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약속, 가정에 세워지는 십자가
요즘 결혼식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평생을 약속하는 거룩한 순간이, 어느덧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이벤트”나 “한 번의 연출” 정도로 가벼워져 버린 모습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설거지를 미루지 않겠습니다", "화가 나도 맛있는 걸 사주면 풀겠습니다" 같은 재치 있는 서약서 문구들이 하객들의 웃음을 유발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진 풍파를 지나온 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삶의 진짜 위기는 설거지 거리가 쌓이거나 가벼운 말다툼을 하는 순간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서약의 진정한 무게를 너무 쉽게 흘려보내는 우리 시대의 가벼움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가복음 10:9)
이 말씀이 바로 결혼 서약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 단단한 서약이야말로 한 가정을 지켜내고, 그 가정에 부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보호하는 거룩한 방파제가 됩니다.
모든 결혼은 언젠가 반드시 위기를 만납니다.
누군가는 병들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으며, 누군가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아름답던 배우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머리엔 흰서리가 내리며, 기력이 다하는 날이 옵니다.
배우자가 암 진단을 받고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뎌야 할 때, 호스피스 병동의 차가운 침상 곁을 밤새 지켜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어느 날 평생을 피땀 흘려 마련한 집이 넘어가기도 하고, 자녀의 아픔이나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결혼 서약은 바로 그런 캄캄한 날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미리 선언하는 거룩한 약속입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는 남편을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설렘도, 부부만의 친밀함도, 함께 발맞춰 걷던 동반자로서의 대화도 하나둘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만일 결혼이 오직 ‘나에게 주는 유익과 감정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런 결혼은 마땅히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우리는 결혼 서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서약 안에 숨겨진 복음의 비밀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함께하심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고, 삶의 순간마다 그분을 부인하며 옛 죄악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조차,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가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끊어지지 않게 붙들어 주었습니다.
나아가 그분은 세례와 성찬을 친히 제정하시어, 그 속죄와 연합의 은혜를 우리가 삶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붙들도록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가 오늘, 우리의 가정 위에도 온전히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셨듯, 우리 역시 가족을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 끊임없이 책동하듯, 세상은 가정을 기어이 갈라놓으려 발버둥 칩니다.
가정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와 온 세상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세상의 그 어떤 환난과 모진 힘이 우리를 갈라놓으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한 몸”임을 거듭거듭 확인해 나가는, 결코 끝나지 않는 거룩한 서약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침내 우리 가정에 세워지는 십자가의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