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유성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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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다섯 번째 가곡은 「유성의 노래」 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도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별을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릴 때 고향에서 보던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영상으로 가슴에 남았다.
스무 살 시절, 아내를 만난 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주고받은 편지 속에는 별과 유성(流星)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내는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도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니 달은 구름에 가리워 형체도 없습니다.
왜 저렇게 하늘이 우울한지 별들조차 하나도 보이지 않는군요.
성(聖),
혹시 저 하늘이 저렇게 우울하게 보이는 것도 사흘이나 성을 못 본 때문이 아닌지요? 일을 하며 땀을 흘려도 성을 생각하면 마냥 기쁘고 저 하늘과 그리고 가녀린 바람결조차 내가 미처 몰랐던 의미를 전해주는 것도 다 성이 내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와 나. 한없이 신비스럽고 또한 한없이 초조하고 불안한, 그러면서도 서로 가슴 가득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안겨주는 우리. 문득 그대로 해서 괴로움을 느낄 때, 만약 성을 몰랐다면? 하고 생각하면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나는 왜 그대로 인해 이처럼 행복하며 또한 그대로 인해 이처럼 괴로운가요?
그대는 나를 그대보다 높은 곳에 있다고 하지만 나는 한없이 초라합니다. 너무 너무 부족해서 혹시 성이 바람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해집니다. 성의 사랑은 한여름 밤의 유성과도 같이 너무나 아름답게 순간적으로 불타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별이 아닐까요? (1976. 8. 15.)
나는 1977년 9월 군(軍)에 입대하였다. 아내는 내 가방을 챙겨주며 논산까지 따라와 주었다. 기차 안에서 나는 그녀가 내게 준 메모지를 펴서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성(聖)의 가방을 챙기려니 마음이 착잡해. 부디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오기만 바랄뿐야. 성의 말대로 나 열심히 기다릴게. 밥 잘 먹고 잠 잘 시간 맞춰 자고 그러면 되지? 성은 정말 건강해야 돼. 정말.
실을 감으면서 웃음이 나와 혼났어. 성이 바느질하고 빨래하는 모습. 와 우습다. 옆에서 구경하며 놀려주고 싶은데. 씨--
우리 서로 믿고 기도하며 살자. 나 어떤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아. 손가락 내밀어봐, 걸어줄게.
진정으로 사랑해, 성. 맘 변하지 말고 또 많이 변해서 돌아와야 한다. 믿고 기다릴게. 만날 때까지 열심히 충성하고. 안녕!
그녀는 일부러 아주 간단하고 가볍게 편지를 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처럼 가벼운 농담이 담긴 편지를 쓸 수 없었다. 이 편지는 군에 입대하기 전 미리 써놓은 것으로 기억한다.
신(信),
나는 이제 조국의 부름을 받고 병사(兵士)의 길을 떠나면서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대의 성(聖) 답게 성실하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그 길을 갈 것을 약속해. 신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를 기다려주겠지? 이제 곧 낙엽이 지고 찬 서리가 내리겠지만 다시 또 봄이 오고 낙엽이 지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나를 기다려주겠지?
그때쯤이면 나도 더 굳세고 강한 사나이가 되어 그대 앞에 설 수 있을 거야. 돌아오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여도 나는 꼭 신 앞에 돌아올게. 오늘 밤 달이 뜨는 것을 기다리듯 그렇게 기다리겠다고 말해줘.
신(信),
철없이 방황하고 툭하면 넘어지던 나를 그래도 내 사랑이라고 불러주며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주고 일으켜 세워줘서 고마웠어. 그대가 아니더면 누가 있어 나를 먹여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잠을 재워 주었으랴. 나는 알고 있어. 신이 나를 떠나려고 했지만 내가 너무 가엾어서 떠나지 못하였음을. 막상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그대에게 행한 나의 행실이 얼마나 한심하였는가 통감하게 돼. 넘치는 행복보다는 아련한 아픔만을 드린 일이 부끄럽기만 해.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 그것만은 진실하고 순결한 것이었다고. 그리고 약속한다. 내가 돌아오는 날 당신이 꿈꾸던 영토보다 몇 배 비옥한 아름다운 영토에 그대를 안주케 할 것이라고. 눈물 밖에 줄 게 없었던 그대의 빈 가슴에다 내 모든 정성을 다 바치겠다고.
문득 을왕리에서 바라보던 별들이 생각난다. 북두칠성 일곱 개 별이 찬란하던 그 밤에 신과 나는 모든 것이 활활 함께 타서 밤하늘에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유성(流星)이 되고 싶다고 했었지. 이제 우리는 잠시 떨어져 있지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우리들이 함께 바라보는 하늘에도 밤마다 어디선가 이름 없는 유성들이 지고 있을 거야.
생각해봐.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고나면 당신의 심장 가까운 곳에 묻혀 있을 나의 운석들을. 빛을 밝혀 주리다. 나의 운석들은. 그것은 그대의 곁에 서서 총검을 들고 서 있을 나의 그림자기에.
때로는 외로울 때도 있고 아프거나 괴로울 때도 있을 테지. 그럴 때는 피아노를 쳐봐요. 아름다운 그대 손가락이 건반 위를 춤출 때마다 그리스도상은 밝은 빛으로 신을 지켜주고 그대의 책상 위에는 나의 편지와 시(詩)가 배달될 테니까.
