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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하늘 뜻 다운로드>의 줄거리:
컴퓨터와 관련 된 이 '다운로드'가 무려 사천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향한 하늘의 뜻을 이 땅에 다운로드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 땅을 산다는 것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땅으로 다운로드 받아 실행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도 구체적으로 하늘 뜻을 땅으로 다운로드 받아 실행할 수 있을지 알아봅니다.
하늘 뜻 다운로드
(창24:1~67)
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9.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하늘 뜻 다운로드>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하늘 뜻 다운로드’
주님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 하늘에서 결정 된 뜻을 어떻게 이 땅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겠는가?
여러분! 다운로드가 뭔지 다 아시지요?
인터넷 망을 통해서 중앙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온전한 자료와 파일을 내 컴퓨터로 갖고 오는 것을 ‘다운로드’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내려 받기’라고 합니다.
2014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 동안 하늘에서 결정된 하늘의 중앙컴퓨터에 있는 나에 관한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삶의 현실에 다운로드 받았고 실행했는지 잘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 수준을 그대로 다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이런 내용과 연관되어서 제가 강릉에 와서 경포해변과 더 남쪽으로 송정해변이 있는데, 그 중간쯤의 지점을 지날 때마다 늘 어떤 감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뭐냐 하면, 제가 영락교회 부목사로 간지 1년이 되어 갈 때에, 지금 담임 목사님으로 교회를 잘 섬기고 계시는 이 철신 목사님께서 부임을 하셨습니다. 1997년 12월에 담임 목사님이 오셨고, 그 이듬해 봄에 갑자기 어느 장로님 두 분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영락교회 앞에 있는 찻집에서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강릉의 강릉장로교회 장로님들이세요. 나이가 제일 많으신 장로님과 활동이 많으신 장로님 두 분이 오셔서 강릉장로교회 담임 목사님 자리가 비어있는데, 저를 청빙하고 싶으시다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부목사로 간지 1년 조금 넘었어요.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될까요?’하고 있는데 학교 다닐 때에 선배 목사님들에게 직접 간접으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늘 목사님들의 고민은 어디에 가서 목회를 할 것이냐 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목회지가 귀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여간 선배 목사님들이 옛날부터 해오던 이야기가 뭐냐? 목사가 사역을 하기 위한 준비가 끝났을 때, 어느 목회지로 갈 것이냐에 대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고 결정하느냐?
첫 번째 제안이 들어오는 목회지로 무조건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시고 그렇게 실천하시면서 사셨던 선배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아! 그래. 이게 첫 번째 담임 목사 제안이니 가자’고 결정을 했습니다. 이제 담임 목사님에게 가서 “이만저만해서 강릉장로교회에서 저를 초청하니까 제가 가야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이 철신 목사님께서 “태 목사가 1년 밖에 되지 않았고, 내가 온지도 몇 개월 안 됐는데, 그런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부목사가 떠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보기가 그렇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곳에서도 청빙이 들어올 테니, 이번에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씀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받아들이고 장로님들을 만나서 “못 가겠습니다. 담임 목사님 뜻이 그러하시고 제가 보기에도 교회를 위해서 덕이 안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나이 많으신 장로님이 엉엉 우시는 거예요.
담임 목사님은 가지 말라고 하시고, 장로님은 찻집에서 그 연세 많으신 분이 엉엉 울고 계시고… 제가 뭐라고, 언제 저를 아셨다고 우시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생각을 주시는 겁니다.
“담임 목회 자리 AS(애프터서비스)”
그래서 제가 “장로님들! 진짜 하나님 앞에 거짓 없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와 같은 부목사님이지만 제가 저분에게 목회를 배우면 제대로 배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다. 저랑 동갑 목사님인데 영락 교회에 오신지가 5~6년이 되신 목사님이시고 훌륭하신 분인데 그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분을 이력서도 받지 말고 아무소리 안 하시고 그냥 제 말씀을 믿고 모셔 가신 후에, 3년 내에 그 분에게서 문제가 발생 된다면 제가 이 지구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곧바로 강릉장로교회로 가서 AS를 가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장로님들이 깜짝 놀라시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보셨겠죠. 저도 처음이고.
