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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ruction of the Kingdom of God and Paul's Epistles <Justifying faith and the framework law that form the foundation of the Kingdom>
할렐루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놀랍고 놀라운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심을 감사 찬양드립니다. 속히 바울 서신의 올바른 뜻이 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약 37년 전에 하나님께서 제게 오셨을 때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실상 도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크신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이 저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흉악한 죄인이 이 일을 감당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로 무지한 인생이 온 세상에 오랫동안 논쟁의 핵심에 있던 로마서의 이해의 부분 즉 이신칭의에 대해서 그리고 이를 통한 율법의 의미에 대해서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되고 모든 미몽에게 깨어나 진리의 세계로 함께 나아가게 하소서! 온 세상이 3000년 평화를 추구한 이 민족을 통해서 전쟁도 다툼도 없이 주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샬롬! 오천만의 로마서 애독자 여러분! 모든 분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정말로 놀랍고 놀라운 일이 오늘 일어납니다. 제가 이미 전했지만 조금 더 정리를 해서 영문으로도 전하는데 제 글을 보시는 모든 분이 신학적으로 논쟁이 된 이신칭의에 대해서 진실로 새롭게 접근하고 큰 문제가 해결이 될 줄로 믿는데 500년의 천주교 개신교의 논쟁입니다. 모든 이 세상의 예수를 믿는 성도와 그리고 목자는 신학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이와는 달리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시는 분들도 또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학생으로 배워서 목자도 되고 성경 연구가도 되니 신학교의 가르침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비록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제가 전문적인 신학 연구의 과정이 없이 이 오랫동안 논쟁을 해 온 부분에 대해서 감히 큰 해결이 될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올바른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와 그리고 율법에 대한 이해로 가셔서 부디 이 땅에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에 대해서 우리 함께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영문 번역도 아직은 온전치 않지만 그대로 올립니다. 아직은 책으로 내기에 많이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고 그 큰 의미에 대해서 이해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 미천한 인생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를 함께 나누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올렸던 글이고 조금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 보시고 그리고 영문으로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의혹이 일시에 풀어지는 복되고 기쁜 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런 일에 사용이 되는 도구가 되었음이 놀랍기도 하고 영광스럽고 그리고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글이 길어서 셋으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바울의 서신서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칭의 되는 믿음과 뼈대가 되는 율법>
목차≫≫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복음이 속히 전해져야 하는 하나님의 뜻
2. 바울과 초대 교인의 모습
3. 설명이 가능한 현대 기기의 등장(압축 파일, 빙산)
제 Ⅱ 편 바울의 심정에 대한 이해
1. 당시의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 바울의 외침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첫번째 글은 여기까지 올립니다.)
제 Ⅲ 편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과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이해
1. 서론
2.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
3. 하나님 나라 뼈대가 되는 율법
4. 논의의 요약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하나님의 뜻
2. 바울과 초대교회의 모습
3. 압축 파일, 빙산의 일각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속히 복음 전파의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하늘과 지구를 창조하신 후 지구에 사람을 비롯해서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명령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사람들이 지구상에 퍼져 나가서 살게 되었다. 이로부터 약 1700년이 지났을 때 사람들이 지구상에 나누어져서 살고 있는데, 모두가 죄를 짓고 오직 노아와 가족만 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인정받았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물로 온 죄악으로 물든 온 세상을 심판하시었다.
그 후에 노아의 후손이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퍼져서 살고 있었는데 온 인류 중에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선택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후손이 민족이 되고 나라가 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셨으니 구약이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율법이 잘 지켜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다. 그런데 다윗 왕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왕들과 귀족과 백성이 율법을 배우지도 지키지도 않았기에, 약 1000년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의 시간이 끝이 나고 택한 민족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런 와중에도 구약의 모세 오경 즉 율법을 잘 보존하고 그들의 역사를 역사서로 기록했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와 찬양과 시를 모아서 시편으로 정리했고,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올바른 길로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 예언자들의 기록을 모아서 예언서를 완성했다. 이렇게 그들은 구약 39권을 완성했고 이를 헬라 시대에 70인 역으로 온 세상에 전했다. 시간이 끝이 나고 택한 민족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약 14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된 구약 성경은 글자 한 자 바뀜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 잘 보존이 되었다. 이를 기록한 이스라엘 민족도 구약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때가 차매 구약의 약속대로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시었다. 오직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 그리고 성전에서 살던 여인과 지극히 일부의 사람만 메시아를 알아 보았지만 그의 부모도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당할지, 혹은 하실지를 잘 몰랐다.
이 예수님은 천지의 창조주요, 그리스도시오, 그리고 인류를 죄에서 건질 구세주가 되시는데 30세쯤 되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어부 등을 제자로 부르시고 모든 이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다. 이제 이 땅에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땅에 건설하시고자 하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선 예수님께서 오셔서 2000년이 지났지만 그 논의도 드물고 그 나라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도 역시 드물다. 이는 죄악에 물이 든 아담의 후손인 인간이 이미 예수님 오시기 전 약2200년 정도를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선택이 되어서 이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이스라엘도 실패했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게 이 땅에 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이 지구상으로 퍼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약 2000년이 지났는데 이제 온 세상에 복음이 대부분 전파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한국에까지 복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는데 약 1800년이 걸렸다. 이와함께 아직도 예수에 대해서 듣지 못하는 종족이 있고 이슬람 제국과 북한과 같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강제로 막는 나라들도 있다. 때문에 예수를 믿고 온 인류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며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와 민족이 먼저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장 바라셨고 이는 복음 전파로 이루어졌다. 이에 이어서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고 그 나라의 법인 율법을 잘 지키며 사는 나라 즉 이 땅에 성령 안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은 그 다음으로 생각하신 듯 하다.
이제 예수님 오신 후 2000년이 지났다. 복음이 이제 지구의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에게 전파가 되었고 온 지구의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저는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이 되어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이를 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올바른 믿음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나라의 법, 즉 가장 세상에서 정의롭고 공평한 법이 믿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에게 시행이 됨에 있다. 법이 없는 나라는 설 수가 없고, 법이 온전치 못한 나라는 절대로 정의로울 수가 없다.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 모든 민족과 집단과 나라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법은 시대에 따라 국가의 이익에 따라 집단의 이익에 따라서 변하였다. 그리고 아무리 법학자가 똑똑해도 인간이기에 모든 세상의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법을 아무도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다.