한 번 더 보고 싶은 신,
그대 앞에 다시 서는 날, 나의 정신과 육체는 거듭 생성되는 과정을 거쳐서 그대 앞에 설 것이며, 나는 우리의 온전한 생(生)을 책임질 거야. 말해 봐요. 우리들은 온전히 하나라고. 우리는 결코 분리되어 흩어져 부서지는 분수가 될 수 없다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 분리된 당신이 아니라 내 속에 존재하는 당신이다”라고.
사랑이 헛되고 헛되다고 말하지 말아줘. 나의 눈동자에 거짓이 있다면 그 눈을 멀게 해줘. 나의 가슴에 거짓된 진실이 있다면 내 가슴을 짓이겨줘.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대의 음성을.
(1977. 9. 10. 軍門을 향해 떠나면서)
그 후 나는 그녀와 이별하고 강원도 산 속 휴전선철책선을 지키는 부대에서 분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수놓던 온갖 별들과 찬란한 은하수물결, 그리고 아름답게 선을 그으며 떨어지던 수많은 유성(流星)들을 보았다.
유난히 감수성이 예민하던 나는 조그만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편지를 쓰다가도, 그녀가 어둡고 쓸쓸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올 때면 그녀를 잃을까봐 두려웠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꽃과 나무, 바람과 별들의 움직임이나 새들의 울부짖음, 빗소리마저 감상적으로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성에게
성, 지금 몇 시인지도 모르지만 다이얼6에서 가곡 「기다림」이 흘러나온다. “기약하고 떠난 뒤 아니올 동안/ 꽃밭엔 잡초만이 우거져 있네/ 그 후론 날마다 아니 피는 꽃이여...” 성이 즐겨 들려주던 저 노래를, 성이 가고 난 뒤 처음으로 오늘 들으니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려고 해. 성이 오지 않으면 내 가슴에 피는 꽃조차 시들지도 몰라.
“보내고 한 세월을 방황할 동안/ 창문엔 달빛조차 오지를 않네”
하지만 나에게는 성이 있으니까 내 창문에는 달빛이 올 거야.
사랑해 성, 성이 있으므로 나는 외롭지 않고, 이렇게 성과 헤어져서 그리움을 수놓으며 우리가 만날 날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더욱 성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믿음을 배우는 것 같아. 부족하고 부족한 나를 성은 진심으로 사랑해주리라 믿으며 오직 나만의 사람이라고 약속해 준 그 넓은 가슴과 그 굳센 두 팔에 어서 안겼음 좋겠어.
밤은 고요하다. 성은 지금 편안히 잠들었음 좋겠어. 그래서 꿈속에서나마 지금 이처럼 행복한 나를 한번 안아 주었으면 좋겠어.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1978. 11. 11.)
아, 이 춥고 쓸쓸한 겨울날 슬프도록 처절한 그리움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봄이 그립다. 조각달이 기울면 한 줄기 고운 빛을 그리며 떨어지는 유성(流星)을 바라보며 그대의 얼굴을 그려보고, 그려보다 지쳐서 차라리 지나간 날의 그 고통스럽던 기억마저 생각하곤 하였다.
그대가 떠나버린 슬픔에 몸부림치던 날, 아름다운 꿈도 젊음의 환희도 바닷가에 부서지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아픔으로 밖에는 돌릴 수 없었던...
그때 나의 고통은 가없는 슬픔을 간직한 채 숨져가는 유성이 되고 싶은 것, 그것 뿐 이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썼었다.
유성(流星)의 노래
아무도 모른다.
푸른 하늘 그 가슴 위로 번져갈 내 싸늘한 그리움을
차라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서
잃어버린 너를 찾아 호수며 숲을 헤매고 싶음을
만일 너를 찾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깨이지 않는 동토(凍土)의 땅에 묻혀
고요히 슬픔을 묻은 채 잠들고 싶음을
아무도 모른다.
천리만리 아득한 고뇌의 공간을 헤치고 날아서
저 광활한 대지에 무수한 꽃잎이 되어 흩날리고 싶음을
내 모든 정열을 활활 불태워
간절히 갖고 싶었던 너의 생(生)에 남김없이 바친 후에
너를 위한 내 슬픈 사랑이 죽음 뒤에 묻혀 버릴지라도
더없이 찬란하게 숨져가고 싶음을
아, 나는 좀 더 오래살고 싶었다.
열정어린 참 사랑을 님의 품에 안기우고
부시도록 어여쁘게 빛나고 싶었다.
꿈이여 사랑이여,
그 아름다웠던 날의 행복이여
이제는 떠나야 할 처절한 슬픔이여
한 순간 지나버린 빛으로 깨어지는 아픔이여
고요히 빛을 거두며 나는 떠나리라.
부디 들꽃이 섬세한 호흡을 내쉬던 살여울가에
너를 그리다 불타버린 내 몸을 묻어다오.
영원히 너의 곁에서, 너의 곁에서 쉬리라.
하지만 신, 나는 이제 유성이 되고 싶지 않다. 아니 나는 오히려 영원한 빛으로 그대의 영토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싶다. 그대 허락해 주려는가, 내가 그대의 가슴 속에서 빛날 수 있는 자유를.
봄이 그립다. 들꽃이 만발하는 계절에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그대를 만나 지치도록 그대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구나(1978. 1. 24.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