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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하원갑자엔 쿠빌라이, 돌궐이 정립되어갔다.
음하원갑자엔 홍경래의 난,나폴레옹 모스크바 입성하자마자 쇠퇴시작,고구려에 불교전래되고 다빈치가 탄생한다
하원갑자의 임신년(신금)
1992년
소련이 해체되자 유엔가입국이 크게 늘었다.
3월2일: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몰도바,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7월 31일:조지아
14대 총선거가 실시되다.
년말 대선에선 김영삼이 당선되다.
한국, 중국과 수교
160년전 그리스독립
125년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867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와 헝가리의 헝가리인 귀족들 사이의 대타협으로 신생.
115년 러시아 오스만에 승리.보스니아가 오헝제국에 위임됨
87년 피의 일요일사건.
85년전 레닌 망명. 정미7조약으로 조선군해체.
84년전
헝오제국의 보스니아합병선언.불가리아도 오스만으로부터 독립
81년전 발칸동맹결성되어 1차발칸전쟁
79년전 2차발칸전쟁 발칸승리로 세르비아 영토확장기회.오헝제국방해로 무산. 세르비아는 흑수단 조직
78년전 흑수단출신 오스트리아제국 황태자부부 저격.오헝의 요청에 빌헬름2세의 독일제국 응답.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수상이 직접 답변
독일과 오헝제국의 군사작전협의없이 1차대전발생.기병끝나고 기계화전쟁
참호길이 45000km에 달함.
75년전 온건개혁파 니콜라이2세에 대항.2월혁명으로 케렌스키정부수립.
독일은 천만달러챙겨 레닌 러시아보내짐. 민병대 모집.
볼세비키혁명.트로츠키 혁명주도.
10월혁명성공
74년 1차세계대전 러시아이탈.
적군과 백군간의 전쟁.120만과 150만사망
70년전 소련정부탄생.
김소월.이광수 작품발표
상해 임정은 1922년 1월 26일자로 신규식, 이동녕, 노백린, 김인전, 이시영, 손정도 등 각원들 명의로 이동휘와 김립을 성토하는 포고문을 발표했다.김립은 임시정부에서 보낸 김구의 부하인 오면직(吳冕稙), 노종균(盧鐘均) 등 청년들이 김립을 찾아 상하이를 탐색하던 중 1922년 2월 11일 상하이의 자베이(閘北) 거리에서 암살당했다
무솔리니 로마행군으로 정권장악
개인보다 국가를 위한 전체주의가 성행
노동자.사회주의단체 탄압
60년전 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 시작
독일에서 나치당이 제1당이 되다
일본모략인 상해사변으로 일본 중국19로군을 공격 상해폭격함.
국제무대에서 만주국미승인.
이누카이수상 저격.특별고등경찰부가 수립하여 군부가 독주하여 2차대전으로 향함.
국내음반 활발.이애리수의 황성옛터.채규엽 비오는포구.박부용의 노들강변 발표.
민생단 사건으로 인한 한국인 혁명가 피해
만주국 건국되어 독립활동이 어려워짐.
조선혁명군이 중국혁명군사령관 리춘룬과 합작하여 한중연합군 조직
- 조선혁명군 총사령 양세봉이 중국의용군과 합작하여 만주 신빈현에서 일본군 대파.
김일성이 안도유격대 만들어 제휴신청했으나 거절당함.
- 한인애국단이 최흥식, 유상근 등을 중국 다롄에 파견해 일본 고위관리를 폭살 시도하다
한인애국단원 윤봉길, 중국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의거
김규식, 최동오 등이 상하이에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조직
지청천의 한국독립군 중국 호로군과 협력 , 제2차 쌍성보 전투에서 승리
조선총독부가 정신작흥운동 개시
기타잇기의 파시즘도입주장.쇼와연구회
57년전 이탈리아 에티오피아침공.
50년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원봉의 조선의용대를 한국광복군에 편입
- 일제, 고이소 구니아키를 신임 조선 총독으로 임명
중국 연안에서 김두봉 등이 조선독립동맹 조직
동북항일세력 간도에서 밀려나 소련88여단에서 활약.
김일성은 88여단 창설로 1942년 7월에 라즈돌노예의 남야영에서 뱌츠코예 마을로 이주하여대위 계급으로 1대대 대대장(營長)이 되어 8.15 해방 때까지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 마오쩌둥이 정풍운동의 시작을 선언했다.
일본 필리핀점령.말리야까지 점령.
싱가포르.홍콩.버마 점령하나
미드웨이해전이후 수세로 바뀜
40년전 깡패들 백골단활약. 국회해산요구 백주테러
5월 26일 - 부산 정치 파동(개헌파동,改憲波動.발췌개헌)이 일어나다.
5월 26일 - 동독이 내독국경 폐쇄
6월 4일 -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8.5일 직선으로 이승만.함태영취임
4월 신학기개시.
11월 16일 - 미국,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
12월 5일 - 영국 런던에 스모그 현상
30년전 임인년 쿠데타이후 불안한시기
무엇보다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질 뻔 했다는 게 가장 각인에 남았던 해였다. 1945년 8월 9일 이래 처음으로 핵무기의 실전사용이 준비되어, 전략폭격기와 탄도미사일이 대기상태에 돌입했고,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직면했다
1632년
뤼첸 전투에서 신교군이 구교군을 격파했지만 지도자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전사했다.구교도 사령관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가톨릭진영 기병 사령관 파펜하임 사망한다.
