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도 못했다> 김중식 시집
시인의 말
나는 근본주의자였다.
두 손으로 번갈아 따귀를 맞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탈과 혁명의 양안 兩岸에 머리 찧을 때
나의 시 또한 종교이자 이념이었다.
지상에 건국한 천국이 다 지옥이었다.
삶은 손톱만큼씩 자라고 기울었다.
지구를 타고 태양을 쉰 번 일주했다.
봄 새싹이 다 은하수의 祝電축전이었다,
천국은 하늘에, 지옥은 지하에, 삶과 사랑은 지상에.
2018년 여름
김중식
자유종 아래/김중식
가죽나무 타고 넘어 들어갔던 서대문형무소
왜식 목조건물 사형장은 나의 놀이터였지
도르래에서 밧줄을 끌어 내려 목에 걸었지
축하해, 젊음의 교수형을 집행하는 화환花環
목의 때와 살갗과 육즙으로 엮은 비린 동아줄
미친 시대가 하필 우리의 전성기였으므로
돌아버리지 않아서 돌아버릴 것 같았던
속으로 화상 입은 청춘이었으므로
유언이래야 “할 말 없다”는 것이었지, 개로
태어나더라도 늙은 개로 태어나고 싶었지
짖지 않는 개로 태어나고 싶었지, 덜컹
발판을 열면 다리가 뜨고 혀가 나오겠지
죽을죄는 없고 죽일 벌만 있을 뿐, 발아래
컴컴한 식욕을 날름거리는 콘크리트 지하실
나는 뛰어들었지, 귀 막고 입 다물며
나는 뛰어들었지, 다시는 젊지말자고
도요새에 관한 명상
먹고살기 어려운 거지만
시베리아에서 뉴질랜드가지
얼굴이 반쪽 되도록 태평양을 세로지르는 도요새
먹고사는 게 최고 존엄 맞지만
멀리 가봐야 노동이고
높이 날아봐야 생계이므로
어지간하면 퍼질러 앉겠구만,
물과 물의 경계
드나드는 파도 틈새에서
하품하는 먹잇감을 노리는 도요새
평화는 생가가 갈린 이후 잠시 반짝이는 적막이다
먼 곳에도 다른 세상 없는데
새 대가리 일념으로 태평양을 종단하는 도요새
산다는 건 마지막이므로
살자,
살아보자,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니,
스키드 마크
이번 삶은 늦었어,
급제동하는 순간
당신이 옳았다
당신은 늦었다
낮술에 취했든 졸았든 그이를 생각했든
뱃가죽으로
아스팔트를 움켜진 채
두 획
혈서를 쓴 거다
빗길에서도 한 호흡에 폐를 채우는 타이어 타는 냄새
외눈박이 가로등이 ㄱ자로 허리 굽혀
하직 인사를 하지
길이 아닌 것도 아닌데
앞만 보고 죽어라 달린 것도 아닌데
자꾸 미끄러지는 삶
이번 생은 늦었다
당신이 옳았다
랜섬웨어 바이러스/김중식
잘못 건드린 모양이다
뭘 눌렀는지 모르겠는데
검은 비 내리고 긴 죄의 꼬리표가 붙으면서
내가 이룩한 도시가 대홍수에 쓸려 내려간 느낌
물이 빠져도 쓰레기만 해초처럼 코 박고 있으니
잘못 건드린 죄 하나로 벌받는 느낌
경經이 말씀대로 이룬 일은 지옥밖에 없음!
없음!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믿음을 쓸어
버리기로 한다
천한 사람은 없어도 천한 영혼은 있으며,
개의 새끼가 될지언정 개만도 못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악인도 잠을 자는데
잠 속에서도 없는 죄의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것이
지옥이다
아기 난민은 문 닫힌 세계로 가다 해변에 코 박고
반지하 창문을 두드리던 청년은 굶어 죽으며
세월은 가라앉는다
뭘 잘못 건드린 것인지
어떤 버튼을 누른 것인지
지구온난화/ 김중식
소나기에 실려 온 올챙이며 치어 들이
공터 웅덩이에서 놀고 있는데;
놀던 데가 아니네?
물이 쫄아들면서
두부 속으로 파고든 미꾸라지처럼
여기는 진흙 사우나네?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서로가 서로를 혹사하는 삶이
더(러)워지는 느낌
길이 놓여도 멀리 가지는 말라고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경고를 먹고도 근신하지 않은 내 책임이지만,
작은 별의 한 뼘 텃밭에 시 뿌리는 것은
풀이나 꽃, 눈이나 비처럼
여긴 것들이
대륙을 씻어낼 때가 있기 때문
바람 한 줄기가
손등으로 지구의 이마를 식혀주는 것처럼
한 지붕 아래 살지 않아도
한 하늘 아래 그저 건강하기를
열받지 말고.
늦은 귀가/김중식
돌아보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지구 반 바퀴를 뜬 눈으
로 날아야 하는 철새는 긴 목을 가슴에 비빈다. 얼마나
가야 할지를 따지는 것은 몸 밖으로 나간 정신처럼 얼마
나 되돌아올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 올라갈 땐 괜찮았는데 왼쪽 무릎뼈가 쑤셔 주저앉았
다가 한쪽 발로 하산할 때, 나는 내가 지난 세월에 얼마
나 날뛰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울지도 못했다
●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요한묵시록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