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ㄱ씨는 사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관심이 없다. 그 자신, 전세집에 사는 데다 부모·형제를 통틀어 가족 중에 종부세를 내는 이가 없으니 ‘내 문제’가 아니었다. 종부세는 전국 1855만 세대 중 2%에 해당하는 38만 세대에 부과되는 세금. 그러니 그에게 ‘딴나라’ 세금으로 여겨질 법하다. ㄱ씨 같은 대다수 평범한 국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데도 종부세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10월6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종부세 국감’을 하겠다며 잔뜩 벼른다. 돌아보면 4년 전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를 처음 만들 때부터 시끄러웠다. 이듬해 개정안을 통과시킬 때는 더 요란했다. 2005년 시작한 종부세 역사가 올해로 4년째 접어든 시점, 이제는 완화를 둘러싸고 야단법석이다. 이명박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감세 정책의 대표 법안으로 종부세 완화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 심사를 기다린다. 여야는 전투 모드다. 종부세 대상자의 94%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도 저 변방의 기초단체까지 난리가 났다. 2008년분 종부세 납부 기일(12월)을 앞두고 종부세 폭탄이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대체 종부세가 어떤 세금이기에 이토록 질긴 싸움을 해야 하는 걸까? 그 의문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종부세 왜 생겼나:땅(토지)은 자연에서 주어진 것이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소유와 투기의 대상이 돼왔다. 그 토지에서 비롯된 부동산 가격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이 발생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각 나라는 두 가지 세금 방식을 취해왔다. 보유세와 거래세가 그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거래세 비중이 월등히 높다. 미국과 일본, 영국 등은 부동산 세제에서 보유세 대 거래세 비율이 9대1 수준이지만 한국은 3대7이다. 그나마 보유세 비중이 늘어온 게 그렇다.
역대 정권은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거래세(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방식을 썼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양도세는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익에 매기는 세금인데, 강력한 정책이 나오면 잠시 거래가 주춤했다가 정책의 신뢰도나 일관성이 떨어진다 싶으면 다시 투기가 활개치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역대 정권이 번번이 실패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종부세를 내세워 밀어붙인 건 노무현 정부였다.
종부세는 일정한 기준을 초과하는 주택(6억원 이상)이나 토지(3억원 이상)의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세금. 종부세 기준 금액 이하는 기존의 재산세대로 내고 초과분에 대해서만 종부세를 적용해 이중과세는 피했다. 가령 공시가격이 10억원인 집이라면 6억원까지는 재산세가 부과되고 4억원에 대해서 종부세가 적용된다.
종부세의 또 다른 특징은 개인별이 아닌 세대별 합산이라는 점이다. 가령 부부가 각각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두 채를 합친 금액에 종부세를 부과한다. 다만 결혼하거나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 합가한 경우라면 2년간 유예기간을 두는 예외 조처가 있다.
당초 종부세는 이보다 좀더 완화된 수준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 등을 요지로 하는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개인별 합산에, 주택은 9억원·토지는 6억원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종부세안을 내놨고 이듬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다시 1년 뒤 ‘8·31 부동산 정책’을 통해 좀더 강화된 개정안이 나왔다. 지금은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완화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높지만, 당시 개정안이 발의되었을 때는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에서도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적지 않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조세저항과 내수침체를 이유로 정부안에 불만을 터뜨렸고, 이로 인해 당론 채택에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결국 2005년도 마지막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본회의에 전원 불참하는 파란을 빚었다.
얼마나 거뒀나:‘세금폭탄’ 시비와 위헌 논란 속에서도 종부세 신고 비율은 98~99%에 이르렀다. △2005년 4413억원 △2006년 1조7180억원 △2007년 2조7671억원으로 3년 동안 약 5조원에 이르는 종부세가 걷혔다. 2005년 이후 세수가 껑충 뛴 것은 종부세 적용 기준이 강화되었고 공시지가도 공동주택의 경우 16.4%나 올랐기 때문이다.
종부세 대상자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강남·서초는 주민 4명당 1명꼴로 종부세를 낸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07년의 경우, 서울·경기가 전체 종부세액의 86%를 차지한다. 가장 종부세를 많이 내는 강남구·중구·서초구·성남(분당)·송파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종부세의 절반에 해당한다. 어디에 쓰였나:재산세는 지방자치단체가 거두는 지방세인 반면 종부세는 국세다. 국세청이 관리한다. 거둬진 종부세 전액은 전국 시·군·구에 부동산교부세 형식으로 지원된다. 부동산교부세는 중앙정부가 내려보내지만 쓰임새는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점에서 ‘자주 재원’이다.
