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명리학-자신을 이해하는 강력한 수단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인생독법>을 읽고
2019. 3 향기 이영란
유투브에서 검색을 해 보면 7년 전, 용남초에서 진행되었던 초반기 사유사제 강의를 통째로 들을 수 있다. 올레길 창시자 서명숙, 가수 박강수, 핀란드 교육을 소개하고 지금은 행복한교육연구소장인 박재원, 수식어가 필요 없는 한비야, 사진작가인 이상엽, 전 통영시장 김동진, 그리고 명리학자 조용헌 등의 인물들이 강연을 통째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영화감독 김태용, 작가 공지영, 시인 박남준, 농부시인 서정홍, 이해인 수녀님, 정혜윤 PD 등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인물들을 초빙해서 들을 수 있었는지 꿈만 같던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시간들을 보낸 내게 남은 것들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이 글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라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적, 정신적 여유는 나를 해방시켰고, 그 해방은 내게 있던 흔적을 더듬어 보고 곱씹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날짜 일수가 극히 제한된 부분은 빼고는 운신의 폭이 많은 학습연구년 유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널브러져 있을 수는 없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하다가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명리학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중급과정인데 이미 이전 분기에 초급과정이 진행된 것으로 보였다. 내가 그 강좌를 수강하면서 놀란 점은 30여명에 육박하는 인원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출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런 강의를 누가 들으러 올까 하는 우려와는 반대로 시 쓰기 강좌나 세익스피어 다시 읽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강연 등 다른 강좌 역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도서관 뿐만 아니라 여성회관 강좌들도 20명씩은 훌쩍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처럼 머리와 가슴이 해방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점, 그렇지만 수강생의 대부분은 여성이라는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3월부터 시작하여, 60대 후반의 사리 밝아 보이는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에 3번 정도 참여하였다. 수강생이 하는 스치듯 지나가는 말을 받아서 연월일시를 묻고 그 사람의 인생역정과 생활습관, 앞으로의 처방 같은 것들을 별스럽지 않게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놀라움과 감동의 물결이 반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다. 수업이 끝나고도 자신의 팔자가 궁금한 수강생들은 점심을 대접하여 늦은 오후까지 선생님을 붙들고 있다. 나는 아주 얌전하고 성실하게 수강하는 학생인데, 나의 경우 내 사주의 궁금함 보다는 이 학문에 대한 어려운 진입이 더 문제였다. 열심히 필기하면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음악평론가인 강헌은 40대 후반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난 후, 중학교 시절 자신의 운명을 정확하게 예언한 사주관상인의 말을 기억해 내고 명리학에 입문하였다. 그가 쉽게 풀어서 쓴 명리학책 2권을 사서 줄을 쳐가며 천간과 지지, 음양과 오행이 뜻하는 바와 상생, 상극의 방향, 삼살대장군 방위 등을 열심히 정리했다. 그러나 머리만 아프고 책장이 뒤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이론만을 나열한 것으로는 가슴이 납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명리학자 조용헌씨를 복기해 내었다. 그리하여 사유사제 강의를 다시 듣고, 그의 책 <사주 명리학 이야기>, <인생독법>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사주팔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걸 믿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그런 학문에 끌리게 된 이유라면, 오랜 역사동안 살아 남았던 DNA의 흔적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 본다. 폭식하는 습관, 대중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 하는 것들 등은 600만년 전의 구석기 시대의 생활 습관의 흔적이라 하지 않는가? 명리(命理)학을 풀이하면 운명의 이치를 밝힌다는 뜻이다. 사주라는 말과 붙어서 쓰이는 명리학은 지금 현재 제도권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다. 조용헌씨의 경우도 지금은 그만 두었지만 원광대의 불교민속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명리학은 증명할 수 없는 미신 쯤으로 치부되어 전국의 철학관이나 거리의 천막 안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한의학의 경우 제도권에서 확실한 지분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체질을 분석한 후 처방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한의사들은 대부분 환자의 연월일시에 기반한 사주팔자를 읽고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급 인재들이 외면하는 명리학이 그나마 생존을 이어가는 힘은 우리들에게 아직까지 숨어 남아있는 DNA가 아닐까 싶다. 분명한 건 그 지점에서 내가 조용헌씨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의 명리학에 대한 관심은 훨씬 난관에 부딪혔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책은 이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고 지속하게 해 준 1등 공신이다.
