃는다고 ㅎㅎㅎ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웃기만 해도 복이 옵니다. 웃기만 해도 친구가 많아져 인복이 열립니다. 인복이 열리면 형통의 문이 열립니다. 그러나 은혜의 문은 그냥 스마일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항상 아버지께서 날 사랑하시고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구원과 아울러 온갖 아름다운 특권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을 시인하는 중요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롬4:19-22절‘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믿을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십니다. 시50:23절‘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만 아는 비밀입니다. 이걸 몰라 세상을 너무 어둡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니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실상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룻은 참 불행한 여인이었지만 남편죽고 두 자녀죽고 정말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행 때문에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그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모리아산의 자식을 바쳐야 하는 고통이 있었지만 그 고통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생활 한두해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신앙의 위인들 가운데 시험이 없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과 환멸을 이기고 승리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과 부족한 것 때문에 불평하며 씨름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아요.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기에도 짧은 인생, 원망하고 짜증내고 한숨쉬고 짜며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때로 힘들고 어렵지만 힘들면 힘든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환경을 탓하지 아니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든든하게 매일 좋은 날로 사는 인생의 비결이 예수안에 있는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매일 행복하고 좋은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쁨이 있는 사람은 얼굴의 표정에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의 인상은 좋은 인상되기 바랍니다. 좋은 인상이 무엇입니까? 속에서부터 즐거움이 넘쳐나면 다 미인이고 미남입니다. 실제로 그렇잖아요! 걱정 걱정 꽉차면 화장빨 안받습니다. 예, 웃는 얼굴이 좋은 얼굴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얼굴이 밝아집니다.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기쁘고 좋은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좋은 일들이 많기를 축원합니다.
사탄 마귀는 우리가 은혜 받은 것을 시기하여 방해하고 때로는 환난과 시험을 갖다 주어서 그 은혜를 쏟아버리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은혜를 사탄에게 빼앗기지도 말고, 또 쏟지도 말고, 소멸되지 않고 불 일듯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해산하는 고통과도 같은 수고와 부르짖음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쏟아 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받은바 은혜를 쏟지 않고 오래 오래 간직하고 충만하게 하는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비결을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 여러분들 마음 깊은 곳에 행복의 열쇠가 숨겨져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먼저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고, 또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축복하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도와주고, 베풀 때 행복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도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행복의 전제조건이 없을 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참된 행복은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은혜를 오래 간직하는 비결의 첫째가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모일 때 역사가 일어나고, 모일 때 기사와 이적이 일어납니다. 또 모일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모일 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행2:46절‘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또 느헤미야 9:1절 이하의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성회를 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모일 때에 모이지 않고 혼자서 떨어지게 되면 반드시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사자, 치타, 표범, 같은 육식성 맹수들이 약한 짐승을 공격할 때에는 무리들 중에서 떨어져 있는 동물을 공격 대상을 삼고 달려듭니다. 그러면 그 떨어져 있던 짐승은 십중팔구 맹수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아궁이에서 잘 타고 있는 장작 하나를 꺼내서 따로 놓아 보십시오 그러면 그 장작은 금방 불이 꺼지고 맙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의 비유가 있습니다. 목자가 하루 종일 양을 몰고 다니다가 저녁에 우리에 넣을 때에 양을 세어보니 한 마리가 없습니다. 목자는 그 한 마리를 찾아서 하루 종일 다녔던 곳을 헤매며 찾아다닙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절대로 잃은 양 한 마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은혜를 받고 기뻐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자기 혼자만 성령의 불은 꺼지고 연기만 피워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나 나게 하여서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받은 은혜를 소멸치 않는 가장 큰 비결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 성도들이 모이지를 못하게 합니다. 방해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교회를 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저녁예배에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새벽기도 못나가게 합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충성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한 번 넘어지게 되면 또 넘어지게 됩니다. 한 번 시험에 쓰러지면 다음에는 더 작은 시험에도 또 쓰러지게 됩니다.