오직 사랑과 정의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만 온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법을 만드실 수가 있으니 그 법이 모세 오경의 율법이다. 이 법을 이스라엘 민족이 다양한 고난 중에도 잘 보존했고 지금도 잘 지키려고 하고 오직 이 법을 통해서 온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이해에 있어서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일치하지 않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법인 율법에 대해서도 천주교 개신교 모두가 다 그들의 성도가 그 법을 지킴에 있어 소극적이다. 이렇게 중요한 율법이 왜 지금까지 이런 대접을 받고 있고 그렇게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왜 이렇게 모두에게 멀리 있게 느끼어지는 것인가?
비록 성경의 이해에 있어 지금과 같이 온 세상의 교회가 통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일을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여기셨기에, 교회들이 성경을 서로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더라도 우선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도록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역사하셨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 세상의 교회들과 교인들의 모습을 온 지구상에서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예수를 믿지만 성경의 이해와 교리가 조금씩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과 복음이 내포하는 내용의 전적인 완전한 이해에 교회들이 다다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의 구원이 일어나면 이를 용납하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태통하고 500년이 흘렀지만 서로 교리에 있어 다르고 하나가 되지 못했지만 개신교를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영국의 400년의 영화와 미국이 누리는 수백년의 영광과 스페인과 유럽의 열강의 번영과 쇠퇴에도 복음이 전해진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인내가 있으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누구도 지난날의 신학적인 주장에 대해서, 유럽 제국의 1.2차 대전과 번영과 쇠퇴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 비난, 정죄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는 것이다. 복음을 통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함부로 해석하고 판단해서도 아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분명히 밝히고 새로운 2000년대를 맞아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기를 향한 뜻으로 믿는다. 모든 천주교, 개신교 성도가 그리고 정교회 성도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진리가 밝혀지기 전에 우리가 알고 믿던 모든 일은 지나간 일이다.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심판하고 할 권리가 없고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이다. 다만 진리를 접하고도 순종치 않을 때는 이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자신이 져야 할 것이다. 새롭게 밝혀지는 서신서에 대한 비밀은 천주교 개신교가 500 년 동안 서로 쉬지 않고 논쟁을 벌이면서도 해결을 보지 못한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 새롭고 올바른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반드시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하는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설명할 것이다.(이신칭의에 대한 논쟁이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로 풀리기 된다.)
이 “모세 오경의 율법”과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하나님의 나라의 뼈대와 기초로서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설 수가 없다. 2000년을 셀 수 없는 신학자, 성경학자, 그리고 신실한 성도가 성경을 읽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 못했던 부분이 한국에 사는 무명의 목사에 의해서 밝혀진다. 이는 때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라를 온 세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세우기 위해서 미천한 인생에게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나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나 우월함이 있어서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부족한 사람을 들어서 쓰시는 것은 아무도 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이렇게 귀한 일에 쓰임을 받는 것에 대해서 영광스러울 뿐이다. 모든 면에서 보통 이하이고 흉악한 죄인에 불과한 사람으로 모든 영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과 그리고 성령님의 함께 하심과 감동하심에 돌린다.
주의 이름이 세세토록 찬양을 받으시며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길 바랄 뿐이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2. 바울과 당시의 상황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초기 기독교의 사정은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 그리고 사복음서를 통해서 너무나 자세하게 알 수가 있다.
농경과 목축, 그리고 어업이 주가 되던 시대, 로마가 영토를 넓히며 지중해 주변을 통치하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농부와 어부 그리고 목자들과 같이 지내시면서 들판에서 이들에게 천국을 전하시고 진리를 전파하셨다. 그리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성령을 기다려 선물로 받으라고 하시면서 승천하셨다.
이제 성령께서 오셨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모든 무리에게 오셨다. 그리고 성령 받은 사도들의 전도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다. 이들 모두는 내 것, 네 것이 없이 서로 모두가 형제로 함께 나누고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전도했다. .
나중에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믿게 되었다. 대부분이 유대인 성도였다. 이들에 의해서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고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하며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그리스와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모두가 예수님을 친히 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100%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바울 사도는 처음에는 이들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유대교에 적이 되는 무리라고 믿어 잡아서 가두고 이들을 심히 박해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눈이 멀게 되고 아나니아를 만나서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들이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 신약의 서신서를 쓴 것이다.
이들의 모습과 같이 되어야 당연히 바울 서신이나 복음서를 잘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이들 이후의 성도는 예수님을 직접 육신으로 만날 기회가 없고 성령을 받음에 있어서도 다양한 견해에 흔들린다. 이들 초대 교인 모두는 성령을 받고 복음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이었는데 후대의 우리는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그 이해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가 있다.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성경을 깊이 이해할 수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고 바울 서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초대 교회 교인과 같이 반드시 성령을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모두가 예수님을 비록 육신으로 뵙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야 한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이런 가운데 성경을 날마다 읽고 정리함을 통해서 그 깊은 진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가야 하고 신학을 할 때 자신이 배우는 신학에 그냥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의 성경에 대한 이해가 어디에서 비롯이 되고 내가 믿는 성경의 믿음이 어떤지 스스로 살펴보기를 바란다..
천주교인은 천주교의 망토 속에 있고 개신교인은 개신교인의 망토 속에 있다. 그래서 개신교인은 오직 믿음이라 하고 천주교인은 그렇지 않다 하는 것이다. 이를 500년 동안 해오고 있다. 한 권, 같은 성경을 두고 이렇게 서로 큰 교파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그냥 그 교파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이해하는 것이다.
