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거스님의 좌선의(坐禪義)] 42. 좌선전의 마음가짐(誓願)
‘왜 참선을 하는지’ 동기 분명해야
옛말에 백리의 길을 가고자 하면 하룻밤을 세워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리의 길을 가고자 하면 석달 동안 먼 길 채비를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만약에 뜻을 세워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만큼의 준비가 있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가 참선을 수행하여 공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가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명백히 알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 연재한 자각종색선사(慈覺宗禪師)의 참선지침서인 요점을 발췌하고 핵심을 요약하여 좌선의에서 제시한 수행방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자각종색선사는 좌선의에서 참선을 수행하고자 하는 수행자는 반드시 서원(誓願)을 세우고, 모든 반연을 쉬고(捨緣), 음식을 조절(調食)하고, 수면을 조절(調眠)하고, 수행할 곳(擇處)을 가리고, 몸을 조절(調身)하고, 호흡을 조절(調息)하고, 마음을 조절(調心)하고, 마장을 가리고(辨魔), 호지(護持)할 바를 지녀야 하는 등 10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마치 천태지의 선사의 <소지관(小止觀)>의 수행법과도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참선 수행의 방법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좌선의>에서 제시한 서원(誓願)에 대해서 살펴보면 참선을 하고자 하는 수행자가 먼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은 다름이 아니라 서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참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참선이 좋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무엇이 좋은지도 모르고, 어디에 좋은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경우 참선의 바른 수행방법을 알 수가 없고, 바른 수행방법을 알지 못하고 참선을 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력만 낭비할 뿐 공부에는 진전이 있을 수 없다.
종색선사는 서원 세우고, 모든 반연을 쉬고
음식·수면을 조절하고, 수행할 곳을 가리고
몸·호흡·마음을 조절하고, 마장을 가리고
호지할 바를 지녀야 하는 10가지 제시
따라서 참선을 막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왜 참선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동기이다.
예를 들어 ‘고통을 없애고 싶어서, 건강을 위해서, 잘 살고 싶어서, 잘 죽고 싶어서, 아니면 화 잘내는 성격을 가라앉히고 싶어서, 마음에 평화를 느끼고 싶어서, 깨달아 내생에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동기가 분명해야 참선을 잘 할 수 있게 되고 참선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참선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야 참선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처음 참선을 시작하게 되면 맨 처음 직면하는 것이 다리 아픔의 고통이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 자체에 고통을 느낀다. 특히 요즘사람들처럼 입식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땅바닥에 앉아 부동의 자세로 계속 앉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삶의 고통을 이길 수 없게 되고, 결국 중도에 포기하게 되고 만다.
그러나 동기와 목표가 분명하면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분명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참선을 시작하기 전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자세, 방법 등을 어느 정도 알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
<좌선의>에서 좌선을 통해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먼저 대비심을 일으키고(起大悲心), 큰 서원을 발하고(發弘誓願), 정밀하게 삼매를 닦고(精受三昧), 맹세코 다른 사람을 제도하고(誓度衆生), 자신만을 위해 해탈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不爲一身獨求解脫)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 이것이 참선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임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좌선(坐禪)이라는 말을 먼저 정의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선(禪)에는 행주좌와의 구별이 없다. 그러므로 움직이면서 하는 선을 행선(行禪), 서서 하는 선을 입선(立禪), 앉아서 하는 선을 좌선, 누워서 하는 선을 와선(臥禪)이라고 한다. 사실은 일상생활 전체가 선이 된다. 하지만 처음 참선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기본적으로 앉아서 하는 선인 좌선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참선을 하는 사람들을 반야를 배우는 보살이라고 한 까닭은 참선을 통하여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의 다른 말이 반야이다. 이러한 반야보살에게 먼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대자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사랑이 기독교 사상의 실천적인 측면을 표방하고 있다면 자비는 불교사상의 실천적인 측면을 대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자비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자비를 베푸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자비심을 일으키는 단계에 따라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법연자비(法緣慈悲).무연자비(無緣慈悲)의 3연자비(三緣慈悲)로 구분된다.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는 중생의 개별적인 모습을 보고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생각하여 베푸는 자비로서 범부나 아직 번뇌를 끊지 못한 이가 행하는 자비이다.
법연자비(法緣慈悲)는 일체제법(一切諸法)이 5온(五蘊)의 화합으로 생겨난 공(空)한 것임을 깨닫고 난 뒤 베푸는 자비로 번뇌가 끊어진 성자(聖者)가 일으키는 자비이다.
무연자비(無緣慈悲)는 온갖 차별된 견해를 여읜 절대평등의 경지에서 제법의 진여실상(眞如實相)을 깨달은 보살과 부처가 행하는 자비이므로 대자대비(大慈大悲)라고 한다.
또한 큰 서원을 발해야 하며, 서원을 세운 뒤 그 서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정밀하고 꾸준히 삼매를 닦아야 한다. 이렇게 공부하여 공부가 이루어지고 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제도해야 하고 자신만을 위해서 해탈을 구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으니 이 모두가 참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또한 천태지의 선사도 <소지관(小止觀)>에서 참선을 하기 전 5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 5가지는
계를 지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지계청정(持戒淸淨), 옷과 음식을 갖추되, 검소하게 생활하는 의식구족(衣食具足),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머무르는 한거정처(閑居靜處), 모든 주위환경의 일들을 정리하고 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식제연무(息諸緣務), 선지식(스승)을 가까이하는 근선지식(近善知識) 등이다.
이 중 한 가지만 빠져도 오롯이 수행하기 어려우니, 참선을 시작하기 전 우선 이 모든 것을 점검해서 부족함이 없게 해야 수행을 이루기 쉬울 것이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혜거스님은 1959년 삼척 영은사에서 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 김제 흥복사 등에서 수선안거했다. <한암대종사문집>, <탄허대화상문집> 편찬위원장을 맡았으며 2005년 탄허불교문화재단 제7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불교방송 ‘자비의 전화’ 상담과 경전 강의, 불교TV 경전 강의 등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다. <참나>를 비롯해 <혜거스님의 금강경 강의>, <유식 30송 강의>, <15분 집중 공부법>, 혜거스님과 함께 하는 마음공부 <가시가 꽃이 되다> 등의 저서가 있다..
[불교신문 2576호/ 11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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