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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받으소서(Laudato si')
º 교종 문헌 : 회칙, 교황 교서, 교서(서한), 교황 권고, 권고, 담화, 연설(훈화), 강론.....
º 회칙( 回勅 encyclical letter)
교종 프란치스코교황님의 문헌을 성경 텍스트와 연결해서 함께 읽어보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신다고 강의 시작에 말씀하셨습니다. 찬미 받으소서는 교회의 문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의회 헌장같은 문헌들도 있고, 반대로 교황님께서 세계교회를 위해서 또 지역 교회를 위해서 문헌들을 발표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회칙, 교서, 권고. 담화, 연설, 강론등의 문헌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법적인 효력이 강한 문헌이 회칙입니다. 단순히 들어보면 '무슨무슨 회의 규칙 같은 것인가? 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회칙(encyclical letter)은 '돌려서 읽는 편지'라는 의미입니다. 교황님께서 쓴 편지를 전세계의 주교님들께서 돌아가면서 함께 읽고 그것을 각 지역의 하느님 백성에게 알려 주어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º 2015년 5월 24일 - 성령 강림 대축일
º 교종 프란치스코 재위 제3년
º 6장 246항 + 두 개의 기도문
찬미받으소서.라는 회칙은 2015년 6월 18일에 출판되었고, 공포된 것은 같은해 5월 24일 성령 강림 대축일이고, 교종 프란치스코 재위 제3년의 날이기도 합니다. 모두 6장 246항의 내용과 두 개의 기도문으로 이루어졌는데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가톨릭 교회의 문헌들을 장과 항이 독립적으로 나가서 1장이 20항으로 끝났으면 2장의 첫항은 21항이 됩니다.
그래서 인용할 때, 찬미받으소서의 몇항에 의하면..라는 형태로 장과 항이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회칙의 구성은 6장으로 되어있고,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이 1항-16항까지,
회칙의 구성
º 제 1장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17-61항]
º 제 2장 피조물에 대한 복음 [62-100항]
º 제 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 [102-136항]
º 제 4장 통합 생태론 [137-162항]
º 제 5장 접근법과 행동 방식 [163- 201항]
º 제 6장 생태 교육과 영성 [202-246항]
1장부터 제 6장 생태교육과 영성은 202항부터 246항까지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6장이 끝난 다음에 두 개의 기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를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자면 제 1장에서의 공동의 집에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라는 제목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안에서의 생태적 현실에 대한 인식( 지구의 온난화, 빙하가 녹고있는 것, 코로나, 등의 생태적 위기에 관한 문제들)을 회칙은 짚어보고 있고,
제 2장은 피조물에 대한 복음에 관해서 성경은 과연 어떤식으로 우리에게 접근하라고 가르쳐주는가? 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적인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 3장에서는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 기저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제 4장에서는 그와 같은 근원들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이론적인 토대를 맞서기 위해서 우리들은 이론적인 토대를 가져야 하는데..따라서 회칙은 "통합 생태론" 이라 명명했습니다.
제 5장에서는 4장에서의 이론적인 형태라면, 5장에서는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접근법과 행동 방식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제 6장에서는 이부분이 회칙의 특별한 점이라고 볼수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음세대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이고 그 모든 것의 바탕에 있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설명할 때 '영성( spirituality)이라고 하는데,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인인 영성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생태적인 영성이라고 할수 있는가?관해서 6장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입의 단계에서 회칙의 질문에 관해서 알아봅니다.
회칙의 질문
º 생태적 위기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문제인가?
º 생태적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º 그 원인과 어떻게 맞서야 할까?
º 타 종교와 교파, 그리고 기존의 생태운동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맞이하고 있는 생태적인 위기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문제인가? 라는 질문에 교회가 생태적인 해답에 관해서 회칙은 교회의 본질에 해당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회칙안에서 함께 풀어가 봅니다.
생태적 '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산업혁명 이후인가? 근본적으로,
원인과 어떤것은 부합하고 피해야 하는지, 서로 다른데(타종교, 교파간의)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세계관, 인간관에서 다를 수 있는 부분에서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라는 회칙의 질문들입니다.