루터, 캘빈 시대에 성경을 가진 이는 오직 루터나 신부 같은 분이셨고 라틴어 성경이 조금 있었고 각국어로 된 성경은 없었다.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번역해서 활자로 책을 찍어서 읽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보자. 지금은 모두가 컴퓨터 핸드폰을 가지고 있고 각국은 자국어로 된 여러 가지 버전의 성경책이 있다. 루터가 성령이라는 단어를 성경 전체에서 찾고, 그 단어가 들어가는 구절을 독일어로 쓰려고 했다면 이 작업 하나만 해도 수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이 걸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온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성경앱을 열고 검색창에 성령이라는 단어를 적고 검색하면, 수초 안에 성령이 들어간 모든 구절을 컴퓨터가 성경의 책별로 찾아서 보여준다. 이를 복사해서 동시에 수십 수백 명이 공부를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모든 지구상의 성도는 다 캘빈과 루터만큼 그보다 훨씬 더 성경의 이해에 있어 깊이 갈 수가 있다. 단지 망토 속에 갇힌 성도가 수백 년, 천 년 전의 가르침을 성경을 통해서 검토없이 맹목적으로 그냥 따라가는 것 뿐이다. 모두에게 묻는다. 루터가 이신칭의를 논할 때 과연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구절이 구약의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인용이 되었음을 확인했을까? 그리고 그가 이를 확인했다면 그가 하박국서로 가서 그 올바른 의미를 이해했는가? 묻고 싶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칭의되는 믿음에 대해서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라야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 로마서 4장 17-22절을 루터나 캘빈이 이해를 했는지 묻고 싶다. 루터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오직 로마서 1장 17절과 3장 21-26절에만 필이 꼽혀 이를 주장했다면 우리는 속히 이를 이제라도 이런 부분을 확인을 해 보아야 한다. 제 글은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이다.
루터와 캘빈이 신학자로서 성령도 없고, 전도 경험도 없이 로마서를 읽고 설명했다면 이는 온전한 이해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이 불완전한 상태에서의 이해를 500년 동안 이와 같은 신학자, 목사들이 답습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천주교는 왜 율법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율법을 온 나라가 배우고 지켰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너무나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라도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는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 주님의 나라를 진실로 이 땅에 세우고 싶다면 이신칭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율법에 대해서 온 세상의 성도가 다 올바로 이해해야 하는데 지구상의 모든 성도이다.
3. 현대 기기와 압축 파일을 통한 설명,
그리고 빙산의 일각
로마서는 바울이 기원후 약 57년경에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런데 이때 바울의 나이는 복음을 전한 지 적어도 20년이 지났을 때로 60이 가까웠을 것이다. 바울이 신앙적으로 전도 경험으로 혹은 교회를 세우고 치리하던 측면에도 성숙한 때이다.
그래서 바울의 로마서만 하더라도 그 작은 글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현대적으로 볼 때 압축 파일이라고 부르고 싶다.
요즘은 긴 파일은 압축해서 보관하고 이를 보낼 수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고자 할 때는 이를 풀어서 즉 압축을 풀어서 보아야 한다. 이와같이 로마서도 먼저 사복음서의 내용을 잘 이해를 해야 되고, 또 사도행전도 잘 이해를 해야 하고 또 모세 오경으로부터 예언서까지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은 후에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한다. 구원이라는 단어도 올바른 이해를 하고자 하면 먼저 창세기의 죄로 인한 인류의 타락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바울이 이전에 자신이 알던 사람이신 예수님의 이해에서 구약을 통한 예언의 성취를 통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해로 왔듯이 우리도 반드시 예언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
믿음에 대한 부분도 창세기를 이해해야 하고, 율법에 대한 부분도 예언서와 율법서를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한다. 이들이 다 압축이 되어 있으니 성경 각 권으로 가서 이를 풀어야 비로소 로마서의 구절들이 정확하게 보인다.
로마서는 16장으로 1173장의 신 구약의 내용을 짧게 압축을 해놓았다고 보면 되니 신약 244장 구약 929장을 반드시 잘 읽고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한다. 이를 생략하고 압축된 내용을 풀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로마서를 읽기에 우리는 로마서의 이해가 부실하고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빙산은 보이는 부분은 적지만 그 물속에 잠긴 부분은 거대하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 타이타닉이 침몰한 것이다. 로마서도 이와 같은 부분이 있으니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타이타닉과 같이 로마서의 이해에 있어 침몰할 수가 있다.
사도라는 의미도 지금 시대에 사도라는 자들이 있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사도는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12명만이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나중에 이 사도들의 인정에 따라서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구원이라는 의미도 지금까지 그 정의가 참으로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단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이해는 천주교 개신교에서 다르게 이해가 된다. 이를 성경앱을 통해서 찾아보면 한국어 개역 개정으로 약 500개 정도 구원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데 이를 대별하면 죽음에서 살린다, 억압에서 해방한다. 자유하게 한다, 어떤 상태를 회복한다. 질병에서 놓임을 받는다, 저주에서 벗어난다, 높인다, 곤경에서 건진다 등의 의미가 있으니 이런 의미가 내포된 예수님의 구원 행위를 잘 알아야만 비로소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천국이라는 의미도 역시 그렇다. 믿음이라는 의미도 오늘 믿는 믿음인지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인지 쉬다가 믿는 믿음인지를 반드시 이해를 해야 만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에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근간이 되는 율법의 이해도 율법이라는 두 단어 속에 있는 모세 오경의 의미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등을 정말로 올바로 이해를 해야만 비로소 율법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다. 절대로 율법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로마서의 올바른 의미로 갈 수가 없다.
로마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의로우신 분이라는데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복음은 사랑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는 정의가 있다. 이 정의로부터 이신칭의가 나오는데 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목이 마르지 않으면 절대로 로마서의 이해가 어렵다. 세상에서 불의로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정의롭게 살려고 몸부림 처본 경험이 있는가?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다 세상의 불의에 절망한 경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별로 목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율법이 사라진 남 유다 말기의 하박국과 같은 삶과 심정)
자본주의의 혜택 하에서 수십 년 수백 년 먹을 것을 쌓아두고 대대로 자녀가 돈의 고통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믿고 그렇게 살고자 한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침묵하게 되고 목이 마르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단언코 로마서의 절반도 이해가 되기 어렵다. 하바드든 옥스퍼드든 예일이든 이렇게 된 신학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샌달이나 혹은 롤스의 정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샌달에 넋이 나간 사람이 수백만이나 된다.
