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성경본문 : 잠언 29: 15
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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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목사
요절 :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29:15)
동양선교 개척자인 F.사비에르(1506-1552)는 어린이를 무척 아끼고 사랑한 목사였습니다. 특히 어린이의 미래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너무나 피곤하여 쉬러 들어가면서 집사에게 "이제 좀 자야겠네. 그렇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군. 누가 오더라도 절대로 깨우지 말게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헌데 잠시 후 그가 핼쓱한 얼굴로 문을 열고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말을 실수했어. 혹시 어린이가 찾아오면 나를 깨워주게" 본문은 부모들이 무엇을 어떻게 함이 정말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교육Ⅰ: 임의로 하게 버려두지 말라.
'버려두다'라는 히브리어 '솰라흐'는 들나귀를 아무렇게나 풀어놓아 제멋대로 다니게하는 것에서 유래된 말로서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이란 아이가 자기 멋대로 하도록 무관심 속에 완전히 방치함을 의미합니다. 즉, 자녀들을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방관하면 어떤 악한 습관에 깊이 빠져 인생을 망쳐 버리게 됨을 나타냄입니다.
성경에 근거한 자녀교육 원리는
첫째, 사랑으로 권면하고.
둘째, 진리로 징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으로 가르치고, 채찍으로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되었다 함은 자녀들을 24시간 돌보는 특수교사로 임명되었다는 것이요, 자녀교육의 사명을 부여받은 전문직 교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자녀들을 말씀의 교육원리대로 가르치지 아니하고 방치함은 직무유기죄를 범함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침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부자가 부자됨이 죄가 아니라 거지 나사로에게 무관심함이 죄였습니다. 하물며 자기 자녀를 방관함이랴...
자녀들을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 졸업시키고, 일류대학에 입학, 졸업시켜 대기업에 취직케 하거나 세상에서 잘 되게 함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고, 만들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함이 정말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기르는 것이 아니라 양육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새끼기르는 것은 짐승들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하셨고(신6장), 예수님께서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천국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셨으며(마5장∼7장), 제자들에게 전도인으로서 실천해야 할 덕목들도 상세히 가르치셨습니다(마10장).
어느 작은 어촌에 어린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늘 바닷가에서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물새알을 발견, 집으로 갖고 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물새알로 맛있게 반찬을 해주었지요. 다음 날부터 소년은 바닷가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물새알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루는 물새알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어느 집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년이 가만히 가서 보니 암탉이 알을 낳고 우는 소리였습니다. 소년은 달걀을 갖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달걀을 삶아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소년은 바닷가에는 가지 않고 남의 집 닭이 알 낳는 것만 살폈고, 소년의 도둑질은 습관 되어 졌으며, 어른이 되어 갈수록 도둑질은 대담해졌고, 규모도 커졌으며, 결국 사형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가 어머니에게 한 말입니다. "어머니 내가 어린 시절 물새알을 갖고 왔을 때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도록 올바르게 가르쳐 주셨더라면 이렇게 죽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교육Ⅱ : 채찍과 꾸지람으로 하라.
성서의 자녀 교육
1단계는 유순한 말의 훈계입니다.
가르치는 부모가 없으면 자식이 들을 수 없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심이며,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3-26)" 제자들에게 가르치심입니다.
2단계는 꾸지람입니다.
좋은 말로 타일러 가르침을 듣지 아니하고 잘못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징책이 필요합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도다(마21:12-13)" 이는 예수님께서 그릇된 길로 빠진 자기 백성들을 엄히 꾸짓음이십니다.
3단계는 채찍입니다.
훈계와 꾸지람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자녀에게는 채찍을 들어야만 합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선 자기 백성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채찍으로 징계하셨습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잠23:13)"
자녀에게 채찍을 가하려면 마음이 불편하고 아픕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채찍을 들지 아니하면 수치의 자식을 만들게 되고, 일생의 슬픔이 됩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정말 내 자식이라면, 정말 내 자녀를 사랑한다면, 사랑의 매를 들어야만 합니다.
