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2-17 (다니엘이 기도중에 만난 예수님)
성경본문 : 다니엘 10: 12-17
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13. 그런데 바사 국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14.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15. 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벙벙하였더니 16.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섰는 자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주여 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7.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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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이미 지나간 사건들에 관한 일과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경우를 보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다가 국무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던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장차 될 일들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다니엘서는 구분상으로는 예언서에 속하고 성격상으로는 계시문학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서에 나타난 여러 예언들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입니다.
다니엘이 정월이십사일 힛데겔 강가에서 기도하던 중에 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4-6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세마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같고 그 얼굴을 번개 빛같고 그 눈은 횃불같고 그 팔고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많은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기도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모습이었으며, 받은 위로는 무엇인가를 조명하여 하나님 앞에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은혜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다니엘이 기도중에 본 예수님은
1) 힛데겔 강가에서 보았습니다.
주경학자 메튜헨리는 "이삭이 명상을 하기 위하여 언덕길을 거닐었던 것처럼 다니엘이 기도하기 위하여 힛데겔 강가에 나아가 명상하다가 그 놀라운 환상을 보았을 것이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기도중에 임재하신 예수님을 만나 요한 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는 계시를 받았고
사도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기도중에 계시를 받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썼는가 하면 죤 번연은 베포드 옥중에서 "죄인의 두목에게 주시는 은총"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러시아의 도스토에프스키는 9년동안 시베리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죄와 벌" "학대받은 사람들"이라는 유명한 명작을 썼습니다.
위 사건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실패의 고통과 괴로움으로 혼자 기도하던 중에 위대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 환상을 보았으며, 위대한 명작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와 고통과 절망과 좌절 속에 염려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2) 다니엘 혼자서만 보았습니다.
그 당시 다니엘은 이미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거동을 하면 그의 수행원이나 종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도 그의 수행원들은 기도하며 명상하는 다니엘과 약간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힛데겔 강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은 다니엘 뿐이었습니다.
7절을 보면 "그 이상은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 이상을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령한 세계는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제 서재실에 있는 여러종류의 사전들 가운데 부피가 방대한 것으로는 새 우리나라말 큰사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까막눈은 이 사전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 책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령한 세계의 환상이나 계시는 신령한 눈과, 신령한 귀가 열린 사람이라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성이라는 것은 계속 기도하고, 말씀을 상고하면서, 신령한 생활을 할 때만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활을 중단해 버리면 영적인 힘을 사라져버리고 영의 세계는 까막눈이 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고현의 성도 여러분!
신령한 눈을 뜹시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곁에 임재하여 계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듣고 그 모습을 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전 김제를 다녀오는데 갑자기 차들로 인하여 길이 막히고 차들이 소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역시 소걸음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보니 계란을 싣고 가던 트럭이 전복되는 바람에 도로에 계란이 깨져 널려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깨진 달걀, 수 많은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지고 있는 달걀들을 보았습니다.
먹지도 못하고 삶지도 못하는 으깨진 달걀, 자동차 속도를 정체시키고 통행을 가로막는 쓸모없는 달걀들이 거기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달걀은 달걀일 때 가치가 있고 달걀은 병아리가 됐을 때 더 가치가 있고 병아리보다는 닭으로 컷을 때 더욱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 사람의 가치는 그 영혼이 망가지지 않고 유지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고 있을 때 더욱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3) 위엄차고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4-6절을 보면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우바스 정금을 띠고 몸은 황옥같고 얼굴은 번개 빛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같더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귀향살이를 하다가 기도하던 중에 예수님을 보았는데 계1:13-15절을 보면 "촛대 사이에 인자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불무에 달련한 빛난 주석같고 그의 음성은 맑은 물소리와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기도 중에 본 예수님을 종합하여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세마포 옷은 제사장의 의복이며, 허리에 우바스 정금으로 만든 황금띠를 띠신 것은 그분의 하시는 일이 종의 일이신 반면 황금보다 더 더 존귀한 일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은 황옥처럼 귀했고, 그 눈은 번개 불처럼 밝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의 팔과 발은 놋쇠보다 더 든든하고 강하며, 목소리는 우렁차고 힘이 있어서 전세계를 울리기에 넉넉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던 초림의 예수님은 누우실 곳조차 없었던 예수님이었으나,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본 예수님과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재림의 예수님은 초월적인 능력으로 세계를 심판하시는 예수님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처럼 두가지 현상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일어나는데 하나는, 다니엘처럼 기쁨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다니엘을 수행했던 수행원들처럼 떨며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초림하셨을 때 기뻐하며 경배드린 사람들있었는가 하면, 시기하고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현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오시는 구주가 되시는 재림의 예수님을, 그리고 기뻐하며 감격속에 영원한 신랑으로 대망하며 맞이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찾아오신 예수님은 다니엘에게
10-17절을 보면 "한 손이 다니엘을 어루만지셨고 그가 다니엘을 일으켜 주었으며 일어 서라고 말씀하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고 예수님께서 힛데겔 강가에 임재하신 이유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16절을 보면 "다니엘의 입술도 만져주셨다"고 했습니다.
고현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예수님은 나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주시고 실패한 나를 일으켜 세워 주시며 불안한 나에게 두려워 말라시며 평안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을 주시고 내 입술을 어루만져 주시며 할 말까지도 주시는 자상하시며 자비로우시며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요21장을 보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그를 사랑하던 제자들이 뿔뿔이 대부분은 그들의 고향이었던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잡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곳 갈릴리 바다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숯불에 생선을 구워놓고 빵까지 차려서 조반을 준비해 놓고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향하여 자상하시고 친절하시고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삶을 보살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힛데겔 강가에 왜, 예수님께서 다니엘을 찾아오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는 말씀이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2절을 보면 "그는 떡도 고기도 포도주도 입에 대지않은 채 세이레 동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세이레는 3주간을 뜻합니다.
바로 기도에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힛데겔 강가에 임재하셨던 것입니다.
눅2장을 보면 시므온과 안나도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들도 무더운 삼복더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병든 몸을 치료받고, 문제를 해결받고, 염려걱정을 해결받고, 성령충만을 위해 고현성전을 중심하여 예배와 찬송과 기도에 힘써서 다니엘처럼, 사도요한처럼, 시므온과 안나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소원을 이루시고 승리하시는 고현의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은혜목회정보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