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조선왕조실록 ㅡ58ㅡ
왕자들은 누구랑 놀았을까?
조선시대 세자나 대군은 거의 왕 다음으로 존귀한 존재로 대우받았던 인물들이다.
절대왕조 국가에서 왕의 적장자들이니 ‘귀하신 몸’으로 대우받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귀하신 몸이라도 놀기는 놀았을 것 아닌가?
궁궐 안이니 또래 친구들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귀하디귀한 왕자를 궁 밖으로 내보냈을리도 없었을 터.
그렇다고, 그 당시에 유치원이나 놀이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조선시대 왕자들은 누구랑 놀았을까?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왕자의 친구들이다.
“어이구, 이눔자식 누굴 닮아 이렇게 똘똘하게 생겼냐? 역시…씨 도둑질은 못한다니까!”
“전하, 전하 유전자의 승리이옵니다. 하늘이 조선에 복을 내렸나 보옵니다.”
“그럼, 그럼, 내 유전자가 어디 보통 유전자이더냐. 이래봬도 유전자의 삑사리라 불리는 연산군과는 차원이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게 바로 나라니까.”
중종반정으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왕답게 소심한 구석도 있었지만, 그래도 원자(元子 : 아직 세자에 책봉되지 않은 왕의 맏아들) 를 낳고 보니 원자만은 제대로 키워 연산군 같은 유전자의 삑사리를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이 네들, 딴 건 모르겠고…네들도 겪어봐서 알지? 왕 하나 찐따 같은 놈 세워 놓으니까 나라가 개판 2분 전으로 돌아 갔잖아 물론 내가 워낙 괜찮은 놈이라 내 유전자는 괜찮겠지만, 이게 또 유전자 하나만 믿고 왕 시킬 순 없잖아? 네들이 알아서 우리 원자를 위한 커리큘럼을 짜봐라. 이게 내 새끼 잘되자고 하는 것도 쬐끔 있지만, 크게 보면 다 나라를 위한 일이야. 다들 언더스탠드 했냐?”
“예~전하.”
그랬던 것이다. 중종 시절, 반정에 성공한 혁명세력 (훈구파)과 이후 중종이 끌어들인 개혁세력(조광조)들이 한마음으로 주장한 한 가지가,
“왕세자 교육 잘못했다간 나라 절딴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연산군이 아니었던가?
해서 조정은 일치단결해 원자의 교육방법을 연구하게 되는데,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법의 완결판이 바로 이때 나오게 된다.
자, 문제는 애를 가르치는 건 가능했지만, 애랑 놀아주는 건 신하들이라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IQ로 먹고 사는 세상이 아니에요. 요즘 시대의 대세는 EQ예요 EQ!”
“이거 참 아무리 머리 좋아도, 싸가지가 없으면…요즘 초딩들 여름방학이라서 인터넷 폐인들이 얼마나 걱정합니까? 요즘 초딩이 어디 애입니까? 이것들 그냥…확!”
“어이, 이조판서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닙니까? 혹시 초딩이 이조판서 싸이에 와서 악플이라도 달았습니까?”
“…그…그걸 어떻게 알았소? 내 이눔자식 IP를 추적해서 확…”
중신들의 이런 갑론을박을 듣던 조광조, 희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게 되는데…
“차라리 원자한테 친구를 붙여 주는 건 어떻습니까?”
“친구? 장동건 말이오? 걔 개런티가 꽤 비싼 걸로 아는데….”
“이조판서…마이 무따 아이가, 그만 짜지라.”
“…왜 나만 갖고 그래.”
“장난들 고만하고 좀 들어들 보슈. 연산군 그노마가 깽판치고 개스럽게 지낸 결정적인 이유는 어렸을 때 사가에서 질 나쁜 놈들이랑 어울려서 애가 일진으로 빠진 거요. 그 친구를 보면, 그놈을 안다고 하는데, 아예 범생이를 데려다가 같이 놀게 하면, 애도 범생이로 자라지 않겠냐는 거지. 그리고 노는 것도 교육이야. 애들이랑 어울리고 놀다보면 협동심이나, 준법정신, 왕따…는 아니고, 그래 배려라는 것도 배우고, 여하튼 좋은 거야. 안그래?”
“어이어이, 좀 진정해봐. 다 좋은데 원자랑 놀만한 친구를 어디서 구하냐고, 원자 나이가 이제 두살인데 궁궐 안에 두살 난 애가 어딨어? 그렇다고 원자를 궁 밖으로 내보내서 유치원에 보낼 거야. 놀이방에 보낼 거야?”
“안되면 되게 하라! 대신들 중에서 좀 똘똘한 놈 아들놈들을 3명 뽑는 거야. 그래서 놀게 하면 되잖아.”
“…음 대신들 아들 뽑는 건 이해하겠는데, 왜 3명씩이나 뽑냐? 1명이나 2명이면 되지 않냐?”
“일단 2명은 돼야지, 1명만 하면, 원자의 친구관계가 너무 좁아지고, 적어도 2명은 돼야 애들이 원자랑 교대로 놀지.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비번으로 해서 대기하는 거야. 2명 놀고, 1명 쉬고 한마디로 밀어내기식 근무란 소리지. 어때 내 아이디어?”
“여기가 GOP냐? 밀어내기 근무하게? 음…그래도 참신해, 좋긴 한데…그게 애들 데리고 궁궐 왔다갔다 하는 걸 대신들이 좋아할까?”
“뭐 일단 교통비조로 얼마씩 줘야지. 그리고 왕 아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이거 상당한 메리트 아니냐?”
이렇게 해서 왕자의 친구인 배동(陪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공부만 계속하면 애가 세상 물정 모르고, 또래문화를 익히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쥐어짜내 탄생시킨 배동은 친구라기 보다는 일종의 ‘어린 관원’ 같은 대우를 받았는데 이들은 한달에 두번 정도 원자한테 가 같이 놀아주고 교통비조로 돈을 받았던 것이다.
호조에서 이들 배동들에게 돈을 건네준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꽤 진지하게 배동을 바라봤던 것 같다.
중종 이후의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배동의 숫자는 날로 늘어나 정조 때에는 15명에 이르게 된다.
노는 것도 공부의 한 방편이라 생각한 선조들의 선견지명이 돋보였던 제도라 할 수 있겠다.
무조건 공부 공부 하는 우리네 부모들이 한번 생각해 볼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