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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가 눈앞에 있다. 그렇게 올라가고 싶던 마터호른(4,478m)이 지금 손 뻗으면 닿을 듯이 너무나 웅장하고 빼어난 자태로 우뚝 솟아 있다.
뱃사람들 전설에 나오는 사이렌의 노랫소리는 듣는 사람을 완전히 홀리게 했다는데 마터호른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몽롱해지면서 홀리는 느낌이다. 사이렌과는 너무나 다른 남성적인 매력으로. ‘내 눈으로 본 세상에서 가장 멋진 봉우리’라고 말로 하기엔 나의 표현력이 너무나 부족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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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6대 미봉으로 꼽히면서도 악명 높은 바위산인 마터호른. 암봉 기슭의 산장이 회른리산장이다. 가운데 보이는 능선이 회른리 리지이며, 상단 바위턱에 솔베이산장이 있다.
- 그러나 늘 꿈꿔 오던 이 장엄한 마터호른 자락의 회른리산장(Hörnly hütte)에서 지금 이 순간 감동에만 젖어 있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오기까지 너무나 많은 사연과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알프스 원정에 마터호른은 없었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훈련해 온 아이거 북벽이 우리의 목표였다. 불과 사흘 전 호기롭게 아니, 개념 없게 이 더운 여름에 아이거 북벽에 붙었다가 눈사태에 휩쓸릴 뻔하고 아이거 선더스톰에 얻어맞고 밤새 저체온증에 죽음을 맛보다 헬리콥터로 구조돼 살아 내려왔다. 오로지 아이거만 생각하고 만약 실패하면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붙자는 생각에 다른 목표는 아예 배제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거 북벽은 여름에 다시 붙을 벽이 아니었다. 현지 구조대와 가이드들도 우리가 살아서 내려온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했다.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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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거 북벽 등반 중 선더스톰을 얻어맞고 비박지에 앉아 밤을 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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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3시에 구조요청을 했는데 낮 12시에 구조대가 왔다.
- 초등 150주년을 맞아 시도하는 영광스런 등정
그때 번개처럼 머릿속을 때린 생각이 마터호른이었다. 마침 올해는 마터호른 초등 150주년이니 등정한다면 정말 의미 있고 영광스러우리라 싶었다.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이 기차를 타고 체르마트(Zermatt)로 향했다.
작은 산악마을 체르마트는 마터호른 초등 150주년 축제에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곳곳에서 거리공연의 멜로디가 흥을 돋우고, 150년 전 의상과 장비로 멋을 낸 마을사람들이 관광객들을 시간여행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축제는 일단 마터호른을 오른 후 즐기기로 하고 급하게 등반준비에 나섰다. 우리에겐 아무런 정보도 없고 준비도 없었다. 몇 해 전 영상촬영을 위해 체르마트에 두 번 와봤던 내가 그나마 익숙했기에 산악회관과 서점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산장과 루트에 관한 정보, 무엇보다 기상정보가 중요했다. 다행히 앞으로 며칠간 날씨는 완벽에 가까울 것 같다.
우리에게는 또 고소적응이 필요했다. 아이거에서 성공했다면 몰라도 중간에 도망쳐 내려왔기에 4,500m 가까운 마터호른을 단번에 오르기엔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일단 관광객들이 올라가는 마터호른 글레이시어 파라다이스(Matterhorn Glacier Paradise)를 찾았다. 곤돌라와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883m까지 오를 수 있으니 고소적응을 하기에 괜찮은 곳이다. 예전에 왔을 때는 ‘작은 마터호른’이란 뜻의 ‘클라인 마터호른(Klein Matterhorn)’이었는데 그 사이 이름을 바꿨다. 관광객들이 북적대는 식당에서 몇 시간을 눈치 없이 버티고 내려왔다.
7월 10일 오후 2시, 숙소에서 나와 곤돌라를 타고 마터호른 글레이시어 파라다이스로 가는 중간 기착지인 슈바르츠제(Schwarzsee)에서 내리니 오후 2시 40분. 여기서 1시간 반 정도 걸어 올라야 회른리산장이 나온다. 전화로 예약하고 결제는 산장에서 현금이나 카드가 다 되는데 숙박과 저녁식사, 아침식사까지 1인당 150스위스프랑(18만 원)이다. UIAA마크가 찍혀 있는 대한산악연맹 회원증 같은 ‘증’만 있으면 꽤 할인이 되는데 한 명도 없어서 셋이 생돈 54만 원 다 냈다. 비싸도 참 비싼 동네다.
저녁은 오후 7시에 나오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는다. 노범 형이랑 주영이는 루트 정찰을 나가고 나는 잠깐 눈을 붙였다. 마터호른은 진짜 내 눈으로 본 세상에서 가장 멋진 봉우리다. 인도 히말라야의 난다데비와 네팔 히말라야의 아마다블람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는데 나는 히말라야는 가본 적이 없다. 두 번째로는 5년 전에 올랐던 뾰족한 드루(Aiguille du Dru)가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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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3시에 구조요청을 했는데 낮 12시에 구조대가 왔다.
- 이 멋진 마터호른을 초등 150주년에 오게 되다니…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벅차온다. 알려진 것처럼 마터호른은 1865년 7월
14일 초등이 되기까지 무려 17개 등반대가 실패를 거듭했고, 7월 14일의 초등도 하산 중 등반대원 7명 중 4명이 한꺼번에 추락사하면서
엄청난 비극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화가이면서 작가이고 또 뛰어난 등반가였던 영국인 에드워드 윔퍼(Edward Whymper : 8번이나 마터호른 초등에 도전했다)의 주도로 당대 최고의 산악 가이드였던 미셸 크로(Michel Croz), 영국 귀족 프란시스 더글라스(Francis Douglas) 경, 목사였던 찰스 허드슨(Charles Hudson)과 로버트 더글라스 해도우(Robert Douglas Hadow), 그리고 체르마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가이드인 아버지 페터(Peter)와 아들 페터 타우그발더(Peter Taugwalder) 부자(父子)가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도중 해도우가 미끄러지면서 크로와 더글라스, 허드슨까지 딸려서 추락해 버린 것이다.
세상에 이 산만큼 수많은 스토리를 품고 서있는 산이 또 있을까… 역사에 남을 초등의 영광을 얻었지만 네 명의 동료를 잃고 내려온 세 사람(에드워드 윔퍼와 타우그발더 부자)은 그 뒤로 어떻게 살았을까…. 개인적으로 진짜 등반가는 세상에 사람이 나밖에 안 남았어도 산에 갈 사람, 친한 친구가 산에서 죽었어도 산을 끊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위암 수술을 받고 반 년 만에 미친 척하고 여기까지 와있는 나이기에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마음속을 오간다.
저녁이 융숭하게 나왔다. 빵, 수프에 이어 스테이크까지. 고기가 좀 짜긴 했지만 산장까지 걸어서 올라온지라 시장기에 싹 비웠다. 서른 명 정도 식사를 했는데 살펴보니 거의 대부분 가이드를 고용해서 올라온 팀들이었다. 외국인들은 자그마한 체구의 동양인 셋이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 신기한지 흘깃흘깃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