일본은 막부가 3대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등장하고 2대는 사망한다
조선은 병자호란의 전운이 싹튼다.
갈릴레오는 피렌체로 돌아와서 대작(2개의 주된 우주체계―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에 관한 대화)를 저술했다. 1632년 모든 검열을 거친 이 책은 문학과 철학 분야의 걸작으로 전유럽에 널리 퍼졌다.
1632년 뤼첸(Lutzen) 전투에서 비록 스웨덴군을 중심으로 한 신교 측은 구교 측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지만 양측 모두 큰 손실을 입었으며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자신은 전사하고 말았다.
60년전 프랑스에서 7만 명 가량의 위그노 교도가 학살되었다.기즈 가문은 1572년 성 바르톨로뮤 축일 밤을 기해 파리에서 일제히 위그노 사냥에 돌입했다. 이것이 곧 성 바르톨로뮤 축일의 대학살이었다
40여년의 저항 끝에 빌카밤바가 함락되며 후 잉카가 멸망한다
50년전
일본에서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다.
일본에서 야마자키 전투
40년전 임진왜란발발.
제1차 평양성 전투가 일어났다.
웅치 전투가 일어났다.
한산도 근처 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으로부터 크게 승리했다.임진왜란의 3대 대첩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으로 기록되다. 더불어 한민족의 4대 대첩으로도 기록 되었다. 이치 전투도 일어났다
폴란드왕 지그문트 3세 바사는 스웨덴국왕을 겸함.
30년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동인도 회사 (VOC) 가 설립되었다.
20년전 루돌프 2세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사망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스웨덴의 국왕(재위: 1611년 10월 30일 ~ 1632년 11월 6일)로 등극. 구스타브 1세 바사의 손자임
10년전 오스만 2세 : 오스만 제국의 16대 술탄사망.유형원탄생
10년후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이 발발하였다.
네덜란드의 항해가 아벨 타스만이 뉴질랜드와 태즈메이니아에 도달하였다.
금주성이 청나라에게 함락되며 명나라의 요서 방어선이 붕괴되었다.-
20년후 제 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발발하였다.
네덜란드의 얀 반 리베크가 남아프리카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30년후 남명영력제.정성공 : 명나라의 군인사망
40년후 덴마크가 세인트 토마스 섬을 완전히 정복하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토성의 위성인 레아를 발견하였다.
칼11세는 칼 10세 구스타브와 헤트비히 엘레오노라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사이에서 태어났다. 4세 시절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1672년까지는 스웨덴의 귀족들이 정치에 관한 일들을 맡아보았다
50년후 날지 못하는 새 도도가 멸종하였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3대 황제 표도르 3세사망.표트르 대제가 즉위하게 된다.칼12세 탄생.
60년후 30년전쟁 무용, 세일럼 마녀재판.
자메이카 대지진. 카리브 해적의 집결지로 불야성을 이루던 포트 로열이 헨리 모건의 묘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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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2년
쿠빌라이는 한수의 요충 양양의 포위,승리직전이다.
십자군전쟁이 끝나고 피렌체가 발전한다. 이해 어머니를 잃은 단테의 신곡 소재가 됨.
60년전 제베가 이끄는 몽골 제국군이 금나라의 동경 요양부를 함락하고 초원으로 복귀하였다.
소년 십자군 사건
안달루시아의 하엔에서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포르투갈 왕국 등 가톨릭 연합군이 무와히드 왕조 군대를 격파하였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이로써 코르도바가 기독교 세력에게 함락되게 된다
50년전 에릭 에릭센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무칼리의 몽골군이 장안 경조부를 함락하였다.
수부타이와 제베가 이끄는 몽골군이 아제르바이잔, 킵차크, 불가르 등지를 원정하였다.
40년전 삼봉산 전투에서 몽골 제국 군이 금나라의 주력군을 대파하였다.
- 몽골이 금나라의 수도 남경 개봉부에 대한 공성전을 시작하였다. 수비대가 역사상 처음으로 로켓을 무기로 사용하였다.
몽골 제국의 사신이 남송의 양양에 도착, 금나라 공격에 남송이 동참할 것을 제의하였다.
고려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처인성 전투가 발발하였다
30년전 바투가 사라이에 주치 울루스를 설립하였다.
몽골 제국이 룸 술탄국을 공격하였다.
몽골 제국이 사천의 성도를 함락하였다.
포르투갈 국왕 산초 2세가 남부 해안가에 대한 공세를 펼쳐 타비라, 알보르, 파게르네 등을 점령하였다
20년전 -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이단자에 대한 고문을 승인하는 칙령을 내었다.
몽골 제국의 서역, 남송 원정군이 출정하였다.
몽골 제국이 남송을 공격하여 사천 북부를 점령했다
10년전 일 칸국과 킵차크 칸국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아이슬란드가 노르웨이 국왕 하콘 4세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10년후 독일왕으로는 최초의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은 루돌프 1세이다. 그는 1282년 두 아들 알브레히트와 루돌프에게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를 물려주었고 이때부터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왕가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 웨일즈 공 리웰린의 동생이 잉글랜드의 한 성을 공격, 2차 웨일즈 전쟁이 발발한다.
20년후 콘클라베 형식이 아닌 마지막 교황 선거가 시작되어 1294년까지 대공위시대가 지속되었다.