신부님은 회칙을 읽어 가면서 회칙의 대답과 그 대답 기저에 있는 성서적 바탕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해 볼수 있다고 하셨고, 전체의 회칙을 읽을수는 없고, 1장과 특히 2장( 회칙과 성경을 연결하는 부분들입니다)에 주목하면서 어떤 인간관, 세계관, 신관을 갖고 있는지에 관해 알아가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회칙의 특징중에 하나는,
회칙의 특징
º "공동의 집" : "생태적 회개/ 회심/ 전환"...
º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 - 창조 질서의 보편성
º 공동선( common good)과 연대(solidarity)
- 정의와 공정
- 자애와 사랑
공동의 집이라는 표현 혹은 생태적 회개/ 회심/ 전환은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조차 회칙에서 처음 접해본 용어라는) 그러나 회칙이 갖고 있는 특별한 관심들이 이와 같은 용어와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회칙은 기본적으로 성프란치스코의 영성(spirituality)을 바탕으로 있고,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과 성경의 창조 질서의 보편성을 회칙이 연결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회칙은 생태신학이라는것을 큰 흐름에서 보면은, 그리스도교의 하나의 윤리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매일매일 안에서 '공동선'과 부합해 선택하고,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백성안에서 연대하는 모습인가에 관해
윤리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윤리에 관해 학문하는 관계자를 떠올리며, 윤리라는 것은 관계의 학문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라는 몇년 전의 샌덜이라는 하바드대학의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what's the right thing to do?)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고, 그 안에 어떤 근본적인 원칙(우리들이 선택해야할 때)들이 있는가? 옳은 가에 대해서 재밌게 설명하신 책의 내용입니다.
그리스교의 원칙은 공동선, 연대이고 이것은 성서적인 출발점을 갖고 있습니다. 공동선(common good)을 성서적인 용어로 설명한다면, 성경에서 특히 예언서 안에서 정의와 공정이라고 표현되어 지고 오늘날은 학문적으로 인간 각자가 실현해야 될 인간각자의 존엄성을 지켜가야 할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가에 대한 공동선이 등장합니다. 다음의 연대를 이야기 할때는 자애와 사랑이라는 성서적 표현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복음안에서 예수님께서 "배고픈 사람에게서 먹을 것을 주었는지,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것을 주었는지, 돌보고 아껴야 될 존재들에게 우리들 자신의 존재를 통해 하느님의 자애와 사랑을 얼마나 드러냈는지가 그리스도 윤리의 기저에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원칙입니다.
여기서 성서에 관해 더 이야기하자면, 흔히 '복수의 하느님이다'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정의로움을 이야기하는 히브리적 방식이고, "질투하는 하느님이다'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히브리적 방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서는 복수한다는 것이 부정적인 어감으로 다가오지만 구약의 세계 안에서는 복수라는 것은 정의가 실현되는 것(착한 일을 한 사람이 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이 벌을 받는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이 복수의 하느님이시기에 그 안에는, 누가 나를 괴롭히고 때렸다해도 내가 복수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이 복수해 주시기에,
그리고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라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반대로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말고 다른신(요즘의 물질주의)을 섬기는 것이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히브리적 방법, 성서적 표현)
복수의 하느님, 질투하시는 하느님, 이라는 것을 신관의 바탕에 두고 공동선과 연대라는 원칙 위에서 이 회칙은, 우리들이 맞딱드리고 있는 생태적 위기에 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어떻게 말하고 생각.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합니다.
회칙의 명칭은 Laudato si'라는 이태리말의 옴브리아 지역의 방언입니다.
회칙의 명칭
º Laudato si'(87항)
º praised be you, my Lord, with all your creatures
교황님들이 반포하는 회칙은 회칙이 시작되는 한 단어, 두 단어를 모아서 회칙의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찬미받으소서는 이태리 말로 시작하면서,
87항을 보게되면 저의 주님 찬미 받으소서..주님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praised be you, my Lord)는 명령인데, 수동형이고, 누가 하느님을 찬미할 것인지, 또는 어떻게 하느님이 찬미받아야 하는지에대한 내용들이 전체적인 시적 흐름이다.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성인과 함께 맥을 같이하는 성경의 내용이 참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에
다니엘 3장의 " 세 젊은이의 노래"가 있습니다.
