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사 통계학 교수로서 지나온 삶을 회고하면서-
2022년.
올해로서 내 나이 70.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1972년 1월, 육군사관학교에 첫발을 내디딘 후 어느듯 50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50년이 지난 지금, 젊은 청년이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듯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버렸으니, 정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1976년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강원도 제7사단 57포병대대 통신장교로서 소대장 직책을 수행하던 중, 수도경비사령부 통신근무지원대 유선대장으로 전출을 명받았다. 유선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육사 수학과 교수요원으로 차출되면서 야전 생활을 마무리하고 군교수로서의 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으로 입학하여 2년간 통계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전공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육사 수학과의 통계학 전공교수 양성계획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러한 방침에 따라 통계학 교수로서 나의 미래가 결정되어졌다.
통계학은 생도 2학년때 배웠던 과목이었지만,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통계 관련 과목의 이수학점 부족으로, 대학원 수업과 함께 학부의 통계 관련 과목의 학점을 취득하다 보니, 나의 석사과정 공부는 남들에 비하여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1979년 2월, 2년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육사 수학과 전임강사로서, 교수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1984년에는 해외 국비 박사과정에 선발되어, 보다 심도깊게 통계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나의 관심은 통계적 기법을 활용한 과학적인 자료 처리, 분석, 평가의 연구에 있었다. 따라서 이론분야보다는 컴퓨터를 활용한 통계학의 응용분야에 더 중점을 두고서 공부를 하였다. 2년 동안의 석사과정을 통해서 통계학의 기초 및 이론을 배웠다면, 4년 동안의 박사과정을 통해서는, 컴퓨터를 활용한 통계학의 응용 즉,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자료를 과학적으로 처리, 분석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할 수 있다.
1988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육사로 복귀한 후 생도교육을 하면서 느낀 것은, 생도들에게 통계학이 너무 이론에 치우친 가운데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수학과에서 가르치는 과목이다보니 생도들은 통계학을 수학의 한 분야로 생각하면서, 미적분학, 선형대수학, 미분방정식 등과 같이 통계학도 단순히 졸업하기 위해서 이수해야 하는 과목 중의 하나로 여기면서, 공부하기 어려운 과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생도들이 2학년으로 진학하게 되면 상급생도들로부터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물통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라”는 주의사항이었다. 여기서 물통은 물리와 통계학을 말하는데, 그 당시 물리와 통계학은 생도들에게는 가장 공부하기 어려운 과목이 되어, 재시험의 대부분은 이 두 과목에서 발생되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통계학은 기피 과목이 되었고, 생도들은 재시험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커다란 부담감을 가진 상태에서 통계학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민한 결과, 육사에서 통계학을 배우는 목적을 명확하게 재설정하여 생도들로 하여금 통계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인식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통계학은 군의 주요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필요한 과학적인 자료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부대를 운영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자료를 분석, 평가해 주는 것에 그 목적이 있으며, 이러한 목적에 맞도록 교육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료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 중심으로 통계학 강의가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계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통계학이란 학문을 야전과 연계시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이론 중심으로 쓰여졌던 생도들의 교과서를 야전과 연계한 실습 위주의 교과서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였고,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필요한 자료를 과학적으로 처리-분석-평가하는 방법들을 배우기 위해서는 교육환경의 개선이 필요하였다.
새로운 교과서 집필 작업을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육군본부의 예산 관련 부서를 찾아다니면서, 생도교육용 통계분석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한 예산도 확보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드디어 생도들은 새로운 교과서에 의한 통계학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생도 각 개인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직접 실습을 하면서 자료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능력도 배우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문∙이과 공통으로 2학년에서 배우게 되는 통계학은, 생도들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학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통계학에 대한 생도들의 관심, 컴퓨터의 발달, 정보병과의 탄생 등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육사 수학과에 ‘통계/운영분석’이라는 새로운 전공이 개설되었다. 58기 생도들부터 선택이 가능해진 ‘통계/운영 분석’ 전공은, 이과 생도들이 선택할 수 있는 9개의 전공 중에서 지원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인기있는 전공이 되기도 하였다.
통계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생도들은 졸업 후에 생도시절에 배웠던 통계학을 실무부대에 근무하면서도 적용해보고자 하는 노력도 점차 시도하게 되었다.
모 전방 대대 교육장교로 근무하던 김모 중위는, ATT 계획보고를 준비하면서 신병을 교육하는 조교중대가 사격측정 평가에서 항상 다른 중대보다 월등하게 좋은 점수를 받아왔던 문제점을 발견하고, 한밤중에 나에게 전화를 하여 이에 대한 해결책을 상담하였다. 김중위는 다음날 완성된 ATT 계획을 대대장에게 보고하면서 ‘김중위의 노력 덕분으로 이제부터 모든 중대가 합리적인 평가기준하에서 사격측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대대장의 칭찬을 받고서, 교수님 덕분이라고 좋아하면서 전화를 하였을 때 통계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매우 흐뭇하였다.
