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갑니다. 올 해 마지막 <인천신문> 칼럼입니다. 작가회의 님들 모두 평안히 새해를 맞으소서. 구랍(舊臘) 간호윤 삼가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33 방관자들의 시대를 꿈꾸며, “냄새가 선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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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들의 시대를 꿈꾸며, “냄새가 선을 넘는다”
간호윤. 인천신문 논설위원
“방관자에게는 자신의 역사가 없다. 방관자는 무대 위에 있기는 하지만 연기자는 아니다. 방관자는 관중도 아니다. 연극과 그것을 상연하는 연기자의 운명은 관중에 의해서 좌우된다. 그러나 방관자의 반응은 자기 이외의 누구에게도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는 하나 방관자는 무대 한쪽에 서서 연기자나 관중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을 본다. 게다가 그는 연기자나 관중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본다. 그리고 그는 성찰한다. 성찰은 거울이 아니라 프리즘이다. 프리즘은 본 것을 굴절하여 비춘다.” 미국의 사회생태학자 P.F.드러커(1909~2005)의 『방관자의 시대』 서문 격인 ‘방관자의 탄생’ 첫머리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미 8살 때 자신이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며 한 아저씨와 대화를 써 놓았다. 그 아저씨는 남과 다른 견해를 말하는 피터를 한 구석으로 데리고 가 이런 점잖은 경고(?)를 한다. “피터야! 네 의견이 정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게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조금은 약게 굴거나 신경 쓸 필요가 있지 않겠니?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 하지만, 느닷없이 뚱딴지같은 의견을 내세워 남을 놀라게 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 못된다고 아저씨는 생각한단다.”
우리는 유명인이건 무명인이건 간에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 그 자체로 그 시대의 무대에 서있지만 방관자에게 자신의 역사는 없다. 다만 남과 다른 견해를 갖고 ‘프리즘을 통해 굴절하고 성찰’할 줄 안다. 방관자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머리로 생각한다. 세상일에 약게 굴거나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방관자의 말을 ‘뚱딴지같은 의견’으로 보고 따돌림할지라도.
방관자의 시선은 마치 박수근(1914~1965) 화백의 <나목(裸木)>을 보는 듯하다. 그림 속 나무는 잎이 지고 메마르고 비쩍 마른 가지만 남았다. 녹음이 우거진 산은 나뭇잎으로 덮여 있다. 잎이 지고 나목이 되면 성근 가지 사이로 비로소 산이 보인다. 이때 나무 자체만의 민낯이 을씨년스럽게 드러난다. 그것은 한 해를 살아낸 허허로움과 진실이다. 한 해가 저물 무렵이 더욱 쓸쓸한 것은 나목이 저러해서 그런가보다. 혹 어느 방관자는 저 나목을 보며 이렇게 올 한 해를 갈무리할 지도 모르겠다.
“천도 시야! 비야!(天道 是耶非耶, 하늘의 도리는 옳은가! 그른가!)” 사마천이 성기를 잘리고 악취(惡臭) 풍기는 세상을 썼다는 『사기』의 저 말을 상기하며-.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냐”를 용케 넘기며 시작된 2023년, 언론을 통해 본 나목의 성근 가지들이다. “이상민 또 거짓말, 희생자·유족 명단 은폐 의혹. 한동훈, 마약과 전쟁 선포. 천공, 대통령 관저도 정했나. 삼일절 기념사 국내에선 성토, 일본·미국은 반색. 김건희 주가 조작, 패스트트랙 오른 쌍특검법. 검찰 전성시대. 한반도 핵전쟁 위기. 특권 카르텔. 새마을 운동. OECD, 한국 성장률 전망 1.5%로 또 하향.…”
하반기로 넘어간다. “윤 대통령, 이념이 가장 중요. 새만금 잼버리 파행.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일본 오염수 방류, 한국만 지지. 공산당 홍범도, 육사 퇴출. 이동관 언론 장악.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자녀 학폭에 이은 지드레곤·이선균 마약. 대통령 해외순방 기네스북. 여당, 강서구 보궐선거 참패. 검사 2명 탄핵. 119:29, 부산엑스포 참패. 땡윤 뉴스. 김건희 디올 명품백.…쌍특검 통과 즉시 거부권 행사 선언. 군 정신교육 교재 독도 삭제, 영토분쟁 진행 중으로 기술.”
그중, “2023.12.27[속보] 이선균, 차량서 숨진 채 발견, 마약 수사가 남긴 비극” <기생충>에서 그의 대사가 떠오른다. “냄새가 선을 넘지…” 하지만 나목은 말라 죽은 고목(枯木)이 아니기에 동토(凍土)에서 봄을 기약하듯, 방관자들의 시대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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