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걸작 앨범 <Rumours>에서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던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의 1992년 솔로앨범 <Out Of The Cradle>에 수록된
Street Of Dreams. 마음에 비가 나리는 노래다. 비 와서 꿀렁꿀렁한, 그래서 마음도 울적한 날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무엇보다 '슬픔경보'에 주의해야 한다!
1993년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 전야제에 한 밴드가 등장했다. 한동안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이 밴드는 이 날 전성기의 멤버로 돌아와 재결합 공연을 펼쳐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여기서 전성기의 멤버란 당연히 스티비 닉스와 린지 버킹햄을 말한다. 이들이 극적으로 재결합하게 된
배경은 클린턴 진영이 선거 과정에서 이들의 1977년 히트곡 'Don't Stop'을 캠페인 곡으로 썼기
때문이다. 플리트우드 맥은 그렇게 돌아왔다.
그러나 구분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플리트우드 맥이 1967년의 플리트우드 맥이 아니라
1974년의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사실. 1974년 플리트우드 맥은 변신을 시도했다. 그 해를
기점으로 초창기 피터 그린이 주도하던 블루스 록 성향의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고 전형적인
팝 록 밴드로 전향한 것이다. 극적인 전향을 주도한 것은 그 해에 밴드의 새로운 멤버로 영입된
스티비 닉스와 린지 버킹햄이었다.
린지 버킹햄은 194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에서 태어났다.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샌프란시스코 해변 지역에서 자라면서 형제들과 수영을 즐겼다. 경쟁심이 발동한 형제들은 열심히
물살을 갈랐고 덕분에 수영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린지 버킹햄은 도중에 음악에 빠져
물 밖으로 나왔지만, 그의 형인 그렉은 계속 물살을 갈라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딸 정도였다.
린지 버킹햄이 처음 잡은 기타는 미키 마우스 캐릭터의 장난감 기타였지만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부모는 곧 35달러짜리 진짜 기타를 사주었다. 독학으로 기타를 익힌 그는 십대 시절 포크 음악에
빠져 킹스턴 트리오(Kingston Trio) 스타일의 포크를 연습했으며, 열다섯 살 때에는
프리츠(Fritz)라는 포크 그룹을 결성해 기타와 보컬을 맡았다. 그의 음악 스타일이 포크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이때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1973년 린지 버킹햄은 여자친구이던 스티비 닉스와 듀오 버킹햄 닉스Buckingham Nicks를
결성하고 데뷔 앨범 <Buckingham Nicks>를 냈다. 그 때 플리트우드 맥을 이끌고 있던
믹 플리트우드가 녹음 스튜디오를 점검하러 캘리포니아에 왔다. 우연히 버킹햄 닉스의
'Frozen Love'를 듣게 된 그는 단번에 반해 버렸다. 믹은 즉시 기타리스트를 수소문해
린지 버킹햄을 찾아낸 뒤 플리트우드 맥 가입을 요청했다. 린지 버킹햄의 대답은 "스티비 닉스와
함께라면 좋다. 우린 묶음이다"였다. 믹은 린지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곧바로
플리트우드 맥에 합류했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나 밴드에게나 팬들에게나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택이었다. 린지 버킹햄은 훗날 "만약 스티비 닉스와 함께가 아니었다면 플리트우드 맥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고 회고했다. 만약에 그랬다면 팝의 역사는 조금은 다르게 쓰여졌을 것이다.
두 사람을 영입한 후 처음 발표한 앨범의 제목이 <Fleetwood Mac>(1975)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1967년에 데뷔 앨범으로 같은 제목의 앨범을 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Fleetwood Mac은 순식간에
500만 장이 팔려나갔고 플리트우드 맥의 변신은 성공했다.
다음 앨범인 <Rumours>(1977)는 두 말할 것도 없는 밴드의 대표 앨범으로 팝 음악의 역사에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앨범이다. 특히 이 앨범이 거둔 상업적 성공의 크기는 기록적인데,
미국에서만 순식간에 1,4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고 빌보드 앨범차트에서도 무려 31주 동안이나
정상을 지켰다. 모두가 마이클 잭슨의 전설적인 앨범 <Thriller>가 나오기 전까지
부문 최고 기록이었을 만큼 엄청난 성적표였다. 앨범 수록곡들은 싱글차트도 완전히 점령했다.
