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남녀 생식기 명칭’의 유래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쓰기에 가장 거북한 말은 아마도 그것은 남녀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을 할 때에는 물론이고 글을 쓸 때에도 남녀의 생식기와 관련된 단어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며, 부득이하여 말을 할 때에는 ‘음문(陰門)’이니 ‘음경(陰莖)’이니 하는 점잖은 한자어를 선택하여 쓰기도 하고, 아예 ‘거시기’와 같은 애매모호한 단어로 대용하기도 하고, 글을 쓸 경우에는 ‘보×, 자×’ 식으로 한 글자를 감추어 표기하기도 합니다.
남녀 생식기에 대한 명칭을 직접 언급한다는 것이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어원을 운운하는 것 또한 쑥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 생식기를 가리키는 명칭의 어원에 대해 아주 오래전부터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이항복이 퇴계 선생께 “우리말에 여자의 소문(小門)을 ‘보×’라 하고, 남자의 양경(陽莖)을 ‘자×’라 하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하고 묻자, 이에 퇴계는 얼굴을 고치고 대답하기를, “여자의 소문은 걸어 다닐 때면 감추어진다 하여 걸음 보(步), 감출 장(藏), 갈 지(之) 세 글자 음으로 ‘보장지(步藏之)’라 하는 것인데, 말하기 쉽도록 감출 ‘藏(장)’을 빼고 ‘보×’라 하고, 남자의 양경은 앉아 있을 때면 감추어진다고 하여 앉을 좌(坐), 감출 장(藏), 갈 지(之) 세 글자 음으로 ‘좌장지(坐藏之)’라 하는 것인데, 그 역시 말하기 쉽도록 감출 ‘藏(장)’은 빼고 ‘좌지’라 하는 것을 와전하여 ‘자×’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내용대로라면 ‘보×’는 ‘걸어 다닐 때면 감추어진다.’는 의미의 ‘보장지(步藏之)’에서 온 말이 되고, ‘자×’는 ‘앉아 있을 때면 감추어진다.’는 의미의 ‘좌장지(坐藏之)’에서 온 말이 되는데, 이와 같은 어원설이 꽤나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왔습니다.
또어떤 사람들은 한 술 더 떠서 ‘자×’를 ‘물건이 왼쪽으로 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 어원설은 전형적인 한자 부회에 불과하며, ‘보×, 자×’의 어원이 궁금하던 차에 어형이 유사한 한자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고, 그 한자어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적당히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도덕군자였던 ‘이항복’과 ‘퇴계’ 선생이 환생한다면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등장한 것은 ‘보×, 자×’의 어원 설명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보×’의 어원에 대해서는 ‘근(根)’이나 ‘종(種)’의 의미를 갖는 어근 ‘봊’을 설정하고, 그것에서 파생된 어형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크게 믿음이 가지 않는데, ‘보×’를 그렇게 설명하면 ‘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요?
지금까지 ‘보×’와 ‘자×’의 어원에 대해 언급한 설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것은, 중국어 ‘조자(鳥子)’와 ‘팔자(八子)’에서 온 것이라는 설입니다. 근세 중국어에는 남녀의 성기를 가리키는 단어로 ‘기바’와 ‘비쥬’가 있었는데 이런 단어가 외설적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완곡한 단어가 개발되어 쓰니 바로 그것이 양물(陽物)에 대한 ‘조자(鳥子)’와 음문(陰門)에 대한 ‘팔자(八子)’라는 것입니다.
이들 ‘조자(鳥子)’와 ‘팔자(八子)’는 성기(性器)의 형태를 묘사한 말이며, ‘조자(鳥子)’는 중국어로 ‘댜오즈’인데 크게 변음(變音)되어 ‘자×’로 정착하고, ‘팔자(八子)’는 중국어로 ‘바즈’인데 크게 변음되어 ‘보×’로 정착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와 ‘보×’는 중국어 차용어라는 것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전 우리 조상들은 남녀 성기를 언급하는데 그 쑥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외국어인 중국어를 선택하여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남녀 성기를 입에 올려야 할 경우에 의도적으로 영어 단어를 차용하여 쓰는 것과 같은 심리로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