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으로 똘똘 뭉친 완전체가 나타났다. 이름도 희안한 시트로엥 ‘C4 칵투스’다. 외관부터 인테리어까지 입이 쫙 벌어진다. 여기에 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지난 3월 가격을 200만원씩 인하했다. 기본 모델은 2490만원이다. 딜러 프로모션을 감안하면 2000만원대 초반에 구입할 수 있다. 경쟁 모델이 수입차가 아닌 국산차다. 쌍용 티볼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하다.
한국 도로에는 고만고만한 차들이 돌아다닌다. 대부분 남들이 사는 소위 ‘인기 차종’이다. 국산차던 수입차를 망라해 20여가지 모델에 몰려 있다. 다양성이라는 찾아 보기 어렵다. 색상도 흰색∙은색∙검정으로 비슷하다. 튀는 게 고작 미니(MINI) 정도다. 현대∙기아차의 내수 점유율이 연 평균 65%에 달한다. 나머지 20%를 4개 국산 브랜드가 나눠 먹는다. 수입차라고 해봐야 BMW∙벤츠∙아우디∙폴크스바겐 같은 독일차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 해외에 ‘얼리 어댑터’가 많다고 소문난 한국이지만 자동차 소비만큼은 개성파의 무덤일까.
비슷비슷한 차들이 도로를 누비는 한국에 눈길을 사로 잡을 만한 모델이 등장했다. ‘몇 억원 짜리 슈퍼카, 아니면 1억원대 테슬라냐’고 반문할 수 있다. 아니다. 정답은 도심형 SUV 시트로엥 ‘C4 칵투스’다. 튀는 외관에 실내 인테리어는 재미를 넘어 요상(?)하기도 하다. 개성을 넘어서 행복 만점 요소는 가격이다. 기본 모델이 2490만원이다. 파노라마루프가 달린 고급형이 2690만원으로 국산 소형 SUV인 쌍용차 티볼리, 이름만 국산으로 스페인에서 수입하는 르노삼성 QM3 가격대와 엇비슷하다. 칵투스가 눈길을 끄는 것만은 아니다. 가성비 뿐 아니라 실용성이 가득하다.
기자가 이 차를 처음 본 것은 2015년 10월 스페인 중부 내륙에서다. 잠시 스페인의 수도였던 발라도리도 지역 부근의 와이너리 취재를 갔다가 칵투스를 처음 만났다. 자동차라면 와인 이상으로 마니아인 기자가 칵투스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차주는 30대 초반 와이너리 여성 매니저였다. 그에게 “칵투스를 왜 샀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디자인이 매력적이라서, 개성이 넘쳐서…” 이런 대답을 기대했다.
“동급 모델 가운데 가격이 가장 저렴하고 연비가 좋아서(한 마디로 가성비가 좋아서), 와이너리 비포장도로를 달리기에 실용적이라서(세차를 안 해도 티도 안 나고, 관리가 쉽다는 얘기였다), 수납공간이 넉넉하고 트렁크는 흙이 묻은 짐을 싣고 물걸레로 닦아내기 편해서…”
이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개성 만점인 칵투스의 실제 구매 이유는 ‘실용성’이었다. 하긴 개성이 넘치는 미니(MINI)를 구입한 소비자가 6개월 만에 승차감이 불편하고 관리가 힘들어 중고차로 판다는 말이 떠 올랐다. (하긴 세차를 안 한 미니는 정말 도로의 꼴불견이다)그의 또 다른 설명은 기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와이너리 농장 샛길로 운행을 하다 보면 포도나무 가지에 차량 외부가 긁히는 경우가 많았다. 칵투스 옆 면에 달린 에어범프는 긁힘도 적은데다 심하게 손상되면 간편하게 갈아 낄 수 있어서 좋다.” 개성뿐 아니라 실용적인 차라는 점이다.
칵투스는 2014년 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다. 2014년 하반기 유럽 판매를 시작했다. 한국은 2년 늦은 2016년 8월 출시됐다. 너무 늦어서인지 아니면 시트로엥 브랜드가 한국 소비자에게 낯설어서인지 칵투스는 이름만큼이나 생소하게 수많은 장점을 알릴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거리에서도, 포털 검색 순위에서도 좀처럼 등장하지 못 한 채 잊혀졌다. 그런 C4 칵투스가 부활의 기회를 얻었다. 올해 3월 칵투스 가격을 트림 별로 200만원 인하한 것이다. 이는 시트로엥 본사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했다. 얼리 어댑터로 유명한 한국 소비자에게 칵투스의 상품성을 제대로 알리겠다는 전략적인 판단에서다. 기존 샤인 트림 2890만원, 필 트림 2690만원에서 각각 200만원 내려 2690만원, 2490만원으로 조정됐다. 옵션은 그대로다.
