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경계, 문턱. 이 단어들 앞에서 어떤 느낌을 받게 되실런지. 일견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유동적이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가슴 벅차오르게 하는 어떤 자유의 이미지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삶인가. 그렇지만 동시에 피상적인 접근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현재 삶의 조건이 ‘프리캐리어스’(precarious), 즉 불안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니까. 단적으로 우리는 아무도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을 원하지 않는다. 누가 그러 하겠는가. 다시 말해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과 ‘낭만적이지만 불안하게 산다’는 것은 전혀 층위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두 명의 ‘경계인’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다. 서경식 그리고 장률. 두 선생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위치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할 귀한 계기와 마주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선생 모두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거나 혹은 말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불현듯 그런 생각이 엄습했다. 그제서야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왜 하필 그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가, 혹은 죽음에 대한 사유가 그들 곁에 자리하고 있는가. 그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있겠다란 생각이 뒤이어졌다. 그리고. 경계인의 ‘위치성’ ― ‘정체성’이라기보다 ― 을 선험적으로 타고 난 이들에게 죽음은, 일반인과 달리,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감각일 수 있겠다 싶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아우슈비츠 생환자 프리모 레비의 마지막 저작이다. 한국에 프리모 레비를 소개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재일조선인 서경식 선생을 출간 기념 차 출판사에서 마련한 자리에서 만나 뵐 수 있었다. 선생의 조선말은 독특하다. 그럴 수밖에. 일본어를 모어(母語)로 지닌 자의 세컨드 랭귀지(second lanugage)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생경함이 일종의 결핍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특이점이 있다. 낯설게 들릴지언정 단단한 언어, 그런 느낌을 선생의 구술 언어에서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청중의 귀를 잡아끄는 묘한 끌림의 힘이 선생에게는 있(었)다.
그 자리에서 서경식 선생은 프리모 레비의 자살에 대해 언급했다. 인간 이하의 처참한 수용소 생활에서조차 기적적으로 생환한 프리모 레비가 87년 허망하게도 자살하고야 말았다는 사실에 대해, 또 우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이다. 증언해야겠다는 의지. 반드시 살아남아 수용소 바깥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주어야겠다는 프리모 레비의 굳은 신념에도 불구하고서 감행한 또는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자살이라는 선택. 그 말을 하는 순간 언뜻 서경식 선생의 호흡이 한 박자 느려진 것 같기도 하다. 선생은 최근 자신의 어떤 곤혹스러움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재직하고 있는 동경경제대학에서 ‘인권과 마이너리티’란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자신이 맞닥뜨리게 되는 무력감과 관련한 것. 구체적으로는 학생들의 ‘현실감각’. 선생은 ‘픽션’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마디로 자신이 강의실에서 만나고 있는 학생들의 현실감이 ‘픽션’(허구)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 그 앞에서 ‘역사’를 말하고 있고 또 말해야 하는 자신의 언어가 수신될 곳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튕겨 나오는 것 같다는 데서 비롯되는 난감함의 심정. 그런데 자살하기 얼마 전 남긴 프리모 레비의 글 중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심경이 엿보이더라고 선생은 천천히, 흡사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 보게 된 장률 감독의 영화 <경주>에서도 내내 나의 눈길이 가 닿은 지점은 ‘죽음’이라는 주제였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결코 과장하거나 논리적으로 비약한 것은 아니다. 극 중 윤희(신민아)는 말한다. “경주에서는 무덤과 함께 하지 않는 일상이란 상상할 수 없어요.” 경주.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기도 한 곳이 아니던가. 전작인 <이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리는 거대한 규모의 폭발물 사고로 도시 자체의 이름이 바뀌어버린 곳이다. 역시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곳. 다시 말해 장률 감독이 한국에서 찍은 두 편의 극 영화 모두가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정녕 우연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장률 감독의 이력에는 한눈에 보아도 특이한 구석이 하나 있다. 89년 이후 침묵의 시간이 그것이다. 86년 소설가로 등단한 장률 선생은 대학에서 중문학을 가르치던 교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89년 천안문 사태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난 뒤 돌연 이제까지의 모든 활동을 접고서는, 선생 자신의 표현에 따르자면, ‘10년의 백수 생활’에 자발적으로 돌입한다. 그 동안의 일상에 대해 선생은 좀처럼 입을 열고 있지 않다 했다. 다만 아내가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집에서 애 키우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며, 그렇게 하루하루의 시간들을 흘려보냈다는 말 외에는. 천안문 현장에서 그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런 아슬아슬한 질문을 나는 자꾸만 하게 된다.
