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전의 아미타 부처님은 조선 영조 35년(1759년)에 주조된 것으로 높이가 3자 6치의 좌불상이다. 또한 관세음보살 후불탱화는 1759년에 제작된 기록이 있다.
봉선사 종
1998년 4월 13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되었다. 1619년(광해군 11년)에 봉선사에서 제작한 조선중기의 범종(梵鐘)으로, 현재 현등사 법당 안에서 의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단아한 모습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중종(中鐘)으로서, 종뉴(鍾紐)는 두 마리의 용이 어우러진 모양이며, 그 아래 포탄형의 종신(鐘身)이 연결된 형태이다. 종신의 외형선은 종의 윗부분에서부터 아랫부분으로 내려오며 벌어지는 형태이다.
전형적인 한국종의 특징인 음동(音筒)이 없고, 종신에 띠장식이 둘러 있어서 다소 중국종 양식이 보인다. 그러나 조각수법이 사실적이고, 풍만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짜임새가 있고, 장식문양에 생동감이 넘치는 우수한 범종이다.
현등사 지장전
현등사 청동지장보살좌상
시도유형문화재 제184호
지장전 내에 걸려있는 현판
현등사 삼성각
현등사 대자대비전. 관음전
목탁안 곤줄박
목탁안 둥지 곤줄박이 4마리 주지스님 길조로 여겨-sbs 세상에 이런 일이 취재
2003-05-12 12:04
운악산, 현등사 사찰의 목탁안 조그마한 구멍 안에 3년 전부터 새집을 짓고 철따라 새끼를 낳는 곤줄박이 새끼 4마리가 "어미 새가 열심히 먹이를 날라주는 모습은 전국에서 전무 유일한 일이라 범상치 않게 생각하고, 부처님의 자비가 미물인 새에게도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다"는 현등자 주지 초격스님이 말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집을 짓고 그 후로 현등사에 경사스러운 일이 하나둘씩 생겨 길조로 여겨 현재까지 정성을 다하여 돌보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 소문은 멀리 서울에 까지 퍼쳐 "세상에 이런 일이" 취재침(PD 이경철외 3명)이 5월10일과 11일 이틀 동안 현등사 보광전 앞 목탁안의 곤줄박이 새끼를 취재하였다.
특히 취재 이틀 동안 어미 새가 보이지 않아 새끼 새가 배고픔으로 구슬피 울어 주지스님은 새집을 내려 일일이 먹이를 잡아 먹이고 하던 중 취재를 마치던 날 어미 새가 새집으로 드나드는 것이 포착돼 모든 이를 기쁘게 하였다.
불이문이 완성되기 전 까지는 이곳이 출입문 이었다.
경내로 들어가기전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를 들고 사찰에 들어갔다.
현등사 옛 출입구
입구 산아래 석불좌상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네요.
민영환 암각석
폭포 상단 오른쪽 새하얀 바위면에는 ‘閔泳煥’(민영환)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1905년 을사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며 항거하다 자결한 민영환은 현리에 은거할 때 자주 이곳을 찾곤 했는데 당시 쓴 글을 자결한 이듬해인 1906년 새긴 것이라 전한다. 이 ‘민영환 암각서’는 ‘운악 8경’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현등사 찾아가는 길
1. 퇴계원과 광능내 쪽에서 접근할 경우는 47번 국도를 타고 서파에서 우회전해 37번 국도를 타면 현리까지 간다. 현리에서 상판리까지는 금방이다.
2. 국도 경춘가도를 타개 될 때는 청평을 지나 가평 검문소에서 현리방향으로 좌회전하면 37번 국도다. 이를 타고 현리까지 간 다음 현리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서 바로 우회전하면 상판리로 들어선다. 이길 을 따라 가면 현등산 입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