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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시조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수엽
배우기 쉽고 써보면 맛있고 멋있는 시조쓰기
박 헌 오
♠ 시조란 무엇인가
한민족이 신라향가로부터 천 오백여년동안 시대의 정서를 가다듬어 불러온 국민시가를 칠백여년 전 오늘의 시조와 같이 정착된 형식으로 이어왔다. 15세기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창제하신 한글에 실려 꽃피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가(詩歌)들이 만발하였으나 잊히고 사라지는 것을 아쉽게 여겨 1728년 음력 5월 16일 김천택이 최초의 가집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펴냄으로서 정리․전승되기 시작한 뿌리문학이다. 시조의 형식이 갖추어진 최초의 시조는 고려시대 우탁(1263~1343)의 「탄로가」를 꼽고 있으나 이조년(1269~1343)의 「이화에 월백하고」와 연대를 확정할 수 없다고도 본다. 출생은 6년 차이지만 노년의 시조보다 청춘기의 시조가 앞설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시조를 왜 써야 하나
한글은 조선시대 언문이라 업신여김 받았고,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사용을 금지당하기까지 했지만, 오늘날 한국이 강국으로 나서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로 인정받았다. 똑같이 소외당해온 시조도 문화강국 한국의 대표적인 고유 시문학이자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국적 있는 시가이므로 문화민족으로써 국격(國格)을 높이기에는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시조의 빛을 세계에 밝혀가는 일은 한국인 스스로 해야 할 사명이다. 시조를 배우고 쓰는 것은 애국의 길이며 민족 시문학사 창달의 요체이다. 사대주의가 업신여기고, 부끄러운 식민시대가 단절시켰으며 물밀 듯이 뒤덮은 외세문화로 인한 주눅 살이를 누가 회복시켜 줄 것인가. 시대사조를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바탕을 잃어버리고 뿌리마저 뽑혀서는 안 될 일이므로 단재 신채호가 강변했듯이 이 땅에 들어오면 ‘한국의…주의, 한국의…종교, 한국의…문화,’가 되어야 한다. 하물며 고유한 한국의 유산을 경시하는 일을 자행하면서 어떻게 친일이니 사대주의니 하고 탓할 수가 있겠는가. 문화는 생물보다 더 예민하여 가꾸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시들고 떨어지다가 결국은 종적을 감추게 된다. 문화유산은 버려야 할 유산이 있고 지켜야 할 유산이 있고 더 발전시켜야 할 유산이 있다. 유형문화재는 보존이 중심이지만 문학이나 예술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은 전승하여 가꾸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 시조를 어떻게 써야 하나
학교에서는 대부분 시조를 감상하고 뜻을 새기는 정도만 가르치고, 시조를 창작하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시조 창작 법을 배우고 체험하지 않고 시조를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 4~5학년 학생에게 시조쓰기를 4시간만 가르치면 제법 좋은 시조를 쓴다. 시조쓰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배우지 않고 쓰려하거나, 처음 쓰면서 훌륭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조의 단계는 생활시조, 경시조, 전문적인 시조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는 형식에 맞춰 쓰기를 체험하고, 차츰 더 높은 수준의 시조를 써나가면 된다. 처음에 시조를 쓰기가 가장 쉽다. 차츰 보기드믄 우수작을 쓰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활시조나 경시조가 재미가 없거나 가치가 낮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처음 쓰는 작품은 대견하고, 일생동안 몇 편을 고르기 힘든 우수작을 쓰는 것은 정진을 거듭한 끝에 탄생시키는 희열에 찬 결실인 것이다. 시조다운 시조를 쓰려면 반드시 전통적인 형식을 잘 지켜야 한다. 시조를 닮은 자유시는 시조로 볼 수 없는 탈격, 변격, 비시조가 된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시조쓰기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시조의 형식을 지켜서 쓰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시조는 음악상의 명칭과 문학상의 명칭이 차이가 있으나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문학상의 명칭으로서의 시조이며, 그 정형을 지켜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 시조의 명칭과 형식은 어떠한가.
