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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으로 구성이 되었으니 차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A Million Churches: 700 vs. 1/ 700 Theologians and One Spirit-Powered Evangelist
백만 교회: 700 VS 1- 700 명 신학자 VS 한 명 성령 받은 전도자 1편
A Million Church: 700 vs. 1 - 700 Theologians vs. One Spirit-Powered Evangelist 1편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달란트가 다르고 쓰임도 다릅니다. 저를 목사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한 명도 없는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온 세상의 모든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게 하십니다. 저는 흉악한 자로 죄를 모르고 산 사람입니다. 전도자가 전해 준 성경책으로 하나님께서 회개를 시키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게 하시고 8년 전부터 인터넷으로 전하게 하셨습니다. 은행원, 카투사, 천주교인 여자와 결혼과 이혼, 그리고 정교회 출신 여자와 결혼해서 20년이 되었고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대학 대학원에서 8년간 행정고시를 하면서 하루에 약 13시간 사회과학 공부를 했습니다. 행정학, 행정법, 헌법, 국제법, 민법과 경제학, 교육학, 심리학, 정치학 등을 2차 시험에서 어떤 문제가 나오든지 바로 20장의 편지지에 한자를 섞어서 채우는 연습을 했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낙방후 전도와 성경 정리를 약 30년 정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을 받음에서 비롯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은행에서 나온후 약 40년이 넘게 지극히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너무나 세상의 밑바닥에서 불의를 체험하고 살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쉬지 않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격려하시고 성경을 이해하게 하셨으니 아래 내용이 그 내용입니다. 한 교회 담임도 아니고 천주교도 개신교도 아니 개신교 목사의 모든 배움과 40년의 경험이 담긴 글입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신학자들이 목사들이 신부들이 보지 못하는 성경의 진수를 전하니 목마른 심령에 생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긴 추석의 연휴가 끝이 나고 거룩한 성일입니다. 가을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데 겨울을 재촉합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성령의 단비로 늘 심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모든 예수를 믿는 사람의 가장 큰 특권이 성령의 선물과 충만입니다. 영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심령에 오셔서 내주하시고 나를 감화 감동하니 AI가 온 지구상에서 다 덤벼도 절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은 성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죽고 예수님께서 사시며 이는 내 마음에 성령께서 오셔서 내주하시고 감동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A4 용지 약 160매의 긴 글이니 시간을 가지시고 천천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고 천천히 보시기 바랍니다.
신학은 무엇이며 성령 받은 전도자는 누구입니까? 우선 신학자는 현재에 신학 대학에서 교수로 목사가 될 혹은 신학자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신학은 일반 학문이 인문현상이나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달리 신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이란 말은 학문 연구의 방법으로 어떤 신학적인 현상에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서 이론화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학은 학문의 한 영역으로 연구 대상이 신이지 연구하는 방법은 다른 학문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신학 이론에다가 연구를 해서 더 첨부를 하거나 혹은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일반적으로 성경을 중심으로 학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 신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학문적인 성과에 따라서 교리나 교파가 형성이 되는데 대표적인 교파가 우리가 아는 천주교와 개신교와 정교회입니다. 이들은 다 성경을 기본으로 연구를 해서 학설 혹은 교리를 세우고 이에 따라서 교파로 존재하는데 처음에는 천주교 하나만 있다가 성령론과 성상 문제로 약 1000년 경에 정교회가 분리가 되고 이는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로 크게 나누어지고 다시 1500년 경에 루터의 이신칭의로 개신교가 분리가 되어서 각 교파 별로 신학교도 다르고, 신학자도 먼저 천주교는 천주교의 교리대로 개신교는 개신교의 교리대로 큰 틀에서 신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나 신부를 하고 싶은 이들이 자유롭게 이 신학교에 가서 이들 교수에게 신학을 배우고 일정한 절차를 밝고 신부나 목사로 임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신학의 가장 중요한 성경을 무엇인가 잘 연구하고 살펴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천주교로 간 사람은 천주교 신학교에 가고 그 신학교 교수에서 교리를 배우고 신학을 하니 그대로 따라서 가고, 개신교로 간 신학생은 또 개신교 신학교의 신학 교수의 가르침 대로 교리를 따라서 가니 성경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에 관심은 별로 없고 큰 두 교파의 교리의 틀 안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연구하고 가르치고 이를 신학생이 배워서 또 성도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에 있으면서 천주교 교리를 더 옳다고 믿는 신학자나 목사는 더 이상 그 직분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은 이렇게 되면 개신교 교리를 어긋나게 되기에 이런 사람을 개신교 내에서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천주교로 가야 하는데 천주교에서 이런 사람을 교수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성도로 신앙생활을 하자면 평신도로 시작을 해야 하니 설혹 천주교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더 옳다고 해도 감히 대놓고 절대로 이야기도 못하니 그래서 개신교의 틀 안에서 갇혀서 자신이 진리로 믿지 않는 내용도 침묵하면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교리와 교파의 덤불의 악한 위력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자신이 진리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전한다고 자부하나 모든 사람이 순시간에 알 수가 있는데 로마서 1장 17절을 놓고 서로 옳다고 500년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나 진실로 둘 다 옳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한 쪽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죽어도 한 쪽이 양보가 없습니다. 그런데 둘 다 옳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진실로 뭐라 말을 하는 지는 관심이 둘 다 없고 교리에 목을 메니 한쪽은 혹은 둘 다 심각하게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모두가 인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더욱 더 놀랍게도 이들은 학문과 지식에 더 관심이 있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의 존재와 이에 대한 믿음이 일반 성도보다 못한 사람도 많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실재로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으면서 과연 신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신빙성이 있는가를 일생을 통해서 따지고 이를 연구 결과로 발표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목사가 신앙도 없이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학도 어떤 조류를 반영하고 지지자가 많고 어떤 분야에 연구가 뛰어나면 그 사람의 주장이 다수설로 되어서 득세하고 이를 또 많은 신학자가 추종하고 이를 목사에게 가르쳐서 목사는 그냥 맹목적으로 이를 성도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역사 비평적인 성경 연구 방법입니다. 이 성경 방법은 독일 등 유럽에서 최근 약 100년 동안 주류 신학적 연구 방법이었는데 천주교 개신교가 공히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일치가 되어서 서로의 서적을 나누어서 보았습니다. 이 방법은 성경이 과연 어떻게 기록이 되고 편집이 되었는지를 연구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의 경우는 언제 누가 이 마태복음을 기록을 했고를 연구하고 28장 전체를 다 갈기갈기 나누어서 과연 어떤 장이 마태의 저술이며 어떤 장은 아닌지, 어떤 장의 내용이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같은 다른 사복음서를 보면서 비교 연구합니다. 즉 성경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저자의 저술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어떤 사람이 어떻게 성경을 기록했는지에 더 관심이 있고 어떻게 편집이 되고 완성이 되었는지에 온 관심을 다 둡니다. 당연히 성경 내용의 진리 됨을 믿고 행동하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남이 모르는 성경의 기록과 편집의 발굴에 열을 올리게 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하면 그 내용이 그럴듯하면 지지자들이 모이고 이렇게 학설이 되고 이를 그냥 목사 후보생이 배워서 또 성도에게 아는 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100년을 천주교는 보내면서 모든 면에서 별로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 연구방법을 포기했고 개신교도 역시 시들하게 되었는데 유명신학교는 이런 학자들이 아는 채 하니 이를 유명 신학교에 간 학생들이 배웠던 것입니다. 100년의 연구와 공부가 별로 성경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이 났고 천주교는 이 방법을 버렸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일반 학문의 연구와 같이 연구의 대상으로 보고 경외와 공경과 찬양도 없이 막 대하고 막 분석하고 막 분리하고 막 설명하는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불경의 극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유명한 조상의 한문으로 된 비문을 그 후손이 하듯이 존경하고 믿고 자랑스럽게 사랑을 가지고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비문이 무슨 내용이며 누가 썼고 과연 그 내용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한문을 하는 학자들이 벌떼 같이 붙어서 서로 내가 더 정확하다 다투고 서로 그 내용을 놓고 서로 비판을 하면서 온 세상이 조상의 인품이 어떻고 주장이 어떻고 하면 진실로 그 조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들이 정말로 인간 말종이고 사랑도 신의도 없는 오직 까발리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나쁜 사람들로 여기고 싫어할 것입니다. 이들이 조상에 만행을 행하는 자로 즉 조상의 업적을 왜곡하고 폄하하고 욕보이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100년을 이 방법으로 성경이 과연 믿을 만 한 지를 살피다 포기를 한 것이고 개신교는 아직도 이들 연구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이를 업적으로 먹고 사는 학자도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입장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이 100년 동안 신학자로 군림하고 이들에게 배운 목사가 개신교 전체에서 목회를 하고 당연히 천주교에서도 신부로 있으니 여전히 서로 싸움만 있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학이 모두가 문제가 있고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고 이렇게 크게 교리도 혹은 학설로 성경에 대해서 정리를 해 주니 성도는 이를 믿고 서로 또 한 교회 교파로 단결하고 협동해서 나가니 신학이 좋은 기능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는 저도 인정하고 저도 개신교 신학을 하고 많이 배웠고 천주교 평신도 신학도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역사 비평적 연구의 단적인 비유는 고가의 롤스로이스를 두 사람이 선물로 받았는데 한 사람은 즉시 망설임이 없이 차의 기능과 안전성을 믿고 차를 타고 여행도 가고 직장에도 가고 자녀들과 쇼핑과 외식도 하면서 즐겁게 삽니다. 이와 달리 다른 사람은 차를 타고 운전해서 본래의 용도로 쓰는데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롤스로이스가 어떻게 제작이 되고 과연 타는데 문제는 없는지 우선 차를 완전히 분해해서 차체, 엔진, 바디, 힐 등으로 분리를 하고 차근차근 그 안전성과 만듦에 대해서 분석하고 비판하다가 일생을 보냅니다. 차를 믿고 타기엔 이제 너무나 분해를 해서 조립도 불가합니다. 비싼 롤스로이스가 주는 너무나 많은 유익과 혜택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쓸데 없는 일에 일생을 보냅니다. 이것이 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의 단적인 예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진리로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 연구 방법은 불경과 교만과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보이므로 이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인간이 해서는 아니 되는 일로 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에 목사도 신부도 수녀도 다 따라서 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분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찢는 슬프고 나쁜 일임을 우리는 믿고 성도는 온 세상의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에 전념해야지 올바르지도 않는 신학과 교리의 장난에 속아서 교파가 다른 교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는다든지 미워한다든지 비판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이는 교리가 다르고 학설이 다른 것이지 성경과 하나님께서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이렇게 교파간에 거리를 두고 서로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정확한 뜻은 아닌 것을 믿으시고 올바로 가시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지구와 전체를 사랑하시고 온 지구의 성도가 교파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서로 달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요한 복음 17장 21절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1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21 that all of them may be one, Father, just as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May they also be in us so that the world may believe that you have sent me.
이제 성령을 받은 전도자는 바울과 같고 베드로와 같고 요한과 같고 이들 이후에 다음과 같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전도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이 초대교회에는 기둥들이었습니다. 신학자는 없었고 오직 이들이 성도들을 잘 인도하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고 선교도 했습니다. 지금도 성령을 받고 교인으로 성도로 전도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고 선교사로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황보다는 어쩌면 이들이 진정한 베드로의 후예입니다. 바울의 후예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신학자에게 배운 목사의 가르침을 받고 교회에서 조용히 전도합니다. 성도로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혹은 저와 같이 목사도 있습니다. 물론 신학자 중에서 예수님을 잘 믿고 성령을 받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공경하시는 분도 많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혹은 예수님 제자들의 전도에 따라서 예수님께 직접 나와와서 예수님을 뵈옵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천국 복음을 들었고 또 병자를 고치고 성전에서 다투시고 율법학자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하고 공격하는 것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고 함께 고난도 겪었습니다. 그렇게 약 3년을 배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이 박혀서 돌아가시는 것을 다 봅니다. 그리고 장사한 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넘치는 확신이 있지만 더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이는 이들에게만 하는 명령이 아니고 모든 이후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하시는 명령으로 신학자 목사 장로 권사 신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어기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혹자(신학자, 목사)는 성령을 받는 일이 초대교회의 일회성이고 이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께서 여전히 2000년 동안에 절대로 쉬지 않고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초대 교회의 성령의 임함 같이 조금도 변함없이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구가 당시에 비해서 40배나 많은 지금 그리고 요엘서의 예언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 초대교회보다 훨씬 수도 없이 많은 줄로 믿습니다. 누가 80억이나 되는 영혼을 구원합니까? 신학자 목사는 전도의 현장에 있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전도자가 이들을 구원합니다. 이 필요를 인간이 구원을 받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심으로 채웁니다. 저도 당당하게 그렇게 성령을 받고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헛소리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성령의 부으심과 채우심을 부인하는 자는 성령이 초대교회와 조금도 다름없이 임하고 성령을 받은 전도자가 전도하는 사실을 다 부인하는 거짓된 사람입니다. 자신만 받지 않으면 되지 받을 사람의 기회는 왜 박탈을 하고자 안달을 합니까? 실로 하나님의 나라에 방해가 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문제는 절대로 신학자나 목사나 신부가 함부로 이야기할 내용이 아닙니다. 저도 성령을 받고 17년 이상을 지나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누가 설명을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래 말씀대로 정확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께 불로 성령을 받았으리 제가 체험을 아래 말씀대로 너무나 정확하게 했고 성령을 받고 30년 이상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를 했기에 이를 부인할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혹 이상하시면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장 37-39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이를 혹자는 또 어떻게 개인적인 경험을 믿을 수가 있냐 하고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인정하고 아니 하고를 막론하고 분명하게 성령께서 오시고 이들을 통해서 또 초대교회와 같이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전해서 전도 받은 성도가 교회로 오면 목사가 목회를 하고 이런 목사를 신학교에서 교수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전도가 없이는 교인도 없고 목사도 없고 신학교도 없고 교수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없고 신학교가 없고 교수가 없어도 성령 받은 전도자만 있으면 초대 교회 시 바울이 로마에 아직 가지 않았음에도 로마에 교회가 세워졌듯이 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존재가 성령을 받은 전도자인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인데 이는 모인 사람을 놓고 설교를 하는 목사의 설교와 다르고 모인 학생을 두고 강의를 하는 신학교 교수와 다릅니다. 이들은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는 불특정 다수인 혹은 소수 혹은 개인 그리고 어떤 공인된 장소가 아닌 확 트인 곳에서 때론 방해도 때론 폭력도 때론 무시도 당하고 때론 순교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진실로 교회에서 가장 기초가 되고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목사 신학 교수에 비해서 절대로 덜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혹은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뵈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시간과 공간과 장소를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여전히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계시고 우리와 깊은 교제를 하십니다. 여전히 살아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 2000년 전에 육신으로 오셔서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르지만 영적인 교제의 측면에서 초대교회와 0.000%도 차이가 없이 완벽하게 동일하게 우리는 예수님과 수시로 만나고 교육도 받고 인도도 받고 사랑도 받고 위로도 받고 기도도 드리고 찬양도 드리고 경배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오늘도 여러분과 저를 도구로 삼고 온 지구상에 있는 베드로나 바울이 있던 겨우 2억 명의 지구 전체의 인구에 불과했던 시대와 달리 약 80억에 달하는 인구를 구원할 그분의 도구를 조금도 변함이 없는 방법으로 선택하시고 교육을 시키시며 온 세상에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시니 성령을 받은 전도자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구상에 제가 알기로 약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단지 목사나 신부의 지도를 받고 잠잠히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제목을 700 VS 1, 700명의 신학자 VS 성령 받은 전도자 1명으로 제목을 정했는가 하면 제가 성령을 받은 전도자로 700명의 온 세상의 신학자에게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옥스퍼드, 게임브리지, 호주와 캐나다의 신학교 그리고 한국의 신학 대학 11개 대학 총 합쳐서 약 700명의 신학 교수분께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전했기 때문에 제목을 위와 같이 뽑은 것입니다.
