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이름만 알고 있는 분에게 전화가 왔다.
얼굴을 아는 사이도 아니니 별 할 말도 없고
두 번인가 통화를 한 기억이 있다.
문학 관련 전화가 오면 받고 질문에 답을 한 정도이니
친분도 그렇다고 특별한 무엇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한 말도 잊고 있었는데 언제 꽃구경을 시켜 줄 것이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만났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고 바쁜 시기라
우리 동네 꽃 피면 오라고 했다
난 그 말을 하고 잊고 있었던 것이다.
18일 날 옛정 문학인들과 여의도 공원을 거닐고 있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다음 주 중에 오시면 좋겠다고 했더니 본인은 주일 밖에 시간이 없단다.
나는 주일은 정말 바쁜 날인데, 어쩔 수 없이 주일에 해야 일을 취소하고
그 선생과 약속을 했다.
신문사는 신문사대로 황금 시기에 일을 놓칠 수 없어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고, 다급함을 말했다.
4곳 가운데 한 곳은 가줘야 하지 않겠냐는 사장님 말에 못 간다고,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녀와줘야 할 교회의 장 목사님은 다음 달 23일 신문사 행사에 설교를 하실 분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보면 다른 것 뒷전으로 미루고
일산을 다녀오는 것이 맞는데
사람 사는 것이 말로 한 약속이라 해도 파기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난 남자들 개인으로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꼭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면 이웃집 옆집 아줌마 다 불러내어
잔칫집을 만든다.
용인에서 오시는 선생에게는 미리 말을 안했다
자주 좋은 글쓰기 탐방을 하니 언제라도 요청을 하면 시간만 맞으면 함께 하는
문인들이 있어 그들에게도 사전 이야기 없이 미팅 시간만 전했다
둘 가운데 한 분이 오겠다고 했다.
덕분에 시간이 되어 마곡나루역에 가서 기다리는데 용인 선생이 왔다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하나 들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책이라고 했다
그것을 어떻게 들고 다니겠냐고 물었더니 어디쯤에 맡길 것이라고 했는데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버거운 무게로 보였다
세로 30cm, 가로 27cm 크기의 책, 페이지도 적지 않은 책이다
결국 인솔하여 지하철 보관함에 3시간 대여비를 넣어주고 보관하도록 했다.
책을 사물함에 보관하고 산책길에 나섰더니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이 선생은 뭔 생각으로 왔는지 사진을 촬영하라고 해도 겉돈다.
본인이 가진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라고 해도 결국 꽃 한 송이 촬영하지 않고
뒤 따라 다니다 식사만 하고 갔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은행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저 쪽 길 건너에 있다고 하자
가서 식사비를 찾아올까 해서 물어 보는 것이라고 했다
앓느니 죽지
남자들 주머니에서 치사한 돈 내서 밥 얻어먹는 성품은 아니라서
그냥 오라고 했더니 곰 상이던 얼굴이 해바라기가 되었다.
마누라에게 사사건건 보고를 하고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원래 살아가는 방법이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문학 언니가 한마디 했다
우산 든 모습이 안 어울리니 접으라고
아마도 은행 이야기에 짜증이 난 듯 했다
용인 선생은 말없이 우산을 접었다
태양을 가린다고 쓴 우산이니 보기에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일단 분위기는 별로 안 좋았다
식당은 내가 가끔 가는 곳인데 손님 많아서 손님이 왕이 아니라
주인이 왕인 곳이다
문학 언니는 반찬 그릇에 다른 사람 젓가락이 들어오면 그 반찬을 먹지 않는다.
더군다나 낮선 남성이 반찬 그릇에 젓가락을 휘젓는데 그것을 먹을 리가 없다
그래서 방편으로 식당 종업원에게 반찬 한 그릇 더 달라니
다 먹고 달라고 하면 좋겠다고 핀잔을 주고는 나가 버렸다.
밥상머리에 앉았지만 무엇인지 모를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벨을 몇 번씩 눌러도 종업원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음식가격이 비싼 값을 한다.
뭣 하나 얻어먹으려면 사정을 해야 한다
손님 모시고 가기에는 좋은 집은 아니지만 음식이 좋으니 갈 수 밖에 없어 가는데
왜 손님이 많은지 모른다.
식사를 하고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차도 내가 사야 할 분위기다
아무도 차를 사려는 마음이 없다.
그래도 어디 들려 시원한 차를 마시면 좋겠는데
문학 언니의 마음과 용인 선생의 행동이 남북 관계만큼이나 불편해서
곧장 지하철로 내려갔다.
지하철 입구 로비에 앉아 있는데 용인 선생이 사물함에서 책을 찾아왔다
추가 된 시간의 돈을 넣고 찾는데 그 돈을 쓰는 것이 씁쓸한지
손놀림이 신경질 적으로 보였다.
상자를 들고 우리 곁으로 오더니 상자를 빡빡 찢었다
나는 말했다
나머지 책을 어떻게 들고 가시려고 그려냐고
용인 선생 대답도 없이 상자를 찢었다
난 이미 우편으로 세 권이나 받은 책을 안줘도 되는 책을,
그래서 받은 책이라고 했으나 3권을 꺼내 놓았다.
문학 언니는 한권만 달라고 했다.
난 사실 한 권도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받은 것이다.
멀리까지 들고 온 성의를 봐서
사실 책은 한 달이면 몇 권씩 들어오는 것이라 특별한 책이 아니면 기쁨이 되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이미 소지한 책을 더 받는 것은 그렇다.
용인 선생이 먼저 일어나기에 책을 결혼식에 왔다가 옆 의자에 앉아 있던
두 부부에게 한 권씩 주었다.
읽어 볼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 분들이 책을 받았다.
이번 일은 이틀이 지났는데도 기분이 좋지 않다
용인 선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는 기절 할뻔 했다.
“이 년이 인연되고 저 년이 절연 된다” 는 글
고운 말도 헛된 세상인데
년, 년 해가며 이곳저곳에 도배를 하는 심성
글쟁이로 밥 먹어도 배탈 안 나고 잘 살까
이 봄 액땜이라 해야 하나
어머니 말씀이 딱 맞는다.
못된 인간 만나면 돈 쓰고 주름살 생긴다고
첫댓글 여울님이 기독교여성신문의 주필인가봐요.
아니요
취재부 부장입니다
인터뷰가 제 담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