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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白吏(청백리):
청백리는 총 44씨족에서 218명이 배출되었는데, 여러 기록들에서 본관별로 6명 이상을 배출한 집안은 전주이씨, 파평윤씨, 안동김씨, 연안이씨, 남양홍씨, 전의이씨 등 6씨족이며 그 다음 순위로 5명을 배출한 씨족은 광주이씨, 한산이씨, 양천허씨 등이있다.
우리 永李에서는 농암할배와 괘변당할배께서 녹선 되셔서 가문의 영광이 되셨다.
영천이씨 청백리.
영천이씨 금오위장군 (諱榮)묘갈명 중에서 ~중략~ 문정(영양군 諱대영)10세손 현보는 호가 농암이고 관이 경찰관찰사 호조참판 홍문관부제학및 승정대부 지중추부사이며 가사문학의 효시가되고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중략~ 충정의 손 종검은 사효우당이고 대사간이며 향대치사및 추배숙모전하고 7세손 영은 호가 괘변당이고 병조참판 제주목사이며 청백리에 녹선되고 향청백사하였다.~이하생략~
염근인=청백리
이현보(李賢輔) 1467(세조13)~1555(명종10) 1542년(중종19,甲申) 75세때 호조참판(戶曹參判:종2품)에 이르러 은퇴를 청하셨으나 허락되지 않으므로 온천욕(溫泉浴)을 핑계로 낙향하셨다. 1545년(인종1,乙巳) 78세에 상호군(上護軍)이 되셨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판중추부사 등의 명예직에 제수 되셨고, 기로소에 들어 가셨다. 1546년(명종1,丙午) 79세에 자헌대부(資憲大夫:정2품)에 오르셨고, 청백리(淸白吏)에 녹훈(錄勳)되셨다. ■명종실록 명종10년(1555년) 명종10년 6월 28일 지중추부사 이현보(李賢輔)가 졸하였다.【이현보(李賢輔)는 영천(永川) 사람이다. 약관(弱冠)에 글읽기를 시작했는데 글을 지으매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연산조에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는데, 사관은 임금의 언어와 동작을 기록하므로 엎드려 멀리 있음은 불편하다는 것을 들어 조금 가까이 있게 하기를 계청하였다. 폐주(廢主)는 마음에 거슬리면서도 그대로 윤허했었는데 얼마되지 않아 일을 말하다가 뜻을 거슬러 귀양갔다. 중종조에는 여러 관직을 거쳐 사간에 이르렀고 그뒤에는 여러 차례 어버이 봉양을 위해 외직(外職)으로 나갔는데 가는 데마다 명성과 공적이 있었고 호조 참판으로 있다 은퇴하여 고향에서 지내었다. 중종조와 인종조에 그의 조용히 은퇴한 것을 아름답게 여겨 품계를 올려 소환했지만 모두 오지 않았다. 금상조(今上朝)에도 명소(命召)했지만 또한 극력 사양하고 이어 상소하여 일을 논했는데 당시의 병폐를 아주 잘 맞추었다.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담박하고 욕심이 없어 시골에 있을 때에는 일찍이 사사로운 일로 관에 청탁하는 일이 없었으며 오직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근래에 만년의 지조가 완전하였던 사람으로 이현보(李賢輔)를 으뜸으로 친다.】
이 영(李榮) :영천이씨. 1494년~1563년(명종18, 癸亥), 조선의 무신, 자는 현보(顯父), 호는 쾌편(쾌鞭), 풍저창부사를 지내신 휘 보관(甫款) 할아버지의 5세손이고, 병조판서에 증직되신 휘 윤근(潤根)할아버지의 손자 되시며, 이조참판에 증직되신 휘 순손(順孫) 할아버지의 아들이시다. 1545년(인종1, 乙巳)에 단천군수(端川郡守:종4품)를 지내셨고, 다음해 정평부사(定平府使:종3품)에 부임하셔 기민(飢民)을 구제하여 명관으로 명성이 높아셨다. 함경북도 병마우후(咸鏡北道兵馬虞候)를 지내신후 1552년(명종7, 壬子)에 회령부사(會寧府使:종3품)로 선정(善政)을 베푸시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 되셨다.
■국조보감 제22권 명종조 1, 6년(신해, 1551년) ○ 11월. 염근인(廉謹人)을 초계(抄啓)할 것을 명하였다. 안현(安玹), 홍섬(洪暹), 박수량(朴守良), 이준경(李浚慶), 조사수(趙士秀), 이명(李蓂), 임호신(任虎臣), 주세붕(周世鵬), 김수문(金秀文), 이몽필(李夢弼), 이세장(李世璋), 이영(李榮), 김순(金珣), 전팽령(全彭齡), 홍담(洪曇), 성세장(成世章), 윤부(尹釜), 윤현(尹鉉), 윤춘년(尹春年), 정종영(鄭宗榮), 박영준(朴永俊), 오상(吳祥), 이중경(李重慶), 김개(金鎧), 임보신(任輔臣), 이황(李滉), 안종전(安從?), 송익경(宋益璟), 김우(金雨), 변훈남(卞勳男), 신사형(辛士衡), 강윤권(姜允權), 우세겸(禹世謙) 등 모두 33명이었다.
염근인=청백리
■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이영(李榮) #경상도(慶尙道) 대구(大邱) *청백서원(淸白書院) 숙종신사건(肅宗辛巳建). 제향. 이 영(호괘편 부호군 청백리 본영천). 祭享. 李 榮(號掛鞭 副護軍 淸白吏 本永川).
■명종실록 명종18년(1563년) 명종18년 2월 22일 호군 이영(李榮이 졸(卒)하였다.【경상도 병사로서 병으로 체직되었으나 병영(兵營)에서 미처 돌아오지 못하고 졸하였다. 영(榮)은 청간(淸簡), 검약하였고 집에 있을 때에도 법도가 있었으며, 여러 번 병사를 지냈으나 추호도 침해하는 일이 없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였다. 집이 대구(大丘)에 있었는데 화재를 당하여 처자가 살 데가 없게 되자 주상이 그 고절(苦節)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집을 지어 내려주고 또 의복과 식량을 이어주게 하였으니 한때의 융숭한 대우가 이와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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