'Dreams'는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고 'Don't Stop'은 3위까지 올랐으며
'Go Your Own Way'와 'You Make Loving Fun'도 톱10에 진입했다. 아름다운 발라드 'Songbird'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앨범이 팝 역사상 최초의 블록버스터 앨범으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린지 버킹햄은 <Tusk>(1979), <Mirage>(1982), <Tango in the Night>(1987)까지 플리트우드 맥과의
인연을 이어간 뒤 1987년 솔로 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했다. 플리트우드 맥의 실질적인 전성기가
이 때 마감되는 것은 밴드에서 린지 버킹햄이 차지했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잘 보여준다.
린지 버킹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플리트우드 맥 시절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는 솔로로서도 상당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사실 1987년 플리트우드 맥을 떠나기 이전에도 그는 이미 솔로 활동을 겸하고
있었다. 그는 1981년 자신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인 <Law and Order>를 발표하고 수록곡 'Trouble'을
싱글 히트시켰으며, 1984년에는 솔로 2집 'Go Insane'을 냈던 터였다. 그는 지금까지 모두 여섯 장의
솔로 앨범을 냈다.
앞서 얘기한 1993년의 깜짝 이벤트성 재결합 이후 플리트우드 맥은 적극적으로 정식 재결합을
모색했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는 4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1997년 플리트우드 맥은 마침내
<Romours> 시절의 전성기 멤버 그대로 다시 돌아왔다. 컴백과 함께 'The Dance'라는 타이틀로
미국 전역을 돌며 펼친 투어는 구름관중이 몰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공연실황은 후에
'The Dance'라는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린지 버킹햄은 초창기에는 펜더 텔레캐스터 기타를 썼지만, 플리트우드 맥에 가입하면서부터는
깁슨 레스 폴 기타를 자신의 주력 기타로 삼았다. 그의 기타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그가 선호하는 어쿠스틱 기타의 기종은 테일러 기타이다.
린지 버킹햄은 피크 대신 손가락으로 피킹하는 대표적인 기타리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기타리스트로서 린지 버킹햄의 최대 장점은 절대 무리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연주력을 유지한다는
점. 비치 보이스와 킹스턴 트리오 등의 영향을 받은 그의 연주는 기본적으로 포크적 성향을 보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더 넓은 전개를 보인다.
그는 언제나 적재적소에서 시의적절하게 기타를 친다. 그의 이런 스타일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앨범도 역시 <Rumours>인데 수록곡 모두에서 그의 재능은 순간마다 피어난다.
'Gold Dust Woman'에서는 깔끔한 어쿠스틱 리듬 연주로 조용히 뒤를 받치다 어느 순간 슬라이드
기타 솜씨를 발휘하는가 하면, 'Don't Stop'과 'Go Your Own Way'에서는 만만치 않은 일렉트릭
기타 솔로를 들려준다. 플리트우드 맥의 깔끔하고 매끈한 팝 성향은 명백히 린지 버킹햄과
그의 기타가 그 키를 쥐고 있다. 스티비 닉스의 매력적인 보컬과 함께.
린지 버킹햄은 기타리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송라이터, 보컬리스트, 프로듀서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는 플리트우드 맥의 음악작업 전반에서 창작자와 프로듀서로서의 역할도 겸했다.
대표적으로 <Rumours>도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앨범이다.
린지 버킹햄은 소위 말하는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테크니션은 아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노래이고 레코드다. 당신은 에드워드 반 헤일런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뛰어난
기타 비르투오소이지만 나는 그가 좋은 노래를 녹음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연주는
밴드 음악의 구조 속에 잘 녹아들고 있지 못하다. 반면에 쳇 앳킨스도 있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연주를 하지 않지만 그의 기타는 좋은 레코드를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좋아했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곡에 정확하게 녹아든다. 나는 깨달았다.
그가 거기서 그렇게 연주하지 않았다면 그 곡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린지 버킹햄은 에드워드 반 헤일런이 아니라 쳇 앳킨스 같은 기타리스트가 되기를 꿈꾸었다.