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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정안국의 태양 (상)
그대 모름지기 일신(一身)의 안도(安堵)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四表)의 정밀(靜謐)을 기도(祈禱)해야 하느니라. (어서 32쪽 1행)
세계에 대화의 대도(大道)는 찬연(燦然)
도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입정안국론’은 니치렌 대성인의 어서(御書)중에서 거성이며, 말법의 일체중생에 대한 강렬한 지남서다. 실로 훌륭한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명경(明鏡)으로 칭송해야 할 어서다.”
니치렌 대성인이 국주간효(國主諫曉)의 서(書)인 ‘입정안국론’을 당시의 최고 권력자인 호조 도키요리에게 제출하신 때는 1260년 7월 16일입니다. 그 역사적인 간효가 있고 나서, 올해(2009년)가 750년째에 해당합니다.
대성인의 화도(化導)는 “‘입정안국론’으로 시작해서 ‘입정안국론’으로 끝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만년의 인생을 바로 이 ‘입정안국’의 위대한 이상(理想)을 실현하는데 바치셨습니다.
이번에는 어본불의 인난홍통(忍難弘通)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안국론의 중요한 성훈을 배독하겠습니다.
“그대 모름지기 일신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의 정밀을 기도해야 하느니라.”(어서 32쪽)
→ 그대는 자신의 안온을 바란다면 먼저 사방의 평화를 기원해야 한다.
‘인간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고 행동하는 불법자(佛法者)의 위대한 정신을 위정자를 향해 엄연히 나타내신 금언입니다.
민중의 행복을 바라며
대성인이 이렇게 말씀하신 가마쿠라의 시대 양상은 어땠을까요. ‘입정안국론’의 첫머리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근년부터 근일에 이르기까지 천변지요․ 기근역려가 널리 천하에 충만하고 널리 지상에 만연하였도다. 우마(牛馬)는 거리에 쓰러지고 해골은 노변에 가득 찼으며, 죽음을 초래하는 무리는 이미 태반을 넘으니 이를 슬퍼하지 않는 자는 결코 한 사람도 없느니라.”(어서 17쪽)
이 시대는 자연재해나 기근, 역병이 계속되어 많은 민중이 목숨을 잃은 비참한 시대였습니다.
안국론을 제출하기 3년 전인 1257년에는 가마쿠라 일대에 대규모의 지진으로 인한 재해가 덮쳤습니다. 이 ‘쇼카의 대지진’을 비롯한 수해나 큰 화재로 민중은 괴로워했습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말법의 시대상을 응시하며 민중을 불행하게 하는 근본 원인을 철저히 탐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행복을 바라는 대자대비에서 모든 대난(大難)을 각오하고, 불법의 정의를 내걸고 당시의 권력자에게 직접 간효하신 어서가 바로 이 안국론입니다.
‘입정안국’은 “정(正)을 세워서 나라를 평온케 한다.”는 뜻입니다. 정의를 굳건히 세워서 나라를 안녕하게 한다는〈입정안국론〉에 대성인의 비원(悲願)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성인이 평화의 이상을 위해, 사회를 향해 결연히 선언하신 ‘경세(警世:세상 사람들을 깨우침)의 위대한 제언’이라고 배독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라(國)’는 일본 한 나라에 한하지 않습니다.
니치칸 상인은 “문(文)은 오직 일본 및 현세에 있으나, 의(意)는 염부(閻浮) 및 미래에 통하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래 영원히 전 세계의 평화와 전 민중의 행복을 열어가는 것이 바로 불법을 실천하는 우리의 궁극적인 서원입니다.
2000년 가을, 요미우리신문이 ‘21세기에 전하고 싶은 책 한권’에 ‘일본의 명저’ 제2위로〈입정안국론〉을 뽑았습니다. (2000년 11월 29일자)
도다 선생님이 선언하신 대로 안국론은 ‘어서 중의 거성’이고, ‘금강불괴의 명경’입니다. 21세기, 아니 미래 영원히 인류문명의 지표로 인정받을 대 철학서입니다.
자비의 ‘불법대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 御書는 여객(旅客)과 주인의 십문구답(十問九答)이라는 문답형식으로 씌어 있습니다.
당시의 괴로움을 한탄하는 ‘여객’에게 ‘주인’은 그 괴로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의를 반드시 확립해야한다고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반발하던 객도 주인이 말하는 철리를 듣고, 차차 이해가 깊어져 드디어 신앙에 눈을 뜹니다.
이러한 확신과 공감은 ‘불법대화’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즉 니치렌 불법은 위대한 ‘대화의 종교’입니다.
은사는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의 설득력은 단순한 설득력이 아닙니다. 자비와 용기에서 나오는 설득력입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것입니다.”
