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위로되는 말씀으로 길수를 사랑해주시는 집사님께!!
추석명절연휴(26일~29일)동안 도서관이 문을 닫아 오늘 아침에야 집사님의 답신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중국 고전 한비자에 있는 천리마를 고르는 이야기가 떠올라 여기에 적어봅니다.
“~백락(伯樂)에게 좋은 말을 구별하는 능력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제자들에게만 천리마를 구별하는 기술을 가르쳐주고 자신이 아끼는 제자들에게는 못나고 평범한 좋은 말을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백락은 그냥 웃기만 했다.“
백락의 그 웃음에 대해 한비자는 “천리마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구별법을 알고 있어도 별로 이익이 없다. 반면에 평범하지만 건강한 말은 그 수가 많고 날마다 매매가 되기에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고 그 나름의 해석을 책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백락의 웃음에 대하여 길수는 한비자와는 다른 생각을 해봅니다.
천리마를 고르는 법을 알게 되면 평범하고 좋은 말을 보는 눈은 저절로 길러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무릇 진정한 스승이란 제자를 그들 자신보다도 더 잘 아신 예수님을 닮은 이들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기의 후계자로 점찍은 제자들에게는 더욱 엄하고 천하고 모질게 대하는 스승님 부모님들이 우리 조상님들이셨지요.
그래서 스승의 속마음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는 그 제자들만 유난히 싫어하는 것처럼 비쳤겠지요.
천리마를 고르는 자신의 비법이 자신의 대에 끊겨지기를 원하는 스승이 단 한 명이라도 있겠습니까?
자신의 맥을 이은 제자가 비록 세상에서는 백락자신과 같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할지라도 작은 이익이나 권세에 연연해하지 않고 또 다른 제자를 길러 대를 이어주기를 바라겠지요.
길수는 하나 밖에 없는 아끼고 사랑하는 여동생에게도 길수가 배운 복음에 대해 입 한 번 뻥끗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지아비인 남편을 지어미로서 잘 내조하는 아내, 하늘이 선물로 주신 두 딸을 정성과 사랑으로 잘 길러내는 어머니, 팔순 넘으신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친딸처럼 잘 보살펴드리는 착한 며느리, 손해를 보더라도 세 명의 까다로운 동서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형님아우 노릇만 잘해도 하늘의 큰 상을 받는다고 격려하고 그렇게 살아주어 고맙다고 말해주었답니다.
집사님이 로마서 7장 말씀을 얼마나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 지를 말씀하셨을 때 길수는 내색은 안했지만 정말 기뻤답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그 어떤 성경 , 바울의 다른 서신에도 적혀 있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 육체 안에 거하는 죄(罪)’ 라는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하게 명문화된 구절이 로마서 7장에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었었지요.
길수는 집사님이 어떤 인생여정을 살아오셨는지 알지 못하지만 부모형제친척들 친구들과 헤어져 낯선 미국 땅에서 온갖 신산을 다 맛보셨을 것으로 나름 추측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스승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준마(駿馬)나 명마(名馬)가 아닌 천리마(千里馬)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하나님의 동역자들로, 당신을 꼭 닮은 제자들 친구들로 대접하고 가르쳐오셨음을 다시 한 번 집사님에게 환기시키고 길수도 되새김질해보면서 두서없이 답신글로 대신해 보았습니다.
주인(主)이신 예수님의 마음과 하시고자 하시는 일의 비밀을 종은 모르나 친구는 안다고 하신 복음서의 말씀이 집사님과 집사님 가정에 임하여 예수님의 친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되게 하소서!!
을미년 추분절에 전라북도 순창산골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며 길수가 올립니다.
추신) 아래는 오늘 제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입니다.
문경지교(刎頸之交)
刎頸之交. 생사(生死)를 함께 할 수 있는 벗, 서로 죽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막역지우(莫逆之友).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만큼 친한 친구. 서로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順從하는) 친한 친구.
