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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1: 3 보고 들은 바를 전함은 - 요일 1: 4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
요일 1: 3 보고 들은 바를 전함은 -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너희의](전통본문)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목적은 전하는 자들과 받는 자들이 서로 교제하기 위함이었다. 성도의 교제가 전도의 목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며 교제의 장이다. 우리는 성도의 교제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장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교제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확장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들의 참된 교제는 이 세상에 가장 복된 일이다. 그것은 천국에서도 나눌 교제이다.
그런데 본문은 성도의 교제가 단지 육신적 교제가 아님을 증언한다.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우리의 영적 교제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인생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 그를 알고 그와 교제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렇다면, 전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 9에서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감사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의 권면이 있는 교제이다.
사도 요한은 덧붙여 그가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피차간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교훈을 주고받음으로써 피차 기쁨이 충만케 된다.
성도의 기쁨의 이유는 그가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 곧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며, 또 그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교훈하였다. (빌 4: 4). 우리의 기쁨은 구원의 기쁨이며,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서로 권면하고 권면을 받을 때 우리의 기쁨은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다.
1]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본 절에서 요한은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사귐'이다. (Stott, Barker, Smalley, Wilder).
요한이 본 절에서 '사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행위로써 표현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사상과 연결된다.
* 요일 2: 3 -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사귐'(헤 코이노니아)는 문자적으로 '공동 소유', '협동'을 뜻하나 본 절에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공동자금을 모금한 '서로 나눔'의 의미까지 둘 다를 함축한다. (Smalley, Barker).
* 롬 15: 27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 고전 9: 23 -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 고후 13: 13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2]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본문은 1절 전반부부터 암시되어 온 예수의 이름을 명백하게 소개하고 있다.
요한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사귐'의 본질이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임을 분명히 제시함으로 그 사귐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즉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고 영원한 생명이시며 동시에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Smalley, Wilder).
* 요일 2: 1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요일 3: 23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 요일 4: 2 -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 요일 5: 6, 20 –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는 수신자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예수의 인성이나 신성을 경시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한 경고를 내포한다. (Smalley, Stott).
* 고전 1: 9 -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3] 교회
교회란 무엇인가?
(1) 영적인 공동체 - 그리스도를 믿고, 경험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 행 2: 44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마 18: 20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② 예수님을 믿음으로 만나게 된다.
예수님을 믿으나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까? 영적으로, 성령으로 만난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이 좋아진다. 성도는 자신이 인도한 사람이 주님을 만나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협력자요 동력자여야 한다.
③ 교회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영적인 사람들의 모임이다(1-2)
주님을 만남을 시작하여 많은 영적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 사도 요한의 증언을 보라. 요일 1: 1-2 -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②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자신이 경험한 영적인 은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자신이 받은 은혜와 은사를 가슴에 꼭꼭 뭍어두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이다. (영적 교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영적 공동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 많은 모임과 단체가 있으나 영적 공동체는 교회밖에 없다. 오늘도 우리는 여러분과 내가 받은 말씀의 은사와 영적 비밀을 나누고 있다.
④ 교회는 모인 무리 중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영적 교제(예배), 가운데 만나는 곳이다(3절).
⑤ 교회는 영적으로 정결하게 함을 받는 거룩한 곳이다.(6-10).
교회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용서받는 곳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말라. 술을 끊지 않는 분이 있는가?
교회에서는 개인의 비판은 금물이다. 이렇게 해서 얻는 결과는 무엇인가? 4절은 천국을 경험하게 된다.
(2)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나누고, 증언하는 일을 해야 한다.(1).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이 영생의 관문이다.
②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경험하게 해야 한다.
③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은사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
(3) 교회가 금할 것은 무엇인가?
① 영적 공동체인 교회에 육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
육적인 것을 나누면 안 된다. 타락하고 만다. 죽고 만다.
② 교회와 성도의 모임은 그 목적이 오직 영적이어야 한다.
육적이고 인간적인 모임을 성도가 가져서는 안 된다. 먹는 일, 마시는 일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오늘 남선교회나 여선교회 회원들이 모임을 찜질방에서 갖는 것은 타락의 위험이 농후하다.
영적지도자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 육적인 일 하지 않고, 영적인 목적으로만 모여야 한다.
③ 주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는 오직 영적인 활동만 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에 무슨 재미로 오나? 영적인 재미, 예수님 만나는 재미이다.!!!
어느 교회에서 교회의 미래를 놓고 같이 토론회를 벌였다. 어떤 분이 “교회는 참 문제가 많습니다. 위선자가 많습니다. 앞에서는 그럴듯하다가 뒤에서 다른 짓을 합니다.” “교회는 목사님이 문제입니다. 사명에 충실하지 않고 자기 사리사욕을 너무나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결론적으로 말하길 “교회는 얼마나 부패했는지 세상보다 못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속이 더 답답했다.
목사님이 한마디 합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교회에는 위선자도 있고, 목사님 중에는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여러분 보기에 세상보다 부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눈에 그런 것만 보인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서 진정으로 찾아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내 모습을 예수의 모습, 예수의 형상으로 바꾸어 가는 곳이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을 향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고 하셨다. 주님이 죄를 몰라서 정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죄는 사탄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뜻이 무엇입니까? 참소하는 자다.
사탄은 참소자다. 어떻게 해서라도 헐뜯는다. 좋은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죄가 있음을 보시면서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 주님은 긍휼의 사랑을 베푸신다.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어떻게 하면 살게 할까? 하는 것이 주님의 관심이다.
그것 때문에 죄인 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나에게 어떤 곳입니까? 나의 훈련소가 되어야 한다. 나를 예수의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은혜롭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교회고 이런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죄없다 하지 말라’고 했다.
요일 1: 4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 -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
1]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
본문은 요 15: 11을 반영한다.
* 요 15: 11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는 사귐의 결과이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이다. (Smalley, Stott).
* 갈 5: 22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이러한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하므로 현재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불완전하므로 기쁨 또한 불완전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귐 가운데 누리는 완전치 못한 기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인 사귐과 기쁨의 표징이며 보증이다.
그러기에 이 기쁨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헌신적인 사귐 가운데 기쁨을 누려야만 하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며 ‘영원한 생명’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는 천지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던 분, 곧 신적 존재이셨다.
기독교는 한 훌륭한 사람 예수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우리의 의와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를 믿고 섬기며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신적 영광을 보아야 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들의 확실함을 깨닫자.
우리는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우리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본 증인들의 증언들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눈으로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주목하고 손으로 만져본 증인들의 진실한 증언들 위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믿는 바는 사람들이 상상하여 지어낸 이야기들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진실한 증인들이 입증한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신약성경에서 확인하고 확신하자.
셋째, 성도의 교제의 본질을 알자.
교회는 성도의 교제의 회인데,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이다.
우리의 사랑의 교제는 먹고 마시는 세상적인 육신적 교제가 아니다. 믿음과 소망 안에서의 영적 교제이다.
거기에는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면이 있다.
그리고 이 교제 속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