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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갑자(신금)
1994년 旅卦 10년이 시작된다
삼성전자 256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
60년전 총독부의 농촌계몽운동 방해
아메리카 나일론발견
일본공세로 독립단체 위축되자 중국 난징에서 한국독립당, 신한독립당, 조선혁명당, 의열단 등이 모여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제2차 회의 개최, 대동단 결의조직 및 실현을 강령으로 채택
- 전라남도경찰부, 도내 각지에서 공산주의 비밀결사 혐의로 300여명 검거
일본의 조선연구에 자극받아 진단학회 조직.
제2차 카프 사건으로 이기영, 백철, 박영희등 카프 동맹원 80여명 검거
간도협조회 창설로 만주일대 독립운동 약화
9월 18일소련이 국제 연맹에 가입.
양세봉, 일본군에게 피살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이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에 포위되어 붕괴되고, 공산주의자들이 장정을 시작하다
김책의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 인원이 200명에서 9개대대로 발전.
2년후 동북항일연군 조직
50년전 1월 20일 - 일제, 한국인 학병 입영 시작.2월 8일 국가총동원령 이후 강제징집.광산.군수공장에 동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국, 미국, 영국, 소련 등 연합국 30개국에 정부 승인 요구, 그 중 프랑스와 폴란드가 승인 통보
광복군은 1944년까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의 통제를 받다가 1944년 8월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통수권을 인수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파리, 독일군 치하에서 해방
- 여운형, 지하비밀단체 건국동맹 조직
40년전 서유럽 연합 설립.
소련에서 최초의 원자력 발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종결.
알제리 전쟁 시작.
제네바회담 합의도출무산.
제1차 타이완 해협 위기 시작.
최종설득으로 반공포로 석방.86명 포로는 고국선택을 버리고 인도 등 제3국행.정비석의 자유부인풍자.
아시아게임 및 월드컵 첫출전.
일본과 어업평화선분쟁.독도침범 다발하자 독도의용수비대 파견.
국군 74만으로 증설.
3대국회 이기붕이 의장이 됨.3선사사오입개헌
나일론원사 국산화.
미8개사단중 6개사단철수.
경제원조중 10.9일 석유공급 40일간 중단.38선이북수복지구 행정권이양.
30년전 1964년 러스크국무장관 방한 대일굴욕외교회담반대시위 확산.김종필 오히라회담으로 이미 합의상태.
무장군인 국회난입 및 대학생 린치.6.3사태. 비상계엄령 선포.
미터제실시.쌀값 급등지속
출산제한가족계획홍보.
울산정유공장 첫원유도착.
매점매석의 삼분의혹사건.
무제한송전실시.신성호국산자동차 생산.수출1억불 달성.
파독 광부.간호사와 박통만남.
인민혁명당 사건.조작사건.
베트남 의료병파병.200살 거북.호랑이3마리가 발견됨.
최초 아시아에서 됴코올림픽 개최.
1634년 뇌르틀링겐 전투:2년전 졌던 가톨릭 황제군은 스페인의 카르디날 인판테 페르디난트의 지휘하의 18,000명의 스페인 용병대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과 작센 군대로 이루어진 프로테스탄트 군대를 격파하였다.이로 인해 합스부르크 군대들이 프랑스를 포위.
최초의 북미원주민 대대적학살은 1634년 네덜란드 정착민이 공격당한 것을 빌미로 와핑거족 80여명이 변명도 못해보고 잠자는 도중에 학살당했다.
1636년 피쿼트 전쟁이 벌어졌다. 피쿼트 부족은 왐파노아그 부족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정착민과 초기에는 친밀한 관계였으나, 정착민들의 확장에 점점 밀려나가면서 대립이 시작되었고, 정착민 살해를 빌미로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600명중 500명 사망하고 나머진 노예화
1581년 핀란드는 대공국이 되었다가 1634년 스웨덴 왕국에합병되었다.
60년전 발로아왕조 마지막 앙리3세 바르톨로메오 학살로 큰 충격을 받아 와병 중이었던 샤를 9세가 죽자 프랑스 왕위 계승을 위해 6월 18일 프랑스에서 같이 동행한 측근들과 함께 미련없이 폴란드 왕위를 버리고 급히 서둘러 크라쿠프의 왕궁에서 도망쳤다. 이후 매부가 부르봉왕조개창
40년전 제2차 당항포 해전이 일어났다.
영등포 해전이 일어났다.
30년전 이탈리아에서 케플러 초신성이 관측되었다.
프랑스도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였다
20년전 영창대군 : 조선의 왕 선조의 막내아들사망
20년후 크림 칸국의 칸 이슬람 3세 기라이사망
30년후 프랑스의 서인도 회사가 설립되었다.