뿐만 아니라 통계와 관련된 상담 즉, 야전 연대 보급업무 관리자로부터 효율적인 부대장비 관리를 함에 있어 통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 교육사 등 교육기관으로부터 교육체계 진단 및 평가모형을 개발함에 있어 통계적 접근방법, 헌병 병과로부터 통계적 기법을 이용한 군내 자살률 예측 모형개발, ⋯ 등등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어느듯 통계학이 군에서 부대관리 및 주요 정책결정을 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고 통계학 교수로서 커다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교수의 기본 책무는 교육과 연구에 있다. 따라서 교수들은 강의뿐만 아니라 전공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하여야 한다. 육사 교수들의 연구활동은 육군사관학교의 질적 수준을 일반 대학과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따라서 육사 교수들의 활발한 연구활동은 육군사관학교의 대외적인 위상을 높이게 할 뿐만 아니라, 입학시험에서도 우수한 자원들이 육사에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드는 매개 역할을 한다.
육사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생도교육과 더불어 군과 관련된 연구도 다양하게 수행하였으며, 그중 상당수의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한국 통계학회, 한국 정보학회, 한국 자료분석학회, 한국 국방경영분석학회 등 국내 저명 학술학회에서 발표되고 학술논문집에도 게재되었다.
이 중에는 사관학교 교육체계 진단 및 평가모형 개발, 육사생도 선발기준들(1차시험 성적, 고교내신성적, 2차시험인 체력평가 및 면접시험성적, 수능시험성적)과 육사 입학후의 학업 성취도에 대한 관련성 연구, 육사 입학시험 합격/불합격 예측모형 연구, ROTC 후보생들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병과를 선택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 FH무전기의 상호간섭 연구, 제병협동 통합연동체계를 중심으로 워게임모델간 근접전투 피해평가에 대한 연구, 충격모형 시스템의 신뢰도 추정에 대한 연구 등이 있으며, 재직기간동안 총 10여권의 통계학 저서와 30여 편의 연구과제를 수행하였다. 여기에는 국책기관인 방사청과 화랑대 연구소 등으로부터 의뢰받아 연구한 다수의 수탁 연구과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생도교육과 연구에 전념하는 동안,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1995년에는 정교수로 승진되었으며, 2013년 10월에 34년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 퇴임을 하였다. 34년이라는 세월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육사교수로서 후배양성과 연구에 정열을 쏟으면서 보냈으니 나에게는 무척 보람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요즈음은 ‘나이 60은 청춘’이라고 한다. 정년 퇴임 후 경기도 인근 산자락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면서 자연과 함께 생활하던 중, 그동안의 교육과 연구 경험을 군을 위하여 계속 봉사해 달라는 요청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육군본부 육군분석평가단 전문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2015년과 2016년에는 육군본부/대전광역시/국방과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육군 Modeling & Simulation 국제학술대회’의 ‘통계/빅데이터 분과’에서 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퇴임후의 이러한 활동들은, 60대의 나이는 사회에서 아직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더군다나 70세가 된 2022년에도 육사 생도들에게 통계학 강의를 하고보니, 100세가 넘은 지금에도 글을 쓰면서 건강하게 살고 계신 김형석 교수님께서 ‘인생의 황금시대는 60~70대’라고 하신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육사를 들어오지 않았으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으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나의 인생에서 육사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된다. 육사 입교 후 지난 50년의 세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육사에서 생도들에게 강의를 하고, 많은 통계학 관련 저서를 집필하고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육사를 졸업하였고, 통계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였기에 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면서,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국가와 육군사관학교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통계학 교수가 되도록 이끌어 주신 수학과 선배 교수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첫댓글 와, 배교수님, 훌륭하십니다. 수학교수인 줄 알았는데, 통계학 전공이었구만.
지금도 후배를 지도하고 있다니 대단하십니다.
욕심을 내신다면 지금 선거에서 4.15총선, 3.9대선.6.1지선에서 사전선거 부정에 대한 컴퓨터 부정을 연구하셔서, 구국에 일조하여 주시길 감히 여쭈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극기를 들고서 32구국동지회 회원들과 함께 목청껏 "탄핵반대"를 외치던 때가 많이 생각납니다.
박동지께서 정말 수고 많이 하셨고,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배현웅 교수님, 이 글을 통하여 배교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통계학을 통하여 멋있는 인생을 살아오셨네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도 알 수 있고요.
말끔하고 세련된 외모에 걸맞게 살아가는 모습도 멋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회장님, 목회활동에 바쁘심에도 동기회를 위하여 많이 수고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댓글,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아요 훌륭해요
박사장님~ 반갑습니다. 저와 갑장인 김여사님께서도 잘 계시지요?
집사람도 보고싶어 하네요. 언제 시간되면 얼굴 한번 봅시다~
배교수님! 고맙습니다. 회고문을 읽으면서 행간에 스며있는 삶의 흔적이 같이 근무하면서 쌓은 좋은 추억들을 되살려 주네요~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며 지낸 좋은 인연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갑시다.
황박사님, 무더위에 잘계시는 감요?
방학을 맞이하여 싱가폴에 살고 있는 손자들이 와서 함께 제주도 여행도 하였고...
이 더운날 종국모는 3년만에 보는 손자들 맛난 것 해먹이느라 정신없는 것 같네요.
늘 건강하길 바라고 더위가시면 얼굴 한번 보길 바랍니다~
배교수님의 글을 보니 후학을 위해 정말로 훌륭한 삶을 살으셨네요. 테니스도 치고, 태극기도 흔들고, 수동저택도 방문하며 함께 하던 시절들이 추억 속으로 흘러갑니다. 멀리 가신다는 소문에 많이 아쉬웠는데 아직은 같은 땅에 있으신거 같아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기회가 되면 만나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너무 너무 반갑고요~
무더위에 건강 유념하시고 언제 한번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