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39
닭싸움
지난 8월 11일 경북 구미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주한 주유소 두 곳의 휘발윳값이 리터(ℓ)당 1,293원까지 내려갔다. 전국의 휘발유 평균가격이 1,800원 정도 할 때다.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지만 사실일 때도 있다. 구미 주유소처럼 경쟁 상대가 문을 닫을 때까지 판매가격을 낮추는 행동을 게임 이론에서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라고 한다.
미국 청소년들이 시작한 치킨게임 규칙은 단순하다. 서로 마주 보고 자동차를 몰아 돌진한다. 먼저 핸들을 돌리면 지는 것이고 충돌을 피한 사람을 "치킨(chicken)"이라고 불렀다. 애꿎은 닭이 겁쟁이의 속어가 된 연유다.
이런 게임을 닭대가리 싸움이라고 가볍게 봐선 안 된다. 게임 이론은 자신의 기회와 선택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참가자(경쟁자)들이 선택하는 전략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수학적 경쟁상황 분석이다. 내시라는 학자가 게임 균형이론으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면 게임치곤 간단치 않은 논리들이 내재해 있다.
오늘날 게임 이론가들에 의해 개발된 여러 가지 이론들은 사회 각 분야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기업운영은 물론 경제학에서 법학에 이르기까지 게임 이론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게임 중에서도 치킨게임은 무모성이 돋보인다. 승자가 되면 고작 승리감에 도취하는 것이 전부지만 만용을 부리다간 죽음이 아니면 중상이다. 이런 탓에 실제 치킨게임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기업이나 국가의 경우는 다르다. 치킨게임은 중요한 경쟁전략의 하나이고 세계질서를 바꿔 놓기도 한다.
냉전 시대에 미국이 취한 군사전략이 치킨게임이다. 스타워즈로 불리는 미국의 SDI(전략적방위구상)는 소련의 핵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요격하는 시스템으로, 군사력의 무한경쟁을 선언한 도전이었다. 미국이 경제난에 빠져있던 소련에게 태풍이 부는 날 가파른 지붕에 올라 돈 뿌리기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던 셈이다.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과의 닭싸움에서 이긴 사례는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일어났던 치킨게임은 기업의 존폐를 갈랐다. 당시 치킨게임에 말려들었던 독일의 키몬다와 일본의 도시바나 엘피다는 삼성전자의 원가경쟁력과 자금이나 뱃심을 견뎌낼 수 없었다. 세계 시장점유율 5위였던 독일의 키몬다는 파산했고 엘피다는 2013년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인수되면서 엘피다 메모리라는 이름이 반도체 시장에서 지워졌다.
얼마 전부터 자동차 대신 진짜 치킨들이 볏에 피를 묻히기 시작했다. 처음 닭발에 매운 양념을 바른 원조 닭은 롯데마트였다. 싸움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마트가 무게는 늘렸는데 프랜차이즈 치킨의 절반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5,000원에 치킨을 판매하자 사람들이 뱀처럼 줄을 말았다. 시민사회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대형마트를 악덕 업주로 몰아세우는 목소리가 언론을 도배했다. 골목 상권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나서 엄포를 놓자 롯데마트는 8일 만에 손을 들었다.
닭싸움 2차전 개막을 알린 것은 이마트다. 이마트가 지난 7월 초에 내놓은 ‘5분치킨’은 9,980원으로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이번에는 홈플러스가 샅바를 맸다. 출전선수 이름은 ‘당당치킨’이다. 몸값이 6,990인 당당이는 제 이름답게 주방을 공개했다. 조리복을 갖춰 입은 주방 직원은 위생 토시까지 착용하고 있고 바닥은 물 한 방울 없이 깨끗했다. 관중(소비자)들로부터 박수가 쏟아졌다. 담배꽁초가 튀겨 배달된 일명 ‘담배꽁초 치킨’ 집이 문 닫은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이것이 소비자 만족이고 유통혁신이며 기업 경쟁력이다.
상대가 눈만 끔벅이고 있을 리 없다. 이마트는 5,980원짜리 후라이드치킨을 판매하겠다고 벼른다. 한정수량이지만 단순한 미끼상품으로 볼 수 없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6,990원에 팔아도 남는 장사라고 했는데 추가로 가격을 인하할지, 아니면 죽기로 내달리는 치킨게임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걱정도 있다. 치킨 게임이 끝나면 승자독식의 독점시장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게임에서 이긴 기업이 그동안 날려 먹은 돈을 회수하려고 가격을 올리게 되면 쾌재를 부르던 소비자들은 거저먹은 것을 곱으로 토해내야 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록펠러의 석유독점을 예로 들어 치킨 게임이 끝나도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가격을 올리면 시장에 진입하는 새로운 경쟁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닭싸움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닭은 태생부터가 엄청난 자본이나 기술이 있어야 알을 낳게 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소비자로서는 싸고 맛있고 위생적인 치킨을 골라 먹으면 그만이다.
이번 닭싸움 2차전은 몇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우선 시민단체의 똑같은 레퍼토리가 소비자들의 파도타기 응원에 밀리는 분위기다. 사실 상추 한 잎이 금화가 된 마당에 닭 날개라도 핥으려면 지금 프랜차이즈 가격은 부담스럽다. 다만 아이 생일에 치킨집에 전화하는 것조차 손 떨리는 서민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인데 정부가 나서 윽박지르는 모양새는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소비자가 비합리적인 선택을 고집하지 않는 한 시장을 무시하는 정책은 실패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데 익숙하다. 대형마트에서 값싼 치킨을 팔지 못하게 하면 골목 치킨집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대형마트 폐점에 대한 연구결과는 일반의 생각과 다르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을 경우 주변 상권에 소비자가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실증연구를 통해 드러난 지는 오래다. 대형마트가 주변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집객 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대한 강제 휴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문제는 영세 치킨 가게다. 길거리에는 새로운 브랜드의 치킨 체인점 모집 현수막이 끊임없이 내걸린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프랜차이즈에 의지하는 탓이다. 그들 다수는 경영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다. 어찌 보면 내몰린 창업자들이고 자기 사업을 하기에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외식업은 양적인 면에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음식점 당 인구수는 평균 55명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음식점이 2배나 많고 미국과는 무려 7배에 이르는데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시장 규모에서 하루에 몇 인분을 팔아야 할지 물으면 해법이 없다. 진입장벽이 없으니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식당 창업과 폐업을 반복할 뿐이다.
본질적인 질문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 때가 많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근원적인 문제를 정의(定義)하지 않고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골목 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껌값을 나눠주는 선심으론 골목 치킨집을 보호할 수 없다. 혁신에 역행하는 수단들은 선한 의지와는 달리 결국 영세상공인을 양산하고 그들을 빈곤으로 내몬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있다는 서양속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