잉글랜드에서 영국 왕립 해병대가 설립되었다.
목성의 대적반이 처음 발견되었다
40년후 3차 영란전쟁을 매듭짖는 웨스트민스터 조약이 체결되어, 네덜란드 령 기아나 식민지 (수리남) 가 형성되고 영국이 뉴욕을 되찾게 된다.
첫 번째 서인도 회사가 해산하였다.
파리의 루브르 궁전이 완공되었다
조선숙종 등극
50년후 소빙기가 극심하여 1683년이어 2달간 템즈강 결빙.
60년후 갑술환국. 남인퇴출.영조탄생
1274년 1261년 라틴 제국에게 빼앗겼던 구도(舊都)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부흥시킨 미카일8세와 교황 그레고리오 10세은 수많은 양 교회의 불화와 불신에도 1274년 제2차 리옹공의회를 열어서 마침내 양교회의 통일을 선포하였으나 갈등만 일으킴
이성계조상 목조이안사 사망
60년전 부빈 전투에서 필리프 2세의 프랑스 왕국군이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4세와 잉글랜드의 존 왕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부뱅 전투)
몽골 제국이 4차 금나라 원정을 하여 만리장성 일대를 손쉽게 점령하고 중도를 포위하였다.
1214년 몽골은 금으로부터 막대한 금액의 보상금을 받고 철수했다. 금 선종은 칭기스칸이 철수하자마자 오도보와 회의를 나누고 곧장 도성을 베이징에서 황하 이남의 카이펑(개봉)으로 옮겼다
남송 조정이 서하가 제안한 금나라에 대한 연합군 결성을 거절, 중립을 표방하였다
59년전 금의 야율초재가 몽고 테무진의 책사되다
50년전 1224년 페르난도 3세. 1217년 카스티야 왕국의 왕인 엔리케 1세가 사고로 사망하였다. 카스티야의 여왕이 된 베렝겔라는 엔리케 1세의 사망 소식이 레온 왕국에 전해지기 전에 사자를 보내 페르난도를 카스티야 왕국으로 오도록 하였고, 그가 도착하자마자 페르난도에게 카스티야의 왕위를 넘겼다.
1224년 1월 14일 금선종은 6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금애종 즉위.
40년전 1234년 송나라와 몽골 제국의 군대에 의해 금나라가 주멸
몽골 제국 기마대가 고려로 침입하다
도미니코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다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 북쪽의 농업 지방인 무겔로에 왔다고 하며,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1230년대 문헌에서였다
30년전 -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알 미즈라 조약으로 남은 알 안달루스 영토를 분할하였다.
- 아이유브 왕조가 불러들인 호라즘 왕조의 잔당에게 다윗 탑의 십자군 수비대가 항복하며 예루살렘이 다시 이슬람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20년전 헨리 3세의 아들 에드워드가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의 딸 엘레노어와 결혼하여 잉글랜드와 카스티야 왕국 간의 전쟁이 끝났다.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인 콘라딘이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몽골 제국이 대리국을 멸망시켰다.
몽골의 6차 고려 침공으로 20만명이 학살되었다
10년전 루이스 전투에서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의 귀족군이 왕당파를 격파하고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와 왕위계승자인 에드워드를 사로잡았다.
- 아일랜드의 의회가 열렸다.
쿠빌라이 칸이 몽골 제국의 수도를 상도에서 대도로 천도하였다.
아리크부카가 쿠빌라이 칸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그에게 항복하였다.
10년후 1284년 멜로리아 해전에서 제노바 공화국의 해군이 피사의 해군을 대파하였다. 피사의 쇠퇴.
테케두르 칸이 처형되었다.
- 원나라 군대가 월남의 녹주에 이르렀다
20년후 1294년 제노바 공화국와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2차 제노바 전쟁이 발발하였다.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간의 동맹이 성립되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4세가 서로에게 선전포고 하였다.
30년후 1304년 잉글랜드 군대가 스코틀랜드 독립군의 마지막 거점인 스털링 성을 함락하였다.
- 몽상퓌엘 전투에서 필리프 4세의 프랑스왕국군이 플랑드르 군대를 대파하였다.
원나라와 여러 칸국들이 화의를 맺어 몽골 울루스의 내전이 종결되었다.
제노바 공화국의 해군이 베네치아 공화국으로부터 키오스 섬을 탈환하였다.
40년후 - 1314년 본에서 프리드리히 3세가, 아헨에서 루트비히 4세가 각각 신성로마횡제 대관식을 치렀다.