다니엘 3장에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금으로 우상을 만들어 절을 하라고 하는데 당시에 바빌론에 가 있던 세 젊은이는 절을 하지않아서 임금이 그들을 불가마 속에 집어넣었을 때 젊은이들을 불가마에 집어넣은 사람도 불에 타죽고 주변인들도 불때문에 죽게됩니다. 하지만 이 세 젊은이들은 하느님의 천사가 와서 보호해주고 이 젊은이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첫째부터 일곱째 까지 하느님을 찬미 해야할 대상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우리들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부분은 '창조 신학적 관점에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내가 혹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purpose)은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들이 창조된 이유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나의 삶, 나의 선택, 나의 삶의 결단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내가 이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충족시키는, 바뀌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가장 행복해 질수 있는 때는,우리의 존재 이유가 충족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
º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º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
다윗의 노래입니다. 떼제 노래중에 '찬미하여라'의 본래의 텍스트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편 103편에서 다윗이 하느님을 찬미할 때, 다윗은 굉장히 힘든 삶을 살아온 임금이었습니다.(사울과의 갈등, 블레셋으로 피신후에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임금이 된 이후에도 아들 압살롬의 반란등...)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의 욥의 모습처럼 고통마저 봉헌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또한 녹록치 않았습니다(아버지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프란치스코 성인과 공동체의 삶도 순탄치 않아서...)
찬미받으소서의 기저에 흐르는 영성을 노래하는 다니엘서 3장, 시편 103의 내용입니다(순탄치 않은 삶속에서 고통마저 봉헌하며 찬미하는)
회칙의 명칭
º On Care for Our Common Home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º 공동의
º Home 과 House
º Care 와 Cure
회칙에 부제에 해당하는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On care for our common home)도 또한 분리해 보면 인간의 집이 아니라 공동(우리?)의 집,이라는 의미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집.
또한 집의 의미도 House가 아닌 Home, 건물의 개념이 아니라 (교회의 개념이 건물(성당)이 아닌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듯이..) 관계에 의미를 두어서,
돌본다. 라는 개념에서 Care, Cure. 30~40년 전부터 그리스도 신학의 한파트인 사목신학에서는 Care(치유)와 Cure(치료)를 구분합니다. 건강 그 이상의 삶을 위해서는 치료를 넘어서 치유가 필요합니다. 생태 문제에 있어서 관심을 기울이게 된 촉발점이 된 것중에 하나가 지구 온난화가 하나의 예인데, 지구 온난화, 탄소 배출만 해결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촉발시킨 근본적인 무엇을 찾아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마음 가짐)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좁게(협의적으로)는 지구라는 곳에 국한되어 있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시므로 광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우주까지로 회칙의 부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회칙의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1-2항
º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Sprituality)
º 현실 인식
1항에서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 관해 문학적으로, 편안하게,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마치 어머니인것 같다.라는 의미로 '대지' 이며 이 세상은 착취하고 지배해야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 형제, 자매라는 눈으로 바라보는 성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2항에서는 ' 그 누이가 울부짖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 인식을 말합니다. 회칙에서도 가장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영성(sprituality)과 오늘 현재 맞이하고 있는 미세먼지,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와 같은 문제를 1항과 2항에서 제시하면서 회칙이 지니고 있는 표층에서의 문제와 가장 심층에서의 영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항에서 로마서 8장 22절이 인용됩니다.
로마 8장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19절에서 하느님의 자녀(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나기를 피조물(온세상)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설화적인 표현이지만, 외경의 내용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너가 아들을 낳게 될것이다.라는 수태고지를 전할때 성모님이 대답하기전에 온 세상이 고요에 빠졌다는 이야기와 그 작은 소녀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 지십시오."라고 하자. 온 세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조물들에 구원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임을 전합니다.
