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장려상
올해로 만 84세이신 저희 외할머니는 이번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사태로 인해 기존에 앓으시던 우울증이 극심해져 특별한 원인 없이 우울증으로 인해 온몸에 통증을 느끼는 ‘신체화’를 겪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 서비스 중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시면서 신체의 통증도 경감되고 우울감도 해소하시며 신체 및 인지력이 부쩍 호전되셨기에 이와 같은 경험이 다른 많은 분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적습니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우울증을 얻게 된 할머니
60여 년간 시골에서 외할아버지와 함께 지내셨던 저희 외할머니는 그 흔한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질환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셨습니다. 다만, 외할아버지는 파킨슨 질환 등으로 인해 인지력 및 신체기능이 악화되어 거동이 불가능하셨습니다. 외할머니는 그런 외할아버지를 옆에서 돌보시며 매년 ‘늙어간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기력이 쇠해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즈음에는 시골집에서 외할머니 혼자 외할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체력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기에 가족들과 상의한 뒤 자택에서 도보 5분 거리의 요양병원에 외할아버지를 모셨습니다. 그 후에도 외할머니는 매일 병원에 방문해 더 이상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할아버지의 옆에서 일상을 이야기하고 식사 수발을 하고 팔다리를 안마하시면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약 10여 년간 외할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셨지만, 결국 5년 전에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혼자 남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이 그렇듯, 가족들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상실감과 우울감을 겪었고 모두 함께 나누고 이겨냈습니다. 다만 외할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를 지킨다는 의지로 버텼던 세월이 한순간에 무너진 듯 삶에 대한 의욕을 많이 잃어버리셨습니다. 급격한 인지력 저하와 기력저하가 눈에 띄어 병원 진료를 받아보니 경증 치매와 우울증을 진단받았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물어보시거나 옛날 일을 현재인 것처럼 이야기하셨고, 그렇게 잘하시던 김치 담그기나 여러 요리들을 하나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식사를 챙겨 드시지도 않으셨고, 냉장고에는 상한 반찬들이 방치되어 있는 등 시골에서 혼자 지내시는 모습이 그저 배우자를 상실한 충격이 아니라 치매 초기와 우울증이라니…. 가족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약을 꾸준히 드실 수 있도록 시골 자택에 양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한 카메라를 설치하여 식사 시간마다 둘째 딸인 저희 어머니께서 “엄마, 점심 드셔야죠”, “약 드셔야죠”라고 카메라를 통해 이야기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시고, 매주 주말마다 2시간 거리를 달려가 집 청소, 냉장고 정리, 정원과 텃밭 정리 등을 해오셨습니다. 부득이하게 가지 못하는 주말에는 다른 이모, 외삼촌들이 번갈아 가며 각자의 생활 속에서 최대한 할머니가 외로워하지 않으시도록 노력했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았던 어르신들은 둘 중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후 1년간 남은 한 분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 특히나 더 신경 써서 돌보고, 외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여행도 자주 가며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약 4년의 시간 동안 노력한 가족들의 사랑으로 치매나 우울증의 급격한 진전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인지증이라는 용어로 불리는 치매라는 나쁜 병은 치료를 바랄 수 없는 상실의 질환이라, 저희는 진전이 더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다시금 심해진 마음의 병
하지만 2020년 2월. 가족들이 함께 보냈던 설 명절 즈음부터 조금씩 사회에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퍼지기 시작했고, 외진 시골이라 감염병 자체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았지만 국가적인 재난에 대한 대처로 인해 마을회관 폐쇄 조치가 몇 달간 이어졌습니다. 인지력 저하가 있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마을 사람들과 매일 점심이면 모여서 함께 점심을 차려 먹고 동네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또 이따금 마을회관으로 강사가 파견되어 건강 체조나 노래 교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일상을 보내던 외할머니의 하루가 전부 중단되었습니다.
처음 마을회관 폐쇄 소식에는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시골 마을회관의 폐쇄는 한 달, 두 달이 넘어가고 외할머니는 눈에 띄게 인지력이 떨어지셨습니다. 인지력 저하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의욕을 잃어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온몸에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셨습니다.
식사를 거르셔서 꽤 통통했던 외할머니는 왜소해져 버리시고, 그동안은 조금씩이라도 하시던 설거지나 작은 속옷 빨래, 바닥 쓸기 등도 손을 놓아버리셨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석 달간 엄마께서 시골집에 내려가 함께 지내셨습니다. 딸이 옆에서 챙겨주고 다시 약도 잘 복용하고 식사도 잘 드시면 살도 찌고 몸 아프단 말씀도 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석 달 동안 옆에서 딸이 다 챙겨주니 오히려 더 손을 놓아버리시고는 나아지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몸이 아프시다는 말씀에, 다른 병이 찾아온 건 아닌지 찾고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습니다. 그쯤부터는 외할머니를 외삼촌, 이모, 그리고 저희 가족이 사는 곳으로 모시고 와 이틀, 삼일, 일주일씩 번갈아 가며 모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아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풍문을 듣고 류마티스 내과를 찾아가니 류마티스성 질환으로 몸을 여기저기 공격해 아파하신다는 진단을 받아 약을 처방받고 한 달 정도 복용을 했습니다. 약을 복용하면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으나 외할머니는 여전히 옆구리를 저려 하시고 통증이 등이나 배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호전되지 않는 모습에, 과연 그 질환이 맞는지 의심이 되어 재진료를 받아보니 류마티스성 질환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 아닐 거라는 애매한 대답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막막해했습니다. 외할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 가시고 아픔을 낫게 할 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혼자 계시게 할 수 없을 만큼 인지력이 저하되셨고, 가족들은 오래 지속되는 돌봄에 모두 지쳐갔습니다. 외할머니는 통증 조절을 위해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셨고, 외삼촌과 이모는 통증 때문에라도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정답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우울증이 신체의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코로나19와 마을회관의 폐쇄, 마을 주민들 간의 왕래가 줄어들던 상황 등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습니다.