성령이 없이 인간적인 머리와 연구로 죽도록 성경을 연구한 신학자들 그리고 이들은 약 2000년의 연구 결과가 또 있으니 이 연구 결과와 전세계 유명한 신학교와 저명한 학자로 구성에 된 700 명의 신학자는 개신교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휼륭한 신학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에게 무명의 성령 받은 전도자 목사가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영어로 번역을 해서 4회 정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들이 다수가 답장을 하고 의견은 개진했으나 저에게 공감을 표하는 분도 반대를 표하는 분도 없었고 오직 한 분께서 하나님께서 제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축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일대 스타 클레어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의 논문을 읽어보라고 권해서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한국의 수백 명의 교수는 가타부타 아무런 의견도 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내용을 다 온 세상에 알렸습니다. 온 세상에 다 교수들에게 보낸 편지를 한글로 영어로 번역을 해서 읽게 했는데 제가 알기로 120개국 넘는 나라에서 적어도 50만 명은 보았으니 온 세상에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아시는 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영어로 온 세상에 이 내용을 전할 것입니다. 유튜브로 전할 것이기에 영어를 하는 수천만 수억의 사람들이 듣고 진위를 분별해서 온 세상의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성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가운에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데로 받아 적고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A4 용지 약 30-50페이지 분량의 긴 글을 약 7년에 걸쳐서 1.100편을 쓴 것은 이런 과정에서 비롯이 된 것입니다. 결코 어려운 일도 고민되는 일도 아니고 그냥 컴퓨터를 켜고 타자를 치기 시작하면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하루나 이들이면 대부분의 글이 완성이 됩니다. 그냥 줄줄이 나오는 것을 타자로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모든 경험도 다 사용하시지만 저는 대부분이 성령의 능력으로 믿습니다. 당연히 100명이든 1000명이든 아무리 머리가 좋고 연구가 많은 순수한 인간적인 성경 연구와 성령의 도움을 받은 글 즉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가 서로 비교가 불가합니다. 이는 제가 이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고 성령의 능력이 인간의 모든 수고와 능력을 능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2000년의 놀라운 노력의 성경의 교리나 학설의 수고와 가치를 인정하고 저도 때로는 따라가지만 저의 로마서의 이해는 이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훨씬 깊이 정확하게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틀림없이 정확하게 사도행전 2장 37-39절의 베로로의 경험에서 나오는 성령을 받는 일을 그대로 조금도 다름없이 체험을 했고 성령께서 저를 약 30년 인도하시는 가운데 다양한 기적을 행하시고 성경 정리와 전도를 인도하셨고 이런 가운데서 성령께서 성경을 조금씩 조금씩 가르쳐 주신 것이고 이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성경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 가끔은 묵상을 하지만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전도하는 일이 이 일보다 수천 배, 수백 배가 많기에 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지각이 있는 모든 성도는 성령의 도움을 받은 저의 이해가 훨씬 모든 신학자 목사 신부보다 더 정확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제가 언급하는 것은 모든 성경 분야가 아닙니다. 특히 로마서의 이해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깊이 정확하게 로마서를 이해하시는 분들이 또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시대에 저의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는 온 세상에서 가장 앞선 이해라 저는 믿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 천주교 개신교 신학자들은 로마서의 빙산의 일각을 보고서 서로 누가 옳다고 다투고 있으나 저는 감히 이들이 보는 일각을 이미 보고서 더 깊은 물속에 더 많은 부분으로 숨어있는 빙산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이해를 빙산의 일각을 보면서 비유로 설명하니 진실로 진리에 목이 마른 모든 신학자, 목사, 신부, 신학생, 성도는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로 속히 넘어 올 것이고 온 세상이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속히 믿고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가 반드시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모든 약 30년이 넘는 결과물이 오천만의 로마서에 전도란에 로마서란에 성경 정리란에 다 있으니 검증하시고 검토하시고 확인해 보기기 바랍니다. 저는 행정고시 준비생이었고 낙방생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오시지 않았고 회개도 성령의 선물도 없었다면 저는 틀림없이 조금 배운 세상의 지식으로 인생을 비관하며 죽었을 사람입니다. 아무 소망도 없이 늘어가는 백발을 보면서 인생을 허망하게 생각하고 홀로 죽음을 고통스럽게 맞이하고 있을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읽을 제 모든 글에 이런 기조는 1%도 없고 오직 이 세상을 복음화해서 천국이 되게 해서 모두가 신뢰하며 다정하고 행복하게 살게 만들 소망으로 충만하니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 수가 이겠습니까? 절대로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래 글은 700명의 신학자에 도전하는 성령 받은 전도자 저의 글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과 바울 서신 특히 로마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뼈대가 되는 율법과 기초가 되는 칭의 되는 믿음)
할렐루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놀랍고 놀라운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심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속히 바울 서신의 올바른 뜻이 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약 37년 전에 하나님께서 제게 오셨을 때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실상 도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크신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이 저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흉악한 죄인이 이 일을 감당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로 무지한 인생이 온 세상에 오랫동안 논쟁의 핵심에 있던 로마서의 이해의 부분 즉 이신칭의에 대해서 그리고 이를 통한 율법의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전하게 되었으니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를 통해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되고 성도들이 모든 미몽에게 깨어나 진리의 세계로 함께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온 세상이 3000년 평화를 추구한 이 민족을 통해서 전쟁도 다툼도 없이 평화의 복음으로 주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오천만의 로마서 애독자 여러분! 모든 분께 하나님께서 드리시는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정말로 놀랍고 놀라운 일이 오늘 일어납니다. 제가 이미 전했지만 조금 더 정리를 해서 영문으로도 전하는 데 제 글을 보시는 모든 분이 신학적으로 논쟁이 된 이신칭의에 대해서 진실로 새롭게 접근하고 큰 문제가 해결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는 500 년의 천주교 개신교의 논쟁입니다. 모든 이 세상의 예수를 믿는 성도와 그리고 목자는 신학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이와는 달리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시는 분들도 또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학생으로 배워서 목자도 되고 성경 연구가도 되니 신학교의 가르침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비록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지만 모든 면에서 미숙한 제가 전문적인 신학 연구의 과정이 없이 이 오랫동안 논쟁을 해 온 부분에 대해서 감히 큰 해결이 될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모든 분이 올바른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와 그리고 율법에 대한 이해를 하셔서 부디 이 땅에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우리 함께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영문 번역도 아직은 온전치 않지만 그대로 올립니다. 아직은 책으로 내기에 많이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고 그 큰 의미에 대해서 이해를 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 미천한 인생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함께 나누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올렸던 글이고 조금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 보시고 그리고 영문으로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의혹이 일시에 풀어지는 복되고 기쁜 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런 일에 사용이 되는 도구가 되었음이 놀랍기도 하고 영광스럽고 그리고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글이 길어서 셋으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도표는 크게 키울 수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그대로 시행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잘 이해하면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을 다 온전하게 만들 수가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이해는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로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 나라를 이해하고 응용해서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모든 조직을 가장 이상적인 조직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땅의 천국인 교회도 가장 이상적으로 세울 수가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법 율법으로 통치하시고 그 율법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행해지는 모든 곳이 사랑이 넘치고 정의가 넘치고 서로 신뢰할 수가 있는 이 땅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갖지 못했고 그래서 그 나라를 설명하는 것도 보기 힘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살펴서 그 나라가 눈에 보이듯이 선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가정에 교회에 사회에 그리고 국가에 세운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약 600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강력하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간절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받드는 개인과 단체 국가를 하나님께서 향후 가장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내 자신과 내 교회의 성장과 발전 형통이 그리고 내 사업과 내 사회의 가족의 형통이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와 실천에 달렸음을 굳게 믿고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반드시 기도하시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속속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일생에 가장 귀한 기회로 삼으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축복 속으로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초청합니다. 반드시 성령께서도 함께 하시면서 모든 분을 주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고 깨닫는 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꼭 끝까지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바울의 서신서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칭의 되는 믿음과 뼈대가 되는 율법>
목차≫≫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복음이 속히 전해져야 하는 하나님의 뜻
2. 바울과 초대 교인의 모습
3. 설명이 가능한 현대 기기의 등장(압축 파일, 빙산)
4. 율법학자 바울의 법적 성격이 아주 강한 로마서
제 Ⅱ 편 바울의 심정에 대한 이해
1. 당시의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 바울의 외침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
제 Ⅲ 편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과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이해
1. 서론: 이신 칭의의 경험적 이해를 설명한 간증문과 간략한 이해
2.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
3. 하나님 나라 뼈대가 되는 율법
4. 논의의 요약
5. 하나님 나라의 건설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속히 복음 전파의 하나님의 뜻
2. 바울과 초대교회의 모습
3. 압축 파일, 빙산의 일각
4. 율법학자 바울의 법적 성격이 강한 로마서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속히 복음 전파의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하늘과 지구를 창조하신 후 지구에 사람을 비롯해서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사람들이 지구상에 퍼져 나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약 1700년이 지났을 때 사람들이 지구상에 나누어져서 살고 있는데, 모두가 죄를 짓고 오직 노아와 가족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인정 받았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물로 온 죄악으로 물든 온 세상을 심판하시었습니다.
그 후에 노아의 후손이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퍼져서 살고 있었는데 온 인류 중에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선택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후손이 민족이 되고 나라가 되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계약을 맺으셨으니 구약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율법이 잘 지켜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왕들과 귀족과 백성이 율법을 배우지도 지키지도 않았기에, 약 1000년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의 시간이 끝이 나고 택한 민족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 유다는 기원전 586년, 북 이스라엘은 기원전 약 722년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런 와중에도 구약의 모세 오경 즉 율법을 잘 보존하고 그들의 역사를 역사서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와 찬양과 시를 모아서 시편으로 정리했고,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올바른 길로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 예언자들의 기록을 모아서 예언서를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구약 39권을 완성했고 이를 헬라 시대에 70인 역으로 온 세상에 전했습니다.
이렇게 모세로부터 예수님께서 오시는 약 14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된 구약 성경은 글자 한 자 바뀜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 잘 보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기록한 이스라엘 민족도 구약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때가 차매 구약의 약속대로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시었습니다. 오직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 그리고 성전에서 살던 여인과 지극히 일부의 사람만 메시아를 알아 보았지만 그의 부모도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당할지, 혹은 하실지를 잘 몰랐습니다.
이 예수님은 천지의 창조주요, 그리스도시요, 그리고 인류를 죄에서 건질 구세주가 되시는데 30세쯤 되셔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부 등을 제자로 부르시고 모든 이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이제 이 땅에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땅에 건설하시고자 하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선 예수님께서 오셔서 2000년이 지났지만 그 논의도 드물고 그 나라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도 역시 드뭅니다. 이는 죄악에 물이 든 아담의 후손인 인간이 이미 예수님 오시기 전 약2500년 정도를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선택이 되어서 이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이스라엘도 실패했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게 이 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이 지구상으로 퍼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후 약 2000년이 지났는데 이제 온 세상에 복음이 대부분 전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한국에까지 복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는데 약 1800년이 걸렸습니다. 이와 함께 아직도 예수에 대해서 듣지 못하는 종족이 있고 이슬람 제국과 북한과 같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강제로 막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를 믿고 온 인류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며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와 민족이 먼저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장 바라셨고 이는 복음 전파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이어서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고 그 나라의 법인 율법을 잘 지키며 사는 나라 즉 이 땅에 성령 안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은 그 다음으로 생각하신 듯 합니다. 아니면 간절하신 하나님의 자신의 나라의 이 땅에 설립에 대해서 이 땅에서 믿는 성도들이 덜 관심을 갖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제 예수님 오신 후 2000년이 지났습니다. 복음이 이제 지구의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에게 전파가 되었고 온 지구의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때가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이 되어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이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올바른 믿음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나라의 법, 즉 가장 세상에서 정의롭고 공평한 법이 믿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에게 시행이 됨에 있습니다. 법이 없는 나라는 설 수가 없고, 법이 온전치 못한 나라는 절대로 정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 모든 민족과 집단과 나라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은 시대에 따라 국가의 이익에 따라 집단의 이익에 따라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법학자가 똑똑해도 인간이기에 모든 세상의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법을 아무도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직 사랑과 정의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만 온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법을 만드실 수가 있으니 그 법이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이 법을 이스라엘 민족이 다양한 고난 중에도 잘 보존했고 지금도 잘 지키려고 하고 오직 이 법을 통해서 온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이해에 있어서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법인 율법에 대해서도 천주교 개신교 모두가 다 그들의 성도가 그 법을 지킴에 있어 소극적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율법이 왜 지금까지 이런 대접을 받고 있고 그렇게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왜 이렇게 모두에게 멀리 있게 느끼어지는 것입니까?
비록 성경의 이해에 있어 지금과 같이 온 세상의 교회가 통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일을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여기셨기에, 교회들이 성경을 서로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더라도 우선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도록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역사하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의 교회들과 교인들의 모습을 온 지구상에서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예수를 믿지만 성경의 이해와 교리가 조금씩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과 복음이 내포하는 내용의 전적인 완전한 이해에 교회들이 다다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의 구원이 일어나면 이를 용납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태통하고 500년이 흘렀지만 서로 교리에 있어 다르고 하나가 되지 못했지만 개신교를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진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400년의 영화와 미국이 누리는 수백 년의 영광과 스페인과 유럽의 열강의 번영과 쇠퇴에도 복음이 전해진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인내가 있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지난 날의 신학적인 주장에 대해서, 유럽 제국의 1.2차 대전과 번영과 쇠퇴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 비난, 정죄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함부로 해석하고 판단해서도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나라들이 수백 년 동안 온 지구에서 행한 일과 너무나 다른 부분이 있음도 밝힙니다. 우리는 이를 분명히 밝히고 새로운 2000년대를 맞아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기를 향한 뜻으로 믿는 것입니다. 모든 천주교, 개신교 성도가 그리고 정교회 성도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가 밝혀지기 전에 우리가 알고 믿던 모든 일은 지나간 일입니다.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심판하고 할 권리가 없고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입니다. 다만 진리를 접하고도 순종치 않을 때는 이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자신이 져야 할 것입니다. 새롭게 밝혀지는 서신서에 대한 비밀은 천주교 개신교가 500 년 동안 서로 쉬지 않고 논쟁을 벌이면서도 해결을 보지 못한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새롭고 올바른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반드시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하는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설명할 것입니다. (이신칭의에 대한 논쟁이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로 풀리기 됩니다.)
이 “모세 오경의 율법”과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하나님의 나라의 뼈대와 기초로서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설 수가 없습니다. 2000년을 셀 수 없는 신학자, 성경학자, 그리고 신실한 성도가 성경을 읽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 못했던 부분이 한국에 사는 무명의 목사에 의해서 밝혀집니다. 이는 때가 되어서 하나님이 그분의 나라를 온 세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세우기 위해서 미천한 인생에게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나 우월함이 있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목사로서 목회도 못하고 아들로서 효도도 없었고 남편으로 부실했고 아버지로 아들을 잘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이 온 정성을 다해서 저를 도왔지만 보답하지 못했으니 모든 면에서 보통 이하의 사람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부족한 사람을 들어서 쓰시는 것은 아무도 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귀한 일에 쓰임을 받는 것에 대해서 영광스러울 뿐입니다. 모든 면에서 보통 이하이고 흉악한 죄인에 불과한 사람으로 이 위대한 일의 예수님의 도구로 사용되니 모든 영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과 그리고 성령님의 함께 하심과 감동하심에 돌립니다.
주의 이름이 세세토록 찬양을 받으시며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길 바랄 뿐이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저를 도운 모든 분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형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2. 바울과 당시의 상황
지금으로부터2000년전의 초기 기독교의 사정은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 그리고 사복음서를 통해서 너무나 자세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농경과 목축, 그리고 어업이 주가 되던 시대, 로마가 영토를 넓히며 지중해 주변을 통치하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농부와 어부 그리고 목자들과 같이 지내시면서 들판에서 이들에게 천국을 전하시고 진리를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성령을 기다려서 선물로 받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모든 무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받은 사도들의 전도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들 모두는 내 것, 네 것이 없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아래에 두고서 서로 모두가 형제로 함께 나누고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전도했습니다. .
나중에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믿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이 유대인 성도였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고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하며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그리스와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예수님을 친히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100%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처음에는 이들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유대교에 적이 되는 무리라고 믿어 잡아서 가두고 이들을 심히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눈이 멀게 되고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고 아나니아를 만나서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 신약의 서신서를 쓴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과 같이 되어야 즉 이들과 같이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해 보아야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에서 생활을 해 보아야 당연히 바울 서신이나 복음서를 잘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이 성도들 이후의 성도는 예수님을 직접 육신으로 만날 기회가 없고 성령을 받음에 있어서도 다양한 견해에 흔들립니다. 이들 초대 교인 모두는 성령을 받고 복음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이었는데 후대의 우리는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니 그 이해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성경을 깊이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영으로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책망하시면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초대 교회 교인은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뵈옵는 영광을 누렸지만 우리도 역시 영으로 된 예수님을 언제나 뵈옵고 또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바울에게와 같이 현재에도 직접 말씀하십니다. 사랑이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고 바울 서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초대 교회 교인과 같이 반드시 성령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해야 하며 모두가 예수님을 비록 육신으로 뵙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실재로 예수님께서 지금도 때때로 성도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도 하시고 인도도 하십니다. 이런 가운데 성경을 날마다 읽고 정리함을 통해서 그 깊은 진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가야 하고 신학을 할 때 자신이 배우는 신학에 그냥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성경에 대한 이해가 어디에서 비롯이 되고 우리가 믿는 성경의 믿음이 어떤지 스스로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천주교인은 천주교의 망토(덤불) 속에 있고 개신교인은 개신교인의 망토(덤불)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됨에 있어서 개신교인은 오직 믿음이라 하고 천주교인은 그렇지 않다 믿음 + 무언가 행위 하는 것입니다. 이를 500년 동안 서로 양보 없이 신학으로 전투를 해오고 있습니다. 한 권 같은 성경을 두고 이렇게 서로 큰 교파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그냥 그 교파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주장하는 교리가 즉 성경 해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교리로 혹은 망토로 혹은 덤불로 표시를 함은 무언가 성도를 올바르게 자라게 하고 숨쉬게 하는 것을 막는 마치 나무의 정상적이 성장을 막는 덤불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루터, 캘빈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가운데 성경을 가진 이는 오직 루터나 신부 같은 분이셨고 라틴어 성경이 조금 있었고 각국어로 된 성경은 없었습니다.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번역해서 활자로 책을 찍어서 읽던 시절과 지금의 성경 공부 방법을 비교해 봅시다. 지금은 모두가 컴퓨터, 핸드폰을 가지고 있고 각국은 자국어로 된 여러 가지 버전의 성경책이 있습니다. 루터가 성령이라는 단어를 성경 전체에서 찾고, 그 단어가 들어가는 구절을 독일어로 쓰려고 했다면 이 작업 하나만 해도 수 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이 걸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성경앱을 열고 검색 창에 성령이라는 단어를 적고 검색하면, 수초 안에 성령이 들어간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을 컴퓨터가 성경의 책 별로 찾아서 다 보여줍니다. 이를 복사해서 동시에 수십 수백 명이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모든 지구상에 사는 성도는 다 캘빈과 루터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성경의 이해에 있어 깊이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단지 망토(덤불) 속에 갇힌 성도가 수백 년, 천 년 전의 가르침을 성경을 통해서 검토 없이 맹목적으로 그냥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모두에게 묻습니다. 루터가 이신칭의를 논할 때 과연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구절이 구약의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인용이 되었음을 확인했을까? 그리고 그가 이를 확인했다면 그가 하박국서로 가서 그 올바른 의미를 이해했는가? 하고 묻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라야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 로마서 4장 1-16절이나 4장 17-22절이나 야고보서 2장을 루터나 캘빈이 이해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루터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오직 로마서 1장 17절과 3장 21-26절에만 필이 꼽혀 이신칭의를 주장했다면 우리는 속히 이를 이제라도 이런 부분을 확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제 글은 이 부분에 대한 확인입니다. 속히 천주교 개신교 신학자 모두가 이를 확인하고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가 되어야 할 때가 돠었습니다.