현대시조의 명칭과 형식은 그동안 정립되지 못하여 여러 가지로 불려왔다. 한국시조협회를 비롯한 여러 시조단체들이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수차의 연구와 논의를 거쳐 2016년 12월 15일 국회 도서관에서 시조의 명칭과 형식 통일안을 선포하였다. 시조에 대한 많은 주장들이 난무하고, 현대에 와서는 자유시와 분별이 안 되는 시조들이 등장하여 시조의 정통성이 훼손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므로 표준으로 삼을 명칭과 형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조’는 두 가지 오해를 가진 분들이 있어 왔다. 하나는 시조는 모두 ‘시조창’으로 여기는 분들이다. 고시조는 물론 시조창으로 불렸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문학 장르로서의 시조이다. 물론 작곡을 붙이면 시조창이나 정가나 현대음악으로도 불릴 수 있다. 두 번째 오해는 시조는 시에 속하는 한 종류로 독립된 이름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이다. 물론 운문으로서의 시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하면 일제 강점기에 유행하기 시작한 자유시를 떠올리기 때문에 시조의 고유성을 간과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2021년 5월 18일 문학 진흥법이 개정 공포(법률 제18151호)되어 시조는 독립된 문학 장르로 정의된 것이다. 명칭상 ‘시조’가 독립적인 문학 장르인 것이다.
시조는 단시조와 연시조로 구분되는데 단시조는 한 수의 시조가 한 편이 되는 것이고, 연시조는 2수 이상의 시조가 한 편의 시조를 구성하는 것이다. 한 수의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별로 전구와 후구로 구분되어 6구가 한 수가 된다.
한 구는 2소절로 구성되어 3장 6구에 12소절이 된다.
그래서 시조 한 수(단시조는 한 편)의 3장, 6구, 12소절, 45자 내외이다.
소절을 종전에는 ‘음보’로 써왔는데 음보는 박자의 개념으로 자유시와 변별력이 없어질 수 있어 ‘소절’로 통일하기로 한 것이다.
정형시의 운율에 대하여 운(韻)은 소네트나 중국의 절구 및 율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조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율격(律格)은 음성율, 고저율, 음수율, 음보율, 음량율 등으로 구분되는데 수 있는데 시조는 음수율(음절수)에 가장 밀접하다고 보시는 학자들이 있으며 리듬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말의 특성상 교착어이므로 1~2자 가감을 신축적으로 적용한다. 도표로 기본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 전구 | 후구 | ||
첫 소절 | 둘째소절 | 셋째소절 | 넷째소절 | |
초장 | 3 | 4 | 4 | 4 |
중장 | 3 | 4 | 4 | 4 |
종장 | 3 (불변) | 5 ~ 7 (불변) | 4 | 3 |
※ 종장 전구를 제외하고는 1~2자 가감이 허용된다.
시조의 기본적 형식은 이상의 내용과 같은데 다만 장시조(長時調) 즉, 사설시조는 예외적으로 시조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첨가하였다.
시조의 형태적 외형을 맞춰 쓰는데 그 내용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한 편의 시조는 한 채의 집과 같이, 한 송이의 꽃과 같이, 한 덩어리의 풍경과 같이, 한 권의 역사서나 철학서나 신앙서나 소설과 같이 형상화가 되어야 한다. 가장 빼어난 시조는 가장 짧은 형식 즉 단시조에 무한한 이미지를 절묘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선명한 내용이 있으면서 실감나는 시어의 조합으로 구성되고 상상력을 일으켜주는 시조를 탄생시킨다면 거기에 목숨을 걸어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함축된 한 편의 시조는 한 권의 책을 다 담아서 마음으로 읽게 한다. 한 편의 영화가 한마디의 명언을 탄생시키듯이 말이다.
형상화란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본질 따위를 어떤 방법이나 매체를 통해 구체적이고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특히 작가의 의도에 따라 예술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라 이른다.
♠ 어떻게 쓰면 시조답게 쓸 수 있을까?
시조의 가장 중요한 생명력은 신선함과 비유와 리듬이라고 설정하고 싶다.