강헌의 경우 누구나 이론 정도만 공부하면 사람의 운명을 어느정도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예열이 많이 필요하다. 가슴이 움직여 주어야 머리로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기타 코드를 읽을 때에도 코드를 외우는 것보다 코드가 왜 그렇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해야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화성을 이해하는 것도 손으로 코드를 바꾸어 가며 연주를 하는 것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사람의 관상은 존재하고, 그것이 노력여하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고 한다. 사람의 글상(像)이라는 것도 있을까? 글에 나타난 흐름이나 형상 같은 것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인상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듯이 글상에 대한 책임 역시 져야하지 않을까. 나의 이 매끄럽지 않고 재미가 떨어지는 글의 전개는 나의 덜컹거리는 사고를 그대로 드러냄이고 그것은 곧 글상으로 나타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헌씨의 글은 달랐다. 그는 20대 때부터 명리학 공부를 위해 전국의 절과 산, 무당, 명리학 고수를 만나러 다녔다. 50을 얼마 앞두지 않은 내가 명리학의 부름에 답하게 된 이유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순리를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능력 밖의 일들에 욕심을 부리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었던 일들이 다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었을까? 조용헌씨의 글은 자연스럽게 흘러 읽을수록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칼럼을 읽는 애독자들이 많은 이유도 나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산과 땅을 걸으며 그에게 입력되었던 맑은 기운, 고수들이 준 가르침들이 그의 글에 들어있었다. 그냥 종이에 인쇄된 글인데 말이다.
명리학에 대한 다른 책과는 다르게 사주팔자를 읽는 구체적인 기술에 대한 설명은 별로 없다. 이론을 이론으로 말하지 않고 사주명리학에 대한 이야기, 그가 만난 사람과 그에 얽힌 이야기로 풀어낸다. 우리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굵직한 인물들과 그 옆에 있었던 도사들의 이야기, 신과 인간이 접신하는 무당이야기, 역술가의 예언을 무시하고 드라마틱한 운명의 종말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400쪽을 훌쩍 넘는 <사주 명리학 이야기>는 어느새 끝나 있다.
사람의 운명은 주어진 것이 70이고 바꿀 수 있는 부분이 30이라고 그는 말한다. 집터를 잘 잡고, 조상의 묘를 잘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이쪽 분야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남편)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해괴한 말이냐고 펄펄 뛸 수 있지만, 잘 살펴보면 그것은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태어날 때 연월일시를 통해 태양과 달, 계절, 지구에서 잘 보이는 수성, 화성, 금성, 목성, 토성 등의 별자리 위치, 날짜와 시간의 기운이 그 사람에게 바코드처럼 찍힌다는 입장이다. 그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천성이라고 말하면 될까? 자신에게 주어진 성향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 병이 생기고 우환이 생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명리학은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 운명에 개입하고 제어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도구를 여섯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적선하는 삶, 간절한 마음으로 스승을 만날 것, 기도와 명상, 독서, 명당을 쓰기, 내 삶의 지도를 스스로 알기 등인데 알고 보면 지금의 내 삶과 밀접한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들이다.
워밍업만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명리를 갖추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공부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수많은 임상을 거쳐야 한다고 하는데, 일단 당장의 숙제는 이론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사주연시를 물으면 이론공부를 어느정도 했구나 하고 격려해 주길 아무쪼록 바라본다. 긴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에 나는 욕심낼 것들이 많다. 15권짜리 인문학 전집류, 10권 이상을 넘는 대하소설도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또 그것들이 좀 더 나은 글상들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