루이 10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기사단장인 자크 드 몰레이를 필두로 한 50명의 기사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50년후 1324년 부르주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 일본에서 쇼추의 변이 일어났다. (고다이고 덴노의 가마쿠라 막부 타도 계획이 호조씨에게 들통나 덴노의 측근이 사도 섬으로 유배되었다.)
남아시아 일대에 흑사병이 유행하였다
60년후 1334년 원나라의 하북 지방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피렌체 주교가 피렌체 대성당의 초석을 놓아 공사가 시작되었다.
백년전쟁전 영국은 양모 프랑스수출을 금지한다.
914년 견훤이 나주를 공략해 오자 다시 왕건을 시중에서 해임하고 백강장군으로 삼아 나주로 내려 보냈다.
60년전 854년 신라문성왕 용주사가 창건되었다 홍수가 일어나다
50년전 864년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보리스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 미카일 3세를 대부로 삼고 세례를 받으며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였다.
40년전 874년 노르웨이인 잉골프 아르나르손이 최초로 아이슬란드에 정착하였고 이들 정착민들에 의해서 레이캬비크가 건설되었다.
30년전 884년 - 카를 3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 고코 천황이 일본 제 58대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20년전 앵글로 색슨족이 바이킹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일본에서의 견당사 파견이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건의로 중지되었다
10년전 후고구려의 왕 궁예가 국호를 고려에서 마진으로 변경하였다
곽위탄생
10년후 아브드 알 라흐만 3세 지휘의 후우마이야 왕조의 군대가 나바라 왕국을 습격하여 팜플로나를 함락하고 파괴하였다.
기나라멸망
1차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 시메온이 라쉬카 (세르비아)를 점령하였다. 세르바아는 930년에야 재차 독립한다
20년후 맹지상이 후촉을 건국하고 후촉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운주 전투에서 유금필의 맹활약으로 고려가 또다시 후백제에 승리하자, 웅진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로 넘어감으로써 서부 전선에서도 고려의 우위가 굳어지다. 이후 후백제는 기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30년후 알아스카리 모스크가 건설되었다.
40년후 후주의 초대 황제인 곽위가 죽고 시영이 2대 황제로 즉위하다. 이는 곽위의 일족이 후한의 은제 유승우에게 몰살당했기 때문에 곽위가 시영을 후계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영이 곽위의 양자가 되면서 곽영(郭榮)으로 부르기도 한다.
50년후 오토1세 963년 이브레아의 아달베르토 2세를 최종 격파하여 이탈리아 병합에 성공한다. 그리고 964년에는 레오 8세에 반대하는 로마인들의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6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 마그라와 부족 동맹군과 모로코의 이드리시 왕조를 멸망시키고 페스 일대 점령.
세비야에서 일어난 반 우마이야 봉기가 진압되었다.
바이에른의 공작 하인리히 2세가 슈바벤 공작령을 소유하는 것을 오토 2세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974년 하인리히의 어머니 유디트가 하인리히와 함께 황제에게 대항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했고 보헤미아와 폴란드의 공작들, 프라이징 주교 아브라함과 성직자들, 전 황제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 역시 이 음모에 가담했다. 이들의 계획은 발각되어 쉽게 진압되었다. 또 오토 2세의 군대는 제국 황제의 힘을 실추시키려는 덴마크의 왕 하랄 1세의 시도를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그의 확장은 보헤미아 인들의 저항을 불러와 975년 바이에른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실패했다.
554년 백제와 신라가 관산성(管山城,지금의 충북 옥천)에서 싸워 신라군이 백제군을 무찌르고 백제 성왕을 죽인 전투이다.
그 뒤 양국관계는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적대관계가 계속되었다.
볼투르노 강에서 동로마 제국군이 프랑크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554년, 결국은 우문태는 서위2대황제 원흠을 황제에서 폐위를 시켰고, 원흠이 폐위가 된 뒤에 얼마 안 되어서 우문태에게 독살을 당하였다.
60년전 남제에서 소란이 정변을 일으켜 남제의 황제인 소소업을 죽이고 소소문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였다.
부여계가 고구려에 합병되었다.
룽먼 석굴이 착공되었다
북위가 수도를 옮김
50년전 동고트 왕국군이 베오그라드를 약탈하였다.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이 건설되었다.
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정하였다
40년전 514년 법흥왕이 신라 제 23대 국왕이 되었다.
