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광천교회의 신혁균 목사가 나에게 홍성(洪城)으로 사역지를 옮길 것을 권유했다. 당시 홍성에는 침례교회가 없었다. 홍원교회에 부임한 지 만 2년이 지난 뒤였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나는 거절할 생각이 없이 “예”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내 마음 속에 상부의 명령이나 지시는 주님의 뜻으로 이루진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충서지방은 광천교회를 비롯하여 광시, 화계, 예산, 발연, 월림, 죽림, 홍원, 구항, 장곡, 천북, 합덕, 주포, 황산, 온양, 금마, 장항 등 18개 교회가 있었는데, 통틀어 목사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지방회 회장은 언제나 신혁균 목사였다. 그리고 총무는 고참 전도사였던 내 몫이었다.
홍성 읍내 교회개척은 전도 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라 생각했다. 홍성은 충남 서해안에 있는 고도(古都)로서 우리 교단의 분포도로도 중심지였다. 그런데 일제 때, 신혁균 목사와 같이 만주에서 동아기독교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했던 김호연 집사가 귀국하여 홍성 읍내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침례교회가 없어서 잠시 장로교회에 출석했지만, 본 교단으로 돌아올 작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지용 씨 가정과 박상설 씨 가정과 규합하여 몇 차례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나는 1954년 3월, 홍원교회를 떠나 홍성교회로 부임했다. 홍성읍 오관리에 있는 옛날 가옥 한 채를 구입하여 예배당을 꾸민 뒤 홍성침례교회 간판을 달고 정식으로 개척예배를 드렸다. 곧이어 어린이 주일학교를 조직하고 전도했으며, 중고등부 학생회도 조직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빠른 속도로 교회가 형성되어 갔다. 주님의 은혜요 축복이었다. 뜻밖에 적재적소에 인재들이 모여 교회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성장했다. 그 당시 활약했던 학생들은 신태승(목사), 이정희(침례신학대학교 전 총장), 성지현(목사), 성두현(목사), 최병렬(경찰관), 이성일(고급공무원) 등이었다. 오치근은 당시 홍성고등학교 배구부 주장이었는데, 선수 전원을 교회로 인도했다. 그밖에도 권태인, 권태정, 한규숙 등 좋은 학생들이 많았다. 홍성읍내는 우리 교회를 비롯하여 가장 역사가 긴 감리교회, 홍성장로교회, 홍성성결교회, 구세군교회 등 5개 교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