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나를 혼냈듯 나도 아이를 혼내요"
<내가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할 때>
Q. 아이에게 소리지르는 제 자신을 조절하기 힘들어요
저는 딸에게 소리를 잘 지르는 엄마입니다. 사실 저는 못 느끼는데 남편이 매번 제발 소리 좀 그만 지르라고 해요. 특히 둘째가 태어난 뒤부터 유치원생인 큰 아이에게 자주 소리를 지르고 심하게 혼을 내게 된 것 같아요.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꼴도 보기 싫어서 방으로 쫓아버리기도 합니다. 저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박는 일도 많아요.
이 때문인지 아이가 집에서는 말을 곧잘 하는데 밖에만 나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또래와도 잘 어울리지 않고 저하고만 붙어 있으려 해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가 5남매를 키우면서 장녀인 저를 특히 엄하게 대했어요. 그런데 제가 제 자식에게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픕니다. 이러지 말아야지 싶지만 저도 제 행동이 조절이 안 되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어머니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사연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프죠. 자신과 부모의 일그러진 관계가 다시 자신과 아이의 관계로 재현되고 있어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보편적입니다. ‘흉보다가 닮는다’는 옛말도 있듯이 자기가 싫어하던 윗사람의 모습을 어느새 답습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뒷날에 며느리를 본 후 더 심한 시어머니 노릇을 하거나,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이 나중에 그 자리에 올랐을 때 똑같은 방식으로 아랫사람을 괴롭히기도 하는 경우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기전을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용어를 써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그러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경우에도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친척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등 불우한 시절을 보냈지만 오히려 남에게 베풀고 포용하는 방송인으로서 성공하였습니다. 실제 아동 심리치료나 아동 복지에 뛰어드는 사람들 중에도 어린 시절 학대당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어른과는 다른 어른이 됨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도전을 하는 것이죠.
연구에 따르면 싫어하던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는 ‘내면의 주체성’이라고 합니다. 주체성이 강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계속해서 고민하며 자란 사람은 부모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고생을 견디고 겪어내며 자란 사람은 자신이 싫어했던 모습을 그대로 본떠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감과 공포 때문이지요.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가 싫어하는 모습을 따라 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안 될 수 있으니, 예를 들어 설명해 보죠. 어떤 아이가 귀신을 굉장히 무서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깜깜한 밤에도 잘 돌아다니는 거예요. 갑자기 어떤 용기가 생긴 건가 궁금해 이유를 물으니 자신도 귀신이라고 생각하자 무서움이 없어졌다고 하는 겁니다. 정말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자신과 같은 종류라고 생각하면 무서움과 공포가 없어집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가혹한 대우를 받았던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내면에서 어린 시절의 부모가 자신을 계속 괴롭힙니다.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니’, ‘너는 왜 그렇게 사니’ 끊임없이 힐난하죠. 그러면 너무 불안해지고 무서워져요. 그런데 자신도 욕하는 부모와 같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부모처럼 행동하면 그때부터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이런 방식으로 불안과 공포를 다루는 거죠.

지금 어머니의 상태는 굉장히 심각합니다. 아이는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죠. 아마 어머니의 어머님도 똑같은 처지였을 것 같습니다. 남편을 잃고 네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과 화를 큰딸에게 풀었겠죠. 어머니 역시 둘째를 낳은 후 스트레스가 크고 우울감도 높아졌어요. 그 감정을 아이에게 폭력적으로 풀며 해소하고 있는데 아이는 그로 인해 불안해지니 엄마에게 더 매달리고 있어요.
아이를 때리는 부모님들은 아이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걸 보고 그래도 아이는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불안한 겁니다. 잠시라도 혼자 있으면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부모가 나를 버릴 것 같기 때문에 그러는 거죠.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엄마니까 언제든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부모에게 자꾸 사랑한다고 말하고, 입도 맞추려고 하고, 만지려고 하는데 그것이 애정표현이라기 보다는 불안의 표현입니다. 버림받을까 봐 불안하지 않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덜 매달립니다. 대신 자기 세계를 찾아 밖으로 나가죠. 이제 부모가 불안한 아이에게 잘해주기 시작하면 오히려 상황은 나빠질 겁니다. 아이에게서 일정 기간 공격성이 나옵니다. 불안이 줄어드는 순간 그 동안 화나 있던 것이 다 튀어나오는 거죠.
어머니가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과거 어머니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입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정말 위대한 일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일이다 보니 몇 대에 걸쳐서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가 정말 흔하죠.
어머니가 그 고리를 끊겠다고 결심하셨으면 아이의 문제행동에 절대 집중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가짐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나다운 것은 무엇인가, 나는 정말 어떤 사람인가에 집중해서 ‘자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힌 나, 통제할 수 없는 나와 다른 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과정이 혼자서 어렵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무엇이 됐건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임을 잊지 마세요. 어머니가 변화의 출발점이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칼자루를 쥐고 계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출처 : 서천석의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