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어찌 여호와 날을 원하는가? / 아모스 5:18
여호와의 날은 모든 인류가 억울함을 풀게 되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재판에 눌리고, 생활에 눌리며, 지식에 눌립니다. 무엇에 눌리든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그 날이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종으로 팔렸던 사람들도 해방되고, 모든 종들이 자유를 얻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때를 77년, 즉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이라고 부릅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 날을 기다리지만,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반문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마치 국군이 서울에 입성하는 날이 정해졌을 때 인민군이 그 날을 원치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인류는 이처럼 복된 날을 앞에 두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왜 이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공의가 사라지고 마귀와 사탄의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는:
- 가난한 자들이 착취당하고 과도한 세금을 내며
- 돈으로 의인을 팔아넘기고
- 신발 한 켤레 값으로 가난한 자를 팔며
-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만들고
- 성전에서 술을 마시는 등의 죄를 범하면서도
- 유다와 같은 큰 죄를 지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 오히려 그런 죄를 정당화하며
- 서로 죽이고 다투는 일이 만연합니다
이처럼 사랑 없이, 도덕 없이, 법 없이는 살 수 없는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 바로 어둠의 극치입니다. 엘리사를 잡으러 왔던 아람 군사들이 눈이 어두워 서로를 죽이고도 모르고 유대 진영으로 들어간 것처럼,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은 서로를 해치고 빼앗기만 합니다. 이런 어둠의 결과로 어떻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호와의 날이 오면 이러한 일들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해 이 날을 기다립니다. 옛날부터 주님의 백성들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진흥왕이 올 때는 호랑이 같았는데, 단군왕검은 우리 부모님 같다고 신라 백성들이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해줄 이를 기다립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누가 구원할까요? 제사장도 지나가고, 레위인도 지나갑니다. 예전에 안동 영호루가 물에 떠내려갈 때 양반 대성이 사는 곳에 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양반들은 모두 부패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처럼 허위로 앉아서 백성을 착취하는 자들입니다.
예전에 산동성에 흉년이 들어 수만 명이 굶어 죽을 때, 우리 기독교에서 구호하려고 장관에게 청했더니, 그는 중국 인구가 너무 많으니 조금 죽는 것이 좋다며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백성을 구원할 줄 모르는 나라는 망합니다. 시골마을에 가보면 요즘은 보리밥도 먹는 사람이 적고, 밀기울로 죽을 끓여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데도 이를 돌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위정자들은 무엇을 하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일까요?
이처럼 곳곳에서 애타게 호소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날을 기다립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기다립니다. 구원은 개인이나 단체에 국한될 수 있지만, 나라로 말하면 작게는 한 나라, 크게는 온 세상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 되어 새로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나라는 여호와께서 온 인류와 정의를 위해 고생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나라입니다. 눈물도 없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불로 심판한 후에 이루어질 것인데, 죄를 지은 자는 이 불에 타서 사라지고, 옛 하늘과 땅도 모두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지며,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사람이며 정의로운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가 이루어지는 때가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곧 유대인들의 77희년이자 안식년입니다. 종도 풀려나고, 빚도 탕감되고, 모든 억울한 일이 다 해결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 곳이 모두 자유의 세상입니다. 곧 사랑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