원나라의 자바 섬 원정대가 조직되었다. (2만, 1천척)
30년후 바페우스 전투에서 오스만 군대가 비잔티움 제국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칼타벨롤타 조약이 체결되어 시칠리아의 만종 이후 이어지던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 간의 전쟁이 끝나고 양국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 비잔티움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전쟁이 끝났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삼부회를 소집하였다
40년후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반 독일의 군중이 장악하여 하인리히 7세가 라테란 성당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의 대관식을 치렀다.
템플기사단해체
50년후 샤를 4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블리스카 전투에서 믈라덴 2세의 크로아티아 국왕군이 귀족파 - 달마티아 해안도시 - 헝가리 왕국의 연합군에 패배하였다.
- 뮐도르프 전투에서 바이에른 군대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군대를 격파하였다
60년후 원영종이 죽자 엘 테무르가 대청도에서 유재생활을 하던 토곤 테무르의 복귀를 허가하였다.기황후남편
가사기 산에서 가마쿠라 막부군에게 패하고 고다이고 덴노가 오키 섬으로 유배되었다
912년
주전충죽고 주우규 1년간 등극
신라(新羅) 효공왕(孝恭王) 16년
780년 들어선 내물왕계 김씨 끝/
사위인 박씨 신덕왕(神德王) 신덕왕은 신라 제8대 왕 아달라이사금의 후손인 이찬 박예겸의 아들로 효공왕과는 매제 지간 사이였습니다.
이로써 신덕왕, 그의 아들들인 경명왕, 경애왕의 박씨 왕조가 시작됩니다
불과 15년만에 견훤에 의해 제거
키에프의 올레크는 비잔티움 제국 원정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907년에는 비잔티움 제국과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912년에는 주술사가 올레크는 자신이 타고 다니는 말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60년전 - 양행밀 : 당나라 군벌, 오나라의 초대 황제탄생. 주전충탄생
무함마드 1세가 후우마이야 왕조의 에미르로 즉위하였다. 이때부터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가 가속화되어, 48인의 순교자가 나오게 된다.
(코르도바의 순교자들)
50년전 루리크가 노보고르드왕국 건립하여 러시아시초가 됨
아바스 왕조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친 아바스 세력이던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투니 가문의 아쇼트 1세가 왕을 칭하며 바그라투니 왕조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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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 비잔티움 제국군이 바오로파를 격퇴하였다.
스타방에르 근교의 하프르스피오르 해전에서 승리한 이후 노르웨이의 전국을 장악한 하랄드 페어헤어가 18살의 나이로 노르웨이의 첫 왕이 되었다.
안도라 공국이 카스티야 왕국의 도움으로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자치를 얻은 후, 두 왕국의 형식상 속국 됨.
30년전 카를 3세가 동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키예프 대공국이 건국되었다
20년전 신라의 장군 견훤이 무진주(현재의 광주광역시)를 점령하고 자신이 왕임을 선포하였다
10년전 덴마크의 바이킹이 앵글로색슨족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남조(왕국)가 멸망하였다.
당나라의 절도사인 양행밀이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오나라의 왕에 봉해졌다.
후우마이야 왕조, 마요르카 섬 점령
10년후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거란군이 허베이성을 공격하였다
20년후 임진해전이 일어났다. 이 해전은 견훤이 수군을 통해 고려의 수도를 유린하고 다녔던 사건이었으나 후에 유금필에 의해 저지됐다
30년후 만부교 사건
40년후 칼라브리아에서 이슬람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후 요한 12세에 의해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동로마군이 베로에아(현 시리아의 알레포)를 점령하였다.
60년후 야로폴크 1세가 키예프 대공국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최초의 키에프대공임.
552년
북제건국 2년차
- 동고트 왕국이 동로마 제국 벨리시우스에 완전히 복속되다.
돌궐이 강성해짐.
555년 늦게 신자가된 부친 클로비스와 달리 최초기독교신자인 대왕 테오도리히 1세는 프랑크 왕국의 전체의 영역을 재통일하게 되었다.
가야가 망한지 20년째.관산성전투가 곧 벌어지는데
정세전환이루어진다.
신라왕이 법지(法知)·계고(階古)·만덕(萬德) 등에게 명하여 우륵(于勒)에게 음악을 배우게 하였는데, 금(琴)을 이름하여 ‘가야금(伽耶琴)’이라고 하였다.
60년전 교황 젤라시오 1세가 임기를 시작하다
50년전 502년 남제의 황제 소보융이 양왕 소연에게 제위를 넘기고 소연의 심복인 정백금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남제가 멸망하고 양나라가 성립되었으며 소연은 양나라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 신라의 지증왕이 순장제를 폐지했다
40년전 고구려의 문자명왕이 백제의 가불성, 원산성을 점령하고 약탈하였으나 백제의 무령왕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거점으로 한 해상왕국인 우산국을 정복하여 신라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30년전 전해 공복을 제정하고 중국과 140년만에 교류시작한 법흥왕의 신라가 가야왕의 청혼을 받고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를 보내었다.
- 고차왕(高車王)의 동생이 왕을 죽이고 자립하였다.
- 북위(北魏)가 정광력(正光歷)을 사용하였다
20년전 신라는 금관국을 합병한다. 532년 금관국주(金官國主) 김구해(金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 즉 큰 아들 노종(奴宗), 둘째 아들 무덕(武德), 막내 아들 무력(武力)을 데리고 나라 창고에 있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10년전 토탈라가 이끄는 동고트 왕국 군이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나폴리를 점령하였다
10년후 대가야가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하면서 가야 지역이 최종적으로 신라에 병합되었다.
