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 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A]<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히 늪으로 발을 옮겼다>
01 윗글의 표현상 특징으로 적절한 것은?
① 역설적 상황을 설정하여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② 자문자답의 방식으로 화자의 의식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③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을 제시하여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④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현재 화자가 느끼는 만족감을 부각하고 있다.
⑤ 공감각적 심상의 시어를 사용해 화자의 비참한 현재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02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은 ㉠‘4·19 혁명’의 주역이었던 세대가 그 일로부터‘18년’이 지난 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특히, 작품의 화자는 이들의 변화를 ‘노래’와 ‘이야기’라는 단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①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하며 불렀던 노래 대신 ‘회비’, ‘처자식들의 안부’, ‘월급’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통해, 현실에 순응하며 살게 된 ㉠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어.
②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불렀던 예전과 달리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일을 남의 이야기인 듯 바라보게 된 ㉠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어.
③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불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떠도는’이야기나 ‘주고받’게 된 상황을 통해, 개인 문제보다 사회 문제로 관심사가 확장된 ㉠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어.
④ ‘목청껏’ 부르던 노래 대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하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 ㉠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어.
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 대신에 지금은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는 이야기나 하는 모습을 통해 순수와 열정을 잃고 살아가게 된 ㉠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어.
03 [보기]는 [A]를 영상화하기 위한 계획서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S#6 동숭동 거리, 밤
•한 무리의 남자들이 화려한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다. 남자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감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에 들어선 그들이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한곳에서 플라타너스를 보던 그들과 과거 그곳에서 혁명에 참여했던 그들의 모습이 겹치며 회상 장면이 시작된다.…ⓑ
•회상 장면이 끝나고 현재의 그들이 플라타너스 잎을 본다. 흔들리는 플라타너스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그들의 모습이 병치된다.…………………………………………………………ⓒ
•그들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굳었던 표정이 펴지고 아무 일 없는 듯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동숭동 길에서 점점 멀어져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이때 시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밝고 경쾌한 음악이 흐른다.………………………………………………………………‥…ⓔ
① ⓐ ② ⓑ ③ ⓒ ④ ⓓ ⑤ ⓔ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01 ③ 02 ③ 03 ⑤
해제 ㅣ 이 작품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4·19 세대가 그 때의 이상과 꿈을 잃고 현실적으로 변화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4·19가 일어나던 해를 회상하는 내용과 18년이 지나 현재 중년의 나이로 만난 화자와 친구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는 추운 방에 모여 앉아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던 순수한 청년들이 지금은 월급과 물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처자식의 안부를 교환하는 소시민이 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삶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꾸짖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잠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곧 일상의 삶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현실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강력히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도 쉽게 그런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함을 확인하는 소시민들에게 열띤 토론이나 순수한 열정, 혁명에 대한 열기는 제목처럼 모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불과 한 것이다.
주제 ㅣ 소시민적 삶에 대한 부끄러움
구성 ㅣ
1행~19행: 4·19 혁명이 일어나던 해, 열정적이었던 젊은 날의 모습
20행~37행: 18년이 흐른 뒤, 중년의 소시민이 되어 만난 현재의 모습
38행~49행: 무기력해진 자신들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과 서글픔.
01 표현상 특징 파악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작품에는 ‘4·19가 나던 해’, 즉 1960년의 ‘세밑’과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해라는 구체적인 시간이 제시되어 있다. 또 ‘혜화동 로터리’, ‘동숭동 길’ 등의 구체적인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을 제시해 작품의 현실감을 높이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이 작품에는 모순을 일으키는 상황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② ‘부끄럽지 않은가’는 비난의 의도를 담아 바람이 화자에게 하는 말로, 이 작품에는 화자가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방식이 쓰이지 않았다.
④ 과거와 현재가 대비되지만 이를 통해 화자가 밝히려는 것은 현재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⑤ 주로 시각적 심상의 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화자의 비참한 현재 처지를 드러내는 공감각적 심상은 쓰이지 않았다.
02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③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지 묻는 문항이다. 4·19 혁명을 주도했던 세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파악한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과거에는 자기만의 분명한 생각을 지니며 살았고 이를 당당히 드러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재 ‘떠도는’ 이야기나 ‘주고받’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변화는 관심사가 개인 문제에서 사회 문제로 변화했다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그렇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순수했던 과거의 삶을, ‘회비’, 처자식들의 안부’, ‘월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삶을 의미한다.
②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진지하게 살았던 과 거의 삶을,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세상일을 진지하지 않게 바라보게 된 현재 의 삶을 의미한다.
④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드러내려는 태도가,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하는 것에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남의 이목을 끌지 않도록 주의하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⑤ ‘돈을 받지 않고’노래를 부르는 것은 순수와 열정을 지닌 삶을,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이야기하는 것은 일상의 삶 또는 생계에 직결된 문제에 매여 사는 삶을 의미한다.
03 작품의 내용 파악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동숭동 길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인물들이 ‘늪’같은 삶, 즉 소시민적 삶으로 회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장면의 배경으로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보다는 무겁고 쓸쓸한 분위기의 배경 음악이 어울릴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한 무리의 남자들은 ‘옛사랑’의 피가 흘렀던 곳인 ‘동숭동 길’을 오랜만에 다시 걷게 되었으므로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② ‘동숭동 길’을 배경으로 중년이 된 현재 인물의 얼굴 위로 젊었던 4·19 당시 인물의 얼굴이 오버랩(O.L.)되면서 과거 회상 장면으로 전환되면 효과적일 것이다.
③ 흔들리는 ‘플라타너스 잎’은 현재 인물들에게 부끄러움을 유발시키는 역할을 한다.
④ 잠시 부끄러움을 느꼈던 인물들은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와 건강 문제와 같은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므로 이때 이들의 표정은 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