그동안의 상황들을 보아, 약을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방법으로는 증상의 큰 호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골에서 혼자 지내실 때 상한 반찬을 드시거나 식사를 거르는 일들 때문에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으려고 요양등급을 받아두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외할머니께서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방문요양을 이용하지 못했지만, 마침 필요한 상황에서 등급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 내일도 가냐?”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 뒤로 밝아진 우리 할머니
둘째 딸인 저희 어머니는 밑으로 저와 오빠, 그리고 새언니와 어린이집을 다니는 조카 둘까지 삼대가 함께 살고 있는 저희 집에 할머니를 모시자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다행히 새언니의 배려가 있었기에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며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해 보자는 결론이 모였습니다. 지금 상황에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다면, 아직 사리판단은 되시는 외할머니께서 요양병원에서 겪으실 상실감과 우울감, 실망감 등으로 날마다 울며 보내시고 건강은 더 악화될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어떤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야 할지 발로 뛰며 알아봤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센터에 방문해도 시설을 곳곳이 둘러보기 어려웠고, 어르신들이 지내시는 모습을 보기도 어려워 센터를 선정하는 일도 험난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집에서 가깝고 운동이나 재활이 가능한 주간보호센터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방문 상담 시 직원들이 친절하고 잠깐 뵈었던 다른 어르신들의 표정이 밝았던 센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렇게 아파하시며 잘 걷지도 못하시던 외할머니께서 저희가 ‘학교’라고 부르는 센터를 하루 다녀오시더니 아프단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던 겁니다. 그리고 “나 내일도 가냐?”, “내일 몇 시에 오라는 말을 못 들었네”라고 하시며 다음날 또 가게 될 것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하셨습니다. 하루 만에 이렇게 좋아질 수 있나 싶었지만 정말 좋아지셨습니다. 목 아프시던 건 어떻냐는 물음에 “목? 암씨롱토 안 해야”하시며 다시 “학교 내일은 언제 간다냐?” 되물으시는 모습에 기쁨이랄까, 대견함이랄까, 행복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활동을 하시니 하루만에 우울감이 해소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 지 한 달이 넘어갑니다. 어르신들 성향에 따라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다는데, 잘 적응해주시는 모습에 또 감사했습니다. 처음 저희 어머니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린아이라도 맡긴 듯이 불안해하셨지만, 매일매일 주간보호센터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받아보시고 오늘 식사는 어떠셨는지, 다른 분들과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건강상의 특이사항 등을 그날그날 알려주셔서 지금은 무척 신뢰하고 계십니다.
아침마다 제가 출근을 하고 삼십 분 뒤쯤 센터 송영차량을 타고 집을 나서시는데, 제가 먼저 나가는 길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면 이제는 외할머니께서도 “오냐~ 나도 출근한다”하고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인지력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함께 받고 계시고, 운동도 하셔서 밤에는 잠도 잘 주무시고 식욕도 넘치셔서 예전의 체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센터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시는 영상을 보며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노래를 잘하셨나”라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시는 영상을 보면서 가족들과 함께 음악을 틀고 3살 조카까지 함께 춤판을 벌여보기도 합니다.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욕과 손발톱 관리까지 해주시니 보이는 모습도 청결하고 외할머니께서도 만족스러워하십니다.
어제는 활짝 핀 벚꽃을 보여드리며 산책을 하는데, 다른 지역에 계시는 외삼촌께 전화가 와, 외할머니와 통화를 하셨습니다. 외삼촌께서는 할머니의 목소리만 들어도 건강해지신 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러자 외할머니께서는 “오냐~ 친구랑 노느라 바쁘고, 직원들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라고 하며 먼 곳에 계시는 외삼촌 달래기라도 하듯이 이야기하셨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 외삼촌께서는 제게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복지 제도가 있는 줄 몰랐는데, 똑똑하게 잘 찾아서 외할머니를 모시니 정말 고맙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올해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생긴 지 13년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삼촌의 말씀대로 똑똑하게 잘 챙겨서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은 알고 있지만 처음의 저희처럼 불신이나 불안감 때문에 이용을 꺼리고 계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 집은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더 소중하게 함께할 기회를 얻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주간보호센터를 통해 외할머니의 생활을 되찾고, 가족들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2년 4월호>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