배분은 각 지자체의 형편에 따라 이뤄진다. 지자체의 재정 수준이 50% 반영되고, 지역의 복지 수요 25%, 교육 수요 20%, 재산세 규모 5%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재정 상태가 좋고 부동산 수익이 높은 수도권에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으로 세수의 재분배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균형 재원’ 성격을 띤다. 2007년 각 지역으로 나간 부동산교부금 규모는 서울(3493억원)이 가장 크지만 부산·대구·경남에 각각 2000억원대, 충남·전남·전북에 각각 1000억원대의 교부세가 배분된 것은 종부세의 쓰임새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재정 사정이 열악한 지자체로서는 교부세가 노인·저소득층·장애인 등을 지원하는 복지사업과 방과 후 학습, 보육 같은 교육사업에 쓰이므로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인 셈이다.
다시 돌아가나:지난 9월30일 종부세 개편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주택의 과세 기준을 현행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1∼3%인 세율도 0.5∼1%로 낮추는 것이 골자다. 1가구 1주택 고령자에 대한 세액공제도 추가된다. 이런 개정안이 통과되면 종부세의 효과는 사실상 사라진다. 우선 과세 기준을 9억원으로 올리면 종부세 대상자는 0.8%, 15만 세대로 줄어든다. 6억∼9억원에 해당하는 종부세 납세자가 전체의 58.8%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15억원까지 주택 소유자는 재산세율과 동일한 0.5% 세율이 적용되어 종부세를 면제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0.2%, 4만 세대에게만 종부세가 실질 적용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2% 종부세’가 ‘0.2% 종부세’로 10배 완화된 셈이다. 정부가 이번에 종부세 완화안을 마련하면서 세대 합산 기준은 그대로 뒀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종부세에 대해 현재 위헌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세대 합산을 개인 합산으로 바꾸는 것이 쟁점이다. 만약 세대 합산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올 경우 종부세에 대해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리는 셈이다. 그 덕분에 수도권의 부동산 경기는 살아날지 모르지만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입게 될 타격은 심각하다. 종부세가 줄어든 만큼 부동산교부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근 진보신당은 종부세 완화로 인해 전국 지자체로 배분되는 부동산교부세가 총 2조2700억원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삭감액이 많다. 광역 단위에서는 전남과 경북 지역이 각각 2500억원대로 가장 많이 줄었고, 기초단체 중에서는 대구 동구가 127억원으로 삭감 규모가 제일 컸다. 대구 동구청의 예산 담당자는 “재정자립도가 17%인 상황에서 자체 세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공무원 인건비마저 깎아야 할 판이니 맨 먼저 복지와 교육·문화 사업의 세출부터 줄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전북 지역의 경우 소관 시·군별로 약 100억원씩 배정받아 모두 1564억원을 더 쓸 수 있었는데 이는 전북 지역 전체 세입의 16%에 해당할 정도로 큰 규모다. 어디서 채우나:2009년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종부세법이 바뀐다 해도 세수가 줄어든 2009년치를 나눠줄 때 영향이 나타나기 때문에 본격적인 삭감 태풍은 2010년부터 시작된다.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의 처분만을 기다린다.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대구 동구)은 “경제 상황도 어렵고, 지방의 세수보전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왜 종부세 개정을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부처 간, 당·정 간 말도 엇갈린다. 재산세 인상을 언급했다가 여론의 반발이 거세자 다시 주워 담고, 보조금을 늘려서 종부세 부족분을 채우겠다면서도 허리띠를 졸라매라며 세출 구조조정을 강조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조세 전문가들은 세원 확보 방법으로 세 가지 경우의 수를 거론한다. 첫째, 지방세인 재산세 인상을 통해 자치단체의 세입을 늘리는 방식이다. 전국적으로 같은 세율이 적용되는 재산세를 인상할 경우 개개 납세자의 부담이 커지고 지역 불균형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둘째, 국세 개편이다. 소득세, 상속세, 부가가치세 등 16개 직·간접세 세목의 세율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최근 감세를 위한 세재개편안을 발표한 마당에 증세를 시도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자기 부정에 빠진다. 셋째, 국채 발행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과 미국은 감세로 인해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국채 발행을 늘렸으나 결국 재정이 악화되고 국가 채무가 늘어나 국민 부담만 커졌다.
9월25일 진보신당은 한나라당사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위).
