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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향은 지금 외2
정영기
아름드리 소나무도
연분홍 진달래
떠난 지 오래된 그 자리
파아란 잔디밭만이
산허리 감돌아 펼쳐진 곳
골프채 거머잡은 신사
거만하게 허리 구부리고 서서
하얀 골프공 엉덩이 몇 번
토닥토닥 만지다가
다시는 안 볼 듯 획 쳐버린 순간
백구가 파란 하늘 가르고 날아
푸른 잔디밭에 풀썩 주저앉는다.
개기름 자르르 중년 신사
백구를 보며 호탕하게 웃고 있을 때
정자나무 그늘 밑엔 까만 승용차가
오뉴월 햇볕에 졸고 있다.
도랑 건너 산기슭
고스러진 보리밭엔
늙디늙은 할 배 할 매
낫자루 잡았던 손에
침 퇘 퇘 밭아 다시 움켜잡고
비바람에 누어버린 보릿짚 한 줌 쥐어뜯으며
내뱉는 한숨 소리 이랑마다 가득 찰 때
찌그러진 손수레만 밭 언덕에
누더기로 남아있는
지금은 텅 비어버린 우리네 고향
파초
재잘대던 애들도 떠나간 빈자리
고요한 가을 햇살 한 줌
남창을 열고 가슴에 반기며
호화롭던 지난여름을 내려다본다.
오뉴월 뜨거운 햇볕
줄기차게 쏟아지던 빗줄기
고향마저 잊었던 한때의 꿈
결코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숙명 앞에 무릎을 꿇고
빈 하늘을 향해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벗은 가슴 찢긴 나래 부딪히는 북서풍
찬 서리 설한풍 모를 내 아니건만
옷깃마저 여미고 갈 짬이 없으니
타향살이 서러움 이제야 알았네.
이 어두움은
사람들은 악마 같은 어둠을 싫어한다.
어둠은 평생을 나와 같이한 나의 길동무요.
내 모습을 밝히는 등불이다.
지우개 흔적까지 드러나는 백지 같은 대낮
삼라만상 화려한 그늘 속에 가리워진
내 작은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세상이 고요히 잠든 어둠 속에
혼자 앉아 내 모습을 찾는다.
햇볕에 증발해 버린 편린들이
다시 찾아 와
내 모습만 하얗게 드러내 보인다.
까아만 어둠 속에
내 모습은 하얗게 드러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