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픽션]
한강의 바람, 그날의 약속
서울의 여름은 뜨거웠다. 한강의 바람이 간간이 불어오며 그 열기를 식혀주었지만, 젊은이들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지민, 현우, 소라는 늘 그 한강변에 모여 앉아 세상을 논했다. 그들에게 세상은 아직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서로를 향한 우정과 꿈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함께 바꿀 수 있을 거야," 지민이 말했다. 그는 언제나 그들 셋 중 가장 이상주의자였다. 세상은 불공평했지만, 그 불공평함 속에서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었다. 그는 학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부당함에 맞서 싸우려 했다.
현우는 지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근데 말이야… 그게 정말 가능한 걸까?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잖아." 현우는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늘 지민의 열정에 공감하면서도, 세상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라는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다가 입을 열었다. "둘 다 맞는 말이야. 세상은 변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야 해." 소라는 언제나 차분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녀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강변에서 정의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우정 속에는 때때로 사랑이 피어올랐다. 지민은 자신이 소라에게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우정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의 차분함과 강인함,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깊은 마음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감정을 고백하지 않았다. 친구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현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라에게 끌리는 지민을 느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민과 소라 사이에 끼어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친구로서 그들의 우정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셋의 관계는 서서히 변해갔다. 서로에게 더 깊이 연결되면서도, 그 연결 속에서 불안한 감정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랑과 우정은 언제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들은 그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그들은 대학 내에서 벌어진 불공정한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 학생이 교수의 권력 남용에 의해 부당하게 학점을 깎였다는 사실이었다. 지민은 이 사건에 분노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건 우리가 바로잡아야 해.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지민이 말했다. 그 사건은 그에게 정의를 실현할 기회를 준 것 같았다. 그는 학생회를 설득하고, 목소리를 높여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 했다.
현우는 지민의 열정에 동의하면서도, 이번 일은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나서면 분명히 보복이 있을 거야. 준비가 필요해." 그는 세상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은 그만큼의 대가가 따랐다.
소라는 그 둘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정확한 증거를 모아서, 확실한 계획을 세우자. 우리만 나서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해야 해." 그녀는 차분하면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들은 함께 이 문제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기로, 그리고 친구로서 서로를 지키기로 했다.
싸움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교수는 그들에 대한 압박을 가했고, 대학 측도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려 했다. 그 속에서 지민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일까?" 그는 고뇌했다.
현우는 그런 지민을 옆에서 지켜보며 말했다. "너 혼자 할 필요 없어. 우리가 같이 싸우는 거잖아. 무너지지 마." 그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라는 여전히 그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믿고 끝까지 간다면, 분명히 결과가 있을 거야." 그녀는 지민과 현우, 두 사람 모두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결국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학생회가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언론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부당하게 학점을 깎였던 학생은 복권되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대학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작은 불씨가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의 관계는 크게 변했다. 지민은 결국 소라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그 고백은 예상보다 더 가벼웠다. 소라는 지민의 감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도 현우에게 마음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세 사람이 함께할 때의 우정을 소중히 여겼지만,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한강의 바람이 다시 불어오는 어느 날, 그들은 한강변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성숙한 마음으로,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함께한 이 시간들이 정말 소중해," 소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그 속에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지민과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과 우정, 정의를 위해 싸웠던 그 시간들은 그들의 젊음 속에서 잊을 수 없는 흔적이 되었다.
"우리의 길은 다를지 몰라도, 함께했던 그 약속은 지킬 거야," 현우가 말했다.
그들은 다시 한강의 바람을 맞으며, 그날의 약속을 되새겼다. 삶의 길 위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며, 사랑과 우정을 지켜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