그래서 제가 AS를 하기로 하고 그 목사님을 모셔갔는데, 지금까지 잘 되고 있고 시내 안쪽에 조그맣게 있던 교회가 바닷가 쪽에 넓은 부지를 사서 큰 예배당을 짓고 옆에 부속 건물들도 많더라고요. 하여튼 지금까지 잘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12년 만에 강릉으로 다시 온 거예요. 이게 희한하죠? 도대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어요.
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다운로드 받아서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드디어 그 말 많고 탈 많던 바로 그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출생 후에도 얼마나 시끄러웠습니까? 또, 이삭을 번제단에 바쳐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었잖아요. 이렇게 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이삭이 40세가 되어서 아브라함이 결혼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40세까지 결혼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결혼할 때가 되었다는 사인을 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게 재미있는 게 이제 결혼할 때가 되어서 신부를 구하는데, 가나안 땅을 보니까 완전히 종교적 도덕적으로 타락이 이루 말 할 수 없는 형편이고, 왜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상태이니 여기서 아내를 구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요. 그래서 하란에서 가계를 이루고 있는 자기 집안에서 찾아서 신부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여호와께 터치다운하는 신앙이 계속 이어져 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지요.
아브라함이 터치다운하는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라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었겠습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에도 사라가 같이하고, 바로와 아비멜렉에게 들어가라면 들어가고 하나님이 내보내시면 나오고 이렇게 순종했던 사람이에요.
몇 번 하갈의 문제로 아브라함에게 대드는 것 같은 모습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사라가 같이 동조를 했기 때문에 더 쉬웠던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아브라함으로서는 하란에 남아있는 아버지 데라의 형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나홀이 이야기가 되는데 그 집안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여호와 신앙을 아브라함이 믿는 것 같이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호와 신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종교혼합주의에 빠져있었던 것이죠. 어쨌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것도 아버지 데라의 집안에서 만난 것이니까 그 집안사람들 중에서 신부를 고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안 가는 거예요. 며느리를 얻기 위해 자기가 직접 안 가고, 아내를 얻기 위해 이삭이 가는 것도 아니고 종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잘못하면 큰코다치지 않겠습니까?
이 엘리에셀이라고 추정되는 노종은 15장부터 나와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얼마나 이 사람을 신뢰했으면 그랬을까? 또, 이 엘리에셀의 안목과 식견을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에 맡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믿음의 조상이 아니지요.
더군다나 이삭이 누굽니까? 그 거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가동되고 시동되는 첫 번째 연결 고리입니다. 아브라함과의 연결 고리가 이삭이고, 그 뒤를 이어갈 연결 고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며느리를 얻어야 하는 상황인데, 엘리에셀의 사람됨을 보고서 맡겼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죠.
그럼 엘리에셀이 누구를 데리고 올 줄 알아서 맡기는 겁니까?
40세나 된 이삭도 그렇고, 아브라함도 그렇고, 그리고 엘리엘셀 이 사람도 큰일 낼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당부를 받고 주인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를 한 다음에 800km나 떨어진 하란에 도착했을 때에 이 사람이 뭐라고 기도를 하는가 하면?
이삭의 신부를 찾을 아무런 근거가 없잖아요. 하란에 오기는 왔지만 막연하죠.
기껏 한다는 말이 13-14절에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라고 합니다.
너무 성의 없는 것 아니에요? 그래도 주인의 절실한 신신당부를 듣고 맹세까지 하고 온 사람이면 아가씨를 눈으로 봐서 예쁘고 참한지 본 다음에, 입을 열어서 말하는 태도가 교양이 있는지 없는지도 보고, 은근히 집안도 어떤지 알아보고 나서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누군지도 몰라요. 만약에 아주 괴상한 아가씨가 나와서 물을 기를 때 물 좀 달라고 하면 물을 주고, 낙타에게도 물을 줬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큰일 낼 사람 아닙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엘리에셀, 이 사람들이 아브라함 집안의 빅3입니다.
이 빅3가 다 뭘 하느냐?
자기 눈을 하나님께 저당 잡히고, 이삭의 결혼식을 추진해갑니다.
