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끝도 정지용이고 ‘향수’이다. 실개천처럼 흐르는 금강 상류 강 마을이 그렇고, 대청호에 길을 내주고 세상의 끝이 된 호수 마을 풍경이 그렇다. 1989년 김희갑이 작곡하고 박인수와 이동원이 부른 이후 전 국민의 노래이자 시가 된 ‘향수’, 정지용의 고향 충북 옥천에서 가장 깊은 가을을 만났다.
▦얼룩배기 황소가 떠오르는 ‘평범한’ 만추
늦가을 오후 정지용문학관 바로 뒤편 ‘꿈엔들 잊힐리야’ 카페에 스미는 볕이 따사롭다. 커피뿐만 아니라 시집과 시를 주제로 한 기념품도 함께 판매한다. 이 카페처럼 ‘향수’의 한 대목을 상호로 내걸지 않더라도, 정지용의 고향마을 옥천읍 하계리엔 그의 시로 넘친다. 생가 앞을 흐르는 개천 양편 보호 난간은 지역의 각 단체와 개인이 기증한 지용의 시로 장식됐고, 마을의 식당과 가게도 특성에 맞는 시 구절 한 대목씩 내걸었다.
구읍식당은 ‘물결은 유리판처럼 부서지며 끓어 오른다(갑판 우)’,정지뜰식당은 ‘불 피어 오르듯 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고파라(저녁햇살)’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백미는 문정정미소의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나무)’. 사실 알곡과는 아무 상관없는 종교적 성찰을 담은 시인데 잘도 갖다 붙였다. 지금은 구읍(舊邑)이라 불리지만 정지용 생가가 자리한 하계리는 그가 태어날 때만 해도 옥천의 중심이었다.
옥천군은 정지용 생가를 출발해 고향 가듯 구불구불 금강변을 돌아오는 자전거길 코스를 만들어 ‘향수 100리길’이라 이름 붙였다. 실제 거리는 100리가 조금 넘는 약 50km, 휴식시간을 빼고 3시간 30분을 잡는다. 쉬엄쉬엄 자전거 여행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차량을 이용해도 완상(玩賞)에 무리가 없다.
‘향수’는 정지용이 1927년 일본 유학 당시 고향을 그리며 쓴 시다. 1918년 16세에 서울 휘문고보에 입학했느니 그가 옥천 땅을 고루 둘러보고 옮긴 이미지라고 보기엔 무리다. 그럼에도 ‘향수 100리길’엔 어느 것이 시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그의 시어(詩語)들이 그림처럼 생생하게 흩뿌려져 있다.
구읍을 출발해 가장 먼저 만나는 강줄기는 금강유원지,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금강휴게소 바로 앞이다. 얕은 보에 잠시 쉬어가는 초록 물빛이 장시간 운전에 피곤한 여행자의 심신을 시원하게 닦아준다. 이곳에서 안남면사무소 인근까지 약 17km는 구불구불한 금강을 따라 가는 강변도로다.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수준은 넘어서지만 길게 휘돌아나가는 강줄기 위에 ‘도란도란 거리는’ 마을 풍경이 정겹다.
보청천과 합류하는 원당교를 지나면 강은 조금 넓어지고 길은 한결 좁아진다. 이곳부터는 합금벽화마을이다. 강과 나란한 마을 앞 도로의 낮은 시멘트 옹벽을 따라 정지용의 시와 다양한 주제의 그림들이 이어진다. 합금리 강변은 한때 사금을 채취하던 곳이자 200여 마리의 소를 방목하던 곳이라는 설명도 붙어 있다.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얼룩배기 황소를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만큼 한적하고 평화롭다.
합금리를 지나면 강은 흐름이 느려지고 점점 호수에 가까워진다. 일부 구간은 아직도 비포장으로 남아있어 자전거든 차량이든 속도를 줄일 수 밖에 없다. ‘풀섶 이슬’이 옷깃을 ‘함추름 휘적’실만큼 강둑의 수풀은 무성하고, 잔잔한 물결은 거울처럼 매끄럽다.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익을 대로 익은 늦가을 산 빛이 수면에 비쳐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평범한 경치를 만추의 서정으로 가득 채운다.