30년전 갑진년 백제성왕524년 정월 등극하다. 524년 양(梁)나라 고조(高祖)와 국교를 강화하여 양 고조로부터 "지절도독 백제제군사수동장군 백제왕"에 책봉되었다
20년전 북위분열.동서위
10년전 갑자년 백제 성왕 때 인도에서 온 승려 연기가 화엄사를 창건하다
20년후 574년 티베리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갑진 성왕아들 위덕왕 584년 백제는 다시 왜국에 불상 1구와 미륵상 1구를 보내는등 일본밀접
40년후 수나라에서 신라왕을 책봉하여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上開府樂浪郡公新羅王)으로 삼았다.진평왕
50년후 갑자년 태자 양광이 부황 수 문제 양견을 시해하다
604년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하여 남천주(南川州)를 폐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했다
60년후 수나라의 태자 양광이 장안 인수궁 대보전에서 부황 수문제 양견을 시해하였다. 뒤이어, 형인 양용에게 조작된 유언장을 보내어 자결하라 일렀으나 겁을 먹고 자결하지 않자, 자신의 근위장 우문지급을 보내 살해했다. 이후 태자 양광은 수나라의 제 2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194년 고구려, 진대법 실시. 세계최초의 사회복지법이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부하(장개)의 배신으로 조숭이 살해당했고, 조조는 이를 이용해 서주를 점령하려 한다.
그러나 유비가 도겸과 서주를 구하기 위해 지원에 응했고, 유비의 지원으로 인해 전투가 잠시 길어진 상황에서 여포의 뒷통수치기로 인해 ‘조조’군은 철군하게 된다.
60년전 134년 일성이사금 즉위
50년전 충제(후한)가 2살의 나이로 후한 제9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아달라 이사금이 신라 제8대 왕이 되었다
30년전 로마 제국의 총독인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 파르티아를 공격하였다
20년전 엘레우테리오가 13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10년전 고국천왕이 요동군 태수가 이끄는 후한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벌휴 이사금이 신라 9대 왕이 되었다.
황건적의 난 : 태평도의 창시자 장각이 부패한 정치로 인한 농민들의 불만을 기반으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10년후204년 8월, 조조가 원상을 격파하고 업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자 이 기회에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밀어버리고 자기가 업을 차지하겠다는 패기 넘치는 발언도 했다. 이로 보아 원소 사후 하북의 혼란을 틈타 중원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할 생각도 있었던 듯 하나, 마침 그 해에 자신이 죽어버렸고, 사망한 후 아들 공손강이 뒤를 이었다
20년후 초고왕이 진과에게 명하여 군사 1천을 이끌고 말갈의 석문성을 공격하여 취하도록 하였다.
- 구수왕이 백제 6대 국왕이 되었다.
조조가 효헌황후 복씨와 그 일가를 모두 처형하였다
30년후 호르모즈드간 전투에서 아르다시르 1세가 이끄는 군대가 아르타바누스 5세가 이끄는 파르티아군을 섬멸하고 파르티아 아르사케스 왕조를 멸망시켰다. 아르다시르 1세는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하고 제 1대 샤한샤가 되었다.
40년후 사반왕이 백제 7대 국왕이 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고 정사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숙부인 고이왕에 의해 곧 폐위당했다. 이후 고이왕이 백제 8대 국왕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황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마인츠에 도착, 알레만 족을 매수하여 전쟁을 끝내려 하였다. 이미 라인강 도하 준비를 마친 장병들은 분노한다
게르마니아 군단병들은 게르마니아 내 모군티아쿰(오늘날의 독일 마인츠) 병영에서 235년 3월 19일 자신들의 사령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를 황제로 옹립하고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모자를 황제 막사 안에서 살해했다.세베투스왕조가 끝나고 군인황제 50년이 시작됨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이 10만의 촉군을 거느리고 위나라에 대한 5차 북벌을 전개하여 위수 남안의 오장원에 이르렀으나 과로로 인하여 병사하였다.
50년후 건괘 60년이다.
서기 244년 조상이 이끄는 위군이 촉의 한중을 대규모로 공격한 낙곡대전. 이 전투에서 패배한 위는 자그마치 20년간 촉에 대해 수세로 일관하게 된다
재갈량이 죽고 10년째 위나라의 조상이 한중을 침공했으나 왕평, 비의에게 격퇴됨.
위나라 유쥬자사 관구검의 고구려 침입.
조분이사금 244년, 이찬 우로를 서불한(舒弗邯)으로 삼고, 지병마사(知兵馬事)를 겸하게 하였다. 245년 음력 10월에 고구려가 침공하였다. 석우로가 군사를 이끌고 나갔으나 고구려군에 패하고 마두책(馬頭柵)을 지켰다. 이는 신라본기에 기록된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첫 번째 침공이다.