루터와 캘빈이 신학자로서 성령도 없고, 전도 경험도 없이 로마서를 읽고 설명했다면 이는 온전한 이해가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이 불완전한 상태에서의 이해를 500년 동안 이와 같은 신학자, 목사들이 답습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천주교는 왜 율법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율법을 온 나라의 성도가 배우고 지켰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너무나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는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를 진실로 이 땅에 세우고 싶다면 이신칭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율법에 대해서 온 세상의 성도가 다 올바로 이해해야 하는데 지구상의 모든 성도입니다. 이제 때는 율법을 성령으로 세워서 온 세상이 투명하고 정의롭고 공평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래 그림은 로마서의 구성 모습입니다 로마서는 홀로 존재하는 성경이 아니라 모든 성경과 관계가 밀접합니다. 전체16장의 로마서에 1189(로마서를 빼면 1173장)장의 신.구약 성경이 압축이 되어 있다고 믿기를 바랍니다. 그냥 로마서를 읽으며 이 압축의 의미를 모르면 절대로 깊은 로마서의 이해로 갈 수가 없음을 밝힌다. 제가 이를 이해하는 데로 아래와 같이 표를 만들었습니다. 로마서는 믿음 부분은 창세기와 하박국서를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반드시 지키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를 벗어나면 완전히 엉망인 로마서의 이해로 갑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를 먼저 잘 이해를 하고 로마서를 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성령에 대한 부분의 이해가 없다면 로마서는 반쪽도 이해가 불가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해 보아야 전도자 바울이 쓴 로마서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이 율법학자로 부르심을 받아서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하고 신 구약을 아우르는 로마서를 성령의 인도로 썼기에 우리는 모세 오경의 율법에 대해서도 반드시 잘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 글을 이런 부분을 조금씩 이후에서 설명을 할 것입니다. 모든 분께 로마서를 새롭게 보고 깊이 이해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현대 기기와 압축 파일을 통한 설명, 그리고 빙산의 일각
로마서는 바울이 기원후 약 57년경에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이때 바울의 나이는 복음을 전한 지 적어도 20년이 지났을 때로 60이 가까웠을 것입니다(넘었을 수도 있다) 바울이 신앙적으로 전도 경험으로 혹은 교회를 세우고 치리 하던 측면에도 성숙한 때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로마서만 하더라도 그 작은 글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저는 현대적으로 볼 때 압축 파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요즘은 긴 파일은 압축해서 보관하고 이를 보낼 수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고자 할 때는 이를 풀어서 즉 압축을 풀어서 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로마서도 먼저 사복음서의 내용을 잘 이해를 해야 되고, 또 사도행전도 잘 이해를 해야 하고 또 모세 오경으로부터 예언서까지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은 후에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단어도 올바른 이해를 하고자 하면 먼저 창세기의 죄로 인한 인류의 타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바울이 이전에 자신이 알던 사람이신 예수님의 이해에서 구약을 통한 예언의 성취를 통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해로 왔듯이 우리도 반드시 예언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믿음에 대한 부분도 창세기(창 15장 아브라함의 믿음)를 이해해야 하고, 율법에 대한 부분도 예언서와 율법서를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들이 다 압축이 되어 있으니 성경 각 권으로 가서 이를 풀어야 보아야 비로소 로마서의 구절들이 정확하게 보입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1173장의 신 구약의 내용을 짧게 압축을 해놓았다고 보면 되니 신약 244장 구약 929장을 반드시 잘 읽고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합니다. 이를 생략하고 압축된 내용을 풀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로마서를 읽기에 우리는 로마서의 이해가 부실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빙산은 보이는 부분은 적지만 그 물속에 잠긴 부분은 거대합니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 타이타닉이 침몰한 것입니다. 로마서도 이와 같은 부분이 있으니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타이타닉과 같이 로마서의 이해에 있어 침몰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라는 의미도 지금 시대에 사도라는 자들이 있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도는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12명만이 사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는데 왜 예수님도 보지 못한 사람이 사도가 되는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나중에 이 사도들의 인정에 따라서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원이라는 의미도 지금까지 그 정의가 참으로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단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이해는 천주교 개신교에서 다르게 이해가 됩니다. 이를 성경앱을 통해서 찾아보면 한국어 개역 개정으로 약 500개 정도 구원이라는 말이 성경 전체에 들어가 있는데 이를 대별하면 죽음에서 살린다, 억압에서 해방한다, 자유 하게 한다, 어떤 상태를 회복한다, 질병에서 놓임을 받는다, 저주에서 벗어난다, 높인다, 곤경에서 건진다 등의 의미가 있으니 이런 의미가 내포된 예수님의 구원 행위를 잘 알아야만 비로소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의미도 역시 그렇습니다. 믿음이라는 의미도 오늘 믿는 믿음인지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인지 쉬다가 믿는 믿음인지를 반드시 이해를 해야만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에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근간이 되는 율법의 이해도 율법이라는 두 단어 속에 있는 모세 오경의 의미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마태복음 5장 17-20, 마태복음 23:23절) 등을 정말로 올바로 이해를 해야만 비로소 율법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율법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로마서의 올바른 의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예수님의 종인 인간 바울이 성령으로 쓴 로마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의 틀 안에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말씀의 틀을 너무나 벗어난 이해가 주류이니 속히 고쳐야 합니다. 종이란 자의 글이 주인의 뜻에 반하면 질서가 없어지는데 바울은 한 순간도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 후대의 신학자가 바울의 로마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학설로 교리로 어설프게 주장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속이 이를 제거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는 주류 신학 자체를 다 고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천주교 개식교가 다 고쳐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의로우신 분이라는데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복음은 사랑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정의가 있습니다. 이 정의로부터 이신칭의가 나오는데 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목이 마르지 않으면 절대로 로마서의 이해가 어렵습니다. 세상에서 불의로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정의롭게 살려고 몸부림 쳐본 경험이 있는가?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다 세상의 불의에 절망한 경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별로 목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율법이 사라진 남 유다 말기의 하박국과 같은 삶과 심정)
자본주의의 혜택 하에서 수십 년, 수백 년 먹을 것을 쌓아두고 대대로 자녀가 돈의 고통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믿고 그렇게 살고자 한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침묵하게 되고 목이 마르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단언코 로마서의 절반도 이해가 되기 어렵습니다. 하버드든 옥스퍼드든 예일이든 이렇게 된 신학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샌달이나 혹은 롤스의 정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샌달에 넋이 나간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진실로 한 때의 정의이며 자본주의의 정의이며 복잡한 정의입니다. 학자가 아니면 알 수도 없는 정의를 어찌 정의라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학자의 좁고 복잡한 견해일 뿐이며 진리가 아닙니다.
현시대는 정의에 목이 마르다 하면서 샌달을 찾고 롤스를 찾지만 가장 정의의 선봉이며 으뜸이며 완성자인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가장 정의로운 법 율법에 대해선 많은 성도가 그냥 침묵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잘 사는 것이 삶의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진실로 자본주의 자유주의와 다른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고 우리는 이 나라를 성경적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 모두가 알고 세워야 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국적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고향과 본토를 초월하고 모든 세상의 것을 초월해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예수님의 피로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로마서에는 하나님의 가을의 서리(추상)와 같은 냉철한 의가 표현이 되어 있고 이 의로부터 믿는 인간에 대한 의가 나옵니다. 이 칭의 속의 숨겨진 의미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자는 모험을 감행해야 합니다. 깊은 바다! 차가운 빙산을 보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물 속으로 내려간 자가 로마서의 깊은 차가운 물에 잠긴 부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전도를 통해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바울이 그렇게 했듯이 세상에 사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고난과 어둠의 세력과 싸운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로마서의 추상과 같은 정의를 체험하고 그 깊은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박국과 같이 살면서 불의에 대해서 치를 떨고 불의로 모든 소망이 다 없어졌을 바로 그때 모세 오경을 보면서 비로소 안도와 희망을 가져 본 자라야 성경 율법을 보면서 그 정의로움에 안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로마서의 표현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란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와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이 절대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케 하려고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것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와야 로마서를 조금 이해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로마서는 이런 의미입니다. 로마서 3장 21-26절로 하나님의 의가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로마서를 잘 이해하는 중심이 되는 구절이니 특별히 풀어서 설명을 드립니다. 이 구절을 올바로 알고 로마서로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글 번역과 영문 번역을 보면서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영어를 알면서도 이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가장 큰 축복을 버리는 것입니다. 영어를 배움은 온 세상의 믿는 사람과 하나 됨을 위함이요, 말씀을 잘 이해함이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영어는 성도에게 특권 중의 특권이니 이를 잘 활용하시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 3장 21-26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서 믿음으로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개역개정, 공동번역, NIV)
21.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26.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제가 영어를 주어와 동사를 색을 다르게 했고 끊어놓았습니다. 개역개정만 보신 분은 율법 외에 한 의라는 표현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는 부분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 모든 분께 이 구절이 어렵게 느껴지고 로마서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천주교와 개신교가 로마서로 서로 나누어졌고 그 주장을 서로 옳다고 굽히지 않고 500년 동안 다툰다는 내용을 알면 내가 아는 것이 맞는가 하고 또 걱정이 되니 이리저리 로마서는 어렵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천주교는 어떻게 해석을 했나 보면서 더 쉽게 풀어놓았으면 그 이해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직 개신교만 옳다고 믿고 개신교 성경 이외에는 이상하다 하면 개역 개정만 죽도록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헬라어 본문에서 해석 혹은 번역으로 나온 성경은 크게 천주교,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번역이 있고 이도 각 나라말로 다양하게 번역이 되어 있어서 개역개정은 수백 수천 개의 번역 중에서 한 번역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150년이고 이제는 한글로도 5개의 번역이 있으니 용기를 내어서 본문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국의 성경의 이해도 세계적으로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면 여기저기 흔들리지 않고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대한 열정을 막을 이는 없고 개신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으면 이단에 가는 사람도 있고 천주교로 가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로 이단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대한 갈증과 타는 갈급함이 있는 사람이 선생을 찾아서 헤매다가 이단에 가는데 이는 정통 교회의 문제입니다. 이들의 갈증을 저는 모두 해결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글을 읽는 모든 영적인 갈급함과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분께 성령을 충만케 하셔서 시원하게 혹은 따뜻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반드시 그런 일이 있을 줄로 굳게 믿습니다.
성경의 이해는 단 시일에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사님의 가르침을 먼저 잘 받고 내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삶에서 전도와 선행을 성령의 인도로 하면서 성령의 조망에 따라서 한 가지 한 가지 새롭게 이해를 하면서 그 이해가 느는 것이지 한 번에 어디서 진짜다 하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은 누가 검증합니까? 저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렇게 온 세상에 누구나 보고 검증하게 글을 올리니 차근차근 여러 글을 읽어 보시고 잘 판단하시고 믿으시면 되는 것입니다. 120개국 이상에서 적어도 50만 명이 보았지만 제 글에 대해서 이의를 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감사였습니다.
천주교 번역은 예언서와 율법서가 증명한다고 더 쉽게 풀었습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여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읽어버렸다고 설명합니다. 더 쉽습니다. 25절도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더 쉽게 이해가 되게 합니다. 그런데 의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설명을 했습니다. 이제 조금 더 나아간 이해로 영어를 봅니다. 제가 마지막 영어는 절을 없애고 그냥 문장으로 새롭게 배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의 의가/ 율법과는 별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의는 율법(모세 오경)과 예언자들이 증거한 것입니다.
이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누구냐 하면 믿는 사람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합니다. / 그리고 모두가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 그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서 /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어 주셨습니다. / 속죄의 제물로서 /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그분은 이를 하셨습니다./ 그의 정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 왜냐하면 그의 길이 참으시는 중에/ 그분은 미리 우리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전에 지은 죄를 벌하지 않고/ -- 그분은 그분의 정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 현재 시점에서 / 정의롭고 /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위의 내용을 구글 번역에 넣고 아래와 같이 해석을 받았습니다.
21 22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것이라.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라.
23 24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25 하나님께서 그를 화목 제물로 세우사 그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느니라.
26 이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 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지금 이 시대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이시니라.
이제 제가 이를 풀어서 모두가 더 쉽게 이해가 되게 하겠습니다. 이 구절이 로마서의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구절보다 더 중요하고 로마서 1장 17절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율법과 별도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이며 성경의 가장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통치의 근본으로 각국에 가장 최상위에 헌법이 있듯이 이 율법은 온 인류의 공통적인 헌법이며 모든 성도의 헌법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 법대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알든 모르든 이 법의 통치를 그대로 온 인류는 받습니다. 사는 동안에도 그렇고 죽고 난 후 영생과 영벌의 기준이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그리고 신실함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 인간을 포함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장 오랜 시간 존속하는 거룩한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우주 만물이 사라져도 일점 일획 변치 않고 존재한다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를 이스라엘 역사 1000년을 통해서 정확하게 보여주셨고 우리 인간의 역사를 보아도 역시 모든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고 그 통치는 법치로 율법에 의한 통치입니다. 그런데 법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가 그대로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하면 의인데 이 율법과 별도의 의가 이번에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는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서를 통해서 율법서(모세 오경)를 통해서 이미 증거가 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율법과 다른 의가 율법서와 예언서에 있다고 하시니 우리는 이를 찾아서 보아야 합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모세 오경 중에서 창세기에 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롭다 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서의 하박국서 2장 4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에 기록이 된 바와 같이 믿음으로 오는 의가 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가 있습니다. 즉 율법서에 기록이 된 조항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닌 이미 예언서와 율법서에 기록이 된 믿음을 통한 의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이 오는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온다고 하십니다. 21-22절이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즉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와 너 모두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를 잃어버린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죄가 없다면 에덴에서 늙지도 병들지도 그리고 수고도 하지 않고 영생을 누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창조하셨는데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도록 창조하셨는데 우리의 죄로 인해서 이를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낙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대속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누구나 이 하나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대속을 믿기만 하면 아무 값도 없이 의롭게 되기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23-24절입니다.
