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시키신 분/남호탁
아내는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와 남편 중 누구를 택할 거냐고 물으
면 대뜸 커피를 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내는 커피 마니
아다. 아침에 눈을 뜬 아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도 커피를 내리는 일
이다. 이런 아내를 둔 탓에 나 역시 커피를 즐겨 마시는 편이고 커피
숍도 자주 들락거린다. 아내를 따라 커피숍으로 향하는 나나 초등학
교 4학년인 막내아들은 이에 대해 하등 불만이 없다. 나나 막내아들
역시 커피숍을 좋아하기에. 모두들 흔쾌히 같은 장소로 향하지만 언
제나 꾸는 꿈만큼은 제각각이다. 아내는 커피 맛을, 나는 여유로움
을, 막내아들은 컴퓨터 게임을 꿈꾸며 커피숍으로 향한다. 이렇다 보
니 아내는 아무리 인테리어가 근사하더라도 커피 맛이 아니면 거들
떠보지도 않고, 나는 제아무리 커피 맛이 그만이더라도 사람들이 북
적대면 선뜻 들어서기를 주저하고, 막내아들은 컴퓨터가 없으면 울
상이 되고 만다. 언제나 아내는 자신의 커피잔에 에스프레소 원샷
(one shot)을 추가한다. 그냥 마시면 싱겁다나. 에스프레소 원샷 추
가요, 라고 점원에게 말을 건네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을라치면 언제
나 나는 주눅이 든다. 나를 향한 무언의 시위로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 너무 밍밍하다고 생각지 않아?”
“뭐, 짜릿한 거 없어?”
“당신은 짜증나지도 않아?”
아내가 내게 이렇듯 말하는 것만 같다. 어떤 인간이 에스프레소 원
샷 추가를 생각해낸 것인지, 모질고 냉혹한 인간이다.
커피 하면 에스프레소 원샷 추가라 외치는 아내의 목소리와 함
께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기억이 두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증권
사에 다니는 친구 오 ○○가 내게 들려준 얘긴데 내용은 이렇다.
오 ○○가 그의 친구 둘과 함께 어느 날 홍성에 있는 다방에 들어
갔다고 한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주문을 받으러 온 아가씨가 요란스레 껌을 씹으며 다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난 아메리카노.”
“난 카페라테.”
“난 카푸치노.”
주문을 받은 아가씨가 돌아서서는 주방으로 향하며 큰소리로 외
쳤다.
“언니, 여기 커피 세 잔!”
셋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떡하니 입만 벌리고는 서로를 쳐다
볼 뿐이었다. 친구가 들려주는 경험담을 들으며 나는 얼마나 웃었는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찔리는 구석이 있어 나는 마음이 영
찜찜했다. 나름 고민하며 말을 꺼낸 것인데, 다방 아가씨는 들은 척
도 안 했다. 그저 형식적으로 물었을 뿐 어쩌면 다방 아가씨의 결정
은 이미 내려졌는지도 몰랐다. 의사인 나와 그녀는 너무나도 닮았다.
환자는 나름대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인데 나는 한귀로 흘려듣기 일
쑤며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한다. 혹여 볼일이 있어 홍성에 들
러 다방에 들어갈라치면 그냥‘커피!’라고 해야겠다. 웃음거리가 되
기 전에.
커피에 얽힌 다른 한 가지 추억은 내가 외과과장으로 일하던 시절
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 군에는 내로라하는 건달이 있었는데,
어쩌다 나는 그의 탈장을 수술하게 되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서로 알
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건달은 땅딸막한 키에 어깨가 떡하니 벌어
진 게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
다. 성격 또한 제멋대로인지라 그 인간이 병원에만 나타났다 하면 간
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원무과 직원들 역시 오금을 펴지 못했다. 이
인간은 툭하면 나를 찾아와서는 주치의니 뭐니 운운하며 영양제를
놔달라고 했다. 놔 줄밖에. 그 인간은 항상 응급실 침대에 누워 커튼
을 드리운 채 영양제를 맞았다. 가끔 건달 조무래기들이 응급실에 와
서는 소란을 부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 인간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커튼을 열어젖히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그러면 모두들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허리를 굽실거리다가는 부리
나케 응급실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아무튼 그런 경우만 제외하곤 도
무지 정이 안 가는 인간이었다. 그 인간이 응급실 한쪽 구석에서 커
튼을 드리운 채 영양제를 맞고 있던 어느 날, 느닷없이 요란한 굉음
과 함께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가 응급실로 들어섰다. 진한 화장
에 손에는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커피 시키신 분!”
응급실로 들어선 아가씨가 응급실을 휘이 둘러보며 큰소리로 외
쳤다.
“어, 아가, 여기!”
열어젖힌 커튼 사이로 그 인간이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는 능글맞
은 웃음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오빠구나!”
스쿠터를 타고 배달 나온 다방 아가씨가 부리나케 그 인간에게로
향했다. 나도 간호사도 황당했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는 없었
다. 그저 조용히 있다 사라져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당시 내 눈에 비
친 응급실은 치안의 사각지대였다. 응급실은 건달뿐만 아니라 행패
를 부리고 소란을 피우는 인간들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
였다. 암울하던 시기였다. 아무튼 ‘커피’하면 나는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남호탁 -------------------------------------------------------------------
의학박사.
일반외과 전문의 예일병원 원장.
저서 : ≪대장항문병의 이해≫, ≪똥꼬의사≫, ≪똥꼬이야기≫,
≪수면내시경과 붕어빵≫,≪똥은 기똥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