첫 단추를 열고 신선함을 본다. 신선함은 느낌이다. 새로운 그림은 자극적인 색채로 선명한 느낌을 일으켜 준다. 새로운 시어라는 것은 신조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쓰지 않은 숨은 그림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다. 더 신선한 것은 더 충격적인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바위처럼 딱딱하고 칼처럼 예리한 것이 아니라 꽃처럼 신비한 힘이 신선함이다. 신선함이란 처음이란 발굴과 선택의 의미도 있고 범종을 칠 때는 마지막 종소리가 가장 긴 여운을 주듯이 오래 남는 여운의 의미도 있다. 똑같이 산에 올라도 산삼을 발견하고 송이버섯을 따는 사람은 따로 있다. 수많은 사람이 다녀간 길에서 꽃을 보고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한 도막의 나무를 보고 비너스를 조각하려는 사람과 장작을 패려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 똑같은 만남이지만 사랑을 주는 사람과 미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누리는 삶이지만 낡은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참신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상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보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애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다. 신선한 것은 맑고 밝고 빛나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가진다면 감동을 주는 시조를 쓰기가 어렵다.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듯이 신선하게 만드는 신비한 솜씨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피하기 어려울 만큼 좁은 골목을 걸어가다가 중증의 나병환자와 마주치자 피하고 싶은 생각을 고쳐먹고 다가가 나병환자와 입을 맞춰주며 사랑을 표현하고부터 깨우침의 길로 접어들었다. 법정스님은 소유의 무거움보다 무소유의 가벼움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신선한 시어, 신선한 시구, 신선한 시편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진심으로 꺼내어 새기는 것이지 겉보기만 산뜻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써온 말 가운데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이 있다. 시조에 특히 잘 맞는 말이다. 예로부터 지켜온 맥락위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추를 열고 비유에 대하여 살펴본다. 비유는 빗대어 표현하고 낯설게 표현하고 돌려서 표현하는 시조의 형상화 기법이다. 시조는 설명이 아니라 비유이므로 비유에서 출발해서 비유로 마무리된다고도 한다. 비유를 위한 비유가 아니라 암시의 힘을 품은 비유를 의미한다. 얼만치 중요한 것을 암시하고, 얼마나 절묘하게 빗대어 표현하여 암시하느냐에 따라 비유의 힘은 달라진다. 사진과 그림이 다른 것은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에도 사생화가 있고 추상화나 반추상화가 있다면 추상화나 반추상화 기법을 적절히 도입하는 것이다. 물론 사생화 속에도 시간적 ․ 공간적 함축성이 있고, 초점과 원근이 있기 때문에 관련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유와 상징을 놓고 본다면 상징은 추상화에 가까울 것이다.
수사법은 크게 비유법, 강조법, 변화법으로 대별한다.
☞비유법은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 활유법, 풍유법, 대유법, 의성법, 의태법, 상징법, 우화법, 중의법, 희언법, 냉조법, 풍자법 등으로 분류한다. 다만 이 가운데 직유법이나 의성법, 의태법 등은 일반 문장에서도 흔하게 쓰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상투적인 답습으로 쓰이기 쉽고, 가볍게 쓰일 가능성이 있어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강조 법에는 과장법, 영탄법, 반복법, 점층법, 점강법, 연쇄법, 돈강법, 대조법, 미화법, 열거법, 억양법, 예증법, 비교법 등이 있으며 대개 퇴고과정에서 어느 부분을 강조하거나 강화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적용하기도 한다.
☞변화법은 도치법, 대구법, 설의법, 인용법, 문답법, 반어법, 역설법, 명령법, 경구법, 생략법, 돈호법, 현재법, 거례법, 비약법 등을 들고 있다. 시조의 수사적 기교를 부려 읽는 맛과 멋을 높이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효과적인 표현을 위한 기법들이지만 공식은 아니다. 필요한 때 필요한 부분에 적용하여 성공적인 시조의 완성을 꾀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구태여 막아놓고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 단추를 열고 시조의 리듬 즉 음악성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산문은 줄글이라 하고 운문은 마디 글이라 한다. 마디를 통하여 리듬을 만드는 것이다. 백수 정완영은 “우리 모국어에는 가락이 있고 감칠맛이 있다. 세계에 관절(冠絶)한 우리 모국어에는 흘림새(流)가 있고, 엮음새(曲)가 있고, 추임새(節)가 있고, 풀림새((解)가 따로 있는 것이니, 이 경계를 다 돌아 나와야 비로소 시조의 진경(眞景)은 열리는 법, 풀씨 하나에도 생명의 오의(奧義)는 숨어 있거니 45자 절묘한 우리 모국어의 가락 속에 우주의 말씀인들 다 못 담겠는가?”라고 하였다. 시조의 운율에 대하여 가장 간결하고 절묘하게 설명한 명문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시조는 소절(小節)이 반복되어 구(句)가 되고, 구가 반복되어 장(章)이 되고 장이 세 번 반복되어 한 수(首)의 시조가 된다. 운율(韻律)은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음악적 리듬을 만드는 것이다.