정의에 목이 마르다 하면서 샌달을 찾고 롤스를 찾지만 가장 정의의 선봉이며 으뜸이며 완성자인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선 많은 성도가 그냥 침묵하고 관심도 없다. 잘 사는 것이 삶의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로마서에는 하나님의 가을의 서리(추상)와 같은 냉철한 의가 표현이 되어 있고 이 의로부터 믿는 인간에 대한 의가 나온다. 이 칭의 속의 숨겨진 의미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자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깊은 바다! 차가운 빙산을 보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물속으로 내려간 자가 로마서의 깊은 차가운 물에 잠긴 부분을 보게 된다. 이는 전도를 통해서 온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바울이 그렇게 했듯이 세상에 사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고난과 어둠의 세력과 싸운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박국과 같이 살면서 불의에 대해서 치를 떨고 불의로 모든 소망이 다 없어졌을 바로 그때 모세 오경을 보면서 비로소 안도와 희망을 가져 본 자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로마서의 표현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란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로마서와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이 절대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케 하려고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것이 이해가 될 것이다.
<율법보다 더 크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율법보다 더 크신 성령님을 믿고 받아서 율법을 잘 지킨다.
율법보다 더 크신 분 율법을 이스라엘에 주신 분이 직접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먼저 바라보고 그분의 명령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바울도 12 제자도 개신교도 천주교인도 그리고 이스라엘 인도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분의 제자의 글 로마서 등을 읽어야 한다.
구원으로 가는 길에서 율법을 따라가다 이제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구원을 얻는데 우리는 방법을 바꾼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고 이제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을 지켜 완성한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마지막 방법이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로 모두를 쓸어버린 분이시다.
소돔과 고모라도 불로 멸망케 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택한 민족 이스라엘과 주변의 나라를 멸하신 분이시다
최후 심판으로 모든 세상을 멸하시고 심판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 기준은 성경의 율법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의 죄를 용서받고 그 이후에 짓는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는 천국에 갈 것이다. 그렇지 않은 모든 인간은 최후에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율법이 없던 시대는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법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과 정의이다. 이 형상을 닮게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게 창조하셨고 이 사랑과 정의를 지키도록 각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고 불의하게 살 때 양심이 자신을 찌르게 하셨다. 양심과 심장과 깊은 연결이 있다. 심장에 병이 생기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 불의하게 살아서 양심이 아프다 아프다 썩고 문드러져서 병들게 될 때이다. 그렇게 사람이 살면 양심과 깊은 관련이 있는 심장에 병이 생길 수가 있다. 죽은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을 통해서 산다는 의미에는 이렇게 병들고 썩은 양심이 새롭게 회복되어 살아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양심의 회복이 구원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
로마서의 성령 부분의 이해도 갈라디아서 이해와 똑같이, 성령을 받고 성령과 동행하며 전도를 해 본 전도자의 심정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해가 된다. 성령에 대해서 온 생애를 통해서 교회와 성도를 통해서 가장 잘 나타내신 분이 한국에 계셨던 조용기 목사님이시다. 기독교 2000년 동안 성령님을 가장 몸으로 삶으로 목회로 성도와 함께 잘 나타내신 분이시다. 그래서 먼저 로마서를 읽기 전에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 성령을 이해하시고 그 다음에 로마서를 읽기 바란다. 로마서는 이와같이 참으로 그 올바르고 깊은 이해에 접근하기 어려운 성경책이다.
로마서의 이런 특징을 모든 로마서 독자는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 로마서의 한 구절을 두고 믿는 이들이 서로 다투며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원하는 모든 성도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전도를 하고 교회를 개척해서 바울과 같이 목회를 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정의롭게 살면서 세상과 싸우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목자나 선교사에게 비로소 로마서가 잘 열리리라(이해되리라) 믿는다. 로마서를 진실로 잘 배우고 싶은 성도는 그렇게 삶을 살면서 로마서를 올바르게 이해한 목자에게 가서 배우면 될 것이다.
이렇게 전하는 저도 선교 경험이 없고, 교회에 대한 목회 경험이 없기에 로마서 이해에 있어 많은 부족함이 있다. 영어나 헬라어에 또 많은 부족이 있기에 역시 로마서를 이해하는 데 나는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깨달은 것을 모두와 함께 나눈다.
부디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일꾼들이 이 한국 땅에서 속속 등장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큰일을 감당하기 바란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세계적인 일꾼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온 세상의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이곳 한국에 주님의 평화와 위로와 축복이 임하길 간절히 빈다.
이것이 내 자녀와 후손에 가장 복된 삶을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가 남겨주는 유일하고 가장 좋은 길이다. 공부를 많이 시키고 돈을 많이 물려주는 것도 귀한 일이다. 그러나 인구가 줄고 젊은이가 직장이 없고, 자살자가 끊이지 않고, 정도 메말라지고 온 한국의 땅에 마음 놓고 마실 물이 없고, 미세먼지로 마스크가 없이 살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런 상태의 현실에서 나 홀로 이 땅에 남아서 형제도 없이 정을 나눌 친구도 없이 오직 물질만 가지고 삭막하게 산다면 그 인생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는가?
자유경쟁으로 경쟁에서 이긴 자도 실상은 살맛이 사라지는 곳이 한국이다. 오직 희망은 그대! 정의에 목이 마른 그대! 바로 성도 여러분들이다.
제 Ⅱ 편 바울의 심정에 대한 이해
1. 당시의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 바울의 외침(모든 이들이 하나가 됨, 율법의 역할, 지금의 유대인을 전도함: 동포여! 구원을 얻는 방법이 바뀌었다!! 율법이 아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다고 율법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하고 세운다))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
1. 당시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은 여러 계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로마의 속국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며 살았다. 제사장들이 있어 공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로마 전역에 흩어져 살면서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서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을 방문했다.
그리고 바리새파 즉 율법학자와 같이 율법의 조문을 잘 배우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유대인은 구약을 믿고 그대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제사장과 율법학자(서기관)등이 지도층이 되어서 율법대로 살려고 했고 바울도 율법을 배우고 지킴에 있어 첫째가 되려고 하던 사람이다.
