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 하늘에 묻는다 (영화감상문)
지온 김인희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과 관노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다. 세종대왕의 가마 ‘안여’가 바퀴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비 내리는 들판에서 흙탕물을 뒤집어 쓴 왕과 신하들의 난감한 표정을 중심으로 전개가 이루어진다. 안여사건 며칠 전으로 타임머신타고 되돌아가듯 사건을 다루는 기술이 흥미진진했다.
내가 몇 달 전에 관람했던 영화 <나랏말싸미>도 세종대왕을 다룬 영화였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해서 반포하는 위대한 대왕-나랏말싸미-과 노비출신의 과학자와 친구가 되어 꿈을 이루는 인간다운 이도(세종대왕 이름)-천문-의 모습이 따뜻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세종은 명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굳건히 스스로 서는 조선을 꿈꾸는 군주였다. 그의 시대에 과학적 발명품들을 남겼던 장영실은 세종이 마음으로 품은 꿈을 그의 손으로 이루어 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을 지르면서 손을 모은 장면이 있었다. 비오는 날에 세종이 별을 보고 싶다고 한다. 장영실은 별을 보여 주겠다고 하면서 왕의 침소에 들어가서 창호지문을 먹으로 어둡게 칠한다. 내관에게 밖에서 촛불을 들고 있으라고 하고 검은 창호지문에 별자리 모양대로 구멍을 뚫었다.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북두칠성 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이고 가장 크고 빛나는 별 북극성을 만들었다. 장영실이 세종에게 하늘의 중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북극성이 대왕의 별이라고 했을 때, 세종은 장영실의 별은 어느 별이냐고 묻는다. 자신은 천출이기 때문에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별이 있겠냐고 했을 때, 세종은 북극성 옆에서 빛나는 별이 장영실의 별이라고 말한다. 세종의 말에 장영실의 눈에 감사의 눈물의 가득 차오른다. 세종과 장영실이 별을 보고 기쁨에 들떠 꿈을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감동이 커서 나도 따라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별을 보면서 꿈을 이야기하는 순간에는 대왕과 노비출신의 신하가 아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두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나도 별을 보면서 대왕의 별과 장영실의 별 언저리에 나의 별을 그려두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명에 의존하지 않고 조선의 독자적인 절기를 찾고 싶어 했던 세종의 바람을 장영실은 독창적으로 도구와 기술을 통해 개발해냈다. 세종은 해시계에 의존했던 당시에 물을 이용해서 소리를 내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를 만들어서 백성들이 밤에도 정확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세종은 하늘을 관측하는 간의를 만들어서 정확한 절기를 찾고 백성들에게 시기에 맞게 씨를 뿌려 농사를 짓게 하였다. 세종은 조선의 땅에 맞는 조선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기뻐한다.
명나라를 들먹이면서 신하들이 반대가 해일처럼 일어나고 명나라 사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장영실이 만든 기구들이 해체되고 불에 태워지는 순간 세종의 눈에는 가득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신하들이 조선의 안위를 위해 장영실을 명으로 보내야한다고 의견을 모으는 절정의 순간에 세종이 온천으로 행궁을 나간다. 왕이 없는 궁에서 영의정을 중심으로 신하들이 뜻을 모아 명나라에 내어준 장영실은 오라에 묶여 포로의 신세로 잡혀가게 된다. 장영실이 조선에 남아있는 한 언제든지 과학 기구들을 만들 수 있다는 명나라의 우려에 조선의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장영실을 내어주는 장면이 한심하고 어처구니없고 답답하기만 했다. 픽션(fiction)이라고 인식하면서 인내하려고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저런 바보 같은 인간들!’하고 외마디 탄식을 했다.
세종의 ‘안여사건’으로 조정이 발칵 뒤집히고 가마를 만든 책임자 장영실을 소환하라는 어명에 명나라로 끌러가는 장영실을 데려다가 의금부에 옥에 감금한다. 안여사건은 명나라로 끌려가는 장영실을 구하기 위한 세종의 프로젝트였다. 세종은 신하를 통해 장영실에게 도주할 수 있도록 회유하지만 장영실은 세종의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는 명분이 되고자 죄를 인정하고 벌 받기를 자처한다. <역사의 기록은 안여사건의 책임으로 1442년 장영실에게 곤장 80도를 내렸다. 이후의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없다.>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났다.
나는 발을 딛고 서서 땅에 만족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고 꿈을 꾸었던 사람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가 단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하늘이고 시간이라고 여겨진다. 나약하고 괴로워하는 세종의 모습에서 왕의 깊은 내면에 숨어 있던 인간 ‘이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 위로가 되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왕과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있었던 노비와의 만남 그리고 고독한 두 남자가 서로를 알아보면서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가장 인간다운 아름다운모습이었다. 세종과 장영실처럼 나도 마음에 간직한 꿈을 꺼내 보이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를 찾고 싶다.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뜨거운 가슴을 가진 눈물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갖고 싶다. 세종의 장영실처럼. 장영실의 세종처럼. 그들을 오랫동안 내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자리한다.
“조선의 하늘과 시간 같은 꿈을 꾸었던 두 천재 세종과 장영실.
아름답고 향기롭게 빛나는 별이다.“
영화 속 세종과 장영실의 감동적인 대화를 옮겨 적는다.
* 조선의 것으로 조선의 것을 만들면 됩니다. -장영실-
* 같은 하늘을 보면서 같은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하다. -세종-
* 제 소원은 항상 전하 곁에 있는 것이옵니다. -장영실-
* 네가 내게 주는 상 같구나. -세종-
* 누구나 쓰고 배울 수 있는 공평한 세상, 원이든 명이든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것을
만들고 싶다. -세종-
* 사대부의 지지없이 전하께서 꿈꾸는 나라가 있겠습니까? -장영실-
* 망치질 몇 번 담금질 몇 번에 수염이 하애졌소 -장영실-
* 하늘을 열어 내 꿈을 자네가 이루었네. 자네가 만들지 않았다면 그 꿈이 내 꿈인 줄
누가 알겠는가 -세종-
* 전하 그 힘든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십니까? -장영실-
* 자네 같은 벗이 있지 않는가 -세종-
* 전하의 나라가 보이옵니다. 부디 전하의 꿈을 이루소서 -장영실-
첫댓글 영화한편 관람 하게 해 주셨군요
어록 발췌에 신경 을 써 주셨구요
야심한 밤 . 행복의 공유 .
어쩌면 평범한 민초들의 로망이기도 하지요 . 수고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