운(韻)은 울림이다. 운자는 반복 되는 위치에 따라 두운〔앞부분〕, 요운'〔중간부분〕, 각운〔뒷부분〕으로 구분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의 시조에서는 적용이 흔하지 않은 편이다.
율(律) 즉 율격은 언어의 특질에 따라 장단율, 강약율, 고저율, 음수율로 나눈다. 그 가운데 우리 시조는 일반적으로 음수율(音數律)을 적용하는데 우리말이 교착어(膠着語)이므로 종장의 전구〔3, 5~7〕를 제외하고는 신축성이 인정된다.
예민한 언어의 특성을 감안하여 리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장단, 강약, 고저를 분석하고 적용하는 분들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성명학(姓名學)을 하거나 작사(作詞)를 한때는 철저하게 따지기도 한다. 한 원로시조시인은 작품을 쓰면 반드시 큰 소리로 읽기를 반복하면서 발음이 어색한 부분이나 내용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을 다시 고친다고 한다.
바다는 수평을 자연스럽게 유지하지만 망막하다. 산천은 고․저․장․단을 반복하기 때문에 재미있고 오묘하다. 운문인 시조는 음악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으니 산천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 시조에는 어떤 내용들이 들었을까
나의 작품에 내가 들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아는 것, 내가 느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시조를 창작하는 것이다. 산길을 가다가 엉겅퀴 꽃을 보고 어쩌면 그토록 강인하게 살면서도 고운 꽃을 피우던 어머니와 같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어머니를 엉겅퀴 꽃으로 그리는 것이다. 시조 속에는 시인의 경험, 성장배경, 사상과 신념, 취향, 좋아하는 언어, 성품과 인성, 심상의 색채, 삶의 목적과 의지, 인생관과 사회성 등 다양한 요소가 시조로 울어나게 될 것이다. 가끔은 작품은 너무나 착하고 정겨운데 막상 행동은 그와 정 반대인 경우도 있다. 작품이 위선인지 삶이 가식인지를 두고 갈등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나는 작품을 믿는다. 살아오면서 잘못된 습관이나 환경의 지배를 받아서 진심과 괴리된 불행한 삶을 사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 작품이 비난받고 불행해지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작품 속에는 내가 들어있고 내 안에는 내 작품이 들어있다.
시조의 가장 중요한 특질을 꺼내어 말하라면 첫째는 압축성이요, 둘째는 종장의 오묘함이요, 셋째는 진가(眞價)를 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겠다.
☞압축성은 3장 6구 안에 화자(話者)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절제된 언어로 사족 없이 담아야 한다. 구슬을 꿴 것 같이 시어 하나만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흐름이 거슬리거나 형상화에 어긋나면 청자(聽者)는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가령 목걸이를 구입하는 고객은 구슬을 만들 줄 몰라도 그 상품에 흠이 있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종장의 오묘함이다. 시조를 닮은 자유시나 음악적 가사들은 너무나 많다. 나는 자유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시조를 먼저 배우기를 권해왔다. 시조를 쓸 수 있는 시인은 자유시도 균형 있고 함축성 있고 리듬감 있게 쓰는데 더 유리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똑같은 운문이지만 시조의 흐름을 잘 활용한 자유시에는 종장이 다르다. 자유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시조를 쓰라하면 형식은 맞춰놓지만 종장을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시조의 흐름에서 기․승․전․결을 본다면 일반적으로 종장은 전․결에 해당된다. 초장에 결론을 제시하는 연역식(演繹式)의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시조는 귀납식(歸納式)으로 결론을 종장에 두고 마무리 짓는다. 마치 보신각종의 마지막 타종소리와도 같다. 초․중장에서 선경(仙境)을 시적 묘사로 장식한 후에 종장에서 후정(後情)을 시적 진술로 의미를 부여하고 완결미를 이룬다.