소규가 후량 2대 황제가 되었다
북제4대황제 고담이 황제가 되자 고양의 황후였던 이씨와 강제로 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는 이씨에게 자기의 요구를 응하지 않으면 아들 고소종(高紹德)을 죽이겠다고 위협했고 결국 임신하게 되었다.결국 비구니가 됨
2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에 공물을 바치는 것을 거절하여 두 나라 간의 평화 조약이 깨졌다. 비잔티움 제국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역에 군사를 보내어 니시비스를 공격하였다.
비다츠 천황이 일본 제30대 천황으로 즉위하였다.아스카시대 첫덴노로 비다쓰 덴노의 재위기간에는 소가 가문의 세력이 점점 부상하여 모노노베 가문과의 대립이 첨예화되는 시기였다
신라 24대 왕 진흥왕이 연호를 홍제로 바꾸었다.
타발가한이 돌궐의 가한이 되었다
25년전 북제멸망
30년후 티베리우스 2세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사망
진욱 : 진(육조) 제4대 황제 사망
양견이 북주의 우문천(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세우고 북주를 멸했다. 이로 인해 진욱은 실의에 빠져 병을 앓게 되었다.
태권 14년(582년) 정월, 진욱은 결국 재위 14년만에 53세의 나이로 건강 선복전에서 사망했으며 2월, 현녕릉에 안장되었다.
40년후 일본 제 32대 덴노 스슌 덴노가 그의 정적인 소가노 우마코가 보낸 자객 야마토노아야노 아타이코마에게 암살당하였다.53년후 소가노가 당함
- 힐데베르트 2세가 부르군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50년후 무왕의 백제군이 신라의 아막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신라군의 분전으로 대패하였다.
수문헌황후가 602년 8월에 영안궁에서 한질로 사망하자 양견은 큰 충격을 받아서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다가 말년에 다시 양용을 태자로 만들고, 양광을 폐위시키려하나, 양광의 심복이자 자신의 근위장 장형에게 암살당했다.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마우리키우스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비잔티움 제국군이 반란을 일으켜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여 마우리키우스와 그의 가족을 처형하였다. 이후 백인대장 포카스가 비잔티움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살수대첩 : 고구려의 장군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192년 (국내무력쟁탈전)
로마는 군인들이 권력을 쥐기시작한다
음력 1월 정축(丁丑)일에 후한에서는 크게 사면을 내렸다. 원술(袁術)이 보낸 장수 손견(孫堅)이 양양(襄陽)에서 유표(劉表)를 공격하여 손견이 전사하였다. 원소(袁紹) 및 공손찬(公孫瓚)은 계교(界橋)에서 싸워, 공손찬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계교 전투)
음력 1월, 신라에서는 국량(國良)에게 벼슬을 내려 아찬으로 삼고, 술명(述明)을 일길찬으로 삼았다.
동탁(董卓)을 주살
음력 5월, 동탁의 부곡장수 이각·곽사등이 반동을 일으켜 수도를 공격하였다. .
장안성(長安城)을 함락 이각 등은 모두 스스로 장군(將軍)이 되었다. 머지않아 노식, 황보숭, 주준장군등 황건적 난을 잠재운 토벌대장들은 쓸쓸히 죽어간다.
신라에서는 크게 물난리가 나서 산이 무너진 곳이 10여 곳이었다
60년전 후한의 학자 장형이 지진계인 지동의를 발명하였다.
백제가 북한산성을 쌓았다.
시몬 바르 코코바와 아키바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로마 제국을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50년전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 의해서 안토닌 성벽이 착공되었다.
40년전
30년전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20년전 손견은 회계군에서 허창과 그 아들 허소가 반란을 일으키자 1천 명의 군사를 모아 양주의 관군과 합류해 공을 세웠다.
고구려가 국내성 인근의 좌원에서 벌어진 후한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 전투는 고구려가 한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10년전 손권 : 오나라의 초대 황제탄생
10년후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기독교에 대한 박해 포고령을 내렸다.
20년후 로마 황제 카라칼라가 제국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했다.
카라칼라 욕장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로마제국의 쇠퇴가 시작됨.
30년후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가 어머니와 함께 군사들에게 살해되었다. 이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제위를 이어받았다.
- 이릉대전에서 오나라군이 촉나라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이후 촉나라는 형주에 더 이상 세력을 뻗치지 못했다
40년후 로마 제국이 사산 제국에 대한 반격을 개시, 로마군은 황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의 지휘 하에 세 갈래로 공격을 진행하였으나 성공적인 작전을 벌인 분견대는 없었고, 페르시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을 공격하는 작전 또한 실패하였다. 로마군은 사산조 페르시아군에게 패배하여 시리아 지방으로 후퇴하였다.
50년후 고구려군이 요동 서안평을 공격하였다
손호 : 오나라 마지막 황제탄생.
