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겨울엔 창문을 열어놔
그래야 추워질 수 있으니까
낮에 우리는 와플 하나를 나눠먹고
입가에는 마구 웃다 번진 시럽과 아이스크림
한파 속에서도 돌아가던 보일러,
너의 방 온도는 28도
언니에게, 라는 말로 너의 유서는 시작됐다
그때였다 너의 발작이 시작되던 때
화장실에서 내가 나의 눈알을 빼고 있던 그때
집에 있던 가족은 다섯 명
그러나 아무도 널 들여다보지 않던 저녁에
언니, 모두가 날 쳐다봐
너는 말했고 또 들었다
그들이 당신을 때렸습니까
그들이 당신을 만졌습니까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들이 당신의 웃음을 가족을 친구를 희망을 사랑을 행복을 일상을
빼앗았습니까
그렇다면 화해를 합시다 화해는 좋은 거니까
하지만 너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 잘못한 사람은 없는 거니까
그곳엔 잘못만이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너의 방 온도는 28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넌 말했다
언니, 죽는 게 너무 어려웠어 오늘은 너무 춥잖아
창문을 열자마자 바람이 불어서 잠깐 정신이 들었어
언니 얼굴이 생각나더라
더는 죽을 수가 없었어
그날이었다 한파가 불던 날
식탁엔 다 녹은 시럽과 아이스크림이 버려져 있고
내 주변엔 왜 이렇게 흐르는 것들이 많을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알이 빠져 흐린 시야로
너를 바라보고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부수지 못하고 아무것도 찾아가지 못하고
그래, 사실은 네가 죽을까봐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널 보고 있겠다는 핑계로
창문을 열었다 추운 날이었고
우리는 녹아가고 있었다
녹은 물이 흘러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