25절을 봅니다. 이 구절의 복음이 핵심입니다. 로마서에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다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 5장 8절을 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하는 것은 레위기의 제사를 설명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흠이 없는 양이나 소를 잡아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성막에 가서 혹은 성전에 가서 제사장과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의 죄를 씻어야만 하나님 앞에 나가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님 즉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내어 주는 사랑 그 사랑으로 우리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는데 이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모두의 죄를 씻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자신이 의로운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26절에 있는데 이 부분부터 잘 보아야 합니다. 누가 설명을 잘 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에서 밑줄 친 this는 앞의 문장 전체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그분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 이를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신 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희생이나 피 흘리심이 없이 누구를 용서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율법에 의하면 죄에는 대가가 반드시 따르고 죄는 대가가 죽음과 피 흘림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즉 죄에 대한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신세가 되어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총이 값이 없이 우리의 희생이 없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 은총은 너무나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큰 희생으로 옵니다. 즉 하나님의 죄에 대한 처벌로서 오는데 그 처벌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에게 대신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법대로 우리를 죽게 그대로 두어야 하나 우리 대신 예수님을 피를 흘리시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대속을 믿는 이를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그분의 정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해선 절대로 피 흘림이나 죽음이 없이는 용서가 불가하다는 것으로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이 최후의 심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죄는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없고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 죄에 대한 처벌을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받게 하심으로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길을 은총으로 주셨지만 이를 믿지 않는 자에겐 틀림없는 죄에 대한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죄는 두 가지 방법 외에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를 받든지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떤 방법의 해결책도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로서 모든 세상에서 악하게 살고 마음대로 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겐 틀림없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존재함을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인생의 순간이고 하루살이나 불나방과 같이 순간의 권력욕이나 재물의 욕심에 죄를 범하는 인간의 말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결단코 피해 갈 길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죽음으로 내어 모는 사건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이렇게 죄에 대해서 무서운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같이 나타나 있음을 굳게 믿으시고 절대로 죄에서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셔서 그 아들의 피와 죽으심과 수치와 조롱을 통해서 구원하셔서 그 백성이 된 죄인이 이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정말로 예전과 달리 죄를 멀리하며 정의롭게 살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십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정의에 대한 법적인 글인 것입니다. 율법학자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아서 그리고 그의 전도 경험과 교회를 세우고 치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로마서를 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검사, 판사, 법률 교수와 같은 분을 강제로 선택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전도하게 하시고 이렇게 로마서를 기술하게 하셨으니 로마서는 지금의 검사, 판사, 그리고 변호사와 법대 교수가 예수를 믿고 성령의 도움으로 설명하되 반드시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해하고 설명을 해야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한국의 법학자들이 자격이 있으니 이 영광에 도전하시기 바라며 법을 전공하신 분이 아니시면 당연히 모세 오경을 잘 배우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세 오경의 공부에 머리에 지진이 나야 비로소 신약 시대 말씀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지도자는 반쪽으로 설교도 공부도 가르치나 이렇게 성령을 받고 신 구약을 바울과 같이 배운 사람에게 그 사람의 일생의 공부는 진실로 부족하고 부족하게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은 인간의 능력을 상상도 못하게 초월하는 것입니다. 성령 없는 아볼로는 유대인이며 지도자였으며 율법학자였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았습니다. 복음도 전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천막을 만드는 천한 일을 하는 필부 브리스길라 아글라 부부가 보기에 반쪽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아느냐 물으니 아는 바가 없다 하니 성경을 풀어서 설명했다고 하는데 성령을 소개하고 받게 했을 것입니다. 이제 온전한 아볼로가 잘 전합니다. 마치 옛 사람 바울이 예수님을 뵙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서 사도 바울이 된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서는 저자가 없는데 이 아볼로가 복음을 전해서 제사장을 이겼다고 하니 이 사람이 가장 가까운 저자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배우는 즐거움이 지상 최고 최선입니다. 성령과 함께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전도하면서 선행을 베푸면서 일생을 배우는 즐거움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미리 간과하셨다는 구절이 또 이해가 어렵습니다. 죄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우리가 원죄도 있고 자범죄도 있는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간과 즉 처벌을 즉각 하지 않고 이를 참으시는 것이 어려운데 참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고 또 희생하게 하신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간과와 용서와 처벌은 다릅니다. 간과는 죄를 보시고 그냥 처벌도 용서도 아니하시고 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자신의 지갑에서 큰돈을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시 불러서 야단을 치고 돈은 내놓아라 해야 하는데 우선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참기에 절대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 돈이 액수가 크고 긴급한 자금이었다면 더욱 참기 어렵습니다. 돈에 대한 회수와 아들의 악행에 대한 처벌을 바로 하고자 하는 것이 보통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기회를 주시면서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미리 하나님께서 하셨으니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이 간과에 대한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보면 대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 이전의 행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간과가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길이 참지 않고 모든 우리의 과거에 죄에 대한 처벌이 있었다면 즉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가 재산이 다 날아가고 우리가 병이 들고 우리가 이미 죽어서 없어졌다면 예수님의 대속의 의미는 많이 작아질 것입니다. 이미 벌을 받고 낭패에 빠진 사람에게 너 죄를 용서할 길이 열렸다고 하면 누가 이를 믿겠습니까? 즉 여러분이나 저나 흉악하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간과하시고 계셨습니다. 즉각적인 처벌이 없이 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바로 용서를 하시는데 없는 것과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는 이와 같지만 세상의 처벌은 세상의 처벌대로 가는 것입니다. 금당살인 사건의 살인범 박 철웅은 사형을 언도 받고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수백 명에게 복음을 전하며 편지도 자신의 동생 천웅에게 남겼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읽고 바로 성령의 감동이며 모든 죄를 회개한 사람임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살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처벌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은 사형이니 그분의 사형이 집행이 되었으나 저는 그분이 천국에 있는 것을 확실히 믿고 저도 역시 그분 못지않은 흉악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직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이 글을 이렇게 쓰게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간과가 있고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그런데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 편에서 길이 참으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악인이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냐 하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사는데 이는 죄를 알고도 용서하기를 바라시며 그분의 아들을 피를 흘리고 죽게 내어주신 정의로우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을 너무나 무시하는 행위로 절대로 최후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이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죽기까지 회개를 하지 않았을 때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절대로 부러워 말고 절대로 따라갈 생각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모든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온 천하에 밝히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역시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사람이 정의롭게 되고자 하면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배우고 기억해서 예수님을 믿고 정의롭게 되어라 하는 온 인류의 초대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도 나타나 있지만 이렇게 추상과 같은 정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반드시 사랑을 강조하는 만큼 강조를 해야 성도의 도리 교사의 도리 목사 신부의 도리를 다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정의를 외칩니다. 정치학은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한문입니다. 법학도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학문입니다. 법으로 정의를 세우고 정치로 정의를 세우고자 인간은 애를 쓰나 진정한 정의롭게 되는 길은 겸손히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법이 무너지고 정치가 무너지면 불의한 세상이 되고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증명합니다. 이 불의한 세상을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면서 정의롭게 해야 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예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의롭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두려워도 말고 기죽지도 말고 담대하게 정의롭게 오늘도 세상의 악과 싸워서 이겨야 비로소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서는 것입니다. 부디 사랑만 아는 반쪽 신앙에서 신약만 아는 반쪽 성경의 이해에서 벗어나 사랑과 정의 신약과 구약을 다 같이 아는 성숙하고 어른 같은 성도가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른은 누가 말을 하면 귀를 기울이나 어린애는 조금 안다고 귀도 마음도 닫고 막 가는 사람입니다. 부디 신앙의 어른이 되길 기도합니다.
<율법보다 더 크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율법보다 더 크신 성령님을 믿고 받아서 율법을 잘 지킨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신 것은 율법보다 더 크신 분, 율법을 이스라엘에 주신 분이 직접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먼저 바라보고 그분의 명령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바울도 12 제자도 개신교인도 천주교인도 그리고 이스라엘인도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분의 제자의 글 로마서 등을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로마서를 이해하는 질서입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에서 율법을 따라가다 이제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는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모세를 통한 율법을 통해서 온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의 100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결국은 율법에의 불순종으로 멸망했습니다. 400년의 침묵기 중간기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하십니다. 예수를 믿어라! 는 외침은 예수님 없는 오직 율법만 있던 이스라엘에 또 율법도 없는 이방인에 천둥과 같은 소리입니다. 긴 인간의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놀라운 외침으로 온 우주가 새롭게 반응하고 온 지구에 생기가 도는 놀라운 외침입니다. 예수는 세상을 사랑하시는 구세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우주의 운행을 관장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작은 전도자의 입에서 울려 펴지는 “예수를 믿으세요” 이 전도의 메시지는 온 우주에 생기를 돌게 하고 온 지구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적과 같은 짧은 그렇지만 강력하고 위대한 외침입니다. 천국에서 예수님께서 화답하시며 천사가 기뻐하고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믿음의 선진이 박수를 치게 만드는 외침입니다. 그리고 한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천국의 의인 99명이 잔치를 하는데 옥중의 윤 대통령의 회개와 믿음은 그렇게 온 천국이 잔치를 베푼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 잔치에 지상에서 대형교회 목사로 예수님의 종이라 하는 자가 찬물을 끼얹었으니 이들이 진실로 예수의 종이 아니라 마귀의 종임을 만천하에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저는 압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구원을 얻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대로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고 이제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을 지켜 완성해야 합니다. 로마서나 서신서의 예수님을 믿어라 하는 의미는 이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특히 율법에 빠진 이스라엘에겐 이젠 과거의 방법 율법을 따라서 살던 삶에서 예수를 믿는 삶으로 속히 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율법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자 하면 과거의 행실을 버려야 하는데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악한 자신의 행실을 버린다는 말씀이지 율법을 버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그대로 있고 오직 먼지와 같은 죄인인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행실을 새롭게 하는 회개를 한다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악행과 나쁜 습관은 두고 율법을 버린다고 착각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바뀐 바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마지막 방법입니다. 이를 에스겔서 28장 24-28절로 잘 나타내었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은 노아 홍수로 노아 가족 외에 지구상의 사람과 동물 모두를 쓸어버린 분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불로 멸망케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택한 민족 이스라엘과 주변의 나라를 멸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약속대로 최후 심판으로 모든 세상을 멸하시고 심판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 기준은 성경의 율법입니다. .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의 죄를 용서받고 그 이후에 짓는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는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인간은 최후에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없던 시대는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법으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과 정의입니다. 이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게 창조하셨고 이 사랑과 정의를 지키도록 각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고 불의하게 살 때 양심이 자신을 찌르게 하셨습니다. 양심과 심장과 깊은 연결이 있습니다. 심장에 병이 생기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 불의하게 살아서 양심이 아프다 아프다 썩고 문드러져서 병들게 될 때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살면 양심과 깊은 관련이 있는 심장에 병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죽은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을 통해서 산다는 의미에는 이렇게 병들고 썩은 양심이 새롭게 회복되어 살아난다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양심의 회복이 구원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다 사랑하다 무정하고 못나고 못난 사람을 만나서 속이 문드러진 사람의 심장도 아프고 아파서 병이 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잘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이해할 수가 있는 가장 가능성이 크신 분들이십니다. 아버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동시에 나타나 있습니다(로마서 3장 21-26절> 이 부분은 앞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의 로고입니다.
로마서의 성령 부분의 이해도 갈라디아서 이해와 똑같이, 성령을 받고 성령과 동행하며 전도를 해 본 전도자의 심정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성령에 대해서 온 생애를 통해서 교회와 성도를 통해서 가장 잘 나타내신 분이 한국에 계셨던 조용기 목사님이십니다. 기독교 2000년 동안 성령님을 가장 몸으로 삶으로 목회로 성도와 함께 잘 나타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먼저 로마서를 읽기 전에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 성령을 이해하시고 그 다음에 로마서를 읽기 바랍니다. 로마서는 이와 같이 참으로 그 올바르고 깊은 이해에 접근하기 어려운 성경책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노력이 별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4. 법적 성격이 강한 로마서
로마서의 저자는 바울이며 바울의 삶과 지식과 이를 바탕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바울의 로마서입니다. 신약 성경에 있고 성경의 다이어먼드라고 불리우는 중요한 책입니다. 당연히 바울 사도의 지식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학자로 당대 최고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이며 율법으로 흠이 없고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에게 수학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같이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을 같이 성도에게 나누고 먹일 율법학자가 너무나 필요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원리를 알고 저는 고대 법대생을 약 10년째 쉬지 않고 격려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으로 성경의 기본입니다 혹자는 성경을 한 마디로 줄이면 법이라 했습니다. 고대 법대생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려고 법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다 너무나 정확하고 통찰력이 있는 귀한 명언입니다. 모세 오경을 주시면서 이를 중심으로 지키면 복을, 어기면 저주를 한다고 선포하고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으니 구약입니다. 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벌도 주시고 축복을 주신 역사가 역사서입니다. 이 역사에서 노래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고난과 지혜를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기록한 책이 시편이고 이 역사에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올바른 길로 가게 하고자 쉬지 않고 선지자를 보내서 위로하고 책망한 책이 바로 예언서입니다. 그리고 율법과 예언대로 그대로 오시고 그대로 사역하시고 그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록한 책이 사복음서이며 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은 사도와 성도의 삶과 교회의 설립과 확장을 기록한 책이 사도행전이며 사도들이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 쓴 편지가 서신서이고 종말의 내용을 다루는 책이 계시록입니다. 이제 모세 오경 율법이 모든 성경의 기초이며 율법학자가 성경을 가장 깊이 넓게 이해할 자격을 갖춘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학자를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율법의 정신을 어기고 형식적으로 조문만 지키면서 위선자로 사니 정의로우신 율법을 이스라엘에 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격노하시고 이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이스라엘을 택하신 분의 책망을 인간의 소리로 착각한 목이 곧은 당시의 이스라엘의 지도자 특히 율법학자 제사장 등은 예수님을 심히 싫어하고 배척했습니다. 바울도 이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죽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일에 너무나 율법학자 지원자가 없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한 사람을 구원해서 사용하시기 위해서 직접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바울이 만나서 혼이 나가고 정신이 나가고 혼비백산해서 예수님 앞에서 부복하고 회개하고 예수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자신이 배운 율법을 통해서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더 깊이 이해한 이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롭게 된 새 피조물 바울은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서는 이런 바울의 율법의 삶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그대로 녹아있는 완전히 법적인 서적입니다. 그래서 법적 마인드가 없는 사람에게 어렵고 어려운 것입니다. 크게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 온 세상의 사람이 다 죄인임을 선포합니다. 죄의 조항이 율법이 있기에 죄형 법정주의가 3500년 전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죄에서 용서를 받고 간과를 받는 방법과 길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다 율법 앞에 심판을 받게 됨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쉬지 않고 율법과 행위, 율법과 죄, 율법과 양심, 율법과 믿음, 율법과 자유, 율법과 심판에 대해서 논의를 합니다. 그렇기에 어찌 율법을 모르고 로마서를 보고 이해하고자 합니까?
이제 율법학자를 간절히 찾으시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비유장 마태복음 13장 52절의 말씀입니다. 개역개정으로 보면 누구나 이해가 어려우니 공동번역과 영어로 보면 대부분 내용이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이 구절의 이해를 통해서 여태까지 가진 성경의 이해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13장 52절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 그러므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모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 즉 율법학자는 그의 창고에서 새 보물도 꺼내고 옛 보물도 꺼내는 집의 주인과 같이 된다."]
제가 영어를 위와 같이 번역했습니다.
이 구절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성경의 설교자 혹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바울과 같이 율법을 잘 배워야 됨을 설명합니다. 율법을 모르는 모든 교사 목사 신부 혹은 성경 연구가는 다 반쪽의 사람입니다. 절대로 보물의 주인이 자신의 보물 창고 즉 신 구약 성경에서 새 보물을 때에 따라서 꺼내서 나누고 때론 옛 보물도 꺼내서 나누는 사역과 같은 사역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보물을 나누는 직업은 예수님의 사역에 해당합니다. 이 귀한 지구상 최고의 사역에 동참하는 개인은 누구나 죽을 힘을 다해서 율법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나누는 사역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지금의 유대인도 브리스길라 아굴라가 하듯이 바울이 하듯이 당당하게 전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유대인 즉 이스라엘의 구원이 열릴 것입니다.
로마서의 이런 특징을 모든 로마서 독자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의 압축성, 빙산의 모습, 그리고 경험성 등이 특징인 책임을 반드시 조금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율법학자 바울의 법적인 책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율법학자와 같이 잘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오랜 시간 로마서의 한 구절을 두고 믿는 이들이 서로 다투며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다 결합이 되고 얽혀서 기록이 된 책이 로마서 이기에 그렇게 오랜 세월을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원하는 모든 성도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전도를 하고 교회를 개척해서 바울과 같이 목회를 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정의롭게 살면서 세상과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목자나 선교사에게 비로소 로마서가 잘 열리리라(이해되리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특히 율법서를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물론 또한 로마서를 통해서 온 성경에 다 더 가까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진실로 잘 배우고 싶은 성도는 만약에 자신이 이렇게 하지 못하면 그렇게 삶을 살면서 로마서를 올바르게 이해한 목자에게 가서 배우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전하는 저도 선교 경험이 없고, 교회에 대한 목회 경험이 없기에 역시 로마서 이해에 있어 많은 부족함이 있습니다. 영어나 헬라어에 또 많은 부족이 있기에 역시 로마서를 이해하는 데 저는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율법의 중요성을 보면서 잘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깨달은 것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 자료를 통해서 로마서에 더 가까이 가시고 바울과 같이 살면서 이해한 로마서를 온 세상에 잘 전하는 귀한 전도자들이 속출하시길 바랍니다.
부디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일꾼들이 이 한국 땅에서 속속 등장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큰일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세계적인 일꾼이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온 세상의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이곳 한국에 주님의 평화와 위로와 축복이 임하길 간절히 빕니다.
이것이 내 자녀와 후손에 가장 복된 삶을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가 남겨주는 유일하고 가장 좋은 길입니다. 공부를 많이 시키고 돈을 많이 물려주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인구가 줄고 젊은이가 직장이 없고, 자살자가 끊이지 않고, 정도 메말라지고 온 한국의 땅에 마음 놓고 마실 물이 없어지고, 미세 먼지로 마스크가 없이는 하루도 이 땅에서 살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상태의 현실에서 나 홀로 이 땅에 남아서 형제도 없이 정을 나눌 친구도 없이 오직 물질만 가지고 삭막하게 산다면 그 인생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이는 자본주의 자유 경쟁의 원리에서 근본적으로 비롯이 된 것입니다. 경쟁에 진 자는 어디 가서 호소도 못하고 실패자로 낙오자로 아무도 신경도 써주지 않고 관심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쓸쓸히 인생에서 퇴장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행복은 함께 더불어 사는 곳에 있습니다. 천국은 그런 곳이라 믿습니다.