☞셋째로 시조는 갖고 싶고, 내 것 삼아 낭송하고 노래하고 되새기고 싶은 진가(眞價)가 있어야 한다. 서경적․서정적․서사적․심상적 시조들이 그 나름의 울림이 있어야 한다. 이를 진(眞)․선(善)․미(美)로 설명한다면 진(眞)은 참다움, 맑음, 밝음, 바름, 진지함 등이 바탕이 될 것이요, 선(善)은 비움, 베풂, 배려함, 도움, 희생과 헌신 등의 물들임이 될 것이며, 미(美)는 아름다움, 조화로움, 신비함, 매력을 가짐, 사랑을 느낌, 이끌림이 있는 예술성 등이 있음일 것이다. 잊히지 않는 시조가 청자에게는 자신의 시조가 될 수 있고, 버리지 못할 시조가 화자에게는 자신의 시조가 될 것이다. 시장에서 상품은 많지만 사고 싶은 상품은 따로 있듯이 시조집 안에서도 선택받는 시조는 따로 있다. 가끔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 시조를 독자가 ‘좋은 작품’이라고 일러주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설명을 다 붙일 수는 없으므로 상상의 화두로 올려놓는다.
♠ 시조는 왜 맛있는가.
우리민족의 정서와 맥박과 호흡과 정신이 오롯이 담긴 전통적 시문학이다.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의 함축된 표현으로 무한한 뜻을 절묘하게 담아온 시가 형식으로 오랜 역사를 두고 발전되어 왔으며 우리말이 교착어라는 특성에 맞도록 유연성과 여유를 허용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두고 조상대대로 삶의 정서 ․ 서정성과 자연관 ․ 역사관과 사회상 ․ 신앙과 애환 ․ 풍자와 해학 ․ 전통적 충효사상과 민 전통 무엇이든 다 담을 수 있어 진심어린 노래요 문학으로 남아 계승되어 왔다.
시조를 빼놓고 우탁과 이조년의 뛰어난 표현을 느낄 수 없으며, 정몽주와 사육신과 이순신의 충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없으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와 정철과 윤선도와 신흠의 서정을 엿볼 수 없다. 신분을 뛰어넘어 황진이와 진옥, 홍낭과 한우의 천재적 여류문학을 시조가 아니면 알 수 없으며, 조선의 임금들로부터 김천택을 비롯한 백성들의 시조들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해방이후 유행되어온 자유시만이 현대시로 여길 즈음 정완영과 이근배를 비롯한 시조작가들의 깜짝 놀랄만한 작품의 출현으로 시조의 우수성이 솟구쳤다. 1970년대의 거북선이란 한권의 시조집에는 대통령의 시조로부터 삼부요인을 비롯한 정치가, 학자, 공직자, 사회적 명사들의 시조와 시조작가가 아닌 일반 문인들의 시조, 시조작가와 국민 시조 백일장 수상작들이 나란히 실려 있어서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시조는 온 국민이 차별 없이 마주 나누고 한권의 책에 똑같이 실리며 서로 순수한 시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그렇게 이어왔기 때문이다. 하루만 배우면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쓸 수 있는 작품이다. 평생을 파고들어도 갈수록 깊이 들어가 심오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진언(眞言)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정․실감을 진실하면서도 절묘하게 표현하는 작품이다. 시조세계로 들어오지 않고 ‘시조는 어렵다’느니 ‘시조는 고리타분하다’느니 ‘시조는 수준이 낮다’느니 하는 사람들은 시조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시조에 빠지면 나갈 수 없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재미있게 서로 나눌 수 있고 오묘하게 탐구할 수 있다. 둘째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시가이므로 알수록 애정이 깊어진다. 셋째는 생각하면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외국인들에게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한국의 시가이다.
♠ 시조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시조가 나가야 할 네 줄기 큰 길이 있다.
첫째는 우리 시조의 고유한 전통적 시조형식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시조의 대 유행에 편승하여 시조를 자유시 비슷하게 쓰면서 아까운 재주를 소모하면서 역행해서는 안 된다. 자유시를 쓰는 사람들도 시조를 기본소양으로 누구나 써야 한다.