그 전통이 지금의 유대인에게도 전해져서 유대인 중에서 자녀들을 모든 학문에 앞서서 모세 오경부터 배우게 하고 특히 레위기를 외우게 하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유대인들은 로마와 헬라의 문화와 그리고 자신들이 흩어져서 사는 곳의 관습과 법을 지키면서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늘 유지하려고 했다. 초대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들이 그 구성원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려고 했고, 율법에 대해서도 할례와 머리를 깎는 것 등에 있어서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배우고 체험한 대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늘 잊지 않았다. 이런 바울 사도의 복음이 당시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 보낸 바울 사도의 서신서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서신서를 쓴 바울 사도의 심정을 이해해 보도록 하자. 이 이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율법에 대해서 필수적이다.
2. 바울의 심정과 외침
바울 사도는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 어려서부터 베냐민 지파의 사람으로 율법을 배우고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에게 수학했다. 율법을 조문조문 흠이 없이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다. 이 유대교에 대해서 큰 신념을 가지고 오직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만 믿고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전통을 지닌 유대인만이 오직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었다. 그리고 반드시 다윗 왕과 같은 강력한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의 민족을 당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 굳게 믿었었다.
그런데 인간 예수가 나타나 구세주라 하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었다. 바울은 그렇게 예수님으로 인한 일들이 다 끝이 난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이 확산되자 바울은 이들을 유대교를 위협하는 무리로 믿고 잡아서 옥에 가두고 핍박하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
그렇게 바울은 유대교에 열정적이었고 자신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고 택한 백성으로서 천국에 가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데반이 잡혀서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서 스데반을 죽이는 무리와 하나가 되었다. 바울로서는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렇게 예수를 믿는 무리를 잡아서 가두는 일에 광분하고 있던 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었다. 예전의 육체로 있던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시자 말을 타고 가다가 바로 눈이 멀면서 말에서도 떨어지게 되었다. 바울 자신이 살면서 한 번도 꿈도 꾸어 보지 못한 일이 자신에게 발생하자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있던 모든 신념 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었다.
바울이 너무나 놀라고 당황해서 혼이 나간 상태에서 누구시냐 물으니 음성이 들리는데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셨다. 바울은 그대로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지구상의 어떤 인간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면 온전히 제 정신으로 있을 사람이 절대로 한 명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잘났다고 온갖 고난에도 자신을 꺾지 못했던 욥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꼬꾸라진 것과 같은 일이 바울에게도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명령이 예수님으로부터 내리는데 성안에 들어가면 아나니야란 사람이 있으니 그를 만나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이제 눈이 멀어버린 바울이 할 가장 최우선 순위가 아나니야를 만나 눈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예전과 같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는 일은, 이제 바울의 마음에서 1%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이 하던 일이 잘못되었음을 순간적으로 인식한 바울은 아나니야를 만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렇게 회개한 바울 사도에게 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바울이 성령을 받으니 성령께서 자신이 너무나 깊이 잘 알고 믿고 있던 구약의 모든 내용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요, 말씀임을 알게 하신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기도하고 훈련을 받은 후에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힘 있게 예수님을 전했다. 그러니 당시에 예수를 믿던 유대인들이 자신을 핍박하던 자가 변해서 도리어 예수를 전하니 이상하게 생각을 했다. 바울이 그간의 경위를 말하자 베드로 등이 형제로 받아들이고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삼층천에도 가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다양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예전의 바울이 조금도 누리지도,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자신에게 생기고 성령께서 음성으로 순간순간 명령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는 것을 쉬지 않고 들었다. 다양한 핍박을 받으면서 언제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자신을 사랑하며 돕는 것을 늘 체험하였다.
바울은 이렇게 놀라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며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와 능력을 체험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약 20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그 모든 지식과 경험의 바탕에 성령의 감동으로 비로소 로마 성도들에게 로마서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자신이 세운 교회에 들어온 어떤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들은 성령을 받고 자신과 같이 되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바울이 예전에 믿던 모습대로 율법을 먼저 지키고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이런 무리를 많이 보게 되었으니 바울 사도로선 격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이들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너무나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원하시는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이들이 회개도 없이 예수를 믿는 무리 속으로 들어와서 그들에게 율법을 먼저 알고 배우고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바울 자신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이렇게 가르치니 이 무리를 바울이 그냥 절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 무리를 쫓아내고 이무리들에게 배운 성도들을 바로 잡고자 로마서를 비롯한 편지(갈라디아서)를 쓴 것이다.
이 바울의 마음을 그대로 이해를 해야 한다. 그의 마음속의 외침을 우리는 먼저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당시의 이런 상황을 반드시 로마서를 공부하는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흩어져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아! 그들 유대인들이 가르치는데로 그렇게 믿으면 절대로 아니 된다. 그렇게 살아서도 아니 된다. 예수를 먼저 알고 올바로 믿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를 믿으려면 먼저 회개를 하고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바울의 사역을 보면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은 자, 요한의 세례만 받은 자, 성경은 많이 아나 성령세례에 대해서 모르는 자들에게 모두 성령을 소개하고 받게 한다. 그리고 로마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 중에는 이미 이렇게 믿고 성령까지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잘못된 유대인이 성령도 모르니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선을 행함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을 당연히 몰랐다. 이들은 단지 성령의 인도에 앞서서 우선 율법의 준수만 강조했고 실제로 이들은 예전의 엄격한 율법을 지킨 바울과 달리 율법을 자신들도 지키지도 않고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격도 없는 자가 선생이 되어 성령을 받은 착한 이들을 꾀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들에게 속아서 흔들리는 성도도 있었던 것 같다(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끝나려고 하느냐 하는 표현) 바울 사도는 이런 상황을 바로 잡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로 이들이 성령을 받고 올바로 가던 성도를 꾀어서 잘못 가게 하니 바울이 편지로 다시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것이다. 바울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다시 이를 다시 반복해서 설명하면 회개도 없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율법을 조금 알고 자신은 지키지도 않는 못된 유대인 무리가 예수를 잘 믿는 무리 속으로 들어와서 율법을 먼저 알고 배우고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당시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이 그가 사랑하는 성도에게 이렇게 가르치니 이 무리를 바울이 그냥 절대로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성도들에게 예전에 예수님도 모르던 시절의 바울이 율법을 믿고 행한 것과 같이 그렇게 율법을 믿고 행하도록 가르치니 바울이 이를 막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아니다! 행위도 아니다!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제는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완전케 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능력도 행해야 한다. 이 부분은 사도행전의 부분을 현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내가 다시 강조를 한 것이다. 실제로 이미 성령을 받은 바울 당시의 성도는 다시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이 충만만 받으면 될 것이다.> 율법으로 절대로 의롭게 되어 천국에 갈 수가 없다. 죄는 예수를 믿고 용서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그렇게 믿는 것이 절대로 예수를 올바로 믿는 것이 아니다. 라고 바울 사도는 외치는 것이다.