반대로 자유경쟁으로 경쟁에서 이긴 자도 실상은 살 맛이 사라지는 곳이 한국입니다. 너무나 삭막하고 몰인정하며 여유가 없고 평화도 안식도 없는 모두가 눈을 뜨면 피곤한 몸을 안고 또 경쟁에 나서야 합니다. 오직 희망은 그대! 정의에 목이 마른 그대!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바로 성도 여러분들입니다.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는 이 땅에 살맛이 나고 모두가 모두를 품고 함께 배려하며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한 나라를 건설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구원의 진정한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절대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멋진 하나님 나라를 품고 사랑하며 세우기 위해서 분투하는 모든 이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부디 두 말 마시고 율법을 잘 배우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앞서서 지금 바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에 기초 자료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 Ⅱ 편 바울의 심정에 대한 이해
1. 당시의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 바울의 외침(모든 이들이 하나가 됨, 율법의 역할, 지금의 유대인을 전도함: 동포여! 구원을 얻는 방법이 바뀌었다!! 율법이 아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다고 율법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하고 세운다))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
1. 당시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은 여러 계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로마의 속국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제사장들이 있어 공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로마 전역에 흩어져 살면서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서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율법의 규정에 따른 모든 유대인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바리새파 즉 율법학자와 같이 율법의 조문을 잘 배우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유대인은 구약을 믿고 그대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과 율법학자(서기관)등이 지도층이 되어서 율법대로 살려고 했고 바울도 율법을 배우고 지킴에 있어 첫째가 되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전통이 지금의 유대인에게도 전해져서 유대인 중에서 자녀들을 모든 학문에 앞서서 모세 오경부터 배우게 하고 특히 레위기를 외우게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유대인들은 로마와 헬라의 문화와 그리고 자신들이 흩어져서 사는 곳의 관습과 법을 지키면서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늘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들이 그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려고 했고, 율법에 대해서도 할례와 머리를 깎는 것 등에 있어서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배우고 체험한 대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늘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바울 사도의 복음이 당시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 보낸 바울 사도의 서신서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서신서를 쓴 바울 사도의 심정을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율법을 이해하는데 대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2. 바울의 심정과 외침
바울 사도는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베냐민 지파의 사람으로 율법을 배우고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에게 수학했습니다. 율법을 조문조문 흠이 없이 지키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 유대교에 대해서 큰 신념을 가지고 오직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만 믿고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전통을 지닌 유대인만이 오직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다윗 왕과 같은 강력한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의 민족을 당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 굳게 믿었었습니다. 수천 년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왔으니 이를 그대로 믿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아서 수천 년 내려온 율법 전통의 이스라엘과 이방인에서 외친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바로 그 후 2000년 동안의 온 세계 역사를 선도하고 지금의 세계에서 가장 주류가 된 “예수를 믿으세요” 였습니다. 때론 율법과 전통과 복음에서 큰 고민이 있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2000년 전 바울이 아직 율법학자일 당시에 인간 예수가 나타나 스스로 구세주라 외치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예수님으로 인한 일들이 다 끝이 난 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들에게 선물로 임하시고 성령을 받은 성도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이 확산되자 전혀 새로운 양상이 전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유대교를 위협하는 무리로 믿고 잡아서 옥에 가두고 핍박하는 일을 도맡아서 했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유대교에 열정적이었고 자신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고 택한 백성으로서 천국에 가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바리새인 율법관, 천국관)
그래서 첫 순교자 스데반이 잡혀서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서 스데반을 죽이는 무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울로서는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는 무리를 잡아서 가두는 일에 광분하고 있던 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었습니다. 예전의 육체로 있던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시자 바울은 말을 타고 가다가 바로 눈이 멀면서 말에서도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살면서 한 번도 꿈도 꾸어 보지 못한 일이 자신에게 발생하자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있던 모든 신념 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뿐만 아니라 인간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오시면 혼비백산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무나 놀라고 당황해서 혼이 나간 상태에서 누구시냐 물으니 음성이 들리는데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안에 들어가서 아나니야를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대로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지구상의 어떤 인간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면 온전히 제 정신으로 있을 사람이 절대로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났다고 온갖 고난에도 자신을 꺾지 못했던 욥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꼬꾸라진 것과 같은 일이 바울에게도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단언코 창조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실재로 오시면 제 정신으로 버틸 지구상의 인간은 한 명도 없습니다. 잘난 채 할 필요도 잘난 채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인간이 공부를 조금 잘하고 인간이 조금 더 아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정말로 별것이 없습니다. 미천한 저도 바울과 같은 경험을 하고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명령이 예수님으로부터 내리는데 성안에 들어가면 아나니야란 사람이 있으니 그를 만나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눈이 멀어버린 바울이 할 가장 최우선 순위가 아나니야를 만나 눈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전과 같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는 일은, 이제 바울의 마음에서 1%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정말로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이 인간 앞에서 뭐가 조금 더 낫다고 우쭐대거나 혹은 못한 사람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진실로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신학자들의 인간적인 성경 이해는 실로 별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바울 기독교의 창시자인가 예수님의 종인가?” 하는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신학자는 바로 알 수가 있는 내용도 이렇게 길게 풀어서 살핍니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이 하던 일이 잘못되었음을 순간적으로 인식한 바울은 아나니야를 만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렇게 회개한 바울 사도에게 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바울이 성령을 받으니 성령께서 자신이 너무나 깊이 잘 알고 믿고 있던 구약의 모든 내용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요, 말씀임을 알게 하십니다. 바울이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기 잘못을 알고 완전히 회개하고 다시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서 일생을 살았다는 점입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기도하고 훈련을 받은 후에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성령의 인도로 힘 있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당시에 예수를 믿던 유대인들이 자신을 핍박하던 자가 변해서 도리어 예수를 전하니 이상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이 그간의 경위를 말하자 베드로 등이 형제로 받아들이고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삼층천에도 가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다양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바울이 조금도 누리지도,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자신에게 생기고 성령께서 음성으로 순간순간 명령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는 것을 쉬지 않고 들었습니다. 다양한 핍박을 받으면서 언제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자신을 사랑하며 돕는 것을 늘 체험하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오심으로 이렇게 놀라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며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와 능력을 체험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약 20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그 모든 율법 지식과 선교 경험의 바탕에 성령의 감동으로 비로소 로마 성도들에게 로마서를 써서 로마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이 책이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당시 자신이 세운 교회에 들어온 어떤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들은 성령을 받고 자신과 같이 되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바울이 예전에 믿던 모습대로 율법을 먼저 지키고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무리를 많이 보게 되었으니 바울 사도로선 격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이들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너무나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원하시는 일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지금 교회에 성령도 없이 회개도 없이 지식으로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되어서 교회를 세상의 빛이 되게 하지 못하고 소금도 되지 못하게 하는 자들의 행태를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절대로 성령을 인정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경험도 체험도 선물로 없기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달달 외우고 모르는 부분이 없어도 성령이 없으면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이 즉 회개도 없고 성령도 없는 무리가 예수를 믿는 무리 속으로 들어와서 그들에게 율법을 먼저 알고 배우고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그들 스스로도 율법을 잘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세운 교회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이렇게 가르치니 이 무리를 바울이 그냥 절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무리를 쫓아내고 이 무리들에게 배운 성도들을 바로 잡고자 로마서를 비롯한 편지(갈라디아서 등)를 쓴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배우는 로마서는 바울이 가보지 못한 교회즉 성령께서 성도들과 직접 세운 교회 로마 교회에 편지로 보낸 것입니다.
이 바울의 마음을 그대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의 마음 속의 외침을 우리는 먼저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당시의 이런 상황을 반드시 로마서를 공부하는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아니다! 아니다! 흩어져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아! 그들 즉 가만히 들어온 유대인들이 가르치는 데로 그렇게 믿으면 절대로 아니 된다. 그렇게 살아서도 아니 된다. 예수를 먼저 알고 올바로 믿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를 믿으려면 먼저 회개를 하고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바울의 사역을 보면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은 자, 요한의 세례만 받은 자, 성경은 많이 아나 성령 세례에 대해서 모르는 자들에게 모두 성령을 소개하고 받게 합니다. 그리고 또 외칩니다. 너희는 이미 예수를 믿고 성령도 받은 거듭난 성도이다. 이제 너희가 할 일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일이다. 성령의 인도를 제쳐두고서 가만히 들어온 율법주의자들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따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고 외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 중에는 이미 이렇게 믿고 성령까지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 잘못된 유대인이 성령도 모르니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선을 행함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을 당연히 몰랐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지금의 크리스천에게도 신학자 목사 신부에게도 다 해당이 되는 지적입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예수님의 도구 김정관 목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하지 못하는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 그리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달성해서 율법이 해와 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인데 아예 이 목적을 처음부터 어긋나게 하니 예수님의 종 바울은 격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바로 이 두텁게 쓴 내용이 무엇이야 처음 보는 내용인데 하는 분은 이 글을 진실로 끝까지 정독을 하셔야 하는 분입니다. 정말로 모든 성도가 올바로 이해하는 되는 내용입니다. 성경의 핵심이고 성도의 필수 이해 사항입니다.
이들은 단지 성령의 인도에 앞서서 우선 율법의 준수만 강조했고 실제로 이들은 예전의 엄격한 율법을 지킨 바울과 달리 율법을 자신들도 지키지도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격도 없는 자가 선생이 되어 성령을 받은 착한 이들을 꾀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에게 속아서 흔들리는 성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끝나려고 하느냐 하는 표현) 바울 사도는 이런 상황을 바로 잡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를 꾀어서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는 무리일 뿐입니다. 지금도 이런 무리가 교회의 지도자로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성령도 없고 율법도 없는 모든 목사, 신부, 신학자는 이런 자들과 별로 다를 바가 진실로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인도로 이들과 싸울 것입니다. 이들의 위선과 거짓을 밝혀서 교회를 올바로 세울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본분이요, 바램이요 상급입니다.
실로 이들이 성령을 받고 올바로 가던 성도를 꾀어서 잘못 가게 하니 바울이 편지로 다시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다시 이를 다시 반복해서 설명하면 회개도 없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율법을 조금 알고 자신은 지키지도 않는 못된 유대인 무리가 예수를 잘 믿는 무리 속으로 들어와서 율법을 먼저 알고 배우고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당시 바울이 세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가 사랑하는 성도에게 이렇게 가르치니 이 무리를 바울이 그냥 절대로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성도들에게 예전에 예수님도 모르던 시절의 바울이 율법을 믿고 행한 것과 같이 그렇게 율법을 믿고 행하도록 가르치니 바울이 이를 막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아니다! 행위도 아니다!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제는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해서 율법을 완전케 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능력도 행해야 한다. 이 부분은 사도행전의 부분을 현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내가 다시 강조를 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미 성령을 받은 바울 당시의 성도는 다시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이 충만만 받으면 될 것입니다> 율법으로 절대로 의롭게 되어 천국에 갈 수가 없다. 죄는 예수를 믿고 용서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거짓 교사가 가르치는 데로 그렇게 믿는 것이 절대로 예수를 올바로 믿는 것이 아니다. 라고 바울 사도는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을 받아서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위대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이루어서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자격과 의무를 가진 성도들에게 성령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그들의 주장을 따라서 성령을 외면하고 율법을 따라서 사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절규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에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도 받고 의롭게 되는 길이 이제 새롭게 열렸다. 나 바울도 이전에는 몰랐는데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하다 보니 이 길이 진리이다. 진실로 이제는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순서를 지켜라! 먼저 예수를 믿어라! 회개하라! 그리고 죄의 용서를 받아라! 그리하면 성령께서 오셔서 나를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신다. 내가 거듭나게 되면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과거에 할 수가 없던 율법을 완성시킬 수가 있다. 차원이 다른 세계가 있다. 율법을 지킴을 통해서 절대로 도달 할 수가 없는 세계가 있다. 나는 그 세계를 누리며 산다. 모든 유대인과 유대인 성도는 과거의 율법의 단계(초등교사)에 있으면 절대로 아니 된다. 내가 새롭게 된다. 이제는 복음의 시대이다.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 덕분에 이를 믿고 성령님의 선물과 충만케 하심으로 믿는 이 모두가 새롭게 창조가 된다. 내가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볼 때 과거에 내가 알고 믿던 것들이 그때는 전부라 생각했는데, 지금의 상태에서 보니 그것들은 배설물과 같다. (절대로 율법에 대해선 그렇지 않음, 이것은 단지 예수님을 믿기 전의 바울이 생각하고 행했던 것들에 대한 표현임) 지금 나의 상태는 과거와 비교가 아니 된다. 나와 같이 믿고 성령을 따라서 살아라!
과거의 나는 사랑도 온전히 못했고 정의롭게 살지도 못하고 율법에 얽매여 사망의 길로 가던 사람에 불과했다. 예전의 나와 같이 절대로 그렇게 살지 말라.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 된다. 아니다! 아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절대로 되지 않는다. 예수를,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내 죄를 속하기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라! 예수를 믿는 일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이렇게 바울 사도는 외치는 것입니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시 그들에게 이렇게 회복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의 올바른 순서가 먼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고 다음이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고 오신 성령은 성도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을 전하고 선한 삶을 살다 보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니 이렇게 순서대로 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온 율법학자는 순서를 완전히 어깁니다. 이들은 먼저 예수님을 믿는 일이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따라서 회개도 없고 죄의 용서도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도 없습니다 오직 있는 것은 율법에 대한 이해 조금뿐이며 이도 실천하는 부분에서 온전하지 않는 심히 불량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머리가 되려 하고 착한 사람을 종으로 부리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과 진실로 비슷한 이들이 한국에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오직 율법만 중요하다고 강조하니 성도가 이를 따라서 가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을 다 부정하고 오직 과거 바울이 살던 모습으로 회기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바울이 다시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는 길로 성도가 이들 나쁜 무리의 속임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제발 예전의 나와 같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 그렇게 살면 사랑도 정의도 없고 천국도 없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만민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유대인 만의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바라신다. 천하 만민의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피를 흘리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을 통해서 이루셨다.
이제는 제발 이 예수님을 먼저 믿어라! 이렇게 바울 사도께서 로마 교회 교인들(혹은 다른 교회 교인들)에게 외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잘못 가고 있으니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절대로 율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절대로 율법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는 일을 우선해서 하라는 외침입니다. 즉 예수를 믿고 순서대로 오는 절차에 따라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반드시 이해하고 로마서를 읽어야 하고 갈라디아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에는 회개와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가 다 세트로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이 곧 예수를 믿어라 와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절대로 이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누구도 율법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지 못하게 이렇게 사는 것이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는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고 로마서 3장 3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로마서 13장8-10절에서 사랑함으로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완성) 증거하십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3-4절에서 성령을 따라서 살게 되면 율법이 요구하는 정의로운 바를 이루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의 미덕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로 있습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8:3-4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4.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3 For what the law was powerless to do because it was weakened by the flesh, God did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to be a sin offering. And so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4 in order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ly met in us, who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마태복음 23:23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울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어떻게 율법을 세웁니까? 과거엔 바울이 자신의 힘으로 율법 조문을 배워서 조문조문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고 자신은 스스로 그렇게 사는 자신을 보면서 흠이 없고 의롭다 여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율법을 지키고 율법을 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학자에게 율법의 조문조문을 다 잘 지키고 더욱 중요한 의와 신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고 명령을 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고 형식적인 조문에 매달린 율법학자 종교지도자를 책망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 일에 대해서 이해를 절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이렇게 올바르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율법학자들이 도대체 네가 무어냐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고 바울은 이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이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서 구약을 묵상하고 신약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고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십자가 대속과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죄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를 주신 사랑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참사랑이 무엇인지 그는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복음의 전파로 이웃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성령의 인도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이기며 살다 보니 예전에 죄로 여겨지지 않던 일들이 죄로 분별이 되었습니다. 이미 그가 잘 아는 율법의 조문과 성령의 감동은 바울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통해서 진실로 율법의 조문조문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사랑과 의와 신의에 대해서도 또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을 확인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복음 전파와 선행을 통해서 모든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굳게 섬도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과거의 율법학자 바울은 할 수가 없었지만 성령을 받아서 새롭게 된 피조물 바울은 성령의 인도로 이를 가능하게 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성령이 없이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런 율법에 대한 일들이 절대로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성령이 반 이상 차지하고 로마서도 성령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성령은 죄인이 회개를 하고 죄를 용서받고 기다리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에게 온다는 진리입니다. 부디 성도는 이 가장 큰 기회와 최선의 선물을 늘 사모하고 놓치지 말고 또 충만을 위해서 고집과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포기하고 겸손히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된 피조물의 마음의 부드럽게 됨으로 속속 다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천지 개벽의 경험을 바울 사도는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면서 경험하고 이 경험을 토대로 로마서를 쓴 것이라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은 율법을 완성시킨다고 했고 죄와 사망의 법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긴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자신이 새롭게 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고 복음을 전하다 보니 이제는 바울이 이렇게 정말로 과거에 그렇게 홀로 지키려고 해도 완전히 지키지 못한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사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로마서 3장 31절에서 믿음으로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통한 믿음 생활을 통해서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의 말씀이다. 그리고 사랑은 율법을 완성을 시킨다고 로마서 13장 8-10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뵈온 후 성령을 받은 후20년 이상 전도 후에 이렇게 기록했고 저도 성령을 받은 후 약 33년이 흘러서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었으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루하루 성령의 인도가 맞는지 율법을 잘 살피면서 착하게 살면 때가 되면 모두가 바울과 같이 고백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저도 역시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이고 온전치 않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율법을 알아야만 죄에 대해서 깨달을 수가 있다고 했으니 율법을 알기에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경우 죄에 대해서 분별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착각하고 율법을 지키면서 의롭지도 않은데 의롭다 믿고 산 예전의 삶을 잘 알고 있었고, 어떤 누구도 이런 진실한 사랑도 진리도 잘 모르는 예전의 바울 자신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과 자세로 모든 편지를 자신이 세운 교회에 쓰고 로마서를 쓰고 갈라디아서를 쓰는 것입니다.