60년후 무제 조조의 증손자이자 문제 조비의 손자이며, 명제 조예의 이복 동생인 동해정왕 조림(曹霖)의 아들인 조모등극.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기원전 171~167년)에서 그리스의 독립을 지키려던 아카이아 동맹의 기병대 사령관을 역임했으나 기원전 167년에 포로로 끌려온 그리스인 역사가였다. 그러나 로마의 귀족들은 그리스 문화를 존중했기 때문에 폴리비오스는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로마 귀족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에게 넘겨졌다
60년전 기원전 227년 연나라의 태자 단에게서 진왕 정을 암살하라는 사주를 받은 형가가 동행인인 진무양과 함께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도착하여 지도와 번어기의 목을 들고 왕궁으로 들어가 진왕 정을 알현하였다. 형가는 지도를 해석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진왕 가까이에 접근하여 두루마리로 된 지도를 풀었는데 그 안에는 단도가 들어 있었다. 이 단도를 이용하여 형가는 진왕을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형가는 그곳에서 진왕이 겨우 뽑아든 검을 맞고 사망하게 된다.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네포스가 로마의 시칠리아 첫 총독이 되었다.
50년전 트라시메누스 호수 전투 : 트라시메누스 호수에서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매복 공격으로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네포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완전히 괴멸시켰다.
60년후 한반도 남측인 고조선유민에 밀려남.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누미디아의 왕 유구르타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집정관에 선출되어 재무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와 함께 북아프리카에 도착하였다
좀다른 하원갑자
1814년- 반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파리가 함락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결국 퇴위하고 루이 18세가 왕위에 오름.
스웨덴왕 칼13세 1814년 스웨덴-노르웨이 동군연합이 수립되면서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60년전 프렌치 인디언 전쟁.영국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주먼빌 글렌 전투가 발생하였다.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영국군이 프랑스군에게 항복하다. 프랑스군은 기사도에 입각하여 영국군을 석방시키다.
오스만 3세가 새로운 술탄으로 등극하다
50년전 - 조선 통신사를 통하여 고구마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전래되다.
영국의 하그리브스가 제니 방적기를 발명하였다.영국인 조지프 프리스틀리1774년에 발견(실험.공기로 증명)와 스웨덴인 칼 빌헬름 셸레(1773년에 발견) 두 사람이 발견했다
대영제국이 7년전쟁으로 인한 국채를 해소하는 한편으로 서인도제도의 설탕 농업을 보호하고자 13개 식민지에서 설탕 수출입에 과세를 매기는 설탕법을 실시하다
30년전 하원에서 파리 조약을 승인. 이로써 미국 독립 전쟁이 미국의 독립으로 종결.
텐메이 대기근 - 기근으로 인한
러시아 크림전쟁승리, 발칸차지
20년전 프랑스혁명
-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나 로베스피에르가 쫓겨나다.조르주 당통,앙투안 라부아지에가 처형되다.
10년전 -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황제로 선포'되다.
- 나폴레옹 법전이 채택되다
20년후 - 독일 연방 가맹국 사이에서 관세동맹(Zollverein)이 체결되다.
- 미 의회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다
영국 노예제 폐지.
조선 헌종 즉위.
30년후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만나다
왕샤 조약을 통해 미국과 청나라가 국교를 맺다
40년후 , 미국 페리제독과 일본 간의 가나가와 조약이 요코하마에서 체결되었다
50년후 고종즉위.안동김씨 전횡마감.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전쟁에서 프로이센 왕국이 승리했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협상에 따라 양국이 이 지역을 분할 점령
60년후 고종이 흥선 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친정 선포.
북유럽에서 유행하던 범스칸디나비아 주의를 지지했던 칼 15세는 1864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 중 덴마크를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1454년에 수양대군이 금성대군을 비롯한 단종의 나머지 측근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유배하는 일이 일어나자 계유정난을 계기로 일부 신료들은 단종이 양위해야 된다는 공론을 세웠고 이는 통과되었다.
60년전 개경을 대신하여 한양이 조선의 새 도읍이 되었다.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였다
50년전 북해 해일이 네달란드를 덮쳤다.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튜튼 기사단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다.
40년전 지기스문트가 제창하여 대립 교황 요한 23세가 남독일 보덴 호반의 콘스탄츠에 소집한 기독교의 공의회인 콘스탄츠 공의회가 시작되었다
30년전 영락제 : 명나라 제3대 황제사망
20년전 1434년체코 내전 - 리판 전투에서 온건파인 양형영성체파가 강경파인 타보르파의 군대를 대파하고 그 사령관 프로코프 벨리키를 전사시켰다.