3.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그 행복을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은 우리 모두의 이상이요,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 힘쓰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막상 당신은 행복하느냐고 물으면 자신있게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 이후부터 확실하게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합니까? 행복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외부의 조건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찾다보니 자꾸 비교의식이 생깁니다. 아니면 행복의 조건을 물질에서 찾게 됩니다. 물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결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행복을 찾아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은 여러분 마음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그 행복을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왜 기도를 해야 합니까?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이 없는 사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죽음 사람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기도가 없다면 그 믿음은 곧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신앙이, 믿음이, 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생명의 호흡인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시150:6절‘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께 기도할지어다’할렐루야!!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상대성입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언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어떤 생각을 말로써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말을 통하여 사랑을 노래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의 언어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바로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입니다. 대화의 통로가 막히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계2:7절‘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수돗물을 수원지에서 아무리 보내도 중간에서 파이프가 막혔다든지, 끊겼다든지, 고장이 났다든지, 하면 절대로 수돗물을 받아먹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신령한 대화의 통로인 기도가 막히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옵니다. 우리 인간의 힘은 제한적입니다. 불가능한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소불능 하십니다. 막9:23절‘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9절‘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했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드시 주실 것을 믿고, 응답하실 것을 믿고 간구해야 합니다. 마7:7-11절‘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렘29:12-13절‘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33:3절‘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요15:7절‘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약1:6절‘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했습니다.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다가 낙심하는 이유는 응답이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빨리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를 뿌리고 그것을 거두려면 적어도 몇 달은 가꾸고 보살피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하였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빨리 응답이 없다고 쉽게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눅18:1절‘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 갈6:9절‘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앞에서 기도는 성도들의 호흡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은 지속적으로 쉬어야 됩니다. 쉬었다가 하고 또 마구 숨을 쉬다가 멈추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기도도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삼상12:23절‘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 살전5:17절‘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는 뜻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여러분들은 절대로 기도를 쉬지 말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를 쉬게 되면 열심히 식어지고, 은혜가 떨어지고 성령의 불이 꺼집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면 흑암의 세력 사탄 권세가 찾아옵니다. 그러면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 17절‘쉬지 말고 기도하라’하였습니다. 여기‘쉬지 말고’는 기도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24시간을 입으로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부단히 의지하라는 것이요, 항상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라는 의미요, 기도하는 정신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성도가 쉬지 않고 기도함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기도는 살아 계신 인격적인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소원들을 아룀으로 도움을 바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자에게 찾아오는 모든 일을 처리해 주는 도구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게 되고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 때문에 기도시간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기도가 일을 잡아먹어야지 일이 기도 시간을 잡아먹도록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기도 생활은 예수님이 몸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지름길이요, 통로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소돔성 멸망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애굽의 학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기도는 태양을 멈추게 하므로 아모리 사람을 대파하였고, 한나의 기도는 사무엘을 얻는 기쁨을 맛보았고, 다윗의 기도는 모든 위기를 모면케 해주었습니다. 엘리야의 갈멜산상에서의 기도는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나타내었고, 다니엘의 기도는 사자의 입을 봉함으로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를 멸절시키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하였고, 바울의 기도는 빌립보 옥문을 열게 함으로써 간수장이 예수를 믿는 생명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Monica)의 눈물의 기도는 방탕아를 성자로 변화시켰고, 루터는 하루 세시간씩 기도하였기에 종교개혁의 빛을 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야말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지름길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도 기도의 중대성을 알았기에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에스라는 기도를 보병과 기마병의 무리보다 더 중한 것으로 여겼습니다(스8:21-23).
그러면 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를 쉬면 시험에 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고 잠에 빠졌을 때 마26:41절‘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도는 취미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성도에게 필수입니다. 기도는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자동적으로 되어지지도 않습니다. 기도는 노력하고 힘써야 되는 것입니다(롬12:12). 우리 모두 기도에 힘씀으로 개인과 가정이 잘되고 교회가 형통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그 행복을 위하여 감사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8절‘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 ‘범사에’는 ‘모든 일 안에서’라는 뜻으로 나그네 인생 여로에서 겪는 모든 일 즉 기쁨과 슬픔, 축복과 저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행복과 불행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삶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잠8:17:19). 그러므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롬8:28).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드림을 잃지 말아야 됩니다.