초달함이 현대교육 이념에 어긋나나요? 아닙니다.
성경은 영원한 진리, 생명의 말씀입니다. 꾸짖음과 초달은 귀한 내 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부모는 사랑의 채찍으로 자녀에게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그렇게 생활하도록 이끌 책임이 있습니다. 징계는 잘못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spare the rod and spoil the child)' 이는 서양 속담이요,
'아이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손으로 키우라' 이는 우크라이나 속담이랍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선한 일에 태만하면 꾸지람도 하고, 악행을 행하면 채찍으로라도 막아야 합니다. 교육은 평생의 반려자입니다. 채찍으로 와지는 괴로움은 이지를 예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고도 중요한 사실은 자식은 아비의 채찍보다 아비의 행위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의 삶 자체입니다. 자녀에게 채찍을 들때요 주의 사항입니다 채찍은 아무 때나 아무나 들어서는 아니됩니다. 먼저, 부모는 불의하게 살면서 자녀들에게만 불의하게 살지 말라고 채찍을 든다면 자녀의 비뚤어진 행위가 교정될 수 없음은 물론, 더 악한 길로 빠지게 됩니다. 다음, 내 기분 따라, 내 욕심에 의해, 자녀에게 채찍을 가함은 폭행입니다 부모는 사랑과 공의에서 나오는 인격과 권위를 소유한 모범 선생님이어야 합니다. 교과서는 성경입니다.
결론 : 평안하게 하고 기쁨을 주리라.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17절)",
훈계와 꾸지람, 채찍을 통하여 바르게 교육된 자녀를 둔 부모가 누리게 될 복입니다. 말씀 안에서 바르게 자란 자녀는 부모가 자식 때문에 겪게 될 각양각색의 염려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부모들에게 있어 가장 평안하고 만족한 기쁨은 자녀로 인하여 와집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내 자녀를 '난 사람'이 아닌, '된 인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 자녀들을 하나님 사람으로서의 '된 인물'이 되게 하십시오. 부러울 것 없는 부모가 될 것입니다. 돌잔치 상에 쌀, 돈, 연필, 실 등등을 얹어 놓고 무엇을 집나 보고 그것에 따라 좋은 대로 해석하고 만족해하는 어리석은 부모가 되지 마십시오.
아기일 때부터 부모가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 읽는 모습을 눈에 넣고 가슴에 새기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답게 자녀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기독교 교육은 세상에서 혼자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 최대의 비극은 자식에 대한 기대가 좌절됨이며, 인생 최대의 행복은 자녀에게서 기대가 이루어짐입니다. 자녀들로부터 오는 평안과 기쁨은 부모의 삶을 힘있게 지탱해 주는 요소입니다. 남보다 더 나은 것으로 행복을 구한다면 영원히 행복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효자로 얻는 만족은 완전한 행복입니다. 자녀로부터 오는 평안과 기쁨의 만족은 세상의 권력이나 재물이 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부자는 자녀로 인하여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부모입니다.
부모의 행복, 생산적인 삶은 자녀의 삶이 좌우합니다.
참 평안과 기쁨은 내가 해야 할 일을 바로 다 했을 때 와지는 보상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뿌리'라는 제목을 주고 조상들에 대해 발표하라고 했지요. 한 아이, 한 아이씩 나와서 발표를 했습니다. "우리 증조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예조판서를 지내셨구요, 우리 할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이에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무역회사 사장님이세요""우리 아버지는 경제학 박사에요" "우리 아버지는 성악가구요 우리 엄만 피아니스트에요" 저마다 자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지며 당황했습니다.
그 어린이는 부모가 없어 고아원에서 사는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보는 순간 후회와 자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답니다. 헌데 그 아이는 조용히, 그리고 당당히 친구들 앞에 서서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이에요. 우리 아버지는 아들, 딸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나도 아주 많은 형제들이 있어요. 이 세상 모든 것이 우리 아버지 것이구요, 우리 아버지는 사랑도 아주 많아요..." 선생님의 두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