얘들아! 예수를 믿는 것을 우선시 않고, 도리어 율법을 믿고 이를 통해서 의롭게 되려면 우선 회개가 없고 죄에 대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가 없다. 그래서 불의가 그대로 존재하기에 절대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의롭다 인정치 않으신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성령께서 죄가 있는 사람에게 절대로 선물로 임하지 않는다. 성령의 세례나 선물이 없다면 이 사람은 거듭나지 않았기에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죄의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고 성령도 없고 영생도 천국도 없게 되는 것이다. 속지 말라! 이런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외칩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 내가 예전에 하던 모습대로 너희도 하지 말라! 그 다음에 바울 사도가 말할 한 마디가 바로 예수를 믿어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설명을 드렸듯이 예수를 믿어라 하는 말 속에는 회개하라 예수님의 이름의 물세례를 받아라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라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살아라 하는 말이 다 포함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가르치는 유대인에 대해서 모든 교회의 성도가 경각심을 가지고 그런 사람을 따르지도 말고 교회에서 용납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로마서의 경우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율법을 지켜서 행하는 유대인도 당연히 죄인으로 규정합니다. 이들에게 율법으로 절대로 의롭게 될 수가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율법이 아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예수를 믿어라'는 것으로 성경 로마서에 표현이 된 것입니다. 즉 그들 즉 거짓 교사가 자신도 잘 지키지 못하는 율법으로 예수님의 도를 누르려고 하나 실상은 초대 교회 성도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도리어 율법을 완성을 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는 자들인데 우리 모두도 같은 사명자입니다. 온 세상 모든 성도의 사명으로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구별이 이 사명 앞에 절대로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도 믿고 성령도 받은 성도가 거짓된 자를 만나서 예수를 버리고 율법으로 가니 바울 사도가 예수를 믿어라 하는 것입니다. 또 다시 처음부터 이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서가 아닌 다른 바울의 서신에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특히 갈라디아서 입니다. 로마서는 명쾌하게 불신의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인 모두에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가 있는 교회에는 이미 예수를 믿고 성령도 받았던 교인이 율법으로 가려고 하니 또 다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믿음과 다른 서신서의 믿음이 이렇게 조금 다른 상황이 있습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예수를 믿어라 하는 말속에 회개하라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아라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라 성령의 인도로 살아라 하는 말이 세트로 들어 있고 예수를 믿어라 하는 로마서 1장 17절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라 하는 로마서 7장 6절이 완벽하게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을 하면서도 바울 사도는 혹이 누가 율법을 무시하고 함부로 할까 봐서 로마서 3장 31절에서 율법을 무시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법입니다. 이 법을 인간이 아무리 바울 사도라 해도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절대로 폐지가 되었다고 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분명하게 율법에 대해서 잘 지켜야 한다고 하셨으니, 이제 이 세상의 누구도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성도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짓는지 깊이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울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마음대로 하는 모든 사람이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처참하게 영 벌로 갈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20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의문 규정 즉 제사 규정은 예수님께서 제사법이 되시고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셔서 성취하셨기에 그대로 우리가 짐승의 제사는 지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도 잘 배워야 예수님의 사역을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속히 논의가 있어 목자들은 성도들에게 율법의 어떤 규정을 지켜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런 심정으로 로마서와 바울 서신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이전의 글을 그대로 올리면서 이신칭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에 대한 설명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뼈대가 되는 율법을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이미 순서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받은 무리가 대부분이었던 초대 교회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세운 교회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시의 성도들이 이들 거짓 교사 즉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을 용납했고 따라갔을까? 바울 사도는 어떻게 진리에 똑바로 서서 이들 거짓 교사를 책망하고 성도들에게 못된 무리를 용납하지 말라고 했는가? 때론 바울 사도를 제외하고 율법과 믿음 사이에서 사도인 베드로와 안디옥 교회의 중심인 바나바도 흔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비록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 이유를 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사도행전 2장 37-절의 설명대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통해서 오시고 제게 두려움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볼 때 고린도 전서 13장을 통해서 제 모습이 거울과 같이 보이는데, 저는 사랑하는 모습이 조금도 없는 완벽하고 흉악한 죄인 이었습니다. 너무나 잘못된 저의 모습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보고 바로 눈물이 났고, 저는 하나님께 저를 도구로 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과거 저의 사랑 없는 모습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던 과거의 제 모습이 너무나 악한 존재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였는데 어찌 과거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완전히 회개하고 고린도 전서 13장과 같이 살려고 5년을 몸부림쳤습니다. 정말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100% 그렇게도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강력하게 과거의 재 모습을 부인하고 힘을 다해서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991년 5월 19일 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봄이 오기 전의 겨울, 서울의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당시 박기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갑자기 우셨는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셨습니다. 큰 얼굴의 수염이 있으신 흑백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입에서 빨간색의 불을 제 가슴에 뿜어주셨습니다. 제 마음 속에 촛불과 같은 작은 불꽃이 몇 개(2-3개)가 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큰불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며 제가 누군가 예수를 믿는 아픈 사람을 만지면 반드시 낫을 것이란 믿음이 왔습니다. 그리고 3일을 천국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행정고시 1차 시험에 붙어서 곧 2차 시험을 쳐야 하는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예전의 세상의 모습으로 가야 하는데 잘 가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픈 분을 만지면 하나님께서 고치심으로 병이 치유가 되고, 방언이 통변이 되고 다양한 기적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누구에게 함부로 말도 못할 너무나 좋은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행정고시 2차 시험에서 1점 차 낙방하고 목사가 되기로 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신학대학원 준비를 했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2011년에 저는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때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 성장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사도행전 2장 37-38절의 말씀을 보면서 비로소 베드로 등에게 일어난 일이 똑같이 저에게도 일어난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약 18년 정도가 지난 후에 알게 된 것입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당연히 저는 그 동안에 성경도 깊이 몰랐으니 교회에서 시키는 데로 배웠습니다. 늘 교회는 잘 다녔지만 직분도 없었습니다. 전도팀에서 전도를 주로 했는데 이제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어야 하니 성경을 배우면서 교사도 3년을 했습니다. 당연히 담당 목사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실교회 교사) 그리고 순복음 교회에서 약 5-6년 가량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 성경 공부 등을 배우고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 배움을 그대로 가지고 천주교를 믿던 전처와 결혼을 해서 너무나 많이 싸웠습니다. 교회의 가르침보다는 제 자신의 모든 신앙의 면에서 미성숙 때문이었으리라 믿습니다. 할 수가 없어서 성당에도 가고 전처가 잠실교회에도 왔습니다(1994년 결혼을 해서 잠실교회에 출석하고 저는 지금까지 다니고 있음) 그리고 성당에서 천주교 신학(일반 성도 신학)도 배우고, 로마서 강의도 들었고, 아내가 읽던 다양한 천주교 서적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처가 집을 떠난 후에 저는 4년 동안의 불면과 우울의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정말로 다시 겪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는 지옥의 나날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전도를 시작했고 재혼을 하고 신학도 재개했습니다. 전처가 떠난 자리가 너무나 컸고 전처의 온전한 헌신이 저를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고도 행정고시 2차 시험도 1점 차로 떨어질 정도로 잘 공부를 했기에 저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실상은 성경도 신앙도 잘 모르는 초보였는데 저는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전처는 저의 위대한 선생이었는데 사랑으로 저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전처를 통해서 사랑할 구석 없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천주교를 옳지 않다고 할 수가 없게 되었고, 제 스스로 천주교 서적을 보았지만 좋은 점만 보였습니다. 정말로 깊이와 정확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의 지옥과 같은 생활도 저에겐 성경을 깨닫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아주 낮은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2002년 한. 일 월드컵 등 세상의 모든 것에서 저는 차단이 되었었습니다.
새로 온 제 처는 정교회의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이었는데 백인과 모든 면에서 너무나 같았습니다. 우리는 약 20년을 살면서 쉬지 않고 싸웠습니다. 모세가 200만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고 이끄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내 하나 간수하는 데 저는 힘이 들었습니다. 제 아내는 아내 대로 너무나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지구상에 한 명의 남자로 제가 있다 해도 절대로 저와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즉 싸우고 고난 받고 하는 가운데서 제 신앙은 이렇게 형성이 된 것입니다. 물론 쉬지 않고 30년을 전도했고 성경 정리도 약 25년 이상 쉬지 않고 하고 이렇게 문서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8년 동안 온 세계에 중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1992년 봄 성령을 받았지만 저는 성경도 잘 모르고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었고 누가 저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목사가 아니니 당연히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약 30년의 세월을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기도를 쉬지 않고 전도도 쉬지 않고 하면서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은행에서 나온 1983년 이후 늘 쪼달리며 살았습니다. 40년이 넘게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인도하셨으니 위의 일들을 한 것입니다. 제가 이런 믿음과 율법에 대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100%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저는 성경이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로 연결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저를 이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제 노력은 진실로 없고 저는 게으르고 목이 곧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저와 같이 산 전처와 지금의 아내를 울게 하고 힘들게 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내와 저보다 사랑이 많은 성도와 가족과 잠실 교회 성도의 기도와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할렐루야!!
이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거짓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에게 속은 이유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를 이해시키려 이렇게 길게 설명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도 성경도 배워야 하고, 전도도 몸으로 직접 해야 하고, 다양한 공부를 잘 해야 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성령을 받았다고 모든 것을 다 한껏 번에 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도 먹어야 하고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 가정 생활, 그리고 직장 생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을 교회가 어디에서 먹여주는 곳이 있습니까? 오히려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목사를 교회가 먹이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받은 신자를 인정하고 먹이고 하는 교회는 현대에 없습니다. 도리어 성령을 초대 교회와 같이 받은 이들이 이들 목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교회의 법에 순종해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잘 배우고 큰일을 할 사람들이 일생을 그렇게 그냥 보내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뜨거운 불을 받은 이여!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성령을 따라 성장해 가라!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품고 그렇게 가라!!
그리고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면 혹은 성령을 받으면 너무나 대단한 자부심이 생깁니다. 정말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는데 제가 대표적으로 그렇게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전처와 지금의 제 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힘이 든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겸손하고 그래서 성경을 잘 배우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인데, 성령 충만, 은사 충만, 그리고 늘 기적이 있으면 다른 무엇을 배우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족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랬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을 갖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랑이 많은 천주교인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사랑만 받고 저는 그녀를 죽도록 힘들게 하고 스스로 떠나게 했습니다. 이제 성경을 한국에서 가장 잘 배우는 통합교단의 교회에 와서 목사가 되려고 성경을 공부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교회 국적의 여인을 만나서 20년 동안 죽도록 싸우고 이렇게 변한 것이 지금의 제 모습입니다. 성령을 받고도 너무나 잘 순종하지 않고 이렇게 살면서 고난을 당하면 조금 변하고 또 당하고 조금 변하는 과정을 겪고 있으니 정말로 저는 잘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역시 많은 흠이 있으니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를 참고해서 늘 겸손해야 하고 반드시 성경을 잘 배워야 합니다. 제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안배이니 제가 저를 주장할 것은 없습니다. 저와 같이 못나고 부족한 자를 먼저 하나님께서 언제나 저를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언제나 저를 감동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덕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덕분입니다. 그리고 두 아내가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해 주고, 가족이 나를 돌보고 교회가 기도와 섬김으로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이들에게 큰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분께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위로와 축복이 임하길 빕니다.
진실로 돌과 같은 사람이 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으로 저를 회개를 시키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마음을 녹이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30년을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온갖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와 주변의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와 남동생의 사랑과 헌신은 한결같았습니다. 늦게 얻은 아들은 언제가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보는 것으로 행복했습니다. 저와 할아버지를 본 받아서 늘 부지런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환갑이 지나도 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의 나라에 건설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고, 이는 푯대를 보며 달려간 바울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
로마서가 이해가 어려운 것은 로마서가 온 세상을 다 품고 있고, 바울 사도도 유대인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역시 온 인류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법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이미 2000년 전에 죄형 법정주의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류를 그 논의의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율법이 없던 시대의 사람은 양심의 법에 의해서 그리고 율법 이후의 시대의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그리고 예수님 오신 이후의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아니 믿고에 따라서 심판을 받음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야만인이나 헬라인이니 혹은 로마인이나 혹은 유대인이나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세상의 사람에 대해서 그의 죄와 구원에 대해서 논의를 합니다. 그 스케일이 모든 시간을 포함하며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적인 길이와 모든 세상에 살았던 사람, 사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 이 지구상에 살 사람 모두를 다 포함하기에 그 넓이로 인해서 이해가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제 2000년이 지난 현대를 살면서 이슬람의 복음화와 유대인의 복음화와 그리고 미 전도 종족의 전도와 그리고 이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로마서는 현대의 모든 나라와 민족을 진실로 구원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모든 필요한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2000년 전의 저술이 현대에도 한 치의 오차가 없이 그대로 다 수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간이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의 성령의 영감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천주교가 개신교가 그리고 정교회가 로마서를 서로 조금씩 다르게 이해를 하고 구약을 전해 준 이스라엘은 오직 구약과 모세 오경 즉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려고 합니다.
이때 우리가 유대인을 전도하려고 할 때 우리가 "야! 율법은 왜 지키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제 예수님만 믿으면 돼!" 하고 전하면 영원토록 유대인을 전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고서 "그래! 너희가 율법을 잘 지키는데 그것은 참으로 귀하고 올바른 일이야!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조문조문 잘 지키는 것을 원하셨어!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조문조문 지키면서 형식에 치우쳐서 율법의 정신인 사랑과 정의와 믿음을 잘 실천하지 않았어! 실로 율법은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을 그 생명으로 하고 온 지구의 사람을 다 행복하게 해 주고 남을 정도로 위대해, 나는 이를 인정해 그리고 너희들이 3500년 이상을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글자 한자 틀리지 않게 잘 보존하고 잘 배우고 지키려고 하니 너희 민족의 위대함을 인정해! 정말이야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절대로 너희와 율법을 부정하지 않아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율법을 조문 조문 그리고 그 정신이 되는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도 잘 지켜야 천국에 간다고 했어!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당시 율법학자와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을 오직 형식적으로 지키고 죄를 너무나 짓기에 예수님께서 혼을 내신거야!" 라고 먼저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 사도도 율법을 무시하지 않았어! 너희가 홀로 온 세상에서 율법을 너희 힘으로 지키려고 하나 어렵잖아? 우리도 율법을 인정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주신 법으로 인정해!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당신들 너희 유대인보다 더욱더 잘 지키려고 해. 우리도 율법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싶어! 절대로 너희가 잘 믿는 율법을 무시하지 않아!" 하면서
바울 사도와 같이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야 해! 그래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이제는 정말로 율법을 완성시킬 수가 있는 거야. 너희 조상이 1000년 동안 지키려던 율법을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룰 수가 있게 된 거야!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다. 우리는 이를 거듭난다고 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거야 그래서 마음이 부드럽게 돼 이제 이 사람은 율법을 성령의 인도로 잘 지키게 되는 거야! 너희가 그렇게 존중하고 지키려는 율법을 잘 지키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오셨고 성령께서 오신 거야! 이를 너희 구약의 에스겔서 28장 24-28절에 정확하게 먼저 예언을 했어! 얼마나 놀랍고 좋은 일이야! 진실로 너희가 너희 힘으로 꿈꾸는 율법대로 되는 세상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려는 거야! 얼마나 복되고 좋은 일이 너희에게 있는 거야 하면서 이제 너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꼭 믿어야 해" 라고 전할 것입니다. 처음의 접근과 다음의 접근은 그 방법에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의 이렇게 정확한 이해는 유대인을 전도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 한 민족이 앞서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바울 사도는 유대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했고 지금 유대인에게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전도하기를 원하실까요? 이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저는 후자로 갑니다. 로마서의 이해에 따라서 지금 시대의 유대인을 전도하는 전략이 너무나 달라지는 것입니다. 과연 그때나 지금이나 유대인은 한결같이 율법을 잘 배우고 오직 율법대로 살려고 하고 예수님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저는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대로 유대인을 만나 전도할 기회가 오면 그렇게 설명을 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이런 내용을 이미 에스겔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이 구절이 유대인을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함께 보면서 본론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은 남 유다의 선지자로 바벨론의 침공으로 남 유다가 멸망하자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바벨론의 강가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합니다.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되고 새 명을 주어 마음이 부드럽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율법을 행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통치를 하신다고 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한 설명이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와 그분의 성령 세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거듭난 성도는 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이렇게 되면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행하게 되어 율법이 지켜지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로마서의 설명과 완벽하게 동일하고 사복음서, 사도행전의 내용이 다 들어가 있으니 삼위 일체 하나님의 총동원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이렇게 설명하는 저는 약 6년 정도 전에 미군부대 SG로 근무할 때 미군과 같이 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20세 젊은 미군 병사와 같이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영어로 예수를 믿느냐 물었습니다. 믿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순간 그 병사가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순간 저는 이들이 너무나 구약을 잘 믿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고 무언가 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바로 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로마서를 이해하고서 이제는 잘 전할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씩 성경의 깊이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제 Ⅲ 편 이신 칭의의 믿음과 율법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
1. 서론: 이신칭의의 간증문과 간략한 이해
2. 하나님 나라 기초가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
3. 하나님 나라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이해
4. 논의의 요약
5.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
1. 서론: : 이신칭의의 간증문과 간략한 이해
전도자 Evangelist ・ 2021. 6. 26. 5:35
할렐루야!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늘 함께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코로나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면서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을 함께 찬양해야 하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속히 다시 모이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비도 많고, 하늘이 맑은 날도 많고, 유월이 끝나가는 데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합니다. 코로나로 세상의 기후도 영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변이종이 또 생겨서 끝날 조짐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시기를 기도로 그리고 준비로 인내하며 잘 보내어 다시 모일 때 더욱더 하나님을 잘 찬양하게 하소서! 부패와 불의가 오직 성경의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시대를 율법이 없이 세상의 법과 각자의 소견으로 이기려고 합니다. 이는 너무나 세상을 이기기 힘들 것이라 믿습니다.
