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수행시절 도인 노스님께선 ‘나쁜 일은 짓지 말고 모든 좋은 일을 행하고 인과를 중하게 여기고 항상 보시를 많이 하고 복을 많이 짓고 지은 복을 아끼고 순간순간에 보리심을 발하여 지혜(반야)를 증득하고 망심(중생심)을 제거하고 네 가지 은혜가 지중하니 잊지 말고 꼭 보답하고, 일체중생을 제도하기를 서원하라. 이것이 바로 수행의 요체이다’라고 하셨다.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의 성품을 간직하고 있으나 지혜를 장엄하고 복덕을 장엄하지 못하면 법신을 이루지 못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네 가지 은혜란 부처님의 은혜, 선지식(스승)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중생의 은혜를 말함이다.
중생이 오욕락에 젖어 망정에 따라 살다보면 업을 짓고 업에 따라 몸을 받고 윤회하는 삶이란 소나 돼지, 개 등의 짐승이나 미물인 곤충, 벌레 같은 삶과 똑같은 것이다.
선지식의 은혜가 없으면 일체중생이 비롯 없는 옛적부터 갖가지로 전도몽상하여 자연히 업을 지고 수행하는 이들도 무상보리를 이루지 못하고 성문이나 연각을 이루거나 외도나 마의 권속이 되는 것은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릇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바른 견해로서 정법을 바르게 명상하고 바르게 수행하고 익히지 않으면 정혜(定慧)가 원만하게 구족되지 않고는 바른 삼매를 이룰 수 없고 법신을 증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에는 선지식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부모님의 은혜가 없으면 사람의 몸을 받을 수가 없고 사람의 몸을 받지 않으면 절대 수행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법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육식(六識)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유정이나 무정이 식(識)은 있지만 동물은 5식까지만 사용되고 무정물은 식만 있기 때문이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수행하게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는가! 꼭 도를 이루어 현생 부모님뿐 아니라 상세 선망부모가 극락에 왕생할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다.
중생의 은혜가 없으면 도업을 닦기 위해 필요한 시주물이 어디에서 나오며 호국영령들이 없으면 어찌 나라가 지켜지고 태평스럽고 평온하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까. 사회의 구성원 공동체 모두가 은인이다.
청화 큰스님께서는 “도란 자기가 잘났다고 해서 깨치는 것이 아니고 일체중생들의 숨은 공덕이 없이는 절대 혼자 깨치지 못한다”고 하시며 중생들의 외호와 숨은 공덕을 강조하셨다. 큰스님의 열반송도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은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세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하셨다.
출가후 56년간을 장좌불와 하시고 하루 한끼 식사로 난행 고행하시고 무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시고, 항상 자비로 한 중생이라도 제도해 주겠다는 비원을 품고 살다간 대선지식. 열반에 드시는 날 선정에 저희 법당에 오셔서 환하게 웃으시며 좌정하시기에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니 저의 등을 쓰다듬어 주시고 손을 꽉 잡아 주시며 “정진 잘 하시게” 하셨다. 공양을 올리려 하니 “바삐 가야하겠네” 하시고 떠나신 큰스님. 이것이 마지막 인연이 될 줄이야!
첫댓글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