자기 눈을 믿지 않는 거예요. 자기 입을 믿지 않는 것이고, 자기 귀를 믿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눈과 입과 귀를 하나님께 저당 잡히고 못 보는 사람인 것처럼, 못 듣는 사람인 것처럼, 말을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자기 자신을 제한을 해놓고 하나님의 뜻을 다운로드 받습니다. 이게 하늘의 뜻을 다운로드 받는 비결이라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내가 물 길러 온 아가씨를 눈으로 보면, 그 아가씨의 생김새에 대한 나의 판단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얼굴과 자태를 보면 다 판단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걸어 봅니다. 그러면 판단이 점점 깊어집니다. 내 속에서 판단의 가동력이 점점 가속합니다. 그리고 호, 불호를 결정하게 되고, 하늘에서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은 다운로드 되지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참 재미있는 것은 22장부터 이어져갑니다. 22장에서는 이삭을 바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버린 것이고, 아내 사라도 두 번씩이나 버린 것이고, 롯과 헤어질 때에는 자기 기업의 근본이 되는 땅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주도적인 이끄심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바치는 사건은 완전히 주도권과 칼자루가 아브라함에게 넘겨진 상태에서 이삭에 대한 자기 마음을 죽임으로써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터치다운을 이루어냅니다.
그리고 갑자기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 집안의 자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하나님의 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사라의 무덤 자리로 막벨라 동굴을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의 계획, 바닷가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들이 태어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축복이 이루어지는 이 땅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로 여깁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돌아갈 땅은 따로 있고, 나는 현재 이곳에서 마음 붙이고 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업무의 현장이지, 영원히 살 것처럼 마음을 정착시켜야 할 곳이 아니라고 하는 것까지 끝났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나홀의 집안에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살짝 언급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이삭과 결혼을 해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어떻게 이게 실제로 형제간인 아브라함과 나홀이 사돈이 되고, 이삭과 리브가가 만나게 되고 하늘에서 정해진 뜻이 어떻게 이 땅에서 다운로드 되어서 실행될 수 있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엘리에셀이 지금 이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냅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눈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여깁니다. 자기 입과 자기 귀와 판단력이 없는 사람처럼 여깁니다. 그리고 엘리에셀에게 맡겨버립니다. 이삭도 아버지께 맡겨버립니다.
아버지께 맡겨버린다는 얘기는, 이 시대가 야곱이 레아와 라헬에 대해서 자기의 배우자를 결정해 가는 과정이 나중에 나오겠지만, 부모님의 결정권이 컸지만 자식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무시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삭도 아버지께 맡기고, 이삭과 아브라함의 4개의 눈이 하나님께 저당 잡힌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에셀도 그 부탁을 받고 가는데 2개의 눈이 하나님께 저당 잡힙니다. 6개의 눈이 하나님께 저당 잡혀서 일어난 결혼이 이삭의 결혼식입니다. 주체적으로 눈을 빼버린 겁니다.
아버지도 결정을 안 하고, 본인도 본인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 종도 자기 판단으로 결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을 달라고 하고 낙타에게도 먹이고 하는 이야기는 엘리에셀로서는 하나님이 이 여자라고 지명해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뒷골이 당겨서 할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 얘기냐 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어떤 결정을 하시든지 나를 위한 것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상황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 눈으로 봐야죠. 내 입으로 말을 걸어보고, 내 귀로 들어봐야죠. 안 그러고 어떻게 배우자를 결정을 합니까? 그래서 다들 자기 눈으로 봐서 예쁜 여자를 찾고, 자기 입으로 말 걸어보고 데이트해서 결혼하잖아요. 그리고 3년 내에 1/3 이상이 다 이혼하잖아요. 이혼 안 하더라도 참고 살잖아요. 그렇게 내 눈을 믿고, 그렇게 내 입과 내 귀를 믿고 판단해서 내가 선택한 배우자라고 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잘도 헤어집니까?
이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에요. 배우자 문제뿐만이 아닌 거예요.
우리가 하루 살아가는데 직장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다운로드 해야 될 하나님의 뜻이 계속 있는 것은, 하나님이 침 삼킬 순간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쳐다보고 계시고,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뜻을 갖고 계시므로 다운로드 받아야 하는 거예요.
어떻게 다운로드 받습니까?
이 세상에 대해서 내 눈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 세상에 대해서 내 입과 귀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내 주변의 모든 환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를 향해서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사건들이 되는 거예요.
이런 상태라면 하나님이 내부로부터 당신의 뜻과 당신의 능력과 당신의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수밖에 없고 다운로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터치다운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마음을 하늘에 둔다는 거예요.