자비와 용기에서 나오는 ‘대화’는 바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시대를 변화시키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창가의 대화운동은 대성인에게 직결한 가장 올바른 불법의 법칙입니다.
이번 어서에 나오는 ‘일신의 안도’는 개인의 행복을 가리킵니다. ‘사표의 정밀’은 동서남북 사방의 안온, 즉 사회 전체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개인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먼저 사회의 평화를 기원한다. 그것을 위해 진지한 승부를 각오하고 행동한다. 이 두 가지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진정한 종교입니다.
행성의 운행을 예로 들면 ‘일신의 안도’는 ‘자전(自轉)’이며, ‘사표의 정밀’은 ‘공전(公轉)’에 해당합니다. 자전과 공전이 연동하고 있기 때문에 대우주의 조화로운 궤도가 성립합니다. 어느 한 쪽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성인 재세 시에 유행한 염불을 비롯한 여러 종교들은 오로지 자신의 구제만을 기원하는 가르침을 설했습니다.
그러나 불교 본래의 ‘자기 구제’는 자기 내면에 무너지지 않는 경지(境地)를 확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변혁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구제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민중의 힘’을 강하게!
당시, 서민 사이에는 “염불의 애음(哀音)”(어서 96쪽)이 퍼져 무력감이나 염세적인 풍조가 만연해, 사람들의 생활력을 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서에 “당세(當歲)는 세상이 어지럽고 백성의 힘이 약하니라.”(어서 1596쪽)고 씌어 있는 대로입니다.
대성인은 이러한 종교계의 풍조를 깨부수고 ‘백성의 힘’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정의롭게 대사자후하셨습니다.
종교 본래의 사명은 개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널리 지역, 사회, 국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는 활약이 아니면 안 됩니다.
또 진실한 종교에는 그만큼의 힘이 있는 ‘기원’이 있고, ‘실천’이 있습니다. 단지 가람(伽藍)에 틀어박혀 자신의 평안과 태평만을 기원하는 것은 결코 불법의 근본취지에 도 맞지 않습니다.
지구는 한순간이라도 회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날도 없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전진 또 전진!’ ‘행동 또 행동!’이라고 쾌활하고 생기 넘치게 인생과 사회에 가치를 창조하는 원천입니다.
나와 대담집 ‘지구대담 빛나는 여성의 세기로’를 발간한 미국의 미래학자 헤이젤 헨더슨 박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좋은 사회를 구축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플러스가 되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표의 정밀’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일이 그대로 참된 ‘일신의 안도’에 통합니다. 이것이 세계의 양식(良識)있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인생의 길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사회와 사람들을 위해 진지한 대화와 행동을 거듭하는 창가의 동지는 훌륭한 그 모범입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활약하는 우리 부인부 여러분이 바로 지역의 태양이고 사회의 태양입니다.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일을 제쳐 놓고 달려갑니다. 벗의 행복을 진지하게 기원하고 진심어린 격려를 보내며, 숙명전환의 싸움에 함께 일어섭니다. 이만큼 숭고하고 거룩한 자비의 연대가 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학회 동지는 바로 현대에 ‘입정안국’을 위해 싸우는 영광스러운 투사 이니라! 어떠한 허영에 찬 사람보다 존귀한 인간 왕자(王者)이니라! 나는 이렇게 진심으로 찬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전대미문의 대법(大法)’
니치렌 불법은 고대부터 내려온 일본의 종교 토양을 근저부터 변혁하는 정의의 대법(大法)입니다.
대성인은 안국론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불각(佛閣)은 대마루를 이었고 경장(經藏)은 처마를 잇대었다. 승려도 많이 있고 민중도 존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사들은 마음이 비뚤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있다. 왕신(王臣)들은 무지(無智)로 인해 사정(邪正)을 변별(辨別)하지 못한다.”(어서 20쪽, 취의)
아무리 외견상으로 번성함을 자랑해도 행복으로, 번영으로, 평화로 이끌어가는 올바른 가르침이 넓혀지지 않으면 가치를 낳지 못합니다.
따져야 할 것은 철학의 내실입니다.
아무리 물질적인 혜택을 받고 과학기술이 진보해도 시대의 저류에 흐르는 철학의 근본이 얕고 잘못되어 있으면, 민중의 인생관이나 생명관, 나아가서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을 포착하는 방법이 빗나가게 됩니다.
이윽고 사회 전체가 정체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대성인은 불안(佛眼), 법안(法眼)으로 이러한 시대의 큰 원동력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최고 권력자에게 불법의 정의를 위풍당당하게 사자후하셨습니다.
정(正)은 정! 사(邪)는 사!
선(善)은 선! 악(惡)은 악!
이렇게 명쾌하게 잘라 말하는 것이 진정한 불법자(佛法者)입니다. ‘파사(破邪)’가 없으면 ‘현정(顯正)’이 없습니다.