아르다시르 1세 : 사산조 페르시아의 창건자 사망
60년후 손권사망.손량이 오나라 제2대 황제가 되었다
bc169년 페르세우스 마케도니아 안티고노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 페르세우스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안티오코스 4세에게 로마에 맞서 자신에게 협력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안티오코스 4세는 대답하지 않았다
60년전 기원전 229년에 백전노장 왕전(王翦)과 양단화(楊端和)를 시켜 합동작전을 펼쳐서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으로 출동시키지만 이목은 사마상(司馬尚)과 함께 진나라 군사를 잘 막아내 멸망의 위기를 극복한다. 진나라의 조나라 침공은 결국 이목에 의해 모조리 막혀버린 셈
50년전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사군툼을 포위하였다. 사군툼 공성전은 8개월 간 지속되었고 이곳을 기어코 점령하긴 하였지만 공성 도중 한니발 바르카는 큰 부상을 당하였다. 카르타고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대사를 보낸 로마는 한니발 바르카에게 사군툼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40년전진나라의 지나치게 가혹한 탄압정책과 혼란한 분위기 등에 의하여 진승, 오광이 주도로 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농민 반란인 진승·오광의 난이 발발하였다.
진나라의 이세황제 호해가 위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각(角)을 폐위시키고 평민으로 만들어, 전국시대 최후의 제후국이었던 위나라가 멸망하다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과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가 이끄는 로마군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흉노 1대 선우 두만이 맏아들 묵돌에게 암살당하였다. 이후 묵돌이 흉노 2대 선우가 되었다
30년전
20년전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안티오코스 3세가 로마군에게 패배한 이후, 안티오코스 3세와 강력한 동맹관계였던 아이톨리아 동맹이 로마에 평화 조약을 강제당하고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20년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 페르세우스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안티오코스 4세에게 로마에 맞서 자신에게 협력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안티오코스 4세는 대답하지 않았다.
30년후 한무제 할머니 효문황후의 눈치를 보았으나, 그녀가 죽자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설치하고 최초의 유교식 학교인 명당(明堂)과 태학(太學)을 건립하는 등 자신의 뜻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기고, 효문황후의 친정 일족을 숙청해버렸다.
40년후 한무제 129년 이뤄진 첫 대규모 원정을 보면, 각기 다른 4개의 기병부대가 동원되었고 각 한 개 기병군단의 숫자는 1만 정예병이라 보고된다.
50년후한무제 기원전 119년 원정을 보면 두 개의 독립적인 기병부대가 동원되었는데, 각 기병군단의 숫자는 5만 정도였다
기원전 119년의 원정에서는 말을 14만 필 동원했는데 살아돌아온 건 고작 3만 필뿐이었다
60년후 한나라가 육군, 수군을 동원하여 고조선을 공격하였다. (왕검성 전투)
프톨레마이오스 10세가 어머니인 클레오파트라 3세에 의해 파라오에서 폐위되면서 프톨레마이오스 9세가 복위하였다.
로마 집정관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가 나르보에서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족에게 패배하였다
bc529년 페르시아 캄비세스 2세
키루스 대왕이 동쪽의 정벌에서 죽자 제국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고 기원전 522년까지 다스렸다.
기원전 530년경 피타고라스는 폴뤼크라테스의 폭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토네에 도착한 피타고라스는 그의 높은 학식을 바탕으로 크로토네 사람들에게 여러 조언을 하고, 그들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인도하였다. 이후 그를 중심으로 피타고라스 학파가 형성되었다.
BC889년 이집트는 22왕조 리비아왕조 56년차이다.
좀다른 하원갑자
1812년
1월 31일 - 순조즉위후 희망을 잃은 홍경래의 난 발발.민초에겐 악랄한 관군들.
정조가 다져놓은 군대라 민란이 이기기 힘들다.
2월 11일 - 매사추세츠 주의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가 게리맨더링을 실시.
4월 30일-루이지애나 주가 18번제로편입됨
6월 1일 - 미국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 의회에 영국과의 전쟁을 가결해 줄 것을 요청.
6월 18일 - 미국 - 영국 간에 전쟁 발발.(1812년의 전쟁)1812년의 영미전쟁에서 테쿰세는 앨라배마 북부와 조지아의 레드 스틱 크릭 족 인디언들에게 백인 개척민을 공격하자고 선동했다. 포트 밈스 학살에서 400명의 백인 개척민들이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미국 육군은 크릭 족을 공격하여, 크리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잭슨은 미국 육군을 지휘했지만, 그 휘하에 테네시 백인 민병대뿐만 아니라 미군과 동맹을 맺은 체로키 족, 촉토 족과 남부 크릭족이 포함됐다.
- 프랑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 모스크바 입성을 가로막은 것은
발진티푸스였다.
열은 좀처럼 내릴 줄 몰랐고 헛소리를 하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병사들은 살이 썩고, 사람을 통째로 구운 듯한 몰골로 죽어갔다. 병사들 사이에 급속도로 전염되었음은 물론. 결국 60만의 병사는 러시아에 도착하는 9월에 13만으로 준다. 러시아에 도착해서도 발진티푸스는 계속되어 모스크바에 도착하였을 때는 9만으로 줄고 결국 4만의 군대로 독일로 퇴각한다
- 모스크바에서 철수 시작, 몰락의 길을 걷게 됨.
60년전 벤저민 프랭클린이 유명한 연 날리기 실험을 통하여 번개가 전기임을 증명하다
대영제국이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 1752년 9월 2일의 다음 날은 9월 14일이 된다.
정조탄생
50년전 표트르 3세가 차르로 즉위하다. 이 차르는 7년 전쟁을 다 이긴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대제에게 강화를 제시한다.
- 7년 전쟁: 영국이 스페인과 나폴리 왕국에게 전쟁을 선포하다.
임오화변이 발생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지 8일만에 사망
장 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출판하다
- 프랑스 왕국이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게 할양하다
정약용탄생
40년전 1772년 -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신성로마제국이 1차로폴란드를 셋으로 분할하였다.
