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빙 위의 경조금
이두백
경조금이 어쩜 떠다니는 빙하의 물 밖 조그만 노출부위와 같이, 물 밑에서 보이지 않게 흘러 다니는 빙하 같은 생활전선의 부침을 조용히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쩜 말보다도 글보다도 더 생활전선의 승패와 희로애락을 숙성시켜 여실한 생활상을보여주는 웅변이 아닐까? 그런 것을 실감케 하는 아래 두 사례를 겪은 후 나는 경조금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꾸게 되었다.
학교친구의 뒤 늦은 자녀결혼식 청첩장이 도착했다. 내가 3자녀 결혼식을 다 마친지 벌써 7년째이니 꽤 늦은 편이다. 친인척은 물론 친구 친지들의 자녀 결혼식 청첩장을 받거나 가족 타계소식을 들으면 늘 그러하듯이 3자녀 결혼식 축의금 록과 내 부모님 관련 등 조의금 록을 확인하곤 한다. 미쳐 다 못 드린 감사인사를 드리거나 인간적인 최소한의 도리를 잊지 않고 갚아가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직접 참석해야할지 최소한의 축의금 혹은 조의금이라도 보내야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학교친구 경우는 축의금이나 조의금 목록을 볼 것도 없이 12년 전의 일이 떠올려졌다. 내 첫 자녀 결혼식 때, 친구들 모임 봉사를 맡은 그 친구가 고맙게도 여러 친구들의 결혼축의금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고 알려왔었다. 첫 자녀 결혼식 때엔 부모의 1차 의무를 이행하는 일이기에 몹시 번잡하여 잊고 있다가 한참이 지났다. 결혼식에 참석하신 분들 및 축의금을 보내준 분들에게 전화로라도 감사인사를 드린 후 상당시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친구가 보관했다는 축의금들이 입금되지 않았다. 송금독촉하기도 불편한 일이라 또 상당시간이 지나서 학교 졸업 40주년 기념행사 시에 자연스럽게 만나 그때 일을 상기시키니 “친구! 잘 알고 있네!”라고 하여 또 그냥 넘어갔다.
시간이 또 지나 그 친구가 운영하는 매장에 학창시절 때의 스승님을 모시고 부러 반 친구들과 같이 갔다. 종업원도 없이 부부가 열심히 뛰어다녔다. 요구사항이 늘어가자 부부가 더 열심히 뛰어다녔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학창시절 때의 즐겁던 추억들을 나누며 동기동창생들이 같이 즐거운 시간을 나눴다.
그런 자리를 가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로부터 매장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접기로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순간 내 청소년 시절, 부친께서장기 투자한 사업을 중도포기하심에 따라 끊임없이 빚에 시달리시고 경제자립을 못 하시던 일들이 떠올라와 이후 첫 자녀축의금 일은 잊기로 했다. “친구! 얼마나 힘들었는가. 나이도 70대이니 느긋한 노후를 욕심 없이 준비해가세!”란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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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례는 자유업을 가지신, 여러 글들도 쓰시는 선배님 경우였다. 그 선배님과는 서울 중구 황학동에 살 때 간간이 만나 막걸리잔도 나누었고 내친 김에 청계천을 걸어 광화문까지 오가며 환담을 나누곤 했다. 소위 좋은 집안 출신이시고 지방 문학단체에 후원도 여러 차례 하셨고 또 자유업을 운영하시므로 늘 든든한 선배님으로 알고 있었다. 위의 첫 번째 친구의 경우보다 4년도 더 지난 어느 날, 그 선배님께서 영위하시는자유업 사무실에 들렀다. 우리 부부 3자녀들을 모두 결혼시킨 후였다. 그간 쓰신 좋은 글들을 많이 주시어 반가웠다. 오랜만이 되어 자연스럽게 환담을 나누면서 우리 부부의 둘째와 셋째 자녀 결혼식 얘기도 화제에 올랐다
. 한편, 그 선배님께서 오실 수 있는 거리에 계셨고 축의금이라도 보낼 수 있는 형편이셨는데 그러지 못하셨기에 그간의 사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자녀 결혼식을 잘 기억하시면서, “자녀들 결혼을 뒤늦게 축하합니다!”라고축하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조용히 특별한 노트를 하나 보여주셨다. “이런 분들의 경조사들을 다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하시면서.
그 선배님이 보여주신 노트는 각 경조사에 참석 못하신 경우들을 상세히 기록한 노트였다. ‘세상에~~ 경조사에 참석 못 한 내용들을 적는 노트가 있었던가?’를 되뇌면서 더욱 궁금해 도대체 선배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캐물었다.
선배님 이야기는6~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금슬이 매우 좋으신 부부이신데 처가 쪽에 경제적으로 크고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법률문제 해결방법도 꽤 알고 계셨지만 결과적으로 선배님의 노후자금을 많이 축내어야 해결되는 문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해결해 주겠다고 마음먹으셨고 지난 6~7년간 그 처가 복잡한 경제문제 해결에 최우선순위를 두셨고 거의 다 해결단계라고 하셨다. 새삼 행복한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선배님에게서 따스함과 친근미를 새삼 더 느꼈고 그런 상황에서 쓰신 글들을 가지고 와 더욱 숙독하였다.
지금은 경조금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꾸었다. 경조금 자체에 대한 호 불호를 최대한 삼가기로 했고, 피상적인 감정에 의하여 상대방의 형편과 처지를 재단하려는 본능 또한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 혹한에 때론 지구온난화에 떠다니며 풍파를 맞는 유빙의 실체를 모르는 체 유빙위에 조금 보이는 형체만 가지고 유빙의 실체를 모르기에 경조금과 관련해 나도 필요하다면 두 가지 노트를 만들어 가야겠다. 하나는 다른 분들 경조사에 참여 못 하거나 경조금도 못 보낼 경우 기억하고 있다가 만나면 축하 말을 전하거나 애도의 뜻을 전할 수단으로 사용할 노트를! 다른 하나는 추후 내 집 애경사 발생 시 사정상 참여치 못하거나 마음을 전해 오시는 분들이 계시면, 그분의 형편을 더 살피며 마음을 오래 나눌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