개성보다 실용성으로 타는 소형 SUV
오랜만에 서울 도심에서 타본 C4 칵투스는 매력 덩어리였다. 색상은 노랑이다. 이 차만큼 노란색이 잘 어울리는 차량을 찾기 쉽지 않다. 크기는 딱 소형 SUV다. 길이 4160, 전폭 1730, 전고 1530mm다. 경쟁 상대인 쌍용차 티볼리보다 길이는 38㎜, 폭은 66㎜ 더 작다. 높이는 무려 110㎜ 더 낮다. 크로스오버 SUV인 셈이다. 실내 공간을 가늠할 휠베이스는 2595㎜로 티볼리(2600㎜)와 비슷하다. 칵투스 플랫폼은 푸조 해치백 208, 베스트셀링 SUV 푸조 2008과 같다. 수입차 소형 SUV 베스트셀링 모델인 2008과 형제 차량이다.
외관 디자인은 상하 2단의 날렵한 헤드램프와 눈썹 모양의 주간 주행등이 눈길을 끈다. C4 피카소에 이어 도입된 요소다. 이외에는 전체적으로 모난 곳 없이 동글동글한 차체 라인과 잘 어울린다. 강한 개성에 평범함을 제대로 버무린 비빔밥이라고 할까. 재미난 것은 앞 유리창을 닦아 주는 워셔노즐이 보닛 끝이 아닌 와이퍼 블레이드에 달려 있다. 워셔액의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차체 측면 도어 2개에 걸쳐 커다랗게 달린 ‘에어범프’는 칵투스만의 매력이다. 디자인적인 특징보다 기능성이 뛰어나다. 에어범프 소재는 손가락으로 눌러도 쉽게 들어갈 정도로 부드러운 플라스틱이다. 소위 옆 차량 ’문콕‘이나 주차할 때 생기는 작은 충돌을 효과적으로 막아줄 수 있다. 플라스틱이라 차량의 무게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에어범프에 잔 기스가 많이 났을 때는 딱 9만원만 내면 새것으로 교체해준다. 검정∙그레이∙초콜릿 색으로 바꿀 수 있다. 마치 새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식 대신 혁신 가득한 실내
실내는 한 마디로 모든 게 새롭다. 상식을 넘어선 혁신 그 자체다. 높이를 한껏 낮춘 대시보드와 아이디어가 가득한 실내가 이상하기보다는 ‘아, 그렇구나’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익숙한 변속레버 자리엔 큼직한 사이드 브레이크가 달려 있다. 비행기 조종석과 비슷하다. 변속기는 칵투스에 처음 채용한 ‘이지 푸시(Easy Push)’ 다. 변속레버를 없애고 버튼으로 누르는 방식이다. D(드라이브)와 N(중립), R(후진) 버튼이 송풍구 아래에 자리했다. 링컨 MKZ에 달린 버튼 방식과 비슷하다.
실내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수납공간이다. 에어백을 기존 대시보드에 넣는 대신 천장에 넣었다. 세계 최초로 도입한 ‘루프 에어백’이다. 이로 인해 동승석에 모양이 다른 수납공간을 넉넉하게 마련했다. 에어백 자리에는 가방 모양의 수납함이 달려 있다. 아래오 여는 방식이 아니라 위로 열린다. 서류가방뿐 아니라 태블릿이나 소형 노트북을 넣을 수 있는 크기다. 윗부분 마무리는 미끄럽지 않도록 돌기를 심어 간단한 액세서리 등을 올려놓기 좋다. 그 밑에는 글로브박스가 하나 더 있다.
센터페시아에는 터치방식을 지원하는 7인치 모니터를 달려 있다. 차량 정보와 오디오 조작을 한다. 송풍구 아래엔 스마트폰을 얹어놓을 수 있는 작은 공간,동그란 컵홀더, 네모난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했다. 중앙 컵홀더는 하나뿐인데 생각보다 작아 아쉽다.계기판은 전자식 모니터다. 가운데가 속도계, 아래쪽은 연료량을 표시한다. 엔진회전수를 알려주는 타코메타 기능은 없다.
스티어링 휠은 가죽으로 감싼 D컷 모양으로 큼지막하다.
시트는 칵투스 만의 아이디어 포인트다. 앞좌석은 거실 소파의 느낌이 난다. 운전석과 동승석을 2인용 소파처럼 하나로 이어준다. 3단계로 조절되는 열선도 달렸다.
2열은 윈도에 눈길에 간다. 바깥으로 살짝 여는 개폐 방식이다. 국산 승합차의 3열 창문과 흡사하다. 그 대신 도어 안쪽을 깊숙이 파 넓은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조그만 가방을 넣을 수 있다. 2열 시트는 평범한 대신 넉넉하다. 앞좌석보다 높게 배치해 시야를 확보했다. 시트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없어 장거리 여행에는 불편할 수 있겠다.