즉 우리 모두에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도 받고 의롭게 되는 길이 이제 새롭게 열렸다. 나도 전에는 몰랐는데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하다 보니 이 길이 진리이다. 진실로 이제는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순서를 지켜라! 먼저 예수를 믿어라! 회개하라! 그리고 죄의 용서를 받아라! 그리하면 성령께서 오셔서 나를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신다. 내가 거듭나게 되면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과거에 할 수가 없던 율법을 완성시킬 수가 있다. 차원이 다른 세계가 있다. 율법을 지킴을 통해서 절대로 도달 할 수가 없는 세계가 있다. 나는 그 세계를 누리며 산다. 모든 유대인과 유대인 성도는 과거의 율법의 단계(초등교사)에 있으면 절대로 아니 된다. 내가 새롭게 된다.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 덕분에 이를 믿고 성령님의 선물과 충만케 하심으로 새롭게 창조가 된다. 내가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볼 때 과거에 내가 알고 믿던 것들이 그때는 전부라 생각했는데, 지금의 상태에서 보니 그것들은 배설물과 같다 (절대로 율법에 대해선 그렇지 않음, 이것은 단지 예수님을 믿기 전의 바울이 생각하고 행했던 것들에 대한 표현임) 지금 나의 상태는 과거와 비교가 아니 된다.
사랑도 온전히 못했고 정의롭게 살지도 못하고 율법에 얽매여 사망의 길로 가던 예전의 나와 같이 절대로 그렇게 살지 말라.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 된다. 아니다! 아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절대로 되지 않는다. 예수를,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내 죄를 속하기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라! 예수를 믿는 일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이렇게 바울 사도는 외치는 것이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그들에게 이렇게 회복을 하라는 것이다.
제발 예전의 나와 같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 그렇게 살면 사랑도 정의도 없고 천국도 없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만민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유대인 만의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바라신다.
이제는 제발 예수님을 먼저 믿어라! 이렇게 바울 사도께서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외치는 것이다. 이미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잘못 가고 있으니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절대로 율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없다. 절대로 율법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는 일을 우선해서 하라는 외침이다. 이를 반드시 이해하고 로마서를 읽어야 하고 갈라디아서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누구도 율법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지 못하게 이렇게 사는 것이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는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고 로마서 3장 31절에서 말씀하신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바울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어떻게 율법을 세우는가? 과거엔 바울이 자신의 힘으로 율법 조문을 배워서 조문조문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고 자신은 스스로 그렇게 사는 자신을 보면서 흠이 없고 의롭다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학자에게 조문조문을 다 잘 지키고 더욱 중요한 의와 신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고 책망한 일에 대해서 이해를 절대로 하지 못했다. 도리어 예수님을 율법학자들이 도대체 네가 무어냐 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바울도 이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참사랑이 무엇인지 그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이 성령의 인도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이기며 살다 보니 예전에 죄로 여겨지지 않던 일들이 죄로 분별이 되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통해서 진실로 율법의 조문조문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사랑과 의와 신의에 대해서도 또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을 확인을 했다. 성령께서 복음 전파와 선행을 통해서 모든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은 율법을 완성시킨다고 했고 죄와 사망의 법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긴다고 했다. 결국은 이렇게 자신이 새롭게 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고 복음을 전하다 보니 이제는 바울이 이렇게 정말로 과거에 그렇게 홀로 지키려고 해도 완전히 지키지 못한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사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이를 로마서 3장 31절에서 믿음으로 도리어 율법을 세운다고 표현을 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율법을 알아야만 죄에 대해서 깨달을 수가 있다고 했으니 율법을 알기에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경우 죄에 대해서 분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착각하고 율법을 지키면서 의롭지도 않은데 의롭다 믿고 산 것을 잘 알고 어떤 누구도 예전의 자신과 같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런 마음으로 모든 편지를 쓰고 로마서를 쓰고 갈라디아서를 쓰는 것이다.
얘들아! 예수를 믿는 것을 우선시 않고, 도리어 율법을 믿고 이를 통해서 의롭게 되려면 우선 회개가 없고 죄에 대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가 없다. 그래서 불의가 그대로 존재하기에 절대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의롭다 인정치 않으신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성령께서 죄가 있는 사람에게 절대로 선물로 임하지 않는다. 성령의 세례나 선물이 없다면 이 사람은 거듭나지 않았기에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죄의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고 성령도 없고 영생도 천국도 없게 되는 것이다. 속지 말라! 이런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그렇게 살지 말라! 내가 예전에 하던 모습대로 너도 하지 말라! 그 다음에 바울 사도가 할 한 마디가 바로 예수를 믿어라! 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렇게 가르치는 유대인에 대해서 모든 교회의 성도가 경각심을 가지고 그런 사람을 따르지도 말고 교회에서 용납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율법이 아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예수를 믿어라'는 것으로 성경 로마서에 표현이 된 것이다. 즉 그들이 율법으로 예수님을 누르려고 하나 실상은 예수님을 믿고 도리어 율법을 완성을 시켜야 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며,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예수도 믿고 성령도 받은 성도가 거짓된 자를 만나서 예수를 버리고 율법으로 가니 바울 사도가 예수를 믿어라 하는 것이다. 또 다시 처음부터 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을 하면서도 바울 사도는 혹히 누가 율법을 무시하고 함부로 할까 봐서 로마서 3장 31절에서 율법을 무시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율법은 모세 오경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법이다. 이 법을 인간이 아무리 바울 사도라 해도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절대로 폐지가 되었다고 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다.
하늘과 땅에서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분명하게 율법에 대해서 잘 지켜야 한다고 하셨으니, 이제 이 세상의 누구도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성도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짓는지 깊이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란다.