다니엘은 죽음 앞에서도 감사를 드렸습니다(단6:10). 감사하라는 명령은 사람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감사가 없는 인생은 모든 것이 자기의 능력에 의해서 되어지는 줄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는 나의 나 됨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악한 자는 감사가 없습니다(롬1:20). 외식하는 자는 자기의 교만으로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눅18:11). 그러므로 이들의 삶에는 감격도, 기쁨도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자는 마음에 평안이 깃들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하는 자는 늘 감사뿐이지만, 불평을 하는 자는 매사에 불평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그 크신 은혜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하신 하나님! 지금도 나를 위하여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존재 세계를 통치하시고 보존하시며 섭리하시는 그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상업적이고 상투적인 감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참된 감사가 우리의 입에서 터져 나와야 할 것입니다. 골3:15절‘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활은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내게 유리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불리할 때도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내가 모든 일이 잘 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이 잘 안되고 어려울 때 하는 감사가 정말 값진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중에서 드리는 것보다 없는 중에서 최선을 다하는 감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축복의 문이 열려집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사르밧에 사는 가난한 과부는 온 나라가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 그 어려운 중에서도 엘리야를 공궤 하였을 때에 3년 반 동안의 기근을 넘길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들이 금령을 만들에 왕의 어인을 찍어 공포가 된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머리 터럭 하나 상치 않고 살았습니다. 범사란 모든 일을 말합니다. 환경이 좋고, 나의 모든 여건이 좋고, 모든 일이 내가 계획 한대로 잘 될 때만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어렵고, 생활이 어렵고, 환경이 어려울 때 그리고 일이 잘 안될 때에도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롬1:21절에는 감사가 없는 것은 믿음이 없이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 딤후 3:2절에는 감사치 않는 것은 적 그리스도적인 배도자의 증표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 하는 큰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 생활은 성도들의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은 성도들이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 또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 말씀하시며 또 엡5:20절‘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결코 감사가 없는 신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를 하여야 합니까?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용되는 식물, 햇빛, 공기, 물, 등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물이 모두 다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것들 중에서 한 가지라도 거둬 가신다면 우리 인간들은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환난과 고난과 역경 중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신자 된 우리들의 생활에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슬프고, 병들고, 실패와 좌절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욥은 극심한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였습니다. 욥1:21절‘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우리가 형통하고 기쁘고 건강할 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역경의 때에도, 슬플 때에도, 병들었을 때에도, 원망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신자의 축복이 있고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넘치도록 하는 최선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의 생활을 하면서도 헌금을 할 때에는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후9:7)고 하셨습니다. 살전 5:15절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감사는, 마음으로 감사하여 기도와 찬송과 예배를 드려야 하고, 몸으로 감사하여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아니하여야 하고, 물질로 감사하여 넘치도록 드리기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4.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그 행복을 위하여 봉사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봉사는 곧 행함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 열매가 행함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열심이 없던 사람이 열심을 내고,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를 합니다. 교회에 봉사하지 않던 사람이 열심히 맡은바 직분에 충성을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면 감사가 넘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바로 은혜 받은 성도들의 성령의 열매이며 행함입니다.
갈5:22-23절‘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약2:14절‘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7절‘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22절‘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2:26절‘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봉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몸으로 하는 봉사가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봉사는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받은 직분에 충실해야 하며, 교회에서 하는 일에는 무슨 일이든지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하는 것입니다. 물질로 하는 봉사가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제각기 달란트가 다릅니다. 또 재능이 다르며 사명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로 하는 봉사는 내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대행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소멸치 않고 항상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에 봉사야말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상주감리교회성도들은 앞으로 열심히 봉사를 하여 은혜 안에서 늘 충만한 삶을 살고 또 하나님의 큰사랑 안에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