천문학자 보데가 보데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20년전 1792년프란츠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다. 그리고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됐다.
-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프랑스 혁명전쟁이 시작.
-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작곡됨
10년전 1802년 아미앵 조약이 체결되었다.
프랑스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영국이 네덜란드가 통치하던 실론을 점령하였다
10년후
40년후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이 헌법을 개정, 황제가 되기 위한 초석을 다지다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 제2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진주민란이 일어났다.
-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 '노예해방 예비선언’ 발표.
60년후 1872년 459장의 전국지도
문화투쟁의 와중에 비스마르크가 예수회를 독일에서 활동 금지
세계최초의 축구대회 FA컵 1회 결승전이 개최된다
일본야구 시초.
1452년
황희,문종이 죽고 이듬해 계유정난이 발생한다.
1452년부터 1740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는 혼인정책으로, 부르고뉴 공국의 대부분을 합병하였으며, 헝가리, 보헤미아, 스페인과 이탈리아 남부까지 다스리게 되었고, 1452년부터는 신성로마황제를 독점하기에 이른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에 넘어간다.
4.15일 이탈리아 건축가, 조각가,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탄생
60년전 조선개국
일본 남조의 마지막 덴노인 고카메야마 덴노가 화친파의 주장에 따라 아시카가 요시미츠에게 평화를 요청한다. 이후 교토로 돌아와 당시 북조의 덴노였던 고코마츠 덴노에게 3종신기를 건네며 양위하였다. 이로써 56년에 걸친 남북조시대가 막을 내린다.
50년전 1402년남경이 함락된 뒤 건문제가 실종되자 연왕 주체(영락제)가 황위에 오르며 정난의 변이 끝났다.
-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가 지휘한 티무르 제국군이 바예지드 1세의 오스만 제국군에 대승을 거두고 그를 포로로 잡았다.
40년전 1412년 노르웨이의 공동왕 에릭 3세 (에리크 아브 폼메른)가 덴마크 및 스웨덴의 왕 (각각 에리크 7세, 13세)으로 즉위하며 칼마르 동맹의 2대 통치자가 되었다.
포르투갈의 세우타 원정 준비가 시작되었다
30년전1404년 알브레히트 2세 오스트리아의 공작에 즉위했으며 1411년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422년에는 룩셈부르크 가 출신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국왕, 헝가리의 국왕인 지기스문트의 딸인 엘리자베트(Elisabeth of Luxemburg)와 결혼했다.합스부르크가 150년만에 나섬
20년전포르투갈이 현 시에라리온에 거점을 마련하였다
20년후 1472년뮌헨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30년후 1482년 서 아프리카 기니 만에 엘 미나 요새가 건설되었다.
스페인 왕국의 그라나다 정복 전쟁이 시작되었다
40년후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발견
60년후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라벤나 전투가 발발하였다.
포르투갈 함대가 몰루카 향료 제도에 도착하였다
1092년
고려의 상피제는 1092년(선종 9)에 제정되어 오복친제(五服親制)에 바탕을 두고 실시되었다.
요 숙종즉위.불교에 심취하여 망국으로 치닺는다.
셀주크에 예루살렘순례를 금지당하고 서방에 십자군원정을 요청한 동로마 알렉시오스의 치세 말년은 후계자 문제로 골치 아팠다. 그는 1092년 아들 요안니스 콤니노스를 공동황제에 앉히고 후계자로 지명했으나 황후인 이리니는 딸 안나 콤니니와 공모하여 사위를 제위에 앉히려고 계속해서 요안니스를 반대하였던 것이다
1096년 1차 십자군전쟁이 시작된다.
60년전 서하경종. 고려덕종 즉위
50년전 1102년 신법당의 채경이 송나라의 재상이 되어 원우당적비를 세우고 구법당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송휘종의 수석 취미를 위해 소주와 항주에서 화석강이 시작되었다.
무라비트 왕조가 1년여간의 포위 끝에 발렌시아를 함락하였다. 발렌시아 공국의 멸망.
헝가리 왕국의 주도로 헝가라와 크로아티아 간의 동군연합이 성립되었다
40년전 프랑스 라온의 시민들이 자치도시 (코뮌) 를 선포하고 주교를 성당에서 살해하였다.
고려의 의료기관 혜민국이 설치되었다.
아폰수 1세가 포르투갈 백작령의 백작이 되었다.
살레르노의 로제르가 안티오크 공국의 섭정이 되었다. (공작은 보에몽 2세)
30년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교황 갈리스토 2세 간에 보름스 협약이 체결되어 서임권 분쟁에서 교황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금나라 군대가 요나라의 서경 대동부를 점령하였다.
불가리아의 베로이아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요한네스 2세가 페체네그족들을 섬멸시켰다.
20년전야율대석이 에밀에서 구르 칸으로 즉위하여 서요가 건국되었다.
참파가 베트남을 공격하였다.
20년후 바르셀로나 백작령의 파르데스에서 무슬림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벨라 3세가 헝가리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리처드가 아키텐 공작이 되었다
30년후 테무진이 타우치우트 부족에게 포로로 잡혔다
샤티용의 르노가 평화 협정을 깨고 7척의 함대를 이끌고 홍해 연안을 유린, 메카의 성문까지 도달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시민들이 서방인을 몇 만명 규모로 학살하였다
40년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쇼군에 즉위하여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되었다.