질 에아네스 함대가 보자도르 곶을 넘어 항해하였다
10년전 무라트는 전장으로 돌아와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고 2년 후 아들 메흐메트를 퇴위시키고 다시 술탄에 복귀한다. 그러한 무라트 복귀의 배후에는 재상 할릴 파샤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와 메흐메트는 서로 반목했다고 전해지며 나중에 할릴 파샤는 메흐메트가 다시 정권을 잡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할 때 동로마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죄로 처형당했다.
10년후 - 정통제 : 명나라 제 6대 황제
사망
- 코시모 데 메디치 : 피렌체의 군주사망
20년후 부르고뉴 공작과 프랑스 왕 사이에서 부르고뉴 전쟁이 발발하였다.
서거정이 시화집 동인시화를 간행하였다
엔리카4세 사망
30년후 1484년 오스만 몰다비아와의 전쟁은 아들 바예지트 2세가 1484년 몰다비아 공국을 복속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40년후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되었다.
- 메디치 가문이 플로렌스의 지배자가 되었다.
50년후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콜럼버스의 마지막 항해인 4차 항해가 종결되었다
60년후 -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 사이에서 찰디란 전투가 발발하였다
1094년 (중세 봉건사회.십자군전후)
고려판 단종 헌종즉위,
엘 시드가 발렌시아를 정복하고 무라비트 왕조의 탈환 시도를 분쇄하였다.
시칠리아 카타니아의 성 아가다 성당이 축성되었다.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이 축성되었다
70년전 잘리어왕조 콘라드2세즉위.
제후들 선거의 힘.황제력 약화
60년전 발해의 왕족이 거란의 지배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고려로 피신하였다
레온 왕국이 나바라 왕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은 레온 속국 신세로 독립)
1031년 후우마이아멸망으로 스페인에 서광.
50년전 1044년우르세올로가 왕위 찬탈자인 자신의 처남 아바를 멘포 전투에서 격파하고 헝가리 왕으로 복위하였다.
아나와라타가 미얀마 파간 왕국의 군주로 즉위하였다
천리장성을 완공하였다.
송과 서하 간에 경력의 화의가 성립되었다
40년전 송나라 초신성폭발 관측
30년전 토스카나의 피사 대성당 두오모 건축이 시작되었다.
조지아 왕국이 인근 로리 왕국의 수도인 샴스빌데를 점령하였다.
후에 잉글랜드의 왕이되는 해럴드 고드윈슨의 배가 노르망디에 난파하였고, 공작 기욤 (윌리엄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한 후 풀려났다. 이는 이후 윌리엄의 잉글랜드 침공의 명분 중 하나가 된다
20년전 1074년 하인리히4세 권력약화
10년전 1084년송나라의 관료/학자 사마광이 자치통감 저술을 완료하였다.
셀주크 제국이 안티오크를 점령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의 주관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20년후 1104년 쿠만 인이 비잔틴 제국을 침략하였다.
여진족 연맹장 완안아구타가 거란에 선전포고 하였다.
출하점 전투에서 아골타의 여진 군대가 요나라의 거란 군대를 대파하고 영강주(송원)을 점령하였다.
여진의 아쿠타가 맹안모극제를 제정하였다
30년후 - 1114년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의 부대가 노르만군을 진압하였다.
금나라가 서하를 복속시켰다
- 데이비드 1세가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후 오스트리아 레오볼트3세 바이에른공국 잠시 접수
50년후 1134년조이의 노력으로 그녀의 남편이 미하일 4세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레온 왕국이 나바라 왕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은 레온 속국 신세로 독립)
발해의 왕족이 거란의 지배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고려로 피신하였다.
60년후 장기 왕조 제 2대 술탄 누르 앗 딘이 다마스쿠스를 장악하였다.
무와히드 왕조 군대가 6년여간의 포위 끝에 그라나다를 함락, 알 안달루스의 2차 타이파 시대를 끝냈다
734년 도합 300여 단(段) 등의 물품을 당 현종이 신라성덕왕에게 보냈다
89년전 덴지는 당시의 권신이었던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를 고교쿠 천황이 보는 앞에서 참살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을사의 역)
80년전 고토쿠 천황은 일본의 36대 천황 사망
70년전 664년백강구 전투에서 패한 뒤, 나카노오에는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방비를 견고히 하기 위해 북큐슈의 쓰시마(対馬) · 이키(壱岐) · 쓰쿠시에 사키모리(防人, 변경수비대)와 봉수를 설치하고, 다자이후의 서쪽-쓰쿠시에 평지성인 미즈키(水城)을 축조하였다. (덴지 천황 3년 12월, 664년)
52년전 덴무천황 덴지 천황이 죽은 뒤, 672년에 임신의 난을 일으켜 조카 오토모 황자(大友皇子, 고분 천황)를 몰아내고 그 이듬해에 천황으로 즉위했다
50년전한미한 씨족의 가바네(姓)을 승진시켜 우대하는 조치를 취하며 덴무 13년(684년) 10월 1일, 고대의 가바네 제도를 정해 전면적으로 재편성했다. 이것이 야쿠사노 가바네(八色之姓)이다. 황족에 준하는 가바네를 마히토(眞人), 기존의 오미(臣)를 아손(朝臣), 무라치(連)는 스쿠네(宿禰) 등으로 삼고, 여기에 임신의 난에서 세운 공적도 가미하여 카바네를 정했다.