길은 안남면소재지를 지나 얕은 언덕을 넘어 다시 금강과 만난다. 안내면 장계관광지에 닿을 때까지 서너 차례 산줄기를 크게 휘감은 금강은 어느새 ‘파아란 하늘 빛’을 담은 대청호로 변해 있다. 잘 정돈된 관광지의 모습은 오히려 그의 서정과는 좀 더 멀어진 듯하다.
‘얼굴 하나야 /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 싶은 마음 / 호수 만 하니 / 눈 감을 밖에’. ‘향수’만큼이나 사랑 받는 그 ‘호수’가 1981년 완공한 대청호일 리 없지만, 그리움의 폭은 그에 못지 않았으리라.
자전거로 ‘향수 100리길’을 여행하려면 정지용 생가에서 2.5km 떨어진 옥천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편리하다. 역 광장 우측 200대의 자전거를 보유한 ‘사랑의 자전거(043-733-1319)’에서 대여할 수 있다. 1일 대여료는 1만 5,000원. 자전거여행 중 힘이 들거나 문제가 생기면 무료로 픽업해준다. 내년 1월에는 정지용 생가 부근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한 발짝 들어가면 더 깊은 가을을 만난다
‘향수 100리길’에서 비켜나 있지만 옥천엔 대청호에 길이 끊어져 어쩔 수 없이 ‘땅끝마을’이 된 곳이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군북면 추소리 부소담악은 최고의 경관으로 꼽힌다. 이곳은 추동과 부소무니, 절골 등 3개의 자연 부락을 끼고 있는데, 부소담악은 부소무니 마을 앞 물위에 떠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호수로 둘러싸인 바위봉우리가 700m가량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어 출사지로도 인기가 높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정자를 세우고 산책로도 다듬어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조망을 보기엔 마을 뒤편 도로가 한결 낫다. 부소담악 뿐 아니라 호수처럼 정지된 듯한 마을 풍경이 드라마 세트처럼 그림이다.
100리길 국원리에서 연결되는 석호리는 호수를 향해 거북 발가락처럼 뻗은 지형이다. 건너편 막지리도 마찬가지다. 산은 물에 갇히고, 물은 산으로 둘러싸여 어느 곳으로 눈길을 돌려도 푸근하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이 정변에 실패한 후 기생 명월과 함께 머물렀다는 청풍정은 뒤편 은행나무 숲과 어우러져 늦가을 풍경의 절정을 찍는다. 청풍정을 돌아 언덕을 하나 넘으면 그제서야 끝 마을, 세상에서 가장 깊은 가을을 만난다.
정지용 생가에서 약 600m 떨어진 교동리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생가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후기 충청도지역 상류 주택의 전형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도 지정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돼 있다. 1600년대부터 3정승(김, 송, 민)이 살던 집을 1918년 육영수의 아버지 종관씨가 매입했고, 1969년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한 것을 충청북도가 고증을 거쳐 2010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안채 사랑채 위채 아래채와 사당 등을 포함해 13동의 건물이 들어선 규모이니, 인근 대전을 포함해도 최고 부잣집의 면모를 자랑한다.
이곳의 주 방문객은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간직한 노년층이다. 최근 박근혜게이트를 반영하듯 방명록에는 생가에 대한 소감보다는 ‘박대통령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쓴 문구가 눈에 많이 띈다. 그런 탓에 이곳에 근무하는 해설사는 “관람객이 줄었다는 것도 대통령의 지지도가 5%라는 것도 실감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혀를 차며 가족사진을 둘러보던 70세 언저리 여성 관람객들의 대화에선 “안타깝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이젠 밉다”는 말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박대통령의 열성 지지자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단면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