<요한복음 15장 13~14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상대친구를 위하여 대신 목 베임을 당해 줄 수 있는 사귐 교제 관계인 문경지교(刎頸之交)가 나사렛예수와 나 사이 사랑우정의 형태일까?
예수만 나를 위해 보혈(寶血)을 흘리시는 하나님이고 나는 필요할 때마다(시시때때로) 그의 일방적인 희생의 피만 빨아 먹고 사는 흡혈귀(吸血鬼 뱀파이어 드라큘라)같은 그리스도인은 아닌가?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마음(뜻, 서로 맺은 약속, 언약, 맹세)이 변치 않는 친구사이가 그리스도예수와 그리스도인 사이임은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로 보건데 자기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방적인 희생 헌신 복종 죽음(순교)을 강요하는 그리스도 역시도 그리스도인의 막역지우(莫逆之友) 진정한 친구가 아님이 명백해진다.
자기의 목숨보다 육체의 생명보다 서로의 마음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자들의 사귐이라는 문경지교(刎頸之交)는 막역지우( 莫逆之友)라는 사자성어와 그 의미에 있어서는 꼭 같다고 할 수 있다.
莫逆之友. 서로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순순히 따라주며, 설명하는 말이 없어도,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며 기꺼이 받아주는 친구.
막역(莫逆)을 다른 단어로 바꾸면 순종(順從)이다.
자기 친구들인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뜻에 순종(順從)하는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있는가?
자기 벗 아브라함과 롯의 소원을 듣고 순종(順從)하신 하나님이 과연 2천년 역사를 가진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하나님아버지인가?
기독교회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막역지우(莫逆之友)인 붕우(朋友)사이, 부부(夫婦)사이, 부자(父子)사이, 형제(兄弟)사이 군신(君臣)사이에 서로의 마음(뜻)을 존중하고 상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기꺼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응해주는 관계형태를 일컫는 ‘순종(順從)’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변질시켜 버렸다.
상대를 자기 뜻대로만 조종(操縱) 움직이게 하고 자기는 상대의 마음 뜻을 전혀 개의치 않는 순종(順從)이란 거스르면 형벌죽음으로 보복을 당하는 명령, 복종(服從) 맹종(盲從)이 양의 탈을 쓴 것뿐이라 하리라.
예수님은 자기친구라 찬송 부르면서 여호와하나님은 주인 절대자로 피조물인 자기를 지은 창조주로 순종(복종 맹종) 하는 이들, 보혜사성령은 돈 받고 팔아먹는 이들은 결코 나사렛예수와 문경지우(刎頸之友)를 맺은 하나님의 막역지우 (莫逆之友)들이 되기를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될 수도 없다.
乙未年 秋分節 无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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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입니다. 제가 지난주 금요일 미국에 귀국한 후 시차로 밤낮을 헤메이다 형제님 글을 보고 너무 기뻣습니다. 좋은 글에 대한 답장은 준비되는대로 보내드리기로 약속 드립니다. 저는 어머님과 형제님을 뵌것 만으로도 행복하고 기뻣습니다. 서로 가까이 산다면 자주 만나고 손잡고 얘기하고 기도하고 싶은데 그럴 날이 오리라 기대합니다. 거리가 가깝지 뭇하면 먼저 마음과 영으로라도 더욱 가까이 지내고 싶습니다.
어머님과두분이 함께하는 곳이었기에 저는 편한한 마음으로 친구집에 간것처럼 다녀 왔습니다. 앞으로도 가고 싶을때 가고자 합니다. 그저 친구라 생각하시고 부담없이 갈 수 있게 터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길수 형제님과 로마서를 밤새 논하며 은혜를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해 갑니다. 그때까지는 서로 서신으로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 형제님 덕분에 또 깊이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저희 집도 한번 다녀 가셔야 합니다. 답방을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항상 건강하시고 어머님께 많은 것 받고와서 집사람과 저의 감사함의 마음을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000 형제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