- 리처드 1세와 살라딘이 휴전 협정을 체결하며 제3차 십자군 원정이 종료되었다. (야파 조약)
아스칼론이 아이유브 왕조에게 반환되었다
50년후 1202년 - 4차 십자군이 베네치아에 집결하였다
달란 네무르스 전투에서 징기스 칸이 타타르족을 완전히 격파하고 마차 바퀴보다 키 큰 남성 대부분을 죽인 후 몽골에 편입시켰다
존 왕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그의 조카 브르타뉴 공작 아서를 푸아티에 근교에서 사로잡았다
60년후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 3세가 공동 통치하던 모후 멜리장드를 나블루스로 유폐시켰다
프리드리히 1세가 독일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말리크샤 3세가 셀주크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732년
발해무왕, 장문휴가 당나라 등주(지금의 산둥성)을 공격.
카를 마르텔은 투르푸아띠에 전투로 프랑크가 이슬람세력으로부터 프랑스남서부를 지겨낸다.
반도를 장악한 이슬람 제국 우마이야 왕조의 침공을 맞게 된다.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군을 막아내면서 서유럽을 지킨 사나이가 되었다.
이슬람을 막아낸 이후 군제개혁을 시도하여 이슬람 기병대를 모델로 기병집단을 양성하기 시작했으며, 이들 기병집단의 전투력을 유지시켜주기 위한 경제적 기반으로 수도원 등 교회로부터 빼앗은 토지를 지급하면서 충성맹세를 받았다. 이것이 바로 은대지 제도이며 중세 봉건제도의 기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0년전 석문 전투 : 나당전쟁 중 신라군이 당나라군에 맞서 싸워 대패했다
50년전감은사가 창건되었다
40년전세바스토폴리스에서 무하마드 이븐 마르완이 이끄는 이슬람 세력이 레온티우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을 격퇴하였다
30년전 우마이야 왕조가 비잔틴 령 마우레타니아(모로코 북해안)를 점령하고 마그레브를 평정하였다
20년전 당현종이 당나라 6대 황제가 되었다.
불가르족이 트라키아를 공격하였다.
고사기편찬
10년전 722년 가톨릭 세력이 칸타브리아 산악 지대의 코바동가라는 작은 마을에서 북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던 우마이야 왕조군을 격퇴하였다.
헤힐 전투 발생
20년후 752년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전횡 가속
30년후 당대종 당나라가 문왕을 발해국왕으로 책봉하였다.이듬해에 7년 동안 당나라를 어지럽힌 안·사의 난은 결국 진압되었다
40년후 772년 롬바르디아의 왕 데지데리오가 교황청을 공격하였다.
50년후 중국 당나라에서 차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하였다.
카롤루스 대제가 베르덴에서 약 4500명의 색슨족 반란군을 학살하였다.
6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의 2대 군주 히샴 1세가 프랑크 왕국이 설치한 변경백 령 (마르크)에 대한 지하드를 선포하였다
불가리아 제국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72년 (종교로 국가를)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됨.고구려, 태학 설치
372년에 이르러서는 칠지도와 '칠자경'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3년후 훈족이 흑해근처에 나타나자 게르만족이동이 시작된다.
2년후 밀라노 암브로시우스가 교부가 된다. 20년후 황제로부터 로마의 기독교국교화로 이끌게한다.
70년전 301년에 제왕 사마경, 성도왕 사마영, 회남왕 사마옹과 손을 잡고 황제를 참칭한 조왕 사마륜을 주살했는데, 사마경이 사마충을 보좌하면서 실권을 잡고 정치를 제멋대로 하자 302년에 사마영, 사마옹과 손을 잡고 사마경을 주살했다
팔왕의 난
60년전 -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당시 로마 주교(교황의 전신) 멜키아데에게 라테라노 궁전을 기증하여 가톨릭에서는 이 날을 봉헌 축일로 기리고 있다. 이는 국교화의 발단이 되며, 지금도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명목상으로 높은 위상을 가지는 근거가 된다.
서안평을 점령하였고 이로 인해 요동군과 낙랑군 사이 육로가 끊겨 남쪽의 낙랑군은 중국 본토에서 떨어진 월경지로 고립되어 버렸다. 다음해 멸망
백제비류왕 312년 음력 2월 신하들을 보내어 백성들의 질병과 고통을 살펴보고, 홀아비, 과부, 고아, 그리고 늙어서 자식없이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 중에서도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자에게는 곡식을 한 사람당 3섬씩 주었다
신라흘해왕 왜의 침입을 줄여보고자 즉위 3년(312년) 왜국 왕의 아들과 아찬 급리의 딸을 결혼시킨다.
신라사는 남당유고와 63년차이가 있어
첨해이사금3년도 보면 서불한 석우로의 실언으로 왜인에게 죽는다.일본서기상 200년인셈.
50년전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일 근구수왕 : 백제 14대 국왕탄생.
40년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가 모에시아에서 고트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고트족들은 이후 로마와 동맹을 맺고 다뉴브 강 유역을 방어하는 데 전념하게 된다.
30년전 고구려에서 국내성을 쌓았다.
- 전연의 왕 모용황이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와 고구려의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왕모와 왕비를 사로잡은 뒤 되돌아갔다.
