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에서
주일 오후 비가 촐촐히 내리는 날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익산 미륵사지를 목적지로 정하고
7080 음악을 셋팅하고 빗속을 미끄러지며 자동차가 움직였다.
편안하게, 천천히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유물 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했던 시절
익산박물관에 대해 자주 들었으나 뒤늦게 오게 되었다.
백제역사 세계역사지구에 등재된 미륵사지를 방문하면서
별을 만난 듯 설레고 좀처럼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익산은 무왕의 탄생 스토리를 간직한 고장이고 실제로 무왕이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익산에 도시를 세웠다.
필자는 무왕의 익산 도시 건설을 정조의 화성 건설과 견주어 본다.
익산 박물관을 견학하고 나오다가 시화 액자를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 신동엽 시인의 <금강> 앞에서 굳어졌다.
시인을 재촉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 준 시인의 남편이다.
시인의 남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금강
신동엽
금마
하늬는 전우들과 작별
부여로 가는 길
마한 백제의 꽃밭
금마를 찾았다.
언제였던가
가을걷이 손 털고
재작년 늦가을
진아는 하늬의 손가락 끼어
미륵사탑 아래
그림으로 서 있었지
그날은
저 탑날개
이끼 위
꽃잠자리가
앉아 있었다.
<금강> 제19장 중에서. . . .
비가 내리는 미륵사지에서
잔디밭을 내딛으면서 과거로 가는 양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미륵사지 동탑과 서탑 사이에 우산을 받고 서서
백제를 생각했다. 찬란했던 황금기!!
동아시아 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지
위상에 어울리는 위풍당당한 석탑
서탑의 반쪽 얼굴 훼손된 모습이 처연했다.
애써 훼손된 모습을 외면하고 온전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픔도 떳떳한 역사이거늘. . .
시인은 아픔을 감싸주고 싶었다.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처럼
오래오래 함께 서 있어야 하는 두 사람
남들이 말한다. 부부의 미소가 닮았다고.
우리 부부 그 말을 최상의 칭찬으로 여기고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스마일이다.
미륵사지 한 편에 널브러져 있는 탑의 분신들이다.
그 분신들이 합체하여 본래의 모습을 찾을 날 오려나.
한 참을 서 있있다. 그들 앞에서.
미륵사지 너머로 우뚝 자리를 잡은 미륵산
미륵산은 알고 있으리라
백제의 찬란했던 황금기를.
미륵산을 보았으리라.
탑에 금이가고 분신들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을.
그러나 그는 묵언수행이다.
미륵사지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낯모르는 관람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젊은 아빠와 초등학생 딸이었다.
아빠 왈 " 제 딸이 더 잘 찍어요. 딸에게 찍으라고 해도 될까요?"
우리는 No, problem~~!!
백제의 무왕 시대
익산 미륵사지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최대의 규모였다.
신라의 사신들이 오가는 길목에
웅장한 미륵사지를 세운 무왕의 뜻!
선화 왕비의 조국 신라에 위풍당당한 모습을
과시하고자 한 속내였을까?
비가 오는 날
익산미륵사지를 걷는 것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잔디밭을 밟으면 그대로
모래를 밟으면 그대로
온몸을 휩싸고 도는 백제의 향기를 느낀다.
집을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싱그러운 나뭇잎들의 모습을 놓칠 수 없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미소가 닮은 오랜 두 사람의 허밍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사랑이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8.10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