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하다보면, 뭐를 잘 모르고, 오류에 빠지고 이단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와의 합일(合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christian)은 유일하신 ‘그리스도’(Christ)가 아닙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를 오해하면 신비주의나 지방교회 등의 이단이 됩니다. 이와 관련 로버트 쇼 목사님의 웨민 해설의 설명을 구분선 아래에서 들어보도록 합니다.
웨민 26장 3항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눈다고 해서 신성의 본질에 참여하거나 그리스도와 모든 점에서 동등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인정하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불경죄에 해당한다(골 1:18-19, 고전 8:6, 사 42:8, 딤전 6:15-16, 시 45:7, 히 1:8-9). 또한 성도들끼리의 교제는 물건과 소유에 대한 각 사람의 권리와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출 20:15, 엡 4:28, 행 5:40). |
해설
이 조항은 두 가지 이단 사상을 논박한다. 하나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교제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도들끼리의 교제에 관한 것이다. 어떤 신비주의자들은 불경스럽고 신성모독적인 표현을 사용해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가 성도를 신격화하거나 그리스도와 동등한 존재로 만드는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신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되었다'를 비롯해 그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편 16세기 초, 여러 가지 위험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제기했던 독일의 재세례파는 신자들은 모든 물건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들의 가르침은 이 나라에서는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현대의 재세례파는 그런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조항은 그런 터무니없는 견해를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1.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눈다고 해서 신성의 본질에 참여하거나 그리스도와 모든 점에서 동등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와 신자는 서로 연합하지만, 서로 별개의 인격으로 머문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눈다고 해서 그분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자는 그리스도께 접붙임 되었지만, 그분의 비공유적인 신성에 참여하지도 않고, 그분이 누리시는 중보 사역의 영광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중보 사역을 행하시면서 아무의 협력을 구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오직 그분만이 그 영광을 누리실 수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했다고 해서 신으로 격상되지도 않고, 또 중보자나 구원자의 지위에 오르지도 않는다.
2. 성도들끼리의 교제는 물건과 소유에 대한 각 사람의 권리와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십계명의 여덟 번째 계명, 자선과 관대한 접대에 관한 신약성경의 권고,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계명들은 모두 각 사람이 자신의 물건과 소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행 2:44-45) 주었다.
이런 기록을 근거로 “예루살렘의 신자들은 서로의 물건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형성했고,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소유권을 포기해 자신의 재산을 공공의 용도로 사용하도록 넘겨주어 모두가 공동으로 권리를 주장하게 만들었다는 견해가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화(행 5:4)는 신자들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재산을 처분하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나 의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 불행한 부부의 경우와 달리 위선과 거짓에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재산을 처분한 뒤에도 그 전부나 일부를 얼마든지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 있었다.
방금 인용한 성경 본문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초대교회 신자들이 사도들 앞에 재산을 처분한 돈을 내놓고 적절히 나눠 주라고 부탁했지만, 때로는 직접 그 돈을 들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가난한자들을 도와주었다는 것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증거들은 초대교회 안에 모든 물건을 서로 공유하는 공동체가 설립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과 관심사가 하나로 연합되었기 때문에 누가가 4장에서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라고 말할 정도로 자선을 베풀려는 열정이 뜨거웠거나 물건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형제들과 기꺼이 나눠 쓰는 삶을 실천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더욱이 예루살렘교회의 행위를 다른 교회들이 따랐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사도 시대에도 그런 사례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이기심을 극복하는 관대한 사랑의 본보기를 제시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우리 자신의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 태도를 독려하는 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를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다.
로버트 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pp.286∼287.
첫댓글 "신자는 그리스도께 접붙임 되었지만, 그분의 비공유적인 신성에 참여하지도 않고" --> 비공유적 속성
이 비공유적 속성 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읽을 포스팅을 아래에 올립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고 불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입니다. 비공유적 속성에는 독립성∙불변성∙무한성이 있는데요. 비공유적 속성은 절대적 속성이라고도 합니다. 절대자 하나님만이 불변하시고 그의 선하고 의로운 뜻도 불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불변성 때문입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은 거짓말을 안 하시고 못 하십니다.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은 도토리 키 재기로 연약하고 간사해서 변합니다.
https://cafe.daum.net/1107/Y4OQ/136
네,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주셨네요.
@노베 공감합니다.
오직 믿음과 오직 성경에 선행되는 전제조건은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가 우선되는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을 알거나 알아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인간과 다른 비공유적(incommunicable) 속성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령을 받은 성도들조차도 하나님을 알기는 하되 다(all) 알지는 못합니다(불가해성). 이것이 기록된 대표적인 말씀이 오늘 아래의 본문입니다.
"사55:8.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일단 인간은 하나님과 조금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공유적 속성), 하나님은 인간과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비공유적=절대적 속성).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나 하나님을 아는 것에는 하나님의 우선적인 조치인 은혜(grace)가 필요한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1107/Y4OQ/132
하나님과 우리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간 것들도 다시 소환시켜주셔서 보니 아주 유익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을 알면 이단에 빠지거나 성경을 오해할 수도 없겠어요~~
@코람데오 공감합니다.
하나님의 자유와 사람의 자유는 구별된다.
https://cafe.daum.net/1107/arVI/2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설명도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무지 많이 읽고 매우 성령 충만한 성도들조차도 하나님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다(all, perfectly)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과 완전히 다른 비공유적 속성(incommunicable attributes)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https://cafe.daum.net/1107/Y4cZ/33
비공유적 속성 때문에 불가해성이 이해됩니다. 좋은 포스팅이었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루이스 벌코프의 비공유적 속성 설명
https://cafe.daum.net/1107/YNWz/13
다시 잘 읽어 보았습니다. 영어 공부 글도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좋은 포스팅입니다.
남녀가 만나 한 몸을 이룬다고 해도 여전히 독립적인 인격체로 남아 있듯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신분상의 변화는 생겨도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 될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신성모독의 죄에 빠지지 않겠네요.
성화보다는 신화사상을 강조한 동방정교회의 전통을 따르면 이단이 되기 쉽고, 교주도 되기 쉬우니 경계해야죠.
신자들이 성경 몇 구절에 꽂혀서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오류들을 잡아줄 수 있는 좋은 교리네요.
그리스도인들끼리의 교제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명시했네요. 초대교회에서 나눔과 통용을 형제 사랑의 실천으로, 자선을 베풀려는 열정으로 했지만, 재산 공동체를 설립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에 유의해야겠습니다. 이단과 사이비는 꼭 이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큰 특징이네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매우 좋은 이해와 설명입니다: 신분상의 변화는 생겨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승격되는 것이지, 하나님처럼 되거나 하나님의 본질(신성)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두 분의 댓글, 답글 내용이 너무 좋네요. 매우 공감합니다.
@장코뱅 네, 이해가 많이 됐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오해하는 오류를 방지하는 좋은 포스팅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