20년전 염위의 왕 염민이 모용각이 이끄는 전연군에게 사로잡혀 살해당하였다. 이후 염민의 맏아들인 염지는 업성에서 염위의 남은 군대를 모아 전연에 맞섰으나 음력 9월, 부하들이 그를 붙잡아 전연에 투항하면서 포로가 되었고, 이듬해 황문시랑 송빈의 모반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10년전 로마 제국의 율리아누스 황제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포고령을 발표하였다.
- 율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인 교사의 학생 교습을 금지하였다.
10년후 -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서고트족과 평화 조약을 맺고 서고트족이 다뉴브 강 유역에 살도록 허락해주었다.
신라가 고구려의 도움으로 전진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20년후 392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격하여 관미성을 비롯한 11개 성을 함락시켰다.
아신왕이 백제 17대 국왕이 되었다.
응신천황 2년차
30년후베로나의 북부에서 스틸리코 장군이 이끄는 서로마 제국군이 알라리크 1세가 이끄는 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했다.
독발녹단이 남량 3대 왕이 되었다.
실성 마립간이 신라 18대 왕이 되었다.
남당유고와 삼국사기 신라왕제위가 딱맞음
40년후 신라의 군주 내물 마립간의 아들인 복호와 미사흔이 각각 고구려, 왜에 인질로 보내졌다
50년후 유유가 죽고 유의부가 유송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간에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60년후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선교하였다
서기 12년에 (대제국과 부족국)
신나라의 왕망(王莽)이 흉노 정벌을 위해 고구려군을 징발하려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자 장수를 보내 공격하여 고구려 장수 연비(延丕)를 죽이고 하구려후(下句麗侯)라 비하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신나라를 공격하였다.
티베리우스는 바루스의 3개 군단이 게르마니아 땅에서 궤멸당했을 때 - 아우구스투스가 말아먹은 - 라인 강을 지키면서 뒷처리를 담당했고, 달마티아의 반란 진압에서도 공을 세워 입지를 더욱 단단히 굳히기도 했다. 그리고 2년 뒤 돌아와서 미뤄 두었던 일리리아에서의 전쟁 개선식을 거행했다. 곧이어 집정관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와 속주를 공동 관할하는 자격을 부여하고 다음 5년 동안 그를 도와 인구조사 임무를 맡기게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서기 13년 티베리우스는 로마군 총사령관과 종신 호민관 직권을 아우구스투스와 공동으로 지명받아서 공동황제가 되었다.
80년전 아우구스투스의 통치는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계속되는 변방에서의 전쟁과 황위를 둘러싼 1년의 내전(기원후 69년)에도 불구하고, 지중해 세계는 두 세기가 넘게 평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70년전 기원전 59년 옥타비아누스의 나이 네 살 때, 아버지 옥타비우스가 세상을 떠났다.
부여가 건국.
60년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군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넘어, 로마에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50년전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39년에 제2차 삼두 정치의 집정관들과 협정을 맺어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가지게 되었다.기원전 39년, 미세눔 조약으로 임시 평화 협정이 맺어졌는데 이탈리아의 해상 봉쇄가 풀리자 옥타비아누스는 폼페이우스에게 사르데냐, 코르시카, 시칠리아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내주었다
40년전로마의 옥타비아누스가 일리리쿰, 악티움, 이집트에서 일구어낸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식이 거행되었다.
제일인자라는 뜻의 국가 제1시민(princeps civitatis)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흔히 '프린켑스'라고만 쓰는 이 칭호는 공화정 시대에 지도급 원로원 의원으로 인정받은 집정관 역임자이자 높은 위신과 덕망을 지닌 자를 뜻했다.이 칭호는 실제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폼페이우스에게도 수여된 전례가 있었다
소피아가 로마에 병합되었다.
30년전 기원전 19년에 원로원은 민중의 분노를 사지 않으려고 아우구스투스가 집정관의 상징을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권리와 두 집정관의 사이에 앉을 수 있는 권리를 허락했다
20년전 기원전 9년에 드루수스가 이끄는 군대는 게르만족을 물리치고 엘베 강에 도달했다. 하지만 얼마 후 드루수스는 낙마하여 죽었고 티베리우스는 동생의 유해를 로마로 송환하였다
10년전 서기 2년과 4년에 루키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가 차례로 요절하였다.
20년후낙랑태수 최리의 딸인 낙랑공주가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결혼하였다. 낙랑에는 적이 침입하면 스스로 소리를 내어 그 사실을 알려주는 자명고가 있었다.
30년후 김수로가 금관국 초대 왕이 되었다
40년후 네로황제가 59년에는 정치적으로 간섭해 온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죽임.
50년후폼페이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파르티아가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즉위
콜로세움 건설을 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출생지는 사비니 리에티. 플라비우스 왕조의 시조로, 네로의 자살 이후 세 명의 황제가 난립하며 극도로 혼란스럽던 로마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공식적으로 황제에 등극했다(A.D. 69)
60년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콤마게네 왕국의 왕 안티오코스 4세를 폐위시켰다.로마황제 티투스즉위
로마 장군 루시우스 플라비우스 실바가 마사다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토산을 쌓았다
콜로세움이 착공되었다
bc349년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 발칸반도 및 마케도니아 북쪽, 서쩍 변방을 강화하는데 전념했고 남쪽 그리스로는 침범하지 않았다. 기원전 348년에는 올린토스를 점령하고 칼키디키를 합병하였다.알렉산더는 8세내외
60년전 로도스가 건설되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인 필로크테테스가 상연되었다.
아테네의 장군 알키비아데스가 비잔티움에서 일어난 아테네에 대한 반란을 잠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