하늘에 두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어떤 굉장한 일이 나로 인해서 일어나게 되더라도 다 업무로 취급을 하고 퇴근보다 더 좋게 여길 수 없는 마음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일어나도 죽음이라는 퇴근이 제일 좋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살아있는 것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인데, 그 업무는 하늘의 뜻을 땅에 다운로드 받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눈이 못 보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앞에서 무슨 사고가 벌어지면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눈으로 보고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뜻을 발동시켜서 행동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못 보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문제를 보시고 나를 어떻게 움직여 가시지 않는 한, 나는 그냥 속절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처럼 나뒹굴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것이죠.
아슬아슬하고 뒷골이 당기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염려가 돼서 할 수 있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고 나보다 나를 더 눈여겨보고 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이끄실 것을 믿고, 내 눈을 봉쇄해버리는 것이고 귀를 봉쇄해버리고 입을 봉쇄해버리는 겁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뜻이 다운로드 된다는 거예요.
마음은 하늘에 있어요. 이 땅에서 무엇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마음 자체가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이 내려오는 것이죠.
우리가 창세기 1장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주체성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지금 이삭의 신부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볼 생각도 안 하고, 말을 걸어볼 생각도 안 하고, 들어볼 생각도 안 합니다. 이삭도 마찬가지고 엘리에셀도 마찬가지예요.
하란 우물가에 앉아서 어느 아가씨든지 말 걸었을 때에 물드시라고 하고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여자는 도대체 어떤 여자인줄로 알고 데려가겠다고 하는 겁니까? 큰일 낼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 합니다.
왜?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주인 아브라함을 사랑하고, 내 주인의 아들 이삭을 사랑하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믿고 눈 딱 감아버립니다.
그때 물 긷는 그 아가씨에게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아가씨, 그게 바로 리브가예요.
물드시겠냐고 하고 낙타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하니까 긴장해서 가만히 쳐다봅니다.
‘이 일이 도대체 될 것인가? 과연 이 여자가 맞을 것인가?’
그러고 나서 낙타에게 물을 먹인 다음에 어느 집 딸인가 쓱-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고 해요. 아마 엘리에셀이 소름끼쳤을 거예요.
나홀은 자기 주인의 동생 아닙니까? 그의 막내아들이 브두엘이고 그의 딸입니다.
기절할 일 아니겠습니까? 하필 그 때 리브가가 나옵니까? 이게 우연이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하늘에 터치다운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보면 우연일 수밖에 없고, 살아가는 방식이 꼭 로또에 기대서 살아가는 것 같고, 봉사 문고리 잡는다는 속담을 삶의 방식으로 채택한 사람들 같아 보입니다.
눈을 봉쇄하고 귀를 봉쇄한 채라야 내 판단력이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주체성이 수용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이게 바로 하나님의 뜻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내 뜻에서 나오는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면 하늘의 뜻은 다운로드 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는데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고 미친 척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눈과 귀를 봉쇄하고 그저 나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가겠다고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변 전체의 환경을 당신의 계획대로 바꾸시고 인도해가십니다.
그러므로 리브가가 아니고 다른 여자가 먼저 물을 길으러 나오려고 하던 것을 하나님께서 돌 뿌리에 걸려서 넘어지게 했을지도 모르는 거예요. 왜냐하면 엘리에셀이 자기 눈을 봉쇄해버리고 자기가 보고 말 걸어서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먼저 나오는 아가씨 중에서 택하려고 하니 하나님이 바쁘셔서, 다른 아가씨가 나오려고 하는 것을 막으시고 리브가가 제일 먼저 나오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정도로 우리의 눈과 귀를 봉쇄하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만 가겠다고 하고 삶의 모든 환경을 하나님이 주장하신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다 꿰어 맞추시느라고 바쁘게 움직이셔서라도 우리의 삶을 당신의 복된 계획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어떻게 다운로드 받습니까?
눈과 귀를 봉쇄해버립니다. 그래서 내 판단력이 묶이고 꺼진 채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체성과 뜻이 다운로드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이 다운로드 되어서 실행되어지는 현장이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이루어질 때에 우리는 이 세상을 직장으로 여기고, 그래도 죽어서 하나님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퇴근을 향해서 나가는 삶,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내 눈과 내 귀와 내 입을 봉쇄함으로 내 주체적 판단력을 묶어버리고 온전히 이 땅으로 다운로드하여 실행하며 살아가는 2015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