의문 규정 즉 제사 규정은 예수님께서 제사법이 되시고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셔서 성취하셨기에 그대로 우리가 짐승의 제사는 지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도 잘 배워야 예수님의 사역을 잘 이해하게 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속히 논의가 있어 목자들은 성도들에게 율법의 어떤 규정을 지켜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이런 심정으로 로마서와 바울 서신을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제 이전의 글을 그대로 올리면서 이신칭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에 대한 설명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뼈대가 되는 율법을 설명을 드릴 것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의문점이 있다. 이미 순서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받은 무리가 대부분이었던 초대 교회이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세운 교회들이 다 그러했다. 그런데 왜 당시의 성도들이 이들 거짓 교사 즉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을 용납했고 따라갔을까? 바울 사도는 어떻게 진리에 똑바로 서서 이들 거짓 교사를 책망하고 성도들에게 못된 무리를 용납하지 말라고 했는가? 때론 바울 사도를 제외하고 율법과 믿음 사이에서 베드로와 바나바도 흔들릴 때가 있었다.
비록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 이유를 내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나는 사도행전 2장 37-38절의 설명대로 성령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통해서 오시고 내게 두려움을 주셨다. 성경을 볼 때 고린도 전서 13장을 통해서 내 모습이 거울과 같이 보이는데, 나는 사랑하는 모습이 조금도 없는 완벽하고 흉악한 죄인 이었다. 너무나 잘못된 나의 모습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보고 바로 눈물이 났고, 나는 하나님께 나를 도구로 써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과거 나의 사랑 없는 모습으로 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살고 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너무나 악한 존재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였는데 어찌 과거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완전히 회개하고 고린도 전서 13장과 같이 살려고 5년을 몸부림쳤다. 정말로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사실 100% 그렇게도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강력하게 과거의 내 모습을 부인하고 힘을 다해서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991년 5월 19일 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봄이 오기전의 겨울, 서울의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당시 박기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갑자기 우셨는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셨다. 큰 얼굴의 수염이 있으신 흑백의 분이셨다. 그리고 입에서 빨간색의 불을 내 가슴에 뿜어주셨다. 내 마음속에 촛불과 같은 작은 불꽃이 몇 개가 이는 것이 보였다. 큰불이 아니었다. 손에 땀이 나며 내가 누군가 예수를 믿는 사람을 만지면 반드시 낫을 것이란 믿음이 왔다. 그리고 3일을 천국에 있는 것과 같았다. 행정고시 1차 시험에 붙어서 곧 2차 시험을 쳐야 하는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예전의 세상의 모습으로 가야 하는데 잘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아픈 분을 만지면 병이 치유가 되고, 방언이 통변이 되고 다양한 기적들이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었다. 누구에게 함부로 말도 못할 너무나 좋은 놀라운 체험이었다.
행정고시 2차 시험에서 1점 차 낙방하고 목사가 되기로 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신학대학원 준비를 했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2011년에 나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때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 성장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사도행전 2장 37-38절의 말씀을 보면서 비로소 베드로 등에게 일어난 일이 똑같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성령을 받고 약 18년 정도가 지난 후에 알게 된 것이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당연히 나는 그동안에 성경도 깊이 몰랐으니 교회에서 시키는 데로 배웠다. 늘 교회는 잘 다녔지만 직분도 없었다. 전도팀에서 전도를 주로 했는데 이제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어야 하니 성경을 배우면서 교사도 3년을 했다. 당연히 담당 목사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잠실교회 교사) 그리고 순복음 교회에서 약 5-6년 가량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 성경 공부 등을 배우고 설교를 들었다. 이 배움을 그대로 가지고 천주교를 믿던 전처와 결혼을 해서 너무나 많이 싸웠다. 교회의 가르침보다는 내 자신의 모든 신앙의 면에서 미성숙 때문이었으리라 믿는다. 할 수가 없어서 성당에도 가고 전처가 잠실교회에도 왔다(1994년 결혼을 해서 잠실교회에 출석하고 나는 지금까지 다니고 있음) 그리고 성당에서 천주교 신학(일반성도 신학)도 배우고, 로마서 강의도 들었고, 아내가 읽던 다양한 천주교 서적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전처가 집을 떠난 후에 나는 4년 동안의 불면과 우울의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전도를 시작했고 재혼을 하고 신학도 재개했다. 전처가 떠난 자리가 너무나 컸고 전처의 온전한 헌신이 나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나는 성령을 받고 행정고시 2차 시험도 1점 차로 떨어질 정도로 잘 공부를 했기에 나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자부심이 강했다. 실상은 성경도 신앙도 잘 모르는 초보였는데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로 전처는 나의 위대한 선생이었는데 사랑으로 나를 가르쳤다. 나는 전처를 통해서 사랑할 구석 없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절대로 천주교를 옳지 않다고 할 수가 없게 되었고, 내 스스로 천주교 서적을 보았지만 좋은 점만 보였다. 정말로 깊이와 정확성이 있었다. 그리고 4년의 지옥과 같은 생활도 나에겐 성경을 깨닫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나를 아주 낮은 곳으로 이끌었다. 2002년 한. 일 월드컵 등 세상의 모든 것에서 나는 차단이 되었었다.
새로 온 처는 정교회의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이었는데 백인과 모든 면에서 너무나 같았다. 우리는 약 20년을 살면서 쉬지 않고 싸웠다. 모세가 200만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고 이끄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내 하나 간수하는 데 나는 힘이 들었다. 내 아내는 아내대로 너무나 힘이 들었다.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지구상에 한 명의 남자로 내가 있다 해도 절대로 나와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즉 싸우고 고난받고 하는 가운데 내 신앙은 이렇게 형성이 된 것이다.