일본 최초의 화폐로 여겨지는 부본전(富本錢)이 주조된 것도 덴무 천황의 시대다
40년전 히스파니아의 서고트족 왕인 에지카가 무슬림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유대인을 추궁 하고 모두 노예로 삼겠다고 선고하다.
지토천황
일본 : 후지와라쿄(藤原京)로 천도
32년전 지토천황 율(律)의 조문 작성이 이루어져 다이호 원년(701년) 8월 3일, 다이호 율령이 완성되었다
19년전 겐메이천황 715년에는 향리제(郷里制)가 실시되었는데, 같은 해 9월 2일에 자신의 나이 많음을 이유로 양위를 선언하였다. 오비토 황자가 아직 정무를 맡기는 미숙한 상태였기에 딸인 히타카 황녀를 다시 중계로써 양위하고 같은 날 태상천황이 되었다.이로서 아스카시대가 저문다.
쇼무천황 와도(和銅) 7년(714년)에 원복과 함께 정식으로 태자가 되었으나, 태자 자신의 병약함과 다른 황친 세력 및 외척인 후지와라 집안과의 대립 문제로 즉위가 늦춰지
10년전 몬무 천황의 누나 겐쇼 천황이 다시금 '대리의 대리' 격으로 황위를 잇게 되어, 황자의 나이 24세 때에야 비로소 겐쇼 천황의 양위를 받아 즉위할 수 있었다.
치세의 초기는 황친 세력을 대표하는 나가야 왕(長屋王)이 정권을 맡고 있었다. 당시 후지와라 집안은 그들 일족으로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딸인 고묘시(光明子)가 황후로 세워지기를 바랐지만, 일찍이 지토 천황의 사례에서도 보이듯 황후는 남편인 천황 사후 '대리' 천황으로서 즉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황족이 아닌 자는 황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10년후 동돌궐 멸망하고 위구르 일어남
네칼리프 시대
20년후알만수르가 아바스 왕조 제 2대 칼리프가 되었다.
당나라의 승려 감진이 일본에 설탕을 소개하였다.
피핀 3세의 프랑크 왕국군이 롬바르디아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30년후 -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난이 일어났으나 진압당하고 후지와라노 나카마로는 처형당하였다.
준닌 덴노가 재위 6년만에 폐위당하고 어머니 다이마노 야마시로와 같이 유폐되었다. 이후 코켄 덴노가 일본 제 48대 덴노인 쇼토쿠 덴노로 다시 즉위하였다.
후우마이야 왕조의 1대 군주 알 라흐만 1세가 톨레도에 입성하였다.
40년후 불가리아의 칸 텔레리그가 마케도니아 남서부에 1만 2천명의 불가리아군을 출격시켜 베르지티아를 함락시켰다. 이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는 8만명의 병력을 소집하여 베르지티아의 불가리아군을 습격하여 승리하였다.
실로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카롤루스 대제가 랑고바르드 왕국을 정복하였다
50년후- 간무 천황이 일본의 수도를 나가오카로 천도하였다.
천황의 생모 타카노노 니이가사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 기록된다.
60년후 교토가 일본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나라 시대가 끝나고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었다
발해가 상경용천부로 다시 수도를 옮겼다.
카롤루스 대제가 독일 북서부의 아헨에 궁정과 왕실 교회를 짓고, 이곳을 프랑크 왕국의 사실상의 수도로 정했다
374년 광개토대왕: 고구려 제 19대 왕 탄생
60년전 로마 제국의 내전 중 하나로서, 키발라이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군이 리키니우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대방군이 미천왕의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였다.
대방군은 낙랑군 남부도위의 소관이었던 대방현, 열구현, 남신현, 장잠현, 제해현, 함자현, 해명현의 7현을 관할하였고 치소는 대방현에 두었다. 현 황해 봉산군 문정면에 있는 당토성이 대방군의 치소로 추정된다.
전연에 의해 대방군이 요서 대릉하 유역에 설치되기도 하였으나 430년대 북위가 폐지하였다.