부디 오천만 국민과 일천만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인 율법을 잘 배우고 잘 지키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는 오랜 시간을 걸쳐서 일어난 영적인 전투입니다. 먼저 2015년 경에 쓴 간증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과정적 이신칭의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감에 따라서 로마서의 이해가 깊어지면서 조금씩 첨부가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모든 분이 이신칭의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전도자에게 보인 이신칭의(以信稱義)
2015년 국민일보 간증문
김 정 관 목사
1. 감사와 찬양
어릴 때 어부였던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무섭게 빠른 속도로 흐르는 시푸른 깊은 바다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직 달과 바람과 고기의 움직임을 쫓던 순박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이스라엘 갈릴리 바다로 연결되어 어부 베드로에게 오셨던 주님이 오늘날 저에게 다시 오셔서 주님과 세상과 말씀에 대해 일일이 알려주시고 복음의 일군이 되어 주님과 함께 어디든지 누구든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은혜와 측량할 수 없는 사랑!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중한 고통과 죽음으로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아무 소망 없이 죽어야만 했던 죄인이 성령의 충만한 의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세상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도구의 삶을 살게 하신 삼위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날마다 찬양합니다. 그리고 30년 한결같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한 가족과 교회와 늘 아들같이 돌보아 주신 원 광기 목사님께 그리고 믿음의 친구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나서 자란 고향 남해 노량은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곳이라 충렬사라는 사당이 있고 마을 주민들은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지으면서 참으로 순박하게 사는 곳이었습니다. 동네 어른들 모두를 자신의 조부, 조모와 같이 공경하고 집집마다 자녀를 많이 낳아서 보통 한 가족이 10명 이상 되는 대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료시설이나 약이 구비되어 있지 아니하여도 많은 분들이 80세를 넘게 사는 장수하는 마을이었습니다.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8남매가 함께 어른들을 극진히 공경하며 형제간에 우애가 넘치는 가정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중학교까지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부시라 조그만 노 젓는 배를 타고 그물을 바다에 내려 고기를 잡으셨는데 동네에서 제일가는 어부셨기에 늘 많은 고기를 잡으셨습니다. 우리도 심심하면 낚싯대를 가지고 고기를 낚았으며 여름에 햇볕이 내리 쬐면 바다 속에 들어가 온 종일 멱을 감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도시로 나온 후 지금까지 대도시에서 사는데 가끔 고향에 가 보면 바다에 떠 있는 섬들과 넘실거리는 바다와 갯내음 그리고 시원한 바람은 마치 제가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그 곳에는 참으로 아무 걱정 없이 놀기만 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학교공부를 마치자마자 책 보따리를 던져놓고 친구들과 함께 산과 바다와 들판으로 떼를 지어 놀려 다녔습니다. 지금의 초•중등학생과 달리 공부에 대한 압박이 1퍼센트도 없었기에 놀기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 세상과 죄에 깊이 물들다
마산상고에 진학하면서 가족과 떨어지게 되었고 3년 동안 열심히 주산공부와 타자 등 상업공부에 힘써 졸업과 동시에 은행에 들어가게 되고 제주도로 발령을 받아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고2 때 돌아가셔서 큰 형이 어머니와 함께 집안을 돌보셨기에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에 다 보냈습니다. 큰 형이 어머니와 제 월급 문제로 다툼이 있게 되고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시게 되었기에 저도 돈 보내는 것을 단념하였습니다. 그 후에 저는 불교에 심취해서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좋아져서 은근히 법정 스님과 같이 출가를 할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슴 한 켠에 늘 허전한 마음이 들어 우연히 제주도의 사창가를 가게 되었고 틈만 나면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춘천과 군대 그리고 충무에까지 그런 곳에 가는 일이 연결되어 젊은 육체의 소욕을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곤 하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와 사랑에 빠져서 동거를 하다시피 하면서 지내다 아기가 생기면 아무 생각 없이 지우곤 했습니다. 너무나 큰 죄를 쉽게 지었습니다. 카투사로 군대에 갔는데 1년이 지나면서 애인은 저의 무책임한 모습에 실망해 떠나갔습니다. 실연을 당한 저도 군대를 마치고 은행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고 군대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형편이 아니 되는 데도 예비고사를 보고 대학에 늦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점장님도 말리고 어머니도 홀로 계시는데 어린 동생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너무나 좋은 직장을 버리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대학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세차장 일을 시작하셨는데 80이 넘으실 때까지 노동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고시를 목표로 정하고 공부를 해서 여자에 차인 저의 위상을 높이고 시대적 염원인 통일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해 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김해 장유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 교회 수련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반석교회 원로 목사님이 되신 성경석 목사님과 소천하신 김성수 장로님께서 저와 모든 고시생들을 잘 대해 주시며 전도를 하셨습니다. 저는 누가 ‘예수를 믿으라.’ 하면 ‘내 자신을 믿지 왜 예수를 믿나?’하고 반문했으며 스스로 의롭고 도덕적이며 선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해서 은행에도 들어갔으니 고시도 합격할 것이라 생각하고 기독교 대신 불교에 심취해 매일 산 중턱에서 가부좌를 틀고 묵상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할 때 군대에 있는 교회에 처음 나갔다가 ‘다음 주에 대표기도를 하라.’는 말을 듣고 군대를 마칠 때까지 교회에 나가지 않은 경험이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고전 13장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저를 회개시킴
고시원장이셨던 동향의 김성수 장로님께서 성경책을 한 권 주시기에 나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하려고 했지만 고향 분이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서 공부하는 좁은 방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틈틈이 산에 올라 명상을 하곤 했는데 오월의 어느 날 산 중턱에서 바라본 산의 파릇파릇한 나무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갑자기 저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놀라운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산에서 명상을 하고 내려와 고시공부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까뒤집어지는 듯 아프고 커다란 두려움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제 눈에 성경책이 들어와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펴서 읽는데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글이 아니라 한 구절 한 구절이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인 제 마음은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선하고 의로운 마음이 아니고 고전 13장 말씀과 완전 반대인 못된 마음이었습니다. 순간 무릎이 꿇리고 눈물이 나며 기도가 나오는데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 라는 기도였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예전과 같은 태도와 모습으로 절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고전 13장 말씀을 묵상하며 그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잘못된 저의 모습을 강하게 되돌아 보았기에 절대로 예전과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나는 대로 육체가 이끄는 대로 살아오던 사람이 갑자기 사랑을 하려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함께 본 성경의 거울에 비친 제 마음의 잘못을 너무나 강하게 보았기에 고전 13장의 말씀대로 살 도리 외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반석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몇 년이 지나 사영리로 전하는 대학생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동안 대학공부와 고시공부를 병행해서 했는데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는 낙방했습니다.
4.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다
대학교회에서 입교 절차를 통해서 제가 죄인임을 고백했고, 이런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 없이는 아무런 소망이 없으며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임을 온 교회의 회중 앞에서 선포하고 몇 년 더 신앙생활을 한 후에 다시 장유로 옮겨 반석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들 모두가 잘 대해 주시고 고시생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 주셨지만 교회생활이 편하고 쉬운 일만 아니었습니다. 우선 대학공부와 고시공부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기에 이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교회생활을 하지 않아 예배시간에 찬송을 하는 것이나 성경말씀이 고린도 전서 13장 외에는 이해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목사님과 성도들의 격려로 잘 참고 늘 마음으로는 고전 13장 말씀을 묵상하며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5년이 지난 1991년 5월 19일 김해 장유 반석교회에서 성경석 목사님의 집례와 김성수 장로님의 도움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나니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편안해지고 쉬워졌습니다. 비록 죄 사함에 대한 이해는 많이 없었지만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찬송도 함께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시공부를 하면서 성경책도 조금씩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니 비로소 제가 너무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라는 선한 일은 한 적이 거의 없고 하지 말라는 악한 행위는 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 생각했으며,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마다 보이는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죄를 짓지 않으려 몸부림쳤습니다. 마태복음을 읽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5. 예수님으로부터 불세례를 받다
1991년 다시 행정고시 1차에 합격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2차 준비를 착실히 하였습니다. 서울대 옆 신림동에서 1992년 2차 준비를 하면서 선민교회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고시공부와 대학공부를 병행해야 했기에 서울과 지방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공부를 하였는데 이제는 나이도 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서울대생과 성대생, 부산대생 그리고 강원대생 등 1차 합격자 7명이 모여서 그룹을 만들어 매주 1-2번 만나서 모의고사를 보고 서로 답안을 보며 토론을 했습니다. 또 1차 합격자만 200명 정도를 모아서 출제위원급 교수를 각 과목별로 초빙해 강의를 하며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을 해서 등수를 발표하는 2차 대비 실전과정에도 등록해서 모의시험을 매주 쳤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매번 시험에서 고득점해서 200명 중 10위 안에 늘 들었기에 그룹스터디 하는 학생들도 제가 고득점으로 최종 합격할 것이라 믿어 주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교회생활도 충실히 해서 주일 성수와 어려운 가운데서도 10일조 생활을 빠짐없이 하던 중 고등학교 동창인 문호를 만났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전도하니 우습게 여기고 오히려 영적으로 저를 힘들게 해서 하지 않던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배시간에도 창자가 뒤틀리고 곁에서 찬송을 하면 천둥소리같이 들리고 참으로 어려운 순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그렇게 새벽기도를 나가면서 순복음 교회에 다니시는 할머니 한 분도 아침마다 모시고 같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도 역시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박기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목사님께서 설교 중 우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평소 그림으로 보던 수염 있으신 예수님의 얼굴이 칼라가 아닌 흑백으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입에서 빨간색의 불이 뿜어져 나와서 제 가슴으로 오는데 제 가슴에 촛불과 같은 작은 불꽃이 몇 개가 있는 것이 보이고 손에 땀이 나면서 ‘아픈 사람을 만지면 나으리라.’는 믿음도 함께 왔습니다.
너무나 좋은 축복을 받았기에 나누고 싶은 생각이 나서 예배를 마치고 당시 국수를 삶아서 나누어 먹었던 지하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늘 저를 보면 아들같이 안아주시던 박외분 권사님이 서 계셔서 뒤에서 옷만 가만히 만졌는데 갑자기 뒤로 돌아서시고 엄지를 세우시며 “수석해라. 수석해라!”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행시에 수석 하라는 말로 이해하고 방에 수석합격이라 써 붙였습니다. 그리고 늘 성전에 계시던 관리집사님(지금은 장로님이 되신)이 그 분께는 아무 말도 아니했는데 웃으시면서 “하나님을 만났구먼.” 하셨습니다. 그 때는 고시공부도 세상일도 모두 잊어버리고 천국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 무엇을 할지 몰라 “하나님 무엇을 할까요?” 물으니 “문호!”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상해서 다시 물으니 이번에도 “문호!”라고 하시는데 그 음성이 한 번 더 물으면 고막이 터질 것 같아 문호에게 가라는 말로 이해하고 문호 집에 갔는데 문호는 아직 새벽이라 이불 속에 있으면서 제가 왜 아침부터 찾아오나 의아해 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아침을 하기 위해 쌀을 씻다가 차를 한잔 내 왔는데 차를 서로 먹다가 문호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을 만났다.’ 하며 저로 인함이 아니라 성경을 차분히 읽다가 만났다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하나님께 “무엇을 할까요?” 물으니 목사가 되라고 하셔서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을 하라고 하시기에 또 박기수 목사님을 너무나 영적으로 괴롭힌 것 같아 할 수 없다고 하니 “기도를 하라.”고 다시 말씀하셔서 기도를 하니 마음에서 “예”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하고 조심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와 고시 2차 시험을 쳤는데 과목낙제 없이 1점 차이로 낙방하고 8년간 대학 대학원을 거치며 열심히 했는데 합격하지 못해 실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목사가 되려고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6. 결혼을 하고 신대원 준비하면서 전도에 매진하다 이혼을 당하다.
1994년 튼튼영어 교대지사에서 근무하면서 만난 천주교에 다니는 자매에게 목사가 될 것이니 도와주길 부탁드리고 문정동 성당에서 가족과 친지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는 잠실교회에 등록해서 출석을 하고 아내는 성당에 계속 다녔는데 서로 신앙적인 문제로 갈등이 생겨 결국 서로의 교회에 번갈아 출석하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교사로서 교회 일을 하면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일을 하면서 매일 하루에 200여 가구를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장로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려고 성경정리와 성경공부를 부지런히 했습니다. 1995년 전북대 강준만 교수에게 보낸 전도편지를 시작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며 편지도 보냈습니다.
신림동에서 만난 남해 할머니는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분이셨는데 보름간 다니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었고 옆집에 사시는 어지럼증을 가지신 할머니도 이런 소식을 듣고 기도를 부탁하자 역시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잠실교회에서 교사를 하시며 전도를 많이 하시던 꼬마 집사님께서 성전에서 허리가 아파서 몸을 잘 움직이지도 못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고치시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고 동상에 걸린 분을 발바닥에 손을 바치고 기도하니 수백 개의 바늘이 찌르듯 했는데 이분도 하나님께서 고치셨습니다.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던 중 90이 넘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기도할 때 몸에 생기가 돌며 가픈 호흡이 편안해 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다니다 재수를 해서 수능을 치기 전날 밤 불안하다며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는 전처 고모님 딸에게 고시공부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평안이 임하는 것을 보았고 시험을 잘 쳐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최근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국무총리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2인 1조가 되어 복음을 전하던 중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심히 혼이 나며 내쫒기는 과정에서 동료가 분을 삭이기 못하고 기도를 방언으로 하는데 저는 당시 상황으로 보아 그 내용이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놀랍게도 갑자기 방언이 가느다란 이쑤시개로 귀를 후비듯 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말로 통변이 되었는데 우리를 모욕하고 폭언을 하신 분을 축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은 참으로 편안하고 아늑했습니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은 부농이라서 저희가 먹을 것을 다 보내주셨고 고시공부에 지치고 낙망한 저를 전처는 너무나 잘 품고 섬기어 낙방의 상처도 속히 치유 받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저는 가정과 신학을 위해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야만 했었는데 오히려 이곳저곳 직장을 옮기며 신학 공부를 핑계로 가장에 충실히 하지 않고 벌이도 시원치가 않아서 결혼 후 5년이 지나면서 아내와 다투는 일이 많아지고 결국 아내는 제가 교회에서 돌아온 어느 주일날 집이 텅텅 비어있어 알아보니 짐을 싸서 떠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떠난 자리가 너무 커서 다시 신림동으로 들어온 저는 이번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기도로 마음을 잡으려 해도 되지 않고 이상행동을 하다 결국에는 녹번동에 있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이 되어 부랑자, 알콜 중독자 등과 같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에서 벗어나, 장로회신학대 아래에 있는 단칸방을 얻어서 다시 신학을 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공부를 하려 왔다가 다시 신림동으로 옮겼기에 그 불순종으로 인하여 큰 벌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밥과 빨래를 하면서 그리고 일이 없어 국가에서 시행하는 공공근로를 하면서, 겨우 연명해 가는데 이미 빚도 많이 있던 상태라, 제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잠실교회 당시 담임이셨던 원광기 목사님께서 부르시고, 근황을 물으시고 잠실교회 관리집사를 하라고 하시어 교회사택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2001년 초부터 잠실교회 관리집사로 안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빚도 갚았지만, 아내가 떠난 자리는 메우지 못해 우울과 불면증으로 시달리다 삶에 대한 체념과 아무런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데, 외로움이 얼마나 심한지 뼈가 시렸고, 이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천주교, 개신교의 분리에서 오는 주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정신을 차려서, 다시 열심히 교회 일을 하면서 전도편지를 가족과 이웃에게 보내며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전도편지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너는 저리가라, 내가 쓴다.” 하시며 주님이 오셨는데, 주님이 편지를 쓰시는지 내가 쓰는지 모르게 주와 하나가 되어 전도 편지를 썼습니다.
7. 공중에 오신 주님, 새로운 가정을 주심(2004). 그리하여, 복음이 넓고 크게 퍼지다
하루는 평소에 하는 대로 교회 마당을 쓸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공중에 나타나시어, 하늘에서 지구를 보시며 복을 줄 자를 찾고 계셨습니다. 저는 즉시 “예수님 한국에는 저와 결혼할 여자가 없으니 세상을 보시고 제 짝을 찾아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사실 이혼한지 4년이 지났고, 교회와 목사님께서 여러 여자를 소개시켜 주셨는데, 아무도 저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전처가 제 주변에 살았기에, 재결합하자고 아무리 애를 쓰고, 설득을 해도 전처가 재결합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하다가, 본의 아니게 홀로 몇 년을 살아보니, 홀로 사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렇게 공중에서 뵈 온 후, 채 1개월이 지나지 않았는데, 잠실교회에서 카자흐스탄에 파송하신 선교사님께서, 결혼대상 여자 4명을 찾아놓았으니, 제게 속히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기도에 즉시 응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교회에 말씀을 드리고 카자흐스탄으로 제 짝을 찾기 위해서 날라 갔습니다.
그곳에 키도 크고 예쁜 아가씨가 있어 선교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선교사님께서 설득을 하시어 결국 잠실교회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아내가 아들을 낳아 주어 아들이 이제 11세가 되었으니, 이혼의 아픔은 옛일이 되었고 우울증 불면증 약도 결혼과 동시에 끊고, 신학도 마치고 목사안수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아내와 함께 열심히 전도를 하여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가족에서 홀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어머니께서 75세에 믿으시고 권사님이 되셨고, 숙모와 삼촌, 동생들, 조카들도 교회에 출석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제 아내와 같이 마천동의 돼지 족발집에서 족발을 주문해놓고, 종업원에게 전도를 하고자 하면서, 주님이 이곳에 계실까 생각하는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있다!” 하셨습니다.
어쩔 바를 몰라 마음이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것 같이 천리만리로 도망을 가는데, 또 음성이 들리는데 “담대 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계신다 생각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 정신을 차려 종업원을 보니, 종업원이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듣고 있었습니다.