2차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공동체 사회에서는 ‘낙천적 자살’이라 부를 수 있음직한 현상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문헌을 한나 아렌트의 수기로부터 접한 기억이 있다. 지난밤 더없이 환한 얼굴로 흥겨운 저녁식사를 나누며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가 멀쩡한 얼굴로 집에 돌아가서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아파트 난간 밖으로 몸을 던지곤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아렌트의 이 에세이를 읽은 서경식 선생의 심경 또한 전해들은 바 있는데, 당시 선생의 구체적인 심리적 메커니즘이 뇌리에 크게 남았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이라고 하는 소수자 신분으로 살아온 서경식 선생의 주위에서도 미국 유대인 망명자와 비슷한 이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의미심장한 건 그 느닷없는 죽음과 마주했을 때 선생을 포함한 주위 지인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이를테면 “저런, 안타까운 죽음이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제 무거운 짐을 벗게 되었군.”의 심정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가히 인식론적 충격의 경험.
‘이주’(移住)의 삶은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삶의 조건으로 자리잡아가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와 같은 경향은 더욱 더 심화될 것임에 틀림없다. 경계에 선 자들과 함께 살아가기. 이방인을 환대하기. 우리는 과연 그리할 수 있을까? 가령 미국인과 결혼하면 ‘글로벌 가정’이고, 동남아인과 결혼하면 ‘다문화 가정‘으로 편리하게 구획되어지는 지금 우리의 옹색한 현실에서 말이다. 과연 국민주의적 편견과 내부의식으로 속 깊이 길들여진 우리의 관성에 새로운 감각의 갱신을 요청할 수 있을까.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누군가의 귀에는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그러나 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밝혀보자면, 우리 그러나 ’보편’(普遍)으로서의 우리가 지금도 힘겹게 전개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전선, 가령 ’밀양‘, ’강정‘, ’쌍차‘, ’삼성전자서비스‘ 그리고 ‘세월호’의 전선에 새로운 연대의 선(線)을 추가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새로운 전선의 이름을 이렇게 불러보고 싶다. ‘작고 사소한 것들의 민주주의’. 아니다. 그 사이에 기어이 한 단어를 더 추가해야만 하겠다. ‘작고 사소하지만 좋은 것들의 민주주의’. 레이먼드 카버라면 필경 그렇게 말했을 테니까. ‘A small good thing’.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민주주의의 외연이, 바라건대, 지금보다 조금 더, 그리고 앞으로도 그보다 또 조금 더, 넓어지고 확장되기를 바란다. 지금 이곳의 디아스포라들은 이 잘난 한국 땅에서, 가령 우리가 매해마다 너무도 손쉽게 갈아치우곤 하는 핸드폰 하나를 개통하는 데에도 거대한 벽과 마주해야만 한다. 그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거나 간과하는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반쪽짜리 민주주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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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함께 합시다
프리모 레비는 죽음의 수용소를 빠져나와 잘못된 사회를 고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열정을 쏟았죠. 하지만...빠져나올 수 없는, 아마도 그 때 먼저 돌아가신 분들의 환영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노력과 열정을 가져야 할 때고 종찬씨가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열렬히 환영합니다 ㅎㅎ
종찬씨 멋진 글 쓰시는 분인 줄 내 진작 페이스북에서 알았네요. ^^ 우리 몽당연필에서도 연구원을 만들어 볼까나요? ㅋㅋ
맹종호 선생님, 함께 하겠습니다. / 장병길 조장님, 초인 이번 모임 일정을 알려주십시오. 꼭 참석하고 싶습니다! / 김명준 감독님, 열심히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
몽당연필을 통해 몽당연필 덕택으로
느끼며 간직하게 된 일들이.
보석같이 귀중한 인연이.
더욱 분발하자는 용기와 힘이.
히로시마 시코쿠 오카야마 야마구치학생들과 통포들 가슴에 곽 찼습니다.
방문단선생님들 고맙습니디.
박양자 선생님, 이번 방문 때 가까이서 이야기 나누진 못했지만 이 인연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방문단을 환영해주시고 여러모로 챙겨주신 것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나갈 끈이라 확신합니다.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 또 반갑게 만나뵐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ynara(이종찬) 네. 이번에 뵐땐 많이 이야기도 나누고 싶습니다.
히로시마공연이 스타트라인이라 알고 오래 부탁드립니다.
형님 안녕? ㅋㅋㅋ 또 만나요~
용철씨, 이렇게 만나니 또 새롭게 반갑네요. 이번 방문길에 가장 많은 이야기와 시간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어요. 앞으로 자주 보아요 :)
칼럼니스트 이시군요! 초인 모임에 꼭 오세요~
이런 이런 이러다 초인모임 더 강해질라. ㅋㅋ 안되겠다. 방문단 중에 혹시 초인모임에 버금가는 동아리 기획하시는 분 없으신가요? ㅋㅋ
정미영 선생님, 그냥 변변치 않은 잡문을 끼적이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초인 모임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몽당연필의 핵심이라는 말들이 들려오더라고요 ^^ / 김명준 감독님, 제가 세를 불리면 파르티잔(?)을 한번 도모해볼까요? 과격한 상상. 농담입니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