고대 한반도에서 가장 발달된 중심 도시였던 평양의 한족 지배를 근 400여년 만에 청산한 것이다.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그만큼 한족의 세력이 강했다.
50년전 324년장준이 전량 제 4대 국왕이 되었다
단부의 단말파의 세력이 아직 방비가 되어있지 않아 모용외가 모용황을 보내 단부를 습격했다. 단부의 땅인 영지에 침입해 명마와 보물을 약탈해왔다. 후조의 석륵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으나 모용외는 거절하고 사신을 붙잡아 진나라(동진)의 건업으로 보냈다. 325년 석륵이 분노하여 모용외를 공격했으나 모용황이 격퇴했다.
40년전 모용황은 333년에 모용외가 사망하면서 모용부의 대인이 되었다. 그러나 배다른 형인 모용한과 동생 모용인, 모용소와 대립하여 모용부는 내분을 겪게 된다. 모용인은 모용소와 반란을 꾸몄으나 발각되어 모용소가 살해당하자 평곽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켜 요동 일대를 장악했다. 모용한은 단부로 망명하였다가 단부의 군대를 이용해 모용황을 공격하였다. 한때 모용황은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모용한이 모용부가 멸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철군하여 살아남았다
30년전 모용황은 342년에 용성으로 천도했으며, 고구려를 공격하여 대파했다. 344년에는 우문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20년전 훈족과 알란족의 전쟁이 종료되었다.
동진의 환온이 은호를 탄핵시키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군량 부족으로 퇴각했다
10년전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동생인 발렌스에게 로마 제국 동부의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왜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10년후 침류왕이 백제 제15대 국왕이 되었다.
380~390년 백제웅진계열이 가야황족과 야마토정벌.
고국양왕이 고구려 제18대 국왕이 되었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였다
20년후 - 후연의 모용수가 서연을 멸망시켰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수곡성에서 백제의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전진의 황제인 부등이 서진의 걸복건귀에게 원군을 청하였으나 요흥의 군대가 먼저 도착하여 부등의 군대를 격퇴하였고, 부등은 살해되었다
30년후 고구려가 후연을 공격하여 유주를 함락시켰다.
광개토대왕이 대방을 공격하던 백제와 왜의 연합군을 섬멸시켰다.
이듬해 아신왕 사망
40년후장수왕이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
왜5왕 유송에 사신보냄(413.422년.425년,430년)
50년후 유의부가 서선지가 보낸 형안태에게 살해당하였다.
- 유의륭이 유송 제 3대 황제가 되었다
한제이 덴노를 기점으로 와케 계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60년후 비잔티움 제국이 훈족에게 공물을 바쳤다
나제동맹이 성립했다. 434년 백제에서 신라로 좋은 말과 흰 매를 선물로 보내고, 답례로 신라는 야광주와 황금을 보내는 등 친교를 쌓는다
14년
티베리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다.
고구려가 양맥(梁貊)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이어서 한나라의 고구려현(高句麗縣)을 공격하여 탈취함.
60년전 율리우스력을 이 해에 시행하였기 때문에 부족한 날짜를 채우고자 이 해는 445일이나 되었다
나일 강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클레오파트라의 여동생인 Arsinoe IV세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 소아시아의 젤라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폰토스의 왕인 파르나케스 2세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가 끝나고 카이사르는 로마에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보고했다.
50년전 고주몽이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에 고구려를 건국하고 초대 군주가 되었다
40년전 로마의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으로부터 프린켑스(제1시민),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의 칭호를 받아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면서, 제정 로마 시대가 시작되었다.
- 고구려의 무장 부위염이 북옥저를 멸망시키고 그 지방을 고구려의 성읍으로 삼았다.
20년전 애제가 전한 제 13대 황제가 되었다
10년전 남해 차차웅이 신라 제 2대 왕이 되었다
10년후 유리 이사금이 신라 3대 국왕이 되었다.
30년후 민중왕이 고구려 제 4대 왕이 되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브리타니아 남동부를 정복하고 귀환하였다.
40년후 네로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백제가 신라의 구양성을 공격하였다.
로마 황제 네로가 로마대화재이후 기독교 박해를 실시하였다
60년후 74년반초가 흉노를 격퇴하고 서역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bc347년 플라톤사망
60년전 아테네의 장군 트라시불로스가 압데라와 타소스를 함락시켰다.
60년후 로마에서 정치가 퀸투스 호르텐시우스에 의해서 호르텐시우스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원로원에서 부결된 사항이라도 민회에서 승인하면 그것을 그대로 법제화할 수 있게 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