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28
초나라는 진(晉)의 강성에 불안을 느껴 강화(講和)를 요청. 진이 그를 수락하여 성복(城濮) 전투 이후 최초로 양국이 통교(通交). 춘추(春秋)의 2대 패자(覇者) 진문공 서거. 진(秦)목공(B.C.659~621 재위)이 정나라가 진(秦), 진(晉) 양국과 이중 타협한 사실을 알고 대노함. 이에 정나라를 응징하고 진(晉)에게서 중원(中原) 패권을 빼앗기 위해 대병력을 출정시킴.
기원전 568
진(晉)·송·노·진(陳)·위(衛)·정·조(曹)·거·주·등·설(薛)·제·오(吳)·증이 척(戚)에서 회맹(진도공의 2차 회합). 정의 6경(卿)=6목(穆)(목공 후예인 6대 세경가)인 3공자(정희공(鄭僖公)의 숙조부(叔祖父)들) 비(騑, 자(字)는 자사(子駟)), 발(發, 자국(子國)), 가(嘉, 자공(子孔))와 3공손(정희공의 숙부들) 첩(輒, 자이(子耳), 공자 거질(去疾) 아들), 채(蠆, 자교(子蟜), 공자 언(偃) 아들), 사지(舍之, 자전(子展), 공자 희(喜) 아들)들의 전횡으로 희공의 통치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함.
기원전 328
소진(蘇秦)이 한(韓)·위(魏)·조(趙)·제·초·연(燕)의 6국 군주에게 유세(遊說)하고 다니면서 이들 동, 남방의 6국이 연합해 상호 공수동맹(攻守同盟)을 맺어야만 서방의 대국이자 신흥 군사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적할 수 있다고 설득함. 이에 6국 군주가 소진의 주선으로 원수(洹水)에서 회합해 상호 동맹함(합종(合縱)의 성립). 장의(張儀)가 진(秦)나라의 상방(相邦)이 됨. 위나라가 소량(少梁)을 포함한 상군(上郡) 소속 15현(縣)을 진에게 헌납.
기원전 268
진이 위나라를 재차 공격해 회(懷) 땅을 점령함.
기원전 208년, 마침내 진나라는 농민 반란군을 완전히 진압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농민 반란으로 기록되는 '진승의 난'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당시 빈농 진승과 오광이 규합한 반진 무리가 삽시간에 봉기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2세황제의 실정 때문이었다
기원전 88년 술라는 로마 공화국의 최고의 관리직인 집정관에 선출된다. 이와 함께 술라는 세번째 아내와 이혼을 함과 동시에 카이킬리아 메텔라와 이른바 족벌 정치 결혼을 하여 세력 있는 메텔루스 가문의 후원을 얻어 미트라다테스 전쟁의 지휘권을 부여 받는다.
기원전 28년 낙랑과 신라가 겨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