천장은 모두 유리로 덮었다. 별도의 덮게는 없다. 자외선과 열 차단을 하는 기능성 유리다. 옵션으로 차단막을 장착할 수 있다.트렁크 공간은 딱 소형 SUV 크기다. 아래쪽에 깊숙이 공간을 마련하다 보니 턱이 생겼다. 제원상 용량은 358L다. 뒷좌석을 접으면 1170L까지 늘어난다. 티볼리 트렁크 용량은 423L, 르노삼성 QM3와 쉐보레 트랙스는 각각 377L, 356L다.
오랜만에 키를 꽂아 시동을 걸었다. 버튼 시동 방식은 아니다. 거리를 나서면 주차장이던 정체 구간에서 주위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주변 이목을 끌기에는 수 억원하는 슈퍼카 이외에는 칵투스 뿐이다.
도심에서도 연비 17㎞/L 이상 나와
엔진은 직렬 4기통 1.6L 터보 디젤이다. 최고출력은 99마력이다. 최대토크는 도심에서 자주 사용하는 엔진회전수인 1750rpm에서 25.0㎏·m의 토크를 뿜어낸다. 고속까지 쭈욱 급가속하는 튜닝과는 거리가 멀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생각보다 경쾌하게 움직인다. 무게가 가벼워서 몸놀림이 경쾌하다. 날렵한 몸놀림이 가능해진 건 물리학이다. 차량 무게가 1240kg에 불과하다. 다이어트에도 독특한 방식을 접목했다. 비싼 알루미늄 같은 소재를 사용한 게 아니다. 2열 열리지 않는 윈도우나 덮개가 없는 파노라마 루프, 두께를 줄인 시트 등으로 감량을 했다. 스티어링 휠 뒤쪽에 자리한 패들시프트를 잘 사용하면 다이내믹한 운전도 즐길 수 있다.
변속기는 수동 기반의 6단 자동 ETG6다. 이 변속기는 그냥 가속 페달을 꾹꾹 밟아주면 울컥거린다. 수동 변속기처럼 1단에서 2단으로 변속할 즈음 가속 페달에서 힘을 뺐다가 다시 살짝 밟아주면 이 증상이 사라진다. 일주일 정도 주행하면 충분히 익숙해진다. 기어비는 2단에서 엔진회전수를 올리면서 최대한 힘을 내게 했다. 도심형 SUV에 안성맞춤인 출력과 동력 성능이다. 정차를 할 때는 변속기를 N에 놓고 주차 브레이크를 당겨주면 된다.
서스펜션은 시트로엥의 장점을 잘 드러낸다. 부드러우면서도 요철 구간을 지날 때 생기는 충격을 부드럽게 머금고 내뱉는다. 좌우 급격한 핸들링을 해보면 댐퍼 스트로크가 길어 롤링이 꽤 느껴지지만 생각보다 자세를 잘 잡아준다. 가벼움의 미학이다. 경량화뿐만 아니라 레이저 용접을 통해 차체 강성을 높인 게 날렵한 핸들링을 가능하게 한 이유다. 2000만원대 초중반 가격에 이만한 핸들링을 보여주는 차는 흔치 않다. 시트로엥의 숨겨진 저력은 이 부분이다.
제동 성능 역시 도심형으로 맞췄다. 부드러운 앞 서스펜션 때문에 급제동 때 앞머리가 숙여졌다가 멈춰 서는 ‘노즈 다이브’ 현상이 생긴다. 뒷바퀴는 디스크보다 제동력이 다소 뒤지는 드럼 방식이지만 제동 성능에 크게 불만은 없다.
정숙성도 만족스럽다. 실내로 들어오는 엔진음이나 노면 소음도 비교적 잘 차단했다. 동급 디젤 모델과 비교했을 때 정상급 수준이다.시속 120km 이상 고속으로 달려봤다. 변속이 더디지만 힘이 부족하진 않다. 부드러운 서스펜션이라 불안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고속주행 안정감도 수준급이다. 시속 140km를 넘어서면 가속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도심형 SUV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2박3일 동안 고속도로와 정체구간을 포함해 200km 이상 달렸다. 모니터에 나타난 평균 연비는 무려 1L당 19.0㎞가 나왔다. 공식 복합연비는 17.5km/ℓ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정속 주행을 하면 28㎞/L 언저리가 나온다. 도심 정체구간에서도 연비는 좀처럼 17㎞/L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연비를 최적화하는 ‘오토 스타트 앤 스탑’ 시스템 덕분이다. 일부 운전자는 자꾸 시동이 걸리는 느낌이 싫어 사용하지 않지만 도심 연비를 좋게 하기 위해선 이 만한 게 없다. 정지 상태뿐만 아니라 시속 10㎞ 이하 구간에서는 때때로 엔진을 정지시킨다. 시동이 걸리는 반응도 빠르고 잔진동을 잘 억제한다.
평범함을 싫어하는 개성파, 개성보다 실용성(연비와 실내공간)이 더 중요한 가성비 소비자라면 C4 칵투스는 구입 목록에 넣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