늘 전도할 때마다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믿으며, 언제나 마음속으로 들리는 음성이 “힘을 내라.”와 “사랑한다.”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음성은 전도를 하는데 늘 격려와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8년간의 잠실교회 관리집사 일을 마치고, 제가 그동안 보낸 편지를 정리를 해보니 너무나 다양하개,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져서 그 양이 책을 출판해도 될 정도이고 제가 한 일이 절대로 아님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일본최고 부자 사이토 히토리 전도와 그의 구원의 보임, 2011년 고교 동창 1200명에게 전도편지의 1년간 발송, 2014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전도는 모두 성령의 인도로 된 것임을 믿습니다.
2011년 신학대학원원 졸업논문으로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성장과 나눔에 대해” 라는 글을 쓰면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이, 저에게도 똑 같이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30년 전에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저를 회개시키셨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장유 반석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 받아, 1992년 겨울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과 같이 권능을 받아 복음을 전했으니 성경의 말씀대로 그대로 된 것입니다.
이 내용의 이해는 사건의 발생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며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하게 이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1997년 장로교신학교 신학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시작된 성경 정리도, 쉬지 않고 세상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의 정리를 통해서 성경의 이해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8. 로마서의 이해와 이신칭의의 이해
성경 66권을 테리 홀의 파노라마 성경에서 소개한 정리 방법대로, 20년 가까이 정리를 하고 있지만, 로마서의 이해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통해서 전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었고, 이를 신학대학원 졸업논문으로 썼고, 로마서의 이해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최근에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믿는 이’라는 바울의 표현이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성령 받은 이들을 ‘믿는 이’로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성령 받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바울의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써 의인이라 불리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령 받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받은 120 성도가 방언을 하자, 이를 보고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족,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없이 모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담대하게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소개가 됩니다. 이에 이어서 2장 44절에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는 사람들’의 표현은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대로, 예수님을 만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회개와,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3년 따라 다니며 배움과 함께, 그 이름의 세례(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십자가 대속을 보고 그 의미를 믿음을 통한)와, 이를 통한 죄 사함을 받고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과 함께, 베드로의 설교로 이번에 회개하고 세례 받은 신도 3,000명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이 믿는 사람과, 바울의 로마서 8장 23절에서 "성령 받은 우리가" 와, 로마서 3장 22절에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치는 의니” 라는 표현에서 모든 믿는 이는 모두 같은 말입니다. 즉 로마서의 ‘모든 믿는 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꼭 필요 합니다.
즉 칭의의 대상은 반드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대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은 후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임함 같이, 성령이 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바울과 같이 아나니아로부터 성령 받은 경우, 사도행전 여러 곳에서, 예수이름의 세례와,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사도들이 만났을 때, 이들에게 사도들이 안수를 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와 같이 먼저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은 예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된 사람의 육신이 여전히 죄를 향하는 모습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곤고한 자신으로 한탄하셨습니다. 하지만 8장에서 예수 안에 있는 자, 즉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사랑에 거하는 자(사랑을 실천하는 자) 그리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을 선포하였습니다(롬8장).
이 과정을 요약하면 우선 예수님을 만나 회개를 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믿어, 정식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이 있게 되고, 이런 사람에게 성령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로마서에서 ‘신자’라 표현하였고, 이런 신자를 하나님께서 죄 사함 받아서 깨끗해졌기 때문에 비로소 ‘의롭다’ 선포하십니다. 이것을 이신칭의로 이해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로마서의 이해가, 예수를 믿고 30년이 지난 최근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믿고 성령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영광되고 귀한 일이라 믿고 살았습니다. 여기에다가 또 의인으로 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은총을 입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영적인 원리를 모르고 죄의 유혹이 다가왔을 때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린 과거가 참으로 후회스럽습니다.
진실로 의롭다 인정받은 신자는, 다시는 불의에 물들어서는 아니 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유혹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님의 계명을 잘 숙지해 지키고, 하나님과 이웃과 믿음의 형제를 성경의 말씀대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늘 받으며 살아야,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다고 믿습니다.
이신칭의에 대해 500년간 천주교와 개신교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의미와 효력의 범위 등이 학파와 주장에 따라 복잡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참으로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신칭의가 되는 과정을 잘 이해하면, 이런 논의도 많이 정리가 되고, 칭의로 인해 신자가 얻는 유익에 대한 논쟁도 많은 부분 사실은 큰 논쟁거리가 아님을 믿습니다.
나아가 로마서를 잘 이해하게 된다면, 이 논쟁의 많은 부분의 답이 그 이해를 통해 나오리라 믿습니다. 저는 신학자도, 목회를 오래 동안 제대로 한 목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신칭의 이해나 로마서의 이해에 있어 그 깊이가 참으로 얕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간증의 제목도 '전도자에게 보여주신 이신칭의'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통해서 이해된 부족하고 온전치 못한 저의 이해가 모두의 논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안에서 신자가, 모든 교파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고, 올바른 이신칭의의 이해를 통해서, 모든 신자가 이 세상에서 생명을 걸고 정의롭게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의의 측면에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의 크신 사랑과 놀라우신 은총의 발로로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한량없으신 은혜로, 값없이 죄 사함 받아 의롭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의 임하심을 온 몸과 마음으로 찬양합니다.
신자의 선한 삶과, 증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방에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신자에 대한 칭의의 본질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롬3;25-26)
9. 맺는 말
며칠 전, 들판에 나가 날씨가 너무 추워 불을 피우기 위해, 공사장의 나무를 주우러 갔다가, 나무에 박힌 못에 깊이 발바닥을 찔렸습니다. 얕은 신발장을 뚫고 못이 깊이 발바닥 속으로 들어오는데, 고통과 함께 너무나 놀라 얼른 못을 뽑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발바닥을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고통과, 우리에 대한 사랑을 묵상해 보았는데, 주님의 크신 사랑과,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다시 한 번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무지한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매달아 죽이는 것을 용납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께서 피 흘리시며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재창조물임을 확인하시고 마지막 도장(성령의 인)을 찍으십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우리를 예수 안에서 재창조하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실로 이 세상을 선하게 살며 증인의 의무를 다하며 또 의로우신 하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려 의롭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는 잘 표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수백 년 동안 이신칭의를 논쟁해 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짧은 글로, 전도의 경험과, 성경 정리를 통한 성경 이해와,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통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두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는 과정(회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 죄 사함, 성령세례 그리고 칭의 됨. 행 2;28, 롬 3;24-25)은 반드시 모든 신자가 지키며 꼭 실천해야 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꼭 이 말씀에 비추어 모든 신자가 자신의 상태를 잘 살펴보아, 고칠 것을 반드시 고쳐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저의 부족한 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이 민족과, 교회와, 모든 신자들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이 혼탁한 세상에 질서가 확립되고, 하나님의 의가 하수같이 흘러넘치길 기도하며, 신앙계의 주안에서의 비약적인 성장을 기원합니다.
2015년 경의 이신칭의의 경험적인 이해 이를 아래 도표로 나타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렇게 이신칭의를 이해하고 놀랍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전하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인 신학 대학에도 영어로 번역을 해서 보냈습니다. 온 세상이 속이 이렇게 이신칭의를 이해하고 바로 천주교 개신교가 하나가 될 줄 믿었습니다.
2015년경의 제 이해를 간증문으로 밝혔고 그림도 위와 같이 표시를 했습니다. 여기까지도 일반의 성경의 이해 즉 천주교의 이해와 개신교의 이해와도 다릅니다. 성령 받은 전도자의 이해를 경험을 통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설명은 이로부터 더 나아간 이해로 성경 본문을 보면서 설명을 드립니다. 아래의 설명을 하기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더 걸립니다. 이도 한 번에 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조금씩 성령께서 알게 하시는 데로 받아서 적은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인 것입니다.
※ 아브라함의 신앙의 성장
| 아브라함의 나이 | 일어난 일 | 비고 |
| 75세 |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남. 창 12:1-4 | 첫 믿음, 순종 |
| 15장 6절 | 믿음으로 의, 자손 약속, 이신 칭의 | 75-86세 사이 |
| 86세 | 이스마엘 출생. 창 16장 16절 | 사라의 권유 |
| 99세 | 할례 언약,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 명령 | 창 17장 |
| 100세 | 의인 10명 없어 소돔, 고모라 멸망, 이삭 출생 | 창 21장 |
| 118-125세 | 믿음의 시험 통과, 이삭 번제, 하나님 경외 | 끝 믿음 창 22장 |
이렇게 조금씩 이해를 넓히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위와 같이 정리를 했습니다. 틀림없이 하박국과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면서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위의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으로 그린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하지만 위와 같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이해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저는 놀랍고 놀라서 쉬지 않고 이제는 전세계 가장 유명한 신학 대학을 고르고 700명의 신학자 주소를 확보하고 이들에게 이를 영어로 번역해서 전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이해가 최근에 왔습니다. 몇 년이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본문을 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본문 1장 16-17절을 영어로 보는 가운데 본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는 부분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를 영어로 또 보면서 본문에 완전히 답이 다 있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하고 깨닫고 하기를 최근 약 8년간 쉬지 않았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격려와 지혜를 쉬지 않고 주셨습니다. 정말로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환상적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본문을 보면서 이해하는 과정을 조금 설명해 드립니다.
여러 버전의 성경을 보면 많은 이해가 저절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평신도 모두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롬 1장 16-17절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이방인에게 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입니다, 기록된: "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입니다." 와 같이 말입니다.]
맨 마지막에 제가 번역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와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이다" 하는 부분이 우리가 보는 번역과 다릅니다. 중학교 영어로 보면 그 내용이 바로 보입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이 문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어인 의인 그리고 동사인 살 것이다. 그리고 천치사구 믿음을 갖고로 되어 있습니다. 의인이 되기 위해선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반드시 하루하루 살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제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전하면서 약 3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렇게 본문을 직접 보면서 이해가 된 것은 최근입니다. 우리는 본문이 이렇게 된 것도 모르고 오직 믿음이라고 외칩니다. 본문이 이렇게 된 것을 확인만 해도 오직 믿음이 아니라 의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하고 그 믿음을 가지고 그냥 그대로 소극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가 여전히 숨을 쉬고 생명이 있으니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비로소 의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너무나 쉬운 문제가 왜 500년을 갑니까? 모두가 남이 전해주는 내용을 확인도 없이 그대로 믿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전하는 내용은 성경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본문을 보고서 제가 모든 분께 묻습니다. 오직 믿음이 의롭게 됩니까? 천주교 주장대로 오직 믿음이 아니고 +행위입니까? 아니면 제가 본문대로 설명하는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누가 본문에 가장 적합니까? 지각이 있는 분은 바로 답이 나옵니다. 흔들릴 필요도 다르게 갈 필요도 이제부터 없습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로마서를 보아야 로마서가 쉽습니다. 하루하루 사는데 어떻게 사냐 하는 답이 모든 로마서의 나머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 오직 믿음으로 다 되니 행위나 율법은 아니다로 개신교는 주장합니다. 천주교는 아니다 행위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성경은 믿고 오늘 하루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 입니다. 자! 성경은 그냥 말이 아니라 행동의 기준이요 방향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으니 오늘 오직 믿음하고 마음대로 갑니까? 무슨 행동입니까? 그냥 믿음의 합당한 삶을 삽니까? 성경대로 지금 내가 바로 죽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믿음을 갖고 살아가라 합니다. 그러면 살아가면 됩니다. 즉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오늘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인정한 사람입니다. 오직 믿음 하고 멈추지 마시고 믿음+행위에도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오늘 내가 예수님을 믿으니 믿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일이면 성수하고 누가 도움을 청하면 돕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도해 주고 상사를 주님과 같이 존중하고 동료를 이웃과 같이 사랑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여자가 생기면 저 젊을 때와 같이 하지 말고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돈이 없으면 기도하고 아내가 있으며 불타도록 사랑하고 자녀를 아끼고 본을 보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늘 성경을 묵상하면서 성경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불의에 휩싸여도 아무 말도 못하는 대형교회 목사는 절대로 본받지 말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너무나 정확하게 성경 말씀이 제가 위에서 설명한 데로 되어 있음을 보여 드립니다.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많은 읽은 본문이 이렇게 정확하게 보입니다. 먼저 본문을 보시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고 하는데 무슨 의미인데 봅니다. 이를 뒤에서 다시 자세하게 살필 것인데 우선 간략히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란 부분은 로마서 4장과 야고보서 2장에 있으니 찾아서 보여 드립니다.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85세 경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심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입니다. 세 번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옵는 것은 어떤 사람은 자주이고 이제는 매일 주님을 뵈옵고 동행합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10세 때 무렵입니다. 분명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이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잘 믿다가 어떨 때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그 사람이 믿음을 버리고 악을 범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절대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서를 보시면 의인이 악을 행할 때 이미 행한 의는 기억되지 않고 악인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왜 성급하게 로마서 1장 17절만 보시고 또 이렇게 깊고 정확한 의미가 있는 로마서를 겉만 보시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조금도 지키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로마서도 중요하지만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의 주인이 되시는 우리 모두의 최후의 심판자가 도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중요합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로마서로 예수님의 어떤 말씀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먼저 이렇게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매일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과 믿음의 질과 종류가 분명하게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로마서 4장이 증명하고 야고보서 2장이 증명합니다. 이 이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 논쟁을 접고 서로 부족한 이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이렇게 믿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를 이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2000년 전에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런 내용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됨에 있어서 이렇게 기록을 한 것입니다. 저도 경험적으로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약 17년 이상이 경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의롭다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서 처음 도표와 같이 이해하고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의 본문의 의미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적어도 20년 이상은 걸린 이해입니다. 제가 게으르고 목이 곧고 그리고 고집이 세어서 그렇게 걸린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제 글을 읽고 바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늘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반복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무지하고 게을러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했습니다. 빨리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제가 너무나 무심해서 이렇게 시간이 걸렸지만 여러분이나 다른 성도는 오늘 바로 이해하고 믿고 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신칭의에 대해서 모두가 올바로 이해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십니까?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 그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조건을 보았습니다. 믿음을 갖고 아무것도 아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로마서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정확하게 로마서는 7장 6절에서 설명합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영어로 보지 않으면 한국에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 본문의 본래 의미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제가 밑줄을 친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이렇게 번역하면 불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낡은 법조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번역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로마서를 인도하는 등불인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을 절대로 지키는데 어렵게 하는 번역입니다. 제가 영어로 보면서 다시 번역을 했습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이 성경의 진리로 가는 여정은 이렇게 번역의 문제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영어도 하시고 한글도 조금 아시니 별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앞서 갈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영어는 이제 모두가 할 수가 있고 한 언어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를 하나 되게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 바울이 섬기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방법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긴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는 표현은 0.00001%도 없습니다. 옛 사람이 낡았고 과거의 바울 사도가 섬기던 방법이 낡았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새롭게 거듭난 새 사람 바울이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긴다는 표현입니다. 율법에 대해선 그냥 두고 있으니 율법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율법의 문제가 0.00001% 도 없습니다. 옛 사람 바울이 문제이고 그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율법학자라 하면서 실제로 율법의 정신을 다 던져두고 형식적인 조문의 준수로 위선자가 된 과거 예수님을 모르던 바울이 문제이며 바울이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이를 어째 거룩하고 성스럽고 지구가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고 온 인류가 다 사라져도 한 점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낡았다고 하십니까? 얼마나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그분의 말씀을 불경 되게 여기고 표현하십니까? 천주교 개신교는 모두가 회개하고 이 구절의 해석을 똑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한국의 천주교 개신교 학자에게 하는 부탁입니다. 한국은 경제, 군사력이 온 세상에서 10 대국이 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바로 이해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온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는 국가가 한국인 줄로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연구엔 교회를 비롯해서 너무나 인색합니다. 대부분 백만 달러가 넘는 부자 크리스천이 수도 없이 있는 한국에서 저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한국의 모습이며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세력의 통치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정치를 바로 잡을 것이라 아니라 영적인 측면을 재건해야 합니다. 아니면 동시에 해야 합니다. 이것은 힘의 강제가 아니 개인의 각성에 의한 자발적인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신칭의에 대한 믿음은, 처음 우리가 배우는 ‘모든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고 교회에서 배운 배움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가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후에 성령을 선물을 받았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계속하면서 나중에 칭의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고 '전도자에게 보여주신 이신칭의'란 간증문을 통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주된 내용을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데 내 마음대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바울과 같이 율법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을 받은 성도는 성령으로 즉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으로 삽니다. 아래는 도표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의 이해를 중심으로 위와 같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칭의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죄의 용서가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로마서 공부의 워밍업 부분, 갈라디아서와 하박국서를 정리하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이해입니다.(2021 6:25일 당시)
이런 이해에 도달하기까지는 저는 위의 과정과 같이 칭의를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로마서의 이해의 선행단계인 하박국서의 이해를 통해서 성도에게 칭의가 일어나는 시기를 성령을 선물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어느 때로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그러한 내용을 설명한 것입니다. 즉 이전에는 성령을 받은 성도가 모든 믿는 자가 되고 이들이 의롭게 된 사람으로 이해를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된 사람이 아브라함의 예와 하박국의 예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게 의롭다 할 어느 때로 보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두 그림 중에서 영어로 된 아래 그림입니다. 저도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있을 때 약 17년 정도 지났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의롭다 하시는 것을 보고서 구원받은 것도 놀라운 은혜인데 의롭다 하시니 너무나 더욱 감격한 것입니다. 제 경험과 성경은 분명하게 일치하는데 저도 아브라함과 같이 일생을 잘 믿고 또 다음 어떤 시기에 하나님께서 오셨을 때 여전히 잘 믿고 살아야 할 것이고 죽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겁게 주님을 뵈옵는 상태가 되어야 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어찌 세상의 물질과 유혹에 한 눈이 팔릴 사이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오직 전도 선교,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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