둘째는 온 국민이 함께 시조를 배우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생활시조는 적절히 쓰면 되고, 경시조는 떠오르는 대로 쉽게 쓰면 되고, 전문 시조는 많이 쓰려고 욕심내기 보다는 일생동안 단 한편이라도 절창을 남기면 될 것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특히 시조를 가르쳐야 한다. 시조교육을 시킬 수 있는 교사가 없는 학교가 태반이다.
셋째로 시조를 한국문화의 씨앗으로 세계적으로 가지고 나가 씨를 뿌려야 한다. 시조를 단순한 외국어로의 번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나 스페인어나 아랍어나 어떤 세계 언어로도 직접 창작할 수 있고, 그것을 무척 재미있고 신비하게 여긴다는 증언을 듣고 놀라움과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미국인 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의 하이쿠를 배웠는데 시조를 배우고 직접 써보니 하이쿠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의미도 다양하게 담을 수 있어서 좋다.”고까지 소개해 주었다.
넷째로 시조를 다양하게 접목〔融複合〕하여 인용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시조창이나 정가로 불렀다. 근대에는 동요나 가곡으로 불렀다. 어느 책에선가 「봄처녀」「봉선화」「성불사」를 부르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가지고 언제라도 즐길 후 있으니 어떤 보물보다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힙합이나 가요로도 부르고, 연극의 대본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의 정형시인 소네트의 아름다운 표현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한글이 문자로써 훌륭하다면 한글로 쓴 내용으로써 훌륭한 시조가 같이 나갈 때 진정한 한글문화가 꽃피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 맺는 말
시조는 한국의 고유한 문학적 언어이며 음악적 언어이다. 가장 한국적이고 자랑스러운 한글의 꽃이다. 시조의 형식에 맞춰서 쓰면 잘된 글과 잘못된 글을 구분할 필요 없이 즐겁게 쓰고 행복하게 나누면 된다. 전통적으로 시조는 사랑방에서, 토방에서, 나무그늘에서, 정자나 누각에서 함께 나누던 교감의 글이다. 조상이 두고 가면 자손대대로 이어서 부르며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결코 길 필요가 없으니 외우고 읊을 만큼 적당한 시조 한 수에서 우리는 포은의 절의나 충무공의 갑판에선 심정이나 황진이의 넘치는 사랑이나 할것없이 절절이 느낄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언제 와서 적시고 있었는지 모를 불합리한 습관은 버리고 고쳐야 한다. 한글을 언문이라고 여기던 것은 이제 완전히 청산했듯이 바꿔야 할 폐습을 좀처럼 고치지 못하는 것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고쳐야 한다. 사색당파의 악습으로 옳고 그름이 물한잔 마실 사이에 뒤집히고, 사대주의적 폐습으로 고귀한 유산들이 고루한 고물로 취급받고,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다고 너나할 것 없이 거들먹거리며 땀 흘리지 않고 참을 성 없는 왜곡된 양반행세나 하려드는 분들에게 진정어린 조상의 정신이 배어있는 시조를 골라 명약(名藥)으로 처방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가 법고창신(法古創新) 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사례가 시조에 대한 인식이 될 것이다. 우리가 왜 중국사신을 엎드려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어냈고, 좋다는 자리 골라 세워놓았던 신사(神社)를 부숴버렸는지 상기해볼 일이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나라는 일시에 망할 수 있고, 임금도 백성도 죽임당할 수 있지만 꺼진 듯 했다가도 민족정신의 불씨는 봄이 되면 되살아나기 때문에 우리 민족국가가 이어질 수 있었음을 알았다. 해방 이후 불과 30여명에 불과하던 시조시인들이 청구영언을 다시 들고 시조의 불씨를 살려 춘산(春山)의 녹음처럼 시조의 불길은 일어나고 있다. 시조 속에는 애국․애족․애향․애민의 본류(本流)가 흐른다. 진심어린 본류의 도도한 강물을 끌어들여 혁신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뒤늦게 시조를 알고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 글재주가 없고 배운지도 일천하지만 시조의 편에 서서 정진하고자 함을 밝히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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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시조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수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