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투자(三到投子) 구지동산(九至洞山)
세 번 투자스님, 아홉 번 동산스님께 갔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은 당말(唐末) 송초(宋初) 때 설봉의존(雪峰義存) 선사(禪師)를 두고 한 말 같다. 설봉선사는 12세 때 출가해서 투자대동(投子大同) 화상에게 세 번 참문하고 아홉 번이나 동산양개(洞山良价) 화상을 참문(參問)하고도 늦은 나이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요즘이야 교통이 비행기로도 자동차로도 가고 오지만 옛날 교통수단은 두 다리가 전부인 세상이라 말이 세 번 아홉 번이지 어지간한 근기는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설봉의존(雪峰義存) 선사는 덕산선사(德山禪師)의 삼십방(三十棒)을 맞고 개오(開悟)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덕산선사 주장자 몽둥이, 찜질은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당금질인 셈이다. 무쇠 잡탈을 두들겨 패는 망치와 같다. 설봉선사는 오랜 수도생활을 하면서 깨닫기 전까지 가는 곳마다 공양주(供養主)를 자청(自請)했다고 한다. 대중들의 공양을 정성껏 지어서 올리는 것을 수행정진으로 삼았다. 동산양개 화상 회상에서도 역시 몇백명의 대중을 위해서 쌀을 씻고 이르고 있었다. 그때 동산화상이 부엌으로 오셔서 물었다. 오늘은 얼마나 밥을 짓는고? 네! 쌀 두가마를 짓습니다. 좀 부족하지 않느냐? 대중가운데 먹지 않는 스님들도 있어서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만약 대중이 다 먹게되면 어떻게 하려느냐? 설봉선사는 대답을 못하고 묵묵부답(默默不答)이다.
그 때 시봉하던 설거도응(雪居道膺)이 대신 말했다. 모든 대중이 다 먹게되면 밥은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동산화상은 밥을 빌려 문답(問答)을 하였지만 속내는 설봉의 선기(禪機)을 옅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선문답을 하기에는 설익은 설봉은 꿀먹는 벙어리 신세이다. 이런 후로 며칠이 지나서 또 공양간에 양개화상이 나타나서 물었다. 쌀에서 모래를 일는가? 모래에서 쌀을 일는가? 설봉선사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쌀과 모래를 함께 일고 있습니다. 그러면 산중의 대중은 무엇을 먹는고? 설봉선사는 쌀을 일던 그릇을 들어서 엎어버렸다. 동산화상이 너는 동산하고는 인연이 아니로구나! 후일 다른 스승이 너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후로 설봉은 덕산선사 도량에가서 40세가 넘도록 정진하던중에 설봉이 덕산선께 묻기를 종래의 조사의 불법중에 제가 조금이라도 얻는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점검(點檢)하여 주십시오. 덕산선사께서 묻는 설봉을 향해서 삼십방(三十棒)을 내리쳤다. 방을 맞는 순간 눈이 번쩍 열렸다. 오랜 세월 실참실구(實參實求)의 노력의 대가가 온 것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선화(禪話)이다. 그래서 선문(禪門)에서는 닭이 알 품듯이 고양이가 쥐잡듯이 오래 오래 쉬지 않고 닦으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고 했다.(久久必有入處) 설봉선사가 산 증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