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 / 신원문화사]
벙어리 삼룡이는 한 양반집 하인의 이름이다. 주인집은 본래 친절하고 많은 것들을 마을 사람들과 나누고 베풀어, 부잣집 치고는 동네에서 꽤 괜찮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주인집에는 열일곱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버지와는 다르게 버릇이 없고 무례하기로 소문났다. 아들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자라 버릇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벙어리 하인인 삼룡이를 개처럼 취급하는 등 인성이 엉망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였던 삼룡이는, 말도 못하고 귀도 안들리는 자신을 내쫓지 않고 계속 먹여주고 재워주고 일하게 해주는 주인집에 감사하며 충성을 다해 일했다. 말 안해도, 혼내지 않아도 할일을 알아서 척척 잘 해내는 삼룡이에게 아플 땐 쉬게 해주고, 잘땐 자게 해주고, 먹일 땐 남부럽지 않게 잘 먹이는 등 주인집도 삼룡이에게 하인 이상의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주인집 아들이 문제 문제 였다. 심심함녀 때리고, 말을 못알아들을땐 답답하다고 때렸다. 장가를 들 나이가 차자 주인은 자기 아들의 신부감을 찾아다녔다. 주인은 자신의 문벌이 낮은 것을 한탄하던 처지였기에 문벌이 높은 집안의 색시를 원했다. 색시는 두 살 위인 열 아홉살 보기에도 황홀할 정도로 곱고 어여쁜 색시였다. 마을 사람들과 가족 모두가 신랑이 준비가 안됐다며 혀를 끌끌 찼다. 사람들의 말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주인 아들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색시에게 너가 들어온 후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며 신부를 마구 때리기 시작하였다. 벙어리 삼룡이는 그러한 주인집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기만 해도 황송할 만큼 고운 새 색시를 자신과 같은 개 취급을 하며 마구 패는 주인집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색시를 보며 불쌍함, 안쓰러움, 연민과 동정 혹은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어느날 색시는 바느질을 하다가 삼룡이에게 고마웠던 일이 생각나 조그마한 쌈지를 만들어 주었다. 어떤날 밤, 색시는 자던 몸으로 머리가 풀린 채 마당 한 복판에 내던져진 채 온몸에 피가 맺히도록 얻어 맞았다. 어린 주인이 색시가 삼룡이에게 쌈지를 만들어 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감히 내 여편네를 건드리냐며 죽도록 얻어 맞았다. 그리고 삼룡이는 쫓겨났다. 어린 주인은 채찍으로 삼룡이의 목덜미를 마구 때렸다. 온갖 욕설과 비난을 들으며 집에서 쫓겨 날때, 삼룡이는 마음 한 가운데에서 묻혀있던 분노, 배신감, 경멸 등등의 감정을 한꺼번에 느꼈다. 자신이 일생을 바치며, 충성하며 열심히 일했던 집이었다. 이 집이 아니면 벙어리인 자신을 받아줄 다른 집도 없었다. 그는 그때 지금까지 자신이 바라봐왔던 모든것들이 자신의 원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자신 또한 없어질 계획을 세웠다. 그는 어느날 한 밤중, 주인의 집으로 갔다. 그는 그 집의 가장자리를 돌며 서서히 불을 붙였다. 마침내 큰 불이 붙었고, 집이 선명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 삼룡이는 그불길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갔다. 방안에서 자고 있던 주인을 마당 한 가운데 업어다 내려놓고, 색시를 찾으려 불길 속을 이리저리 헤매었다. 어떤 방에 도달했을때, 색시가 자신의 목숨을 이미 놓은듯 타죽으려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색시를 번쩍 들어 안아 불속을 힘겹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색시를 기어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서서히 죽었다. 신부는 구한채, 자신은 이미 불길 속에서 오래있던 탓인지 서서히 죽어갔다. 비록 죽어가는 삼룡이였지만, 표정만은 행복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방화를 저지르고 자신도 같이 죽는 벙어리 삼룡이와 이 결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뜬금 없기도 했고, 너무 의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삼룡이었다면, 하는 가정을 하고 책을 읽어본다면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갈수 있을 것이다. 그 주인집이 자신의 운명인 줄 알고 평생 온몸과 힘을 다해 섬기고 충성해왔지만, 그 끝은 오해와 배신과 쫓겨남이었다. 이 책 속 주인공인 벙어리는 2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제대로된 이성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고, 사람이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조차 잃어버린채 살아온 인물로 그려진다. 이 인물로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던 걸까 생각을 해보았다. 바로 작가 자신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삶, 즉 민중의 삶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고 옆에서 바라만 보아왔다는 삼룡이의 특징이 바로 실제 작가와 등장인물 삼룡이의 공통점이다. 작가가 26세의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죽은 것 처럼 벙어리도 일찍 죽었다. 온갖 구박을 받다가 결국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 하였다. 그러나 얼굴은 웃는 얼굴 이었다. 아마도 삼룡이가 바라던 가치가 결국은 모두가 바라던 가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 처럼, 그 사람들의 삶처럼 살고 싶던 욕구가 속깊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삼룡이를 보며 참 안타까우면서 안쓰러우면서, 한편으로는 멋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