성령을 받았지만 나는 성경도 잘 모르고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었고 누가 나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목사가 아니니 당연히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약 30년의 세월을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기도를 쉬지 않고 전도도 쉬지 않고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살았다. 은행에서 나온 1983년 이후 늘 쪼달리며 살았다. 40년이 넘게 가난에 시달렸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인도하셨으니 위의 일들을 한 것이다. 내가 이런 믿음과 율법에 대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100%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이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거짓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에게 속은 이유가 이해가 될 것이다. 이를 이해시키려 이렇게 길게 설명한 것이다. 성령을 받아도 성경도 배워야 하고, 전도도 몸으로 직접 해야 하고, 다양한 공부를 잘 해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성령을 받았다고 모든 것을 다 한껏 번에 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도 먹어야 하고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일이 있다. 결혼생활, 가정생활, 그리고 직장생활도 해야 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와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을 교회가 어디에서 먹여주는 곳이 있는가? 오히려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목사를 교회가 먹이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받은 신자를 인정하고 먹이고 하는 교회는 현대에 없다. 도리어 성령을 초대 교회와 같이 받은 이들이 이들 목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교회의 법에 순종해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어 살고 있다. 이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너무나 잘 배우고 큰일을 할 사람들이 일생을 그렇게 그냥 보내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다. 뜨거운 불을 받은 이여!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성령을 따라 성장해 가라!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품고 그렇게 가라!!
그리고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면 혹은 성령을 받으면 너무나 대단한 자부심이 생긴다. 정말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는데 내가 대표적으로 그렇게 산 사람이다. 그래서 전처와 지금의 내 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힘이 든 것이다. 성령을 받고 겸손하고 그래서 성경을 잘 배우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인데, 성령 충만, 은사 충만, 그리고 늘 기적이 있으면 다른 무엇을 배우고 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랬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랑이 많은 천주교인 여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사랑만 받고 나는 그녀를 죽도록 힘들게 하고 스스로 떠나게 했다. 이제 성경을 한국에서 가장 잘 배우는 통합교단의 교회에 와서 목사가 되려고 성경을 공부하려 하였다. 그런데 정교회 국적의 여인을 만나서 20년 동안 죽도록 싸우고 이렇게 변한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그런데 역시 많은 흠이 있으니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를 참고해서 늘 겸손해야 하고 반드시 성경을 잘 배워야 한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안배이니 내가 나를 주장할 것은 없다. 나와 같이 못나고 부족한 자를 먼저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언제나 나를 감동하시고 깨닫게 하셨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덕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덕분이다. 그리고 두 아내가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해 주고, 가족이 나를 돌보고 교회가 기도와 섬김으로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이들에게 큰 도움을 받은 것이다.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모든 분께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위로와 축복이 임하길 빈다.
진실로 돌과 같은 사람이 나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으로 나를 회개를 시키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어 주셨다. 성령께서 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마음을 녹이셨다. 그리고 나는 30년을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온갖 고난을 겪었다. 그리고 나는 교회와 주변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어머니와 남동생의 사랑과 헌신은 한결같았다. 그래서 나는 환갑이 지나도 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의 나라에 건설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고, 이는 표대를 보며 달리는 바울과 같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할렐루야!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
로마서가 이해가 어려운 것은 로마서가 온 세상을 다 품고 있고, 바울 사도도 유대인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역시 온 인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법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이미 2000년 전에 죄형 법정주의를 논하고 있다. 그리고 로마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류를 그 논의의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과거에 율법이 없던 시대의 사람은 양심의 법에 의해서 그리고 율법 이후의 시대의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그리고 예수님 오신 이후의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아니 믿고에 따라서 심판을 받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로마서는 야만인이나 헬라인이니 혹은 로마인이나 혹은 유대인이나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세상의 사람에 대해서 그의 죄와 구원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 그 스케일이 모든 시간을 포함하며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한다. 그래서 그 시간적인 길이와 모든 세상에 살았던 사람, 사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 이 지구상에 살 사람 모두를 다 포함하기에 그 넓이로 인해서 이해가 어렵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제 2000년이 지난 현대를 살면서 이슬람의 복음화와 유대인의 복음화와 그리고 미 전도 종족의 전도와 그리고 이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일이 시급하다. 로마서는 현대의 모든 나라와 민족을 진실로 구원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모든 필요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 로마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2000년 전의 저술이 현대에도 한 치의 오차가 없이 그대로 다 수용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이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겠는가? 바울 사도의 성령의 영감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천주교가 개신교가 그리고 정교회가 로마서를 서로 조금씩 다르게 이해를 하고 구약을 전해 준 이스라엘은 오직 구약과 모세 오경 즉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려고 한다.
이때 우리가 유대인을 전도하려고 할 때 우리가 "야! 율법은 왜 지키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제 예수님만 믿으면 돼!" 하고 전하면 영원토록 유대인을 전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고서 "그래! 너희가 율법을 잘 지키는데 그것은 참으로 귀하고 올바른 일이야!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조문조문 잘 지키는 것을 원하셨어!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조문조문 지키면서 형식에 치우쳐서 율법의 정신인 사랑과 정의와 믿음을 잘 실천하지 않았어! 그래서 당시의 율법학자들을 예수님께서 혼을 내신거야!" 라고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 사도도 율법을 무시하지 않았어! 너희가 홀로 온 세상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나 어렵짢아? 우리도 율법을 인정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주신 법으로 인정해!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당신 들 유대인보다 더욱더 잘 지키려고 해. 우리도 율법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싶어! 절대로 너희가 잘 믿는 율법을 무시하지 않아!" 하면서
바울 사도와 같이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어야 해! 그래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이제는 정말로 율법을 완성시킬 수가 있는 거야. 이제 너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꼭 믿어야 해" 라고 전할 것이다. 처음의 접근과 다음의 접근은 그 방법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과연 바울 사도는 유대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했고 지금 유대인에게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전도하기를 원하실까?
나는 후자로 간다. 로마서의 이해에 따라서 지금 시대의 유대인을 전도하는 전략이 너무나 달라지는 것이다. 과연 그때나 지금이나 유대인은 한결같이 율법을 잘 배우고 오직 율법대로 살려고 하고 예수님은 믿지를 않고 있다, 그런데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대로 유대인을 만나 전도할 기회가 오면 그렇게 설명을 할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내용을 이미 에스겔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이 구절이 유대인을 돌아오게 할 것이다. 함께 보면서 본론으로 들어갈 것이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끝으로 제 글을 항상 읽어주신 온 세계에 있는
모든 분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약 35만 명의 분들이 약 5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쉬지 않고 힘을 주셨습니다.
모든 분이 영적으로 대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