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마지막 일정인 11월 소집명단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과 이청용을 포함시켰다. 지난 10월 부상으로 소집되지 못했던 두 에이스의 합류에 반가움을 표시한 이도 있었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린 이도 많았다. 선수들을 둘러싼 여러 상황 때문이다.
손흥민은 발바닥 부상 이후 아직 실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주중 열릴 유로파리그 안더레흐트전에서 복귀할 것이라는 게 영국 현지 언론의 예상이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최근 팀 훈련에 정상적으로 참여 중이라고 들었다. 유로파리그부터 출전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상이 맞을 경우 손흥민은 주중 유로파리그를 뛰고, 주말 아스날과의 북런던 더비를 치르고 대표팀에 합류하게 된다. 이청용은 지난 10월 입은 발목 부상에서 회복했지만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빈도가 줄어든 상태다. 리그 경기에는 나서지 못하고 리그컵에만 교체 출전하는 상황이다. 3일 있었던 연습경기 중에 다시 발목을 다쳤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대한축구협회와 슈틸리케 감독은 이청용의 부상 상태를 현재 확인 중이다.
냉정히 볼 때 두 선수는 부상 회복과 팀 내 경쟁이라는 숙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왕복 20시간이 넘는 비행을 감수하게 하며 A대표팀에 부르는 게 효율적인 선택이냐는 것이 소집에 부정적인 이들의 주된 의견이다. 게다가 이번 11월에 A대표팀이 상대하는 팀들은 미얀마와 라오스다. 이미 그들과 한 차례 붙었고 경기 내용에서 압도한 바 있어 어렵지 않게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상대팀의 수준은 두 선수의 소집을 더욱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된다.
기본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두 선수를 소집하는 건 그만큼 A대표팀의 핵심 전력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두 선수가 없어도 미얀마, 라오스를 상대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이미 같은 조건으로 지난 10월 쿠웨이트 원정과 자메이카와의 홈 평가전에서 내용과 결과를 모두 잡았다. 슈틸리케 감독 입장에서 두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경기 외의 시간일 것이다. A대표팀 감독은 늘 시간과의 싸움에 쫓긴다. 7~8일 가량의 소집 기간 동안 경기일과 회복일을 빼면 실제 훈련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4일 정도다. 그 시간 동안 소집 가능한 최정예 멤버를 불러들여 집중력 높은 훈련을 해야 하는 게 감독의 입장이다.
실제로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을 이번에 부르는 건 풀타임으로 뛰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손흥민을 완전히 활용할 것도 아니면서 왜 부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저 말의 숨은 의미는 경기 외의 훈련을 통한 팀 내구력 강화, 전술 숙지 등에 손흥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청용도 같은 비중을 갖는다. 그 과정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이 기대하는 것은 2016년 A대표팀 운영의 수월함이다. 그는 “손흥민과 이청용을 부르는 것은 2016년을 위해서다”라고 못 박았다. 이번 2015년의 마지막 소집이 끝나면 A대표팀의 다음 스케줄은 내년 3월까지 공백을 갖는다. 내년 3월에는 이번 일정과는 정반대로 레바논, 쿠웨이트를 상대해야 한다. 조별리그의 8부 능선을 넘었다고 하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내년 3월 만이 아니다. 당장 9월부터는 최종 예선에 돌입한다. 지난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 A대표팀은 감독 교체 속에서 팀이 흔들리며 간신히 본선에 진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이 시작되기 전 최대한 팀 완성도를 높이길 원한다. 그 사이 있을 6월에는 지금까지 상대한 팀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FIFA랭킹 상위권의 강호들을 홈으로 부르거나 유럽 원정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아시안컵과 동아시안컵을 치르면서 팀의 골격을 완성한 A대표팀은 이번 11월과 내년 3월의 2차 예선 후반부, 그리고 6월까지의 평가전을 통해 러시아월드컵으로 가기 위한 본격적인 경쟁의 준비를 끝내고자 한다. 비중이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이번 11월의 2연전에 의미를 두는 것도 2016년으로 가는 연속성을 고려할 때 중요한 시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손흥민과 이청용을 부르는 지가 납득이 된다.
이것은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을 운영하는 데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을 보여준다. 현재를 치르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단기적 성과 달성과 중장기적 대비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1년 뒤, 그리고 그 이상을 내다 본다. 작년 12월 제주도에서 실시한 소집훈련이 그의 시각을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아시안컵을 대비해야 하는 시기지만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A대표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파와 중동파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골키퍼들을 제외하면 소집 대상 중 아시안컵에 갈 것으로 전망되는 건 김영권 장현수 차두리 김주영 한교원 김민우 정도였다. 아시안컵에 대비한 정상적인 전술 훈련조차 불가능했다. 자연히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사고를 전환해 그 소집을 아시안컵 이후의 예선과 동아시안컵을 대비한 기회로 투자했다. 9개월 뒤의 동아시안컵 역시 유럽파와 중동파를 소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여기서 처음 선발된 멤버들이 아시안컵 이후의 일정과 동아시안컵을 거치며 대표팀의 주력으로 본격 부상했다. 이정협을 필두로 정우영, 이재성, 권창훈, 황의조 등이다. 그 투자는 대표팀의 선수층을 두텁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손흥민, 이청용, 구자철, 박주호 등이 부상과 이적 문제 등으로 수시로 빠지는 상황에서도 일관된 경기력과 성적을 내는 힘이 됐다.
A대표팀 운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전체의 동기부여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꾸준한 선의의 경쟁을 끌어내야 하는데 슈틸리케 감독은 이 난제를 가장 잘 풀어가는 역대 A대표팀 감독 중 한 명이다. 대표팀 전체가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고, 그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동기부여의 요체다. “대표팀으로 들어오는 문도 열려 있지만, 나가는 문도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슈틸리케 감독의 말로 딱 정리가 된다. 이 철학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경기 출전과 관계 없이 손흥민과 이청용도 20시간의 비행을 감수하고 합류해야 한다는 것이 슈틸리케 감독의 결론이다. 이 부분을 이해한다면 왜 미얀마, 라오스를 상대로 하는 이번 일정에 두 선수가 함께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된다.
장시간 비행을 감수하고 와서 손흥민과 이청용이 얻어갈 수 있는 선물도 존재한다. 구자철과 지동원의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두 선수는 A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하며 얻은 자신감을 소속팀에서도 이어가며 주전 경쟁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청용 입장에서도 바라는 장면일 것이다. 경기 감각이 떨어진 손흥민도 A매치 휴식기 동안 2주를 쉬기보다는 미얀마, 라오스를 상대로 득점포를 가동하며 회복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이런 복안을 이해한다면 두 선수를 불러들이는 것은 충분히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글=서호정 기자
사진=FA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