21절의 우리가 해방되는 것은 피조물들에게도 해방의 사건을 의미합니다.(탈출기의 내용에서도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탈출한 것은 이스라엘의 해방사건일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해방사건이기도 하다. 억압과 지배의 관계안에서 올바로 해방되는, 억압받는이 뿐아니라, 억압하고 착취하는이들에게도 해방사건이라는 의미)
여기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그들의 누리는 구원의 체험이 그들을 둘러싼 온세상 피조물에게도 일어나게 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22절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진통을 겪고 있다는 의미는, 우리가 아직 하느님의 자녀로서 온전히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루고 있는 교회가 하느님의 나라를 올바로 드러낸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뿐 아니라 온세상이 피조물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구원의 사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º 고분자화합물(단백질, 핵산, 지질, 탄수화물 등)
+ 무기염류 + 약 70%의 물
º 수소, 탄소, 산소, 질소, 인, 나트륨, 칼륨 등의 원소
º 창조 신학 : adama
그러면서 회칙은 2항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라고 하면서 창세2,7절을 인용하는데, 사순절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날 사제가 신자들에게 재를 바르면서 "여러분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십시오." "먼지에서 났으니, 먼지로 갈것을 기억하십시오" 라는 먼지와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단지 화학적으로만 본다면 인간은 고분자화합물과 무기염류, 70%의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분자화합물을 다시 한번 원소로 분류해보면 수소, 탄소, 질소, 산소, 인, 나트륨, 칼륨 등의 원소로 되어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창조신학에서는 인간을 먼지의 존재인 adama(땅, 흙)라고 말합니다. adama에서 마지막 -a를 빼면 adam이라는 태초의 인간이 됩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인간의 본질은 흙과 먼지에 하느님의 숨을 불어넣어 이루어진 존재이고, 숨이 빠진 인간의 존재는 고분자화합물, 무기염류, 물, 먼지, 흙에 불과하다는 것에 대한 인간이해를 창세기의 텍스트에서도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많은 부분을 adama( 땅.흙)에게 빚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느님나라에서 왔기에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의 육신은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성서안에서 전해지는, 우리의 존재의 근원인 흙을, 땅을 잘 돌보고 있을까요?라는 것이 창조신학적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3-6항
º 요한 23세 : 지상의 평화
º 바오로 6세
º 요한 바오로 2세 : 인간의 구원자, 백주년
º 베네딕토 16세 : 진리 안의 사랑
회칙은 앞선 교황님들의 문헌을 인용합니다. 요한 23세의 지상의 평화, 바오로 6세의 강론이나 연설, 요한 바오로 1세도 짧은 기간에 있으셨지만, 문헌은 인용되지 않았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구원자, 백주년과 같은 회칙이, 그리고 베네딕토 16세의 문헌은 진리안의 사랑.
교황님앞의 20세기부터 21세기로 넘어오는 문헌들이 차례차례 인용되면서, 이 찬미받으소서의 회칙은 교회의 역사 전통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밝혀 줍니다. 그리고 역사 전통안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읽을수 있다는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5항에서는 참다운 인간 생태론. 등..
7-9항
º 동방 정교회
º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콘스탄티노 폴리스)
7-9항에서는 그리스도교의 타교파로, 그리스도교에서 생태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교파는 가톨릭 교회에 앞서서 동방 정교회(orthodoxe)가 굉장히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9월 1일은 환경의 날로 지정하여 교회전체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였고, 여러문헌들도 발표. 7항, 8항, 9항에 걸쳐서 바르롤로메오 총대주교(콘스탄니토스 폴리스의 총대주교가 동방정교회의 수의권을 지닌분)의 문헌들을 인용하면서 우리와 다른 교파이지만, 귀여겨들어야 할 목소리가 있었음을 회칙은 전합니다.
10-12항
º 프란치스코 성인
º 통합 생태론(Intergral Ecology)
º 자연 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적인 헌신, 내적 평화...
º 12항 : "놀라운 책"
지혜 13,5; 로마 1,20
다시 한번 1항에서 언급한 프란치스코 성인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그분은 하느님과 이웃과 자연과 자기 자신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소박하게 사셨던 신비주의자이시며 순례자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연 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적인 헌신, 내적 평화가 어떠한 불가분의 유대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 주십니다."로 10항부터 12항까지 얘기하고 싶어하는 통합 생태론의 하나의 중요한 결론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프란치스코의 성인의 영성에서는 하나의 문제로 중심적인 가치를 어떨때는 자연 보호라는, 어떨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로,..내적인 평화로 다르게 표현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성인이 갖고 있었던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에 관해서는 하나였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생태론도 단지 단편적인 생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회의 입장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모두 근본적으로 하나로 통합되고 통합된 생태론위에서, 우리는 교회의 나아갈 길을 조망한다고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통합적인 것에서는 지금까지 많고 다양한 세속적인 자연보호 운동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 또한 근본적으로 하나의 흐름안에서 어떻게 모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고민들도 통합생태론의 단어안에서 알아 듣게 됩니다.
- 감사합니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