감세란 참 묘하다. 알면서도 속는 치명적 유혹이랄까. 부유층이 감세 효과를 더 많이 누린다는 건 상식에 가까운데도 매번 마음이 설렌다. 이명박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라 평가되는 감세안을 내놨다. 5년 동안 26조원을 줄이겠단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국세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비롯해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도 대폭 인하하겠다는 계획이다. 연봉 3600만원 수입의 월급쟁이 ㄱ씨는 슬그머니 궁금해졌다. 얼마나 감면될지 자신의 소득을 해당 과세표준에 대입해봤다. 5만원이다. 자신과 소득이 엇비슷한 400만 근로소득자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감면 액수였다. 최저치이지만 뭐 괜찮다. 부자들이 얼마를 가져가든 나에게도 돌아오는 비스킷 부스러기라도 챙기면 되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한 조세 전문가가 뒤통수를 친다.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부가가치세(간접세)를 들먹이더니 “당신의 5만원은 곧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계산기를 두들겨 봤다. 2006년 기준 부가가치세 수입 40조원을 남한의 성인 인구수로 나누니 얼추 100만원. 여기에 최근 치솟은 물가상승률(5%)을 적용하니 딱 5만원이 떨어진다. 5만원 감세로 이득봤나 싶었지만 다시 나갈 돈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부가가치세를 9.5%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으니 결국 ㄱ씨는 감세 혜택은커녕 증세 부담만 받게 된 꼴이다. 반대로 자신보다 70배의 감세 효과를 누리게 된 연봉 1억2000만원이 넘는 최상위 고소득자는 354만원을 돌려받는다니 ㄱ씨와는 비할 바가 아니겠다.
감세의 치명적 유혹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으로 있는 회계사 이종석씨가 흥미로운 연구 자료를 내놨다. 정부의 감세 효과를 소득 계층별로 분석한 결과치였다(위 표 참조). 소득세의 경우 정부가 밝힌 현행 8∼35% 종합소득세율을 6∼33%로 인하했을 때 하위 소득자와 상위 소득자의 감세 효과는 70배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사업소득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7만원이 감면되는 하위 소득자와 422만원이 감면되는 최상위 소득자의 격차는 60배에 이른다. 법인세로 가면 감세 격차는 더 커진다. 정부는 법인세를 현행 세율 13∼25%에서 10∼20%로 낮춘다고 발표했는데, 일부 대기업의 경우 업체당 평균 123억원이 감면되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100만원이 채 안 된다. 이종석씨는 더 큰 조합을 만들어냈다. 소득세와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의 감세액을 합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나라 총 가구 수를 1600만이라 가정했을 때 최하층부터 최상층까지 10분위로 나누면 1분위에게는 3000원의 감세 혜택이 주어지지만 10분위는 233만원의 감세 혜택이 주어진다. 700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번 세재개편안을 ‘부자와 재벌을 위한 맞춤형 감세안’이라고 조롱하는 세력에 대해 정부는 세금 부담을 줄여 저부담→고투자→고성장의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는 논리를 댄다. 그런데 이마저도 단박에 반박 논리가 나온다. 홍헌호씨(시민사회연구소 연구위원)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갈했다. 법인세 9.8조원의 감세가 0.6% 추가 성장 효과를 낸다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 “도리어 마이너스로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라고 반박했다.
“법인세 감면분이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최소한 그것의 70%가 투자로 이어져야 하는데 지금 시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기업은 현금이 넘쳐남에도 투자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9.8조원 중에서 20~30%라도 투자로 이어진다면 이익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정부가 9.8조원을 저소득층에 지원할 경우 100% 소비로 이어질 것이고 이것의 경제 효과는 기업의 경우보다 훨씬 클 것이다.”
빈자의 소비 성향은 부자의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이른바 고소득층의 한계소비 성향(추가 소득이 생겼을 때 늘어나는 소비 정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얘기인데 이미 많이 쓰는 부자가 추가로 돈이 생긴다 한들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외국으로 나가면 몰라도 말이다. 최윤재 교수(고려대·경제학)는 감세가 부유층의 투자·소비로 이어져 경제가 살아난다는 ‘낙수 효과’의 역논리를 폈다.
“진정 정부가 감세 효과를 기대한다면 빈곤층에 퍼다 주라. 그 돈은 ‘분수 효과’에 따라 흘러흘러 부자에게 어차피 갈 것이니 부자는 그 돈으로 더 쓰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레이거노믹스에서 따왔다는 MB노믹스. 레이건은 감세 정책을 즐겨 썼다가 수조 달러의 나라 빚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