정사(正邪)를 소홀히 하고 권세에 아첨하며 이익을 탐내는 위선자인 성직자, 그리고 종교를 민중지배의 도구로 삼은 위정자, 대성인은 이 마성(魔性)에 정면으로 도전하셨습니다.
대성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불법이 건너와서 지금에 칠백여년 전대미문의 대법(大法)이 이 나라에 유포하여 월지․ 한토․ 일염부제내의 일체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일이야말로 존귀하고 존귀하도다.”(어서 1283쪽)
불법이 일본에 건너온 지 700여년, 대성인은 전대미문의 ‘입정안국’ 즉 세계평화의 대법을 굳건히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700여년을 지나 불의불칙의 창가학회가 대성인 말씀하신 대로 ‘입정안국’의 대법을 전개했습니다.
‘입정’이라는 종교적인 신념!
‘안국’이라는 사회적인 이상!
이 양 바퀴로 힘차게 전진하는 모습이 우리 창가학회의 정의로운 대행진입니다.
그것을 보고 이른바 사회가 동집생의(動執生疑)를 일으키는 현상도 이 성훈 대로입니다.
‘살아 있는 종교’에 경탄
도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본 사회는 우리 창가학회를 보고 ‘종교는 살아있다.’ ‘살아 있는 종교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1956년 ‘설마가 실현’이라고 일본 전국을 몹시 놀라고 감탄하게 만든 오사카의 대승리. 그 직후에 선언하신 사자왕인 은사의 말씀입니다.
니치렌 불법은 시대와 사회를 변혁시키는 용감한 민중의 에너지가 넘치는 ‘살아 있는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난이 다투어 일어나는 일도 필연입니다.
1957년 7월 17일, 권력에 의한 부당한 체포를 극복하고 출옥한 나는, 오사카대회(나카노시마의 오사카시 중앙공회당)에 달려온 2만이나 되는 동지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삼류강적(三類强敵) 중 참성증상만(僭聖增上慢)이 나타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악이 오면 대선이 온다.’는 니치렌 대성인의 금언처럼 저도 더욱더 끝까지 기원하는 신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광선유포에 매진하겠습니다.”
마가 다투어 일어날수록 더욱 맹렬하게 기원하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 신심의 진수입니다.
대성인은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어서 1448쪽)고 말씀하셨습니다.
창가의 사제(師弟)는 더욱더 ‘강성한 신심’으로 어떠한 대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입정안국’의 길을 일본 그리고 세계로 개척했습니다.
미국의 명문 덴버대학교 난다 부총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 봉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깨달음’은 본질적으로는 단순한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초월해 사회와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보다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창가학회(SGI)가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저는 기쁩니다.”
양식 있는 식자 눈에는 창가 운동의 의의가 예리하게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 일흉(一凶)’과 싸워라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인 하버드대학교 야먼 교수도 이렇게 논하셨습니다.
“창가학회의 공적은 도덕성을 상실한 혼란한 사회에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전반에 걸쳐서 소생하는 힘을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신뢰하고 있습니다.
“저 만기를 수행하기보다는 이 일흉을 금해야 할 것이로다.”(어서 24쪽)
이 성훈도 안국론의 한 구절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민중을 괴롭히고 불행하게 만드는 사악한 사상의 ‘일흉’과 싸우는 용기를 잃으면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갈파하신 사자후입니다.
‘민중’이라는 축(軸)이 없으면 ‘입정’도 ‘안국’도 없다! ‘정의’라는 깃발이 없으면 ‘평화’도 ‘번영’도 없다!
이것이 대성인의 정통(正統)으로서 투쟁하신 초대 마키구치 선생님과 제2대 도다 선생님 때부터 이어진 창가학회의 대확신입니다.
이 정신을 계승하는 인재의 흐름을 창조하는 일에 ‘입정안국’의 혈맥이 있습니다.
1979년 7월 16일. 나는 가나가와에서 숙연이 깊은 ‘봉추회(鳳雛會)’ ‘봉추그룹’의 벗에게 시(詩)를 보냈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 봉추의 제자들이여”
“이 날의 맹세를 / 잊지 마라. / 나는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 그 유업(遺業)을 / 반드시 여러분이 / 웅혼(雄渾)한 신심으로 / 또한 불꽃같은 사명감을 지니고 / 성취하기를 / 나는 굳게 믿는다 / 합장”
“광기 어린 참언(讒言)속에서 / 홀로 정의의 깃발을 들고 / 인내하며 여러분을 생각한다”
저 폭풍의 시련이 있은 지 30년(2009년) - 봉추들은 훌륭한 봉황(鳳凰)으로 성장해 각 지역에서 ‘입정안국’의 정신으로 승리하기 위해 씩씩